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 Gender Matters 정책 홍보영상
[2] http://www.innovation.gov.au/page/opportunities-women-stem
[3] 영국 여성전용 창업자금 지원 공모
[4] 영국 영화계 공공지원금의 반을 여성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쿼터제 마련 촉구
[5] 스웨덴 정부웹페이지 양성평등 현황자료

"> Filed Timeline

파일드-타임라인은 2016년 1월부터 시작한 기록 프로젝트 입니다.
각자가 주목한 작은 사건들이 직조되어 기억되고 이야기가 이어지길 바라며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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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2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돈의문 뉴타운 제1구역이다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 중 ‘주제전: 아홉 가지 공유'가 열리고 있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이전 이름은 '돈의문 뉴타운 제1구역'이다. 2014년부터 GS건설사가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을 분양할 목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 뉴타운 사업 인가가 떨어졌고 2014년, GS건설이 분양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업은 본격화되었다.

뉴타운 사업은 기업 및 뉴타운 조합이 분양가 등의 수익을 얻기 위해 추진되지만, 동시에 세입자들의 재산권을 배재한다. 해당 지역의 세입자들이 이주해 재개업할 수 있도록 보상할 의무가 따라붙지 않는다. <내일신문> 김영숙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뉴타운 사업은 민간인인 뉴타운조합에게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재건축 재개발을 추진함에도 다른 민간인의 재산을 강제수용할 수 있는 수용권(명도집행)을 주었다.”[1]

프레시안 기사에 따르면, 돈의문 뉴타운 사업의 조합(이하 조합)은 이곳 지역민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제 1구역 면적의 부분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용적률*을 높였다. 서울시와 조합측 모두 얻을 걸 얻기 위한 계약에서, 세입자들의 몫을 위한 항변은 묵살되었다. [2]

철거가 예정된 재개발 지역 세입자들은 다음 세입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권리금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세입자 대책위는 수십년 간 운영한 무형의 가치와 더불어 이주와 영업 지속을 위한 비용을 조합과 서울시, 시공사인 GS 건설에 요구했다. [3] 조합측에서는 이들에게 뉴타운 단지 내 새 상가를 조합원 분양가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평당 3000만원 대의 상가를 분양받기 위해선 수십억원이 필요하며,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안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이미 2015년, 이곳의 세입자들이 처한 상황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 되었음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2016년, 명도집행(철거 용역을 이용한 강제 철거)된 당신의 가게에서 분신 자살한 고 모씨(당시 60세)의 사건 발생 관계-철거 용역측은 고 모씨가 철거된 광경을 본 고 모씨가 스스로 저지른 것으로 주장하나, 유족측에선 철거 용역 직원의 시비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한다-가 규명되지 않은 채 건물들은 철거되었다. [5]

서울시가 조합과 맞바꿔 조성한 박물관 마을의 원 취지는 용산참사와 같은 강제 철거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상징적인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6] 꿈은 아름다고 창대했을지라도 결과는 참담하다. ‘공유 도시’를 표방한 건축 비엔날레가 열리는 이 장소는 토건자본이 갈아 엎은 ‘돈의문 뉴타운 제1구역’의 폭력의 역사와 그 가해의 역학(민관의 비윤리적 상생관계)을 묻어뒀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도시의 공공성 이미지를 전시함으로써. 그 언어들을 구성하는 권력으로. 말하자면 이 장소를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주권'으로. 그러나 우리는 그 주권의 추악함을 <안티고네>(소포클레스)에서 이미 바라본 바 있다. 비엔날레가 주장하는 도시의 공유성은 이 땅의 역사와 공명하지 않는다. 그 화두들이 문자 그대로 의미하는 진리와 별개로. 오히려 이 장소의 현재를 과거로부터 격리시킬 뿐이다.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 죽음을 돌보는 이는 이들 자신뿐이다. 법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목소리. '시민'은 왜 법 바깥에 있어선 안 되는가? 나는 이 반동적인 비엔날레의 현장에서 어떠한 웃음도 환대도 흘리고 싶지 않다.



[1] <돈의문 뉴타운 강제철거에 세입자 분신>, 김영숙 기자,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92269 2016-04-14
[2] <칠순 여행한다던 고 씨는 왜 제 몸에 불 붙였나?>, 허환주 기자,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6691 2016-05-19
[3] <내쫓긴 서울 돈의문상가 세입자···누구의 잘못인가>, 서승범 기자, 뉴스웨이 http://news.newsway.co.kr/view.php?tp=1&ud=2015020216452998862&md=20150203142401_AO 2015-02-03
[4] 김영숙 기자, 같은 곳
[5] 이 글을 쓰기 위해 해당 기사를 쓴 허환주 기자에게 기사 이후 정황을 문의했고 답변을 받았다. 기자의 동의를 얻어 문장을 인용한다. "고인의 따님이 서울시에 문제제기도 하는 등 여러 지적을 했지만, 결국 아무런 것도 밝혀지지 않고 현장은 철거됐습니다."
[6] <재개발 실패지역, 도시재생 모범사업으로 '둔갑'>, 홍범택 이제형 기자,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49830, 2017-09-06
참고 <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16) 돈의문뉴타운 철거민>, 양동주 기자, http://m.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88868 2015-10-28
용적률의 뜻
대지 내 건축물의 건축 바닥면적을 모두 합친 면적(연면적)의 대지면적에 대한 백분율. 용적률은 대지내 건축밀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된다. 용적률이 높을수록 대지면적에 대한 호수밀도 등이 증가하게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26434&cid=42151&categoryId=42151

# 도시 by @gusvjar
2017.07.31
<<오큘로>> 5호, <문지기의 임무> 칼럼에 부치며

이번 <<오큘로>> 5호에 실린 이도훈 씨의 글(<문지기의 임무 : 동시대 한국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 프로그래밍에 대하여>)은 시작부터 “건설적인 비판에 인색한 문화는 진보보다는 퇴행을 더 앞당길것”이라고 밝히며 씨네필들 사이에서 어떤 성역처럼 여겨지는 지난 시네마테크와 영화제들의 다소 안일한 길만을 선택했던 프로그래밍을 비판한다. 서울아트시네마, 부산의 영화의전당과 한국영상자료원을 중심으로 한 국내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들에 대해선 지나치게 이미 검증된 ‘정전’과 친구들(이라 불리는 영화계 내-외부의 명사들)의 ‘취향’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그 분위기마저 “과열되어 있”는 상태에 놓인 많은 국내 영화제들에 대해선 더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아니라 다른 영화제에서 보기 힘든 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본디 영화제 프로그래밍이 담당해야 할 매년 조금씩 확장하는 영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감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지기보단, 영화제끼리의 과열된 경쟁 과정에서 다른 영화제보다 더 많은 관객을 유치하기 위해 해외에서 검증받은 작품들에 관용어를 붙여 “영화제용 영화의 생산과 수용”을 반복하는 데 그치거나, 그저 양적으로만 작품의 수를 늘리는 게으른 프로그램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내게도 이미 검증된 ‘걸작들’로 점칠 된 시네마테크와 영화제들은 그 ‘유명한’ 영화들을 스크린으로 (먼저) 볼 수 있다는 도취된 감정으로만 작동하는 장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불어 우리는 굳이 시네마테크나 영화제를 시간 들여 가지 않더라도 MUBI나 Fandor,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 등을 통해 집 안에서 나만의 수준 높은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1] 이제 그들은 가상 속 영화제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프로그래머들에게 모든 책임을 온전히 전가하고 싶진 않다. 많은 관객이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영화에 대해선 일단 미심쩍어하고 보기 때문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특별전’과 같은 검증된 작품들을 상영하는 프로그램들의 관객 수와 ‘베니스 인 서울’이나 최근의 ‘흑해영화제’와 같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동시대 영화들을 상영하는 프로그램들의 관객 수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단순히 새롭고 좋은 영화를 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영화들에 대해 관객들이 주목할 수 있게 하는 지면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기엔 최근 ‘시네마테크 영화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관객과 함께 이 시대의 새로운 정전을 찾아보려는 시네마테크 측의 노력도 눈에 띈다. 우리에겐 우리 시대의 영화가, 그리고 그에 맞는 새로운 흐름의 영화 담론이 필요하다. <<오큘로>>에서도 지적하듯, "영화의 담론은 닫히고 고정될 때가 아니라 열리고 흐를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더 빛나기" 때문이다.


[1] 특히 30일 동안 30여 가지의 다른 영화들을 스트리밍 상영해주는 MUBI의 경우, 소위 ‘정전’으로 불리는 영화들부터 해외 영화제에서 방금 프리미어를 마친 동시대 영화들은 물론 아방가르드한 실험 영화나 에세이-다큐멘터리 영화 등 정말 폭넓은 스펙트럼의 영화들을 서비스로 제공한다. 물론 아직 국내에선 정식 서비스가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사이트의 상영작들을 영자막으로만 관람할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https://mubi.com
오큘로 5호 http://www.okulo.kr/2017/08/okulo-005.html

# 독립출판 by @louderaloud
2017.07.25
2000여 개의 스크린에 저항하기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가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1] 마블의 <스파이더맨 : 홈 커밍>이 아깝게 1965여 개의 스크린 수를 확보하며 실패했던 ‘상영 스크린 수 2000개 돌파하기’에 성공한 것이다. 개봉 첫날, <군함도>는 총 417개의 극장이 보유한 2575개의 전체 스크린 수 중 2027여 개의 상영관에서, 총 1만 174번 상영되며, 하루 만에 97만 898명이라는 경이로운 관객 수를 확보했다. 민병훈 감독은 해당 기록을 두고 “독과점을 넘어선 광기”라고 일축했고 [2], 이와 같은 논란에 대해 류승완 감독 스스로도 자신의 영화를 끝으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3]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뒤이어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1400여 개의 스크린으로 시작해 결국 1900여 개의 스크린으로 확대되었다. [4] 영화 내외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논란으로 인해 생각보다 관객 유치가 되지 않는 <군함도>를 트는 것보다는 전반적으로 평이 더 ‘괜찮은’ <택시운전사>를 트는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독과점 논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새로운 영비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분석 기사가 뒤이어 나온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비판에 언론이 힘을 실어주는 것에 희망을 걸어보기엔 이와 같은 비판적인 목소리의 흐름은 늘 있었고, 그럼에도 늘 어떤 영화는 1500여 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전히 상황은 절망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도종환 의원과 국민의당의 안철수 의원이 각각 작년에 새로운 영비법을 발의한 상태이지만, 법적인 제재로 이어지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이 광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 만큼 실질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관객층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스크린 독과점에 저항해 멀티플렉스에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큼 관객층에서 그들을 불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멀티플렉스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스크린을 확보하여 관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영화산업에서 멀티플렉스는 소수 영화의 독점을 가중함으로써, 관객에게 선택의 폭을 도리어 축소한다. 2016년 3개 멀티플렉스 체인(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전국 극장 수 및 스크린 수 점유율은 각각 79.1%, 92.4%를 차지하고 있다. 비 멀티플렉스 극장의 점유율이 1-2%에 불과한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는 무기력하게 멀티플렉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어디서,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에 대한 관객의 자율적인 선택의 영역이 마치 운명처럼 결정되어있는 상태에서 ‘한국 관객’의 숙명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러한 점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관객으로 존재하는 우리는 이 비극적인 운명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저 자본주의라는 만들어진 신이 정해준 운명의 수동적인 제물이 되어선 안 된다. 멀티플렉스가 정해준 운명의 끝의 길에 놓인 나쁜 영화들의 범람에 두 눈을 잃는 비극에 저항하기 위해, 우리는 그 누구의 눈도 아닌 온전한 “자신의 두 눈으로” 영화를 보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1] https://twitter.com/parkpico/status/890425363796443140
[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7/2017072701131.html
[3] http://www.huffingtonpost.kr/2017/07/29/story_n_17624020.html
[4] 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9422

# 영화 by @louderaloud
2017.07.25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10

월간 <디자인> 4709호 스페셜 피쳐 기사는 이예주, 정희연, 오새날, 소목장 세미, 신모래, 둘셋 디자인 스튜디오, 양민영, 김소영, 니키 리, 정새우 이상 10명의 디자이너를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로 선정해 소개했다. 항간에는 '왜 남자 디자이너가 없냐'는 공허한 외침도 들린다. (최근 트렌드 처럼 퍼지고 있는 남성주의에 경도 된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소수의 남성주의자들에게 선동되기 보단 냉철하게 현실을 보라. 여성 디자이너가 수가 더 많고 그러니 당연히 잘 할 확률도 높다. 디자인 잡지에서 작업을 잘하는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데 남자, 여자가 어디 있겠나? 게다가 남성주의자들이 원하는 대로 그동안 월간 <디자인>의 에디터들은 양성평등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들여 남성 디자이너를 발굴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로지 한국 디자인 계를 위해 4709호를 이어온 월간 <디자인>의 역사도 모른 채, 이제 와서 '남성 디자이너'를 찾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살펴 볼 지점은 또 있다. 왜 10명인가? 잘하는 여성 디자이너의 수를 생각해보라. 10명만 소개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지금 내 머리에만 스페셜 피쳐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10' 2, 3, 4, 5, 6, 7, 8, 9, 10이 기획되고 있다. 리스트가 끝도 없다. 아쉽기도 하다. 한꺼번에 소개해버리니 각각 주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성주의를 찾아 광광 댈 것인가?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다.


월간 디자인 4709호 사러가기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7.07.15
# LGBT
50여 명이 8만 5천여 명이 되기까지

2000년, 대학로에서 약 50여 명에 불과했던 퀴어퍼레이드의 참여 인원이 올해 8만 5천 명을 넘겼다고 한다. [1] 원내정당 대표 최초로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가 무대에 올라 연설을 했고, 국가기관 중에선 최초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참가했다. 불교계 성소수자 모임인 ‘불반’ (불교이반모임)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부스를 설치하며 불교계의 첫 참가를 알렸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비까지 쏟아지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8만 5천여 명의 ‘시민’들이 “나중은 없다”고 외치며 4km에 달하는 길을 무지개로 물들였다.

3년 전, 용기를 내서 처음 참가했던 퀴어퍼레이드에서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내 인권의 현주소를 맞닥뜨렸다. 당시 신촌에서 열렸던 퀴어퍼레이드는 예정된 퍼레이드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안전하게’ 끝마칠 수 있었는데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혐오 세력들이 퍼레이드를 방해하기 위해 트럭이 지나가야 하는 동선에 드러눕는 퍼포먼스를 오랜 시간 동안 벌였기 때문이다. 지치고 긴 시간 동안 이어진, 놀라울 정도로 집요한 그들의 퍼포먼스는 경찰의 손에 이끌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언제나 무난한 커밍아웃 과정만을 거쳤으며, 종로-이태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안전한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만 활동 반경이 국한되어 있던 나에게 실제로 발화되는 혐오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그해 대구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서는 참여자들에게 인분을 투척하는 테러 행위가 벌어졌고, 인분을 맞은 이들은 자신에게 쏟아진 혐오에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염산이 아닌 게 어디냐”며 너스레를 떨며 빠르게 털어내야만 했다. [1] 페미니즘 이슈가 크게 터졌던 2015년을 지나며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여혐을 맞닥뜨렸으며, 2016년은 지난 두 해를 지나오며 지속해온 고민을 비로소 행동 혹은 나의 언어로 옮기기 위해, 그 어느때 보다 많은 분노를 쏟았고, 어느 때보다 많은 활자를 웹상에 기록했던 해였다. 그리고 2017년이 왔다. 악의 세력과도 같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가 도래한 것처럼 보이는 2017년이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로써 나의 인권은 수많은 안건에 밀려있는 상태이다.

올해에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자신의 북소리를 높이는 혐오 세력들을 마주해야만 하고, 퀴어퍼레이드 측 스스로도 내부적으로 가진 몇 가지 문제점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디지만 전진한다. 이 발걸음들이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이번 퀴어퍼레이드에서 제기된 목소리들이 무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 https://twitter.com/dmthoth/status/886190800845000704
[2] 해당 내용은 게이 합창단 ‘G-VOICE’를 다룬 다큐멘터리 <위켄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
[3] 퀴어퍼레이드가 끝난 직후 몇 가지 문제가 타임라인을 통해 제기되었다. 퍼레이드 이후 이태원의 한 게이클럽에서 개최된 애프터파티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각기 다른 금액(여성의 경우엔 갑작스레 5만 원에서, 3시 이후에는 무려 8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클럽 입장료로 요구했다고 한다)을 입장료로 측정해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퍼레이드 당일엔 퀴어문화축제측을 통해 예약한 플라자호텔 객실에 한해 창문에 ‘레인보우 플래그’를 거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갑작스레 플라자호텔 측에서 사전에 협의가 되지 않은 유인물은 부착을 금지하고 있다며 투숙객들에게 통보했다. 해당 두 사건에 대해서 퀴어문화축제 측에서 입장문을 게재했지만 여러 가지 의구심은 풀리지 않고 여전히 마음속에 껄끄럽게 남아있다.

퀴어퍼레이드 이후 애프터파티에서 벌어진 차별 행위에 대한 퀴어문화축제측의 입장문 https://twitter.com/kqcf/status/887131493595717632
플라자호텔 ‘레인보우 플래그’ 부착 안내 관련 트윗 https://twitter.com/deerheadinn/status/886177041418141696

# LGBT by @louderaloud
2017.06.18
비공일호 «핫써머»

핫써머 전시를 보러 간 날 최고기온이 34도였다. 아마 체감온도는 더 했겠지. 주소를 따라가다 보면 다세대 주택, 그리고 빌라, 다시 다세대 주택, 등등이 모여있는 주거지역이 나온다. 전시장이 있을 거라 상상할 수 없는 곳, 비슷비슷하게 생긴 빌라 중 하나인 북아현동 “대성아트빌”의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지하 1층 B01호가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이 나오고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실내화를 신으려니 영 어색하다.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면 그곳은 ‘거의’ 전시 공간 같다. 거실과 이어진 부엌은 가벽으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고, 전시 공간으로 쓰이는 거실과 방은 하얀 벽지로 도배되어 있다. 반지하이기 때문에 적당히 빛이 차단된 공간에 긴 LED 등으로 빛을 공간에 고루 퍼트려 장판만 아니면 ‘거의’ 전시장처럼 보인다. 원래 다른 용도로 존재했던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어 전시하는 일은 이제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본래 장소가 갖고 있던 상징성을 한 번이라도 이용하려고 한다.

가령 «벽돌 수족관 파이프»(행화탕, 2017. 04. 08- 04. 15)는 행화탕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던 ‘공중목욕탕’이라는 상징성이 강해 피하기 어려웠겠지만, 오랜 세월 축적된 공간의 상징성을 작품이나 전시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금이 가 있거나 원래 놓여 있던 사물이 작품처럼 보여 도면을 몇 번이고 다시 봐야 했고, 영상 작업이 재생 안되는가 하면, 작품이 설치된 상태가 위태로워 전시를 보면서 간혹 작품 컨디션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작품 역시 행화탕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기획과 설치 때문에 계속해서 공간과의 연속 선상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공일호는 장소에 얽매이는 대신 “현실 감각”을 호출하여 장소를 전시공간으로 치환한다.

전시공간의 모습에서 이들의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한 류한솔, 이나하, 지용일 역시 스스로의 현실 감각을 가져와 드로잉으로, 회화로, 조각으로 다시 세운다. 그리고 작업은 이 감각을 드로잉으로, 회화로, 조각으로 다시 세우는 과정에 존재하고 있다. 단지 궁금한 것은 이 현실 감각이 재현의 대상이 된 이상 매체 혹은 감각 모두 본래 갖고 있던 성격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과정이 전달을 목적으로 할 때 원래의 맥락이나 의미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나하나 지용일이 가져오는 “디지털 환경”에는 오히려 역사나 깊이 혹은 미래가 없다. 그러니까 이 모습은 전체 전시 기획과는 반대로 나아가는 태도 아닌가 싶었다.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볼 문제이다. 축적을 불신하고 미래를 맹신하지만, 그렇게 구축된 미래가 시시해질 무렵 다시 한쪽에선 무언가를 다시 세우려 하고 있다. 여름이고, (언제나 그렇듯) 여름은 덥다. 전시는 7월 2일까지이다.


https://www.artbava.com/exhibit/%ED%95%AB%EC%8D%A8%EB%A8%B8-hot-summer/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7.06.07
서울 혹은 경성 : 서울의 주인은 누구인가

서울시가 중구 회현동 일대의 '남촌재생플랜'을 통해 북촌 , 서촌과 같은 관광명소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 그러나 북촌하면 한옥마을이 떠오르듯이 남촌을 대표하는 고유 정체성과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에서 남촌이 일본인 주거지였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치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이어서일까. 근현대건축물 밀집지역에 도시재생시설을 설치하겠다는 '남촌재생플랜' 어디에도-적어도 언론에 공개된 수준에서는-그 근현대건축물을 짓고, 살았던 일본인들에 대한 얘기는 담겨있지 않은 듯 하다.

서울이 '경성'이던 시절, 서울에서는 수십만명의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뒤엉켜 살았고, 이들의 생활상은 지금의 서울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어린이용 교육 책자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경성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차별대우에 서러움을 느끼면서도 일본에 의해 새로이 접하게 된 외국의 문물을 부러워하고 좋아했어요" 라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2] 식민지 시절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 어렵고, 민감하고, 때로는 '아픈' 작업일 수 밖에 없겠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용감하고 당당해져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서울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품고 있는 당당한 서울시민이 된 지 오래다. 과거를 못 본 체 하고서 서울의 '역사문화'를 제대로 보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1]"회현동 일대 '남촌' 거듭난다…북촌·서촌 같은 명소로", 연합뉴스, 2017.06.07
[2]<일제 강점기의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어린이용 역사 안내서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879326974778277888

# 도시 by @eun_gong
2017.06.07
'남성영화'를 위한 특별한 자리는 없다

훌륭한 라인업이다. 경쟁 및 공모전 섹션을 제외하고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는 “여성영화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슬로건에 맞춰 ‘과거’에 해당하는 섹션인 ‘페미니스트 필름 클래식’, ‘현재’에 해당하는 ‘새로운 물결’과 ‘미래’에 해당되는 ‘테크노페미니즘 - 여성, 과학, 그리고 SF’, 이렇게 크게 세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베라 치틸로바와 샐리 포터 같은 여성 감독의 고전 작품들에서부터 출발해 주목할만한 동시대 여성영화들은 물론, VR이라는 신기술이 미래의 여성영화에 어떤 화두를 던져주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김진아 감독의 VR 영화 <동두천>까지 모여있는 것을 보면, 영화제의 프로그램 자체가 남성 감독들에 가려져 희미한 점으로만 나뉘어 존재하던 여성영화들을 느슨하게 엮어 새로운 영화의 역사를 정립하는 과정처럼도 보인다.

올해 유독 라인업이 훌륭하다고 앞서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매년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좋은데, 심지어 발전하기까지 하는 몇 안 되는 영화제다. 그해 가장 좋은 영화를 꼭 한 편씩은 만나게 되는 영화제인데, 안타까운 점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 대부분(큰 호평을 받은 작품들조차도)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신 국내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이와 같은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은 IPTV용 영화로나마 수입되거나 이후 이런저런 다른 기획전에서 만나길 마련인데, 유난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작품들은 국내에서 더 이상의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소수 관객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된다. 이런 지점에서 나는 ‘여성영화’가 가지고 있는 어떤 위치를 다시금 실감한다.

안드레이 아놀드 감독의 <아메리칸 허니>를 보러 가는 길목에서 한 남성이 커다랗게 걸린 영화제의 현수막을 보고 “여성영화제? 남성영화제는 없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명확한 정의도 없는 ‘여성영화’라는 단어를 어떠한 장르인 것마냥 계속 호명하는 까닭은, 여전히 영화의 역사에 여성을 위한 자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여성영화’의 반대항으로써 ‘남성영화’를 호명한 그 관객에겐 미안하지만, 여성영화제를 나서는 순간 곳곳에 널려있는 너무 많은 ‘남성영화’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는 없다. 그럼과 동시에 나 역시, 그의 희망처럼, 언젠간 여성영화들이 넘쳐 흘러서 도리어 남성영화제가 열리길 간절히 소망한다.[1]


[1] https://twitter.com/lakinan/status/871006533550723072
서울국제여성영화제 http://www.siwff.or.kr

# 영화 by @louderaloud
2017.05.24
# LGBT
존재는 그 자체로 처벌이 될 수 없다

작년 7월,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기록을 파일드-타임라인에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혐오감을 일으키는 비정상적인 동성 간의 성적교섭행위”가 군 기강 해이를 불어 일으킨다는 헌법재판소의 워딩에 굉장히 분개하며 기록을 하긴 했지만, 그때의 합헌 결정이 가져올 끔찍한 소식을 이렇게 빨리 듣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약 한 달 전부터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6항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동성애자 만남 어플에 잠입까지 해가면서 수사를 강행한 수사관들은 피의자들에게 성관계 시의 성향, 첫 경험 시기부터 “사정은 어디에 했느냐”와 같은 성희롱적 질문을 서슴지 않게 던지고 비협조적인 대상자에게는 아웃팅 협박도 불사르지 않았다고 한다. [1] 이와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각 대학에는 동성애가 죄라면 “나도 잡아가라”는 대자보들이 붙었다. [2]

해당 수사로 인해 전역을 1주일 앞두고 17일에 구속당한 A 대위는 끝내 24일,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3] “피고인을 징역 6개월에 처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의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너무 화가 나는 소식이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는 곧바로 '#군형법제92조의6_폐지'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비인륜적 수사 행위를 강행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을 해임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성애자 군인 수색 작전'에 대한 소식을 들은 나 역시 대자보 쓰기에 동참하여 데이비드 워나로워츠의 1990년 작 <무제Untitled>에서 착안하여 이렇게 썼다 : “그의 ‘범죄 행위’는 나의 범죄 행위이기도 하다. 나의 범죄는 곧 나의 존재이기도 하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법의 제정에 따라 나의 존재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 나의 존재는 국가에 헌신하기를 강요당하며 동시에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내부분열자로 처리된다. 이 모든 일은 내가 자신의 벌거벗은 신체를 다른 소년의 벌거벗은 신체 옆에 두고 싶어 하는 욕망을 발견한 지 1, 2년 안에 발생할 것이다.” [4] 존재는 그 자체로 처벌이 될 수 없다. 사랑 역시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끝끝내 존재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고, 그 광경을 보아야만 하는 참담함은 말로 이룰 수 없지만, 그 침통한 심정은 결코 무기력함이나 좌절로만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1] http://v.media.daum.net/v/20170523161628005
[2] http://hankookilbo.com/v/a6778d7fcd57412a8665852c49d576bb
[3] http://mhrk.org/news/?no=3367
[4] https://twitter.com/txttxttxt_/status/860056546046234624

# LGBT by @louderaloud
2017.05.23
어떤 죽음과 어떤 움직임

돼지 축사에서 분뇨를 치우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보통 축사 분뇨 청소는 기계로 작업하지만, 기계가 고장 났다며 (마스크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쥐여주지 않은 채) 직접 분뇨청소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먼저 들어간 노동자가 쓰러지자 이를 보고 들어간 다른 노동자도 쓰러졌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새 4명의 중국, 태국, 네팔인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한국인 농장주는 처음엔 위험한 줄 몰랐다며 진중하게 사과했으나 얼마 뒤, 말을 바꿔 책임을 이주노동자들에게로 돌렸다. 짧은 단상 같은 기사 몇개를 보고 후속기사를 기다렸으나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 사건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채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도 그랬다. 비닐하우스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하며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JTBC에서 보도했고[2] 내용이 충격적이라 친구들과 이야기 해보려 했지만 아무도 몰랐다. JTBC니까 다들 알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그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2004년엔 불법체류자 단속을 위해 그물총을 도입하기도 했다. 최근에야 알게된 사실이다.

18일엔 '우리 네팔 청년의집'에서 진행하는 펀딩이 무산되었다.[3] 인종차별을 직시하고 '네팔문화의날' 행사를 개최하기 위한 펀딩이었다. 경향에 기사가 났다.[4] 악플은 각오했지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업체나 농장주들이 무섭게 달려들어 협박을 하니 불이익이 올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고용허가제'가 존재하는 한, 그들의 협박은 그저 말뿐일 것이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죽음이 무시당하고 어떤 움직임은 시작도 전에 좌절되었다. 차별은 핑계만 달리할 뿐, 꽤나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 긴시간동안 싸워온 사람들도, 이주 노조 합법화 같은 승리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아직도 학교에서 '단일민족'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만, 이미 한국사회는 다른 길로 걷기 시작한지 오래다. 당연히 모른척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우리에겐 더 많은, 더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1]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9615
[2]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724705
[3] https://twitter.com/nepalwithsafe/status/865160829749952512
[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081517001

# 그 외 by @sceneryoftoday
2017.05.17
서초구 서초동 : 강남역 10번 출구로부터 1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부터 꼭 1년이 지났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각기 슬픔과 위로, 분노를 표출하고 포스트잇을 통해 공유하였다. 예고에 없던 자유발언대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집도 근처이기도 하거니와 수 차례 그곳을 방문하여 많은 분들의 얘기를 들었고, 그 중에서도 자신을 서초4동에 사는 딸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하셨던 아주머니의 말씀은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5월 17일 오후에 첫 포스트잇이 붙은 이후로,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포스트잇과 함께 어떻게든 자신의 혐오를 표출하고자 하는 무례한 이들도 강남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초4동의 아주머니는 무례한 이들에게 이성적으로, 하지만 분노를 담아 항의하셨던 분들 중 하나였다. 결혼하고 강남역 코앞에서 삼십 년을 살아왔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고, 여자를 노려서 죽였다는 범인의 말을 듣고 공포와 분노에 치를 떨었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가, 내 딸이, 집 코앞의 번화가에서 놀다가 그렇게 죽었을 지 누가 아냐고, 나라도 나서서 많은 사람들한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불안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강남역에 나왔다고도 하셨다. 당장 우리 여자들 일상이 걸린 문제인데, 여자들이 이렇게 나와서 할 말 하는게 무엇이 남자 혐오고 무엇이 유별난거냐고 차분하게 따지셨다. "남자 혐오를 하지 말라" 고 외치던 그 무례한 남성은 이에 말문이 막혔는지 말을 멈췄고, 주변의 시민들은 그 아주머니께 박수를 보냈다.

이로부터 1년이 흘렀다. 여성혐오와 각종 혐오범죄가 논쟁의 주요 의제에 올랐고, 페미니즘이 대선 공약으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물론 아직 '안전한 사회'는 멀기만 해 보인다. 1주기 추모 기사에 달린 입에 담지 못할 덧글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의제를 좋든 싫든 공유하게 된 것만으로 큰 변화의 시작일 것이라 생각한다. 한 여성의 폄하를 일삼던 이들조차도 수많은 분노와 위로, 슬픔과 소망이 모여들었던 강남역 10번 출구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864840886886187008

# 도시 by @eun_gong
2017.05.17
# LGBT
<<한국 LGBTI 인권 현황 2016>>, 기록은 역사를 만든다

존나 짱이잖아? 자료를 받아보는 순간 정말 ‘존나 짱이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국내외 변호사와 연구자들로 구성되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과 관련된 인권 신장 및 차별 시정을 위한 법제도·정책 분석과 대안 마련을 위해 2011년 8월에 발족한 연구회인 <SOGI법정책위원회>에서 올 5월에 발간한 <<한국 LGBTI 인권 현황 2016>> 보고서에 대한 이야기다. 연력을 살펴보니 2014년에서부터 매년 출간되고 있던 모양인데, 이 좋은 걸 왜 나만 인제야 알게 된 거지! 왜 그동안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해줬지! 하고 푸념 섞인 기분 좋은 호들갑을 떨었다.

보고서는 작년 한 해에 벌어진 성소수자 관련 사건 및 이슈들을 총 20여 가지의 항목으로 나눠서 기록해두었는데, 일단 그 방대한 데이터의 양에 ‘아, 정말 존나 짱이다’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군형법 제92조의5 합헌 결정이나 전국에서 벌어진 혐오 범죄에 대한 가슴 아프고 부정적인 기록들이 먼저 눈에 밟혔지만, 그에 못지않게 긍정적인 기록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정말 모든 퀴어 관련 이슈를 기록해둔 것은 아니겠지만, 각종 대학의 성소수자 모임 현수막 훼손 사건이나 다양한 젠더포럼 개최 소식과 같은, 어쩌면 정말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작은 사건들도 기록집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존나 짱이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작년 한 해에 발생한 여러 사건을 보고 있자니 흐뭇하다가, 때론 화가 치솟기도 하더니 다 읽고 나니 뭉클해진다. 우리, 작년 한해, 정말 열심히 견뎌왔구나 싶어서.

어떤 사건들은 기록되지 않고 잊히고 어떤 사건들은 기록되어 역사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 이 역사가 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들의 사건은 누락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아도 우리들의 투쟁은 늘 꾸준했고, 때론 기발한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때론 별다른 정치적인 메시지 없이 즐거운 파티처럼 진행되기도, 때론 울분을 토하기도, 때론 좌절로 인한 먹먹함에 눈물만 흘리기도 한다. 이 기록집은 그런 우리들의 지난날들을 의미화하고 역사를 만들어줄 수 있는 중요한 보고서가 될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무지개 지수는 12.32%로 작년보다 0.68% 감소했다고 한다. 2017년, 새 정부가 들어선 한 해는 어떻게 기록될까.


http://sogilaw.org/69

# LGBT by @louderaloud
2017.04.30
거리를 커뮤니티 공간으로 - 도쿄 '0엔숍' 이야기

거리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 간혹 '이곳에서 타도 되나' 싶어 눈치를 본다. '애완동물 출입 금지', '자전거는 안 돼요' 같은 표지가 세워져 있으면 '스케이트보드도 안 되는 구나' 싶다가, '스케이트보드는 된다는 거지?' 하며 결국엔 탄다. 하지만 "이곳은 공원이 아니어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면 안 됩니다."라고 직접 제지를 당하면 별 수 없이 자리를 옮긴다. 그렇다면 거리는 모두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4월 30일, 문래동에 자리한 인포숍 카페 별꼴에서 메구미 씨의 '0엔숍' 활동 이야기를 들었다. 도쿄 쿠니타치 시에서 2012년부터 운영한 '0엔숍'은 경찰의 경비가 심한 도쿄의 거리에서 그럼에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계기라고 메구미 씨는 말했다. 경찰에 허가를 받아야만 거리 이용이 가능한 제도이지만, 모든 것의 가격이 0엔인 '0엔숍'은 경찰의 제지도 비껴갈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이 시장은 돈을 매개로 하지 않고도 물품을 나누는 활동 공간이다. 단, 물품을 갖고 온 사람들이 재고를 도로 거둬가지 않으면 메구미 씨가 집에 들고 가야 하는 일이 발생해서, 나중에는 판매자 스스로 반품해가게끔 책임을 지게 했단다. 최신의 수요에 맞추어, 혹은 수요를 만들어 신상품이 쏟아지는 마켓과 다르게 본인이 소장하거나 사용했던 것을 다음 사용자에게 물건에 담긴 이야기와 함께 전달하는 식이란다. '탈자본주의'에 관해 책을 쓴 츠루미 씨가 자신의 책을 주면서 '이 책이 어떤 책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물품이 아니라 연주를 선사할 수도 있다. 거의 매회 오는 한 중년 남성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서로 알게 된 관계에서 메구미 씨는 그가 경험한 전쟁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0엔숍'은 참여자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정보가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술집 피켓을 들고 아르바이트 하는 여성과 대화하게 되었고, 알바 고충에 시달리는 그녀에게 노동 관련 잡지를 주기도 했다는 메구미 씨. 스위스에서 온 아나키스트 친구가 판화 워크숍을 열기도 했고 말이다. 물질, 비물질적 자원을 공유하는 곳이며, 몰랐던 이들도 이런 관계로 맺어지면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그녀는 자기가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이지만 소비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데, 이런 비실천적인 삶에서 자기의 운동이 크게 의미 있느냐는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0엔숍을 하면서 그 문제를 자기 문제로 치환해 실천하고 있었다.


문래동 카페 별꼴, https://www.facebook.com/byulkkol

# 조직하고 모으기 by @gusvjar
2017.04.25
시네마달아, 멈추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9년 차에 접어든 ‘시네마달’에게 붙은 수식은 여전히 “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사”라는 문장이다. 달리 말하자면, 시네마달은 국내 영화산업 가장 최전선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을, 가장 외롭게 해온 배급사라는 의미이다. 5명의 적은 인원으로, 9년간 수백 편에 달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배급해온 시네마달이 <다이빙벨>, <나쁜나라>, <416 프로젝트> 등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연달아 배급하자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리며, 잦은 외압에 시달려 영진위의 개봉 및 제작 지원에서도 모두 배제되어 사무실의 운영 비용은 물론 개인 직원들의 월급도 체납할 수 없는, 더 이상의 운영이 불투명한 폐업 위기에 봉착하였다. [1]

정치적 다큐멘터리를 제작·배급 한다는 것은 굉장한 리스크를 부담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정부 및 거대 자본가들과 만의 외로운 투쟁을 강행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인디 다큐멘터리 산업에 뛰어드는 행위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 자체와도 반목하는 일임과 동시에 정치적 다큐멘터리의 제작 및 배급에 따른 각종 소송 비용을 온전히 자신이 짊어야 할 부담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시네마달을 구출하기 위해 약 75일간의 스토리펀딩이 열렸다. 많은 영화인이 해당 펀딩의 홍보에 참여했으며, 내 타임라인에도 지속해서 오르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약 75일간의 스토리펀딩 과정 동안 약 1억 원의 금액이 모이며, 목표했던 금액의 111%를 달성하며 펀딩에 성공했다. 후원을 해두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이따금 덕분에 개봉이 불투명했던 작품의 개봉이 결정 되었다는 메일이 꾸준히 날아온다. 그들은 여전히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1]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011

# 영화 by @louderaloud
2017.04.11
«덕후 프로젝트:몰입하다»

처음 전시명을 보곤 한국에서 덕후라는 말과 개념이 얼마나 쉽게 남용되는지 비판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인가, 그럼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몰입”이라는 말을 덧붙였나, 몰입, 너무 모호한데, 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일본의 오타쿠를 경유해서 한국의 덕후를 말하려고 하나, 그럼 전시보단 글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것도 아니면, 아주 단순하게 작가가 덕후이거나, 작업에서 덕후적인 모습이 보여야 할 텐데,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어떤 기준에서 작가를 덕후라고 지칭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덕후인 작가와 아닌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고, 작업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덕후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무언가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좋아하거나 수집하는 모습을 보이면 곧잘 “덕후”라고 수식하는데, 이 주관적이고 애매한 수식어를 기준 삼아 전시를 진행하진 않았겠거니 했다.

기획자는 전시를 크게 "창작의 모티브가 되거나 대중문화의 동향을 읽을 수 있는 수집(김성재, 박미나)”와 “예술적 태도와 긴밀히 연결되는 취미활동(김이박, 진기종)”, 그리고 “영화, 만화의 장면이나 연출 방식 등 관심 있는 특정 장르의 소재나 어휘를 차용한 작업(신창용, 이권, 이현진, 장지우)”, “덕후에 반영된 고정관념(조문기)”, 마지막으로 “SNS의 생산 소비 구조 속 유행의 유동적 속성에 대해 고찰(송민정)”로 구분하여 전시한다.

이러한 구분에서 볼 수 있듯, “덕후 프로젝트”는 개별 작업을 투명하게 통과해서 전시에서 형상화한 덕후라는 개념을 보여주기 때문에 덕후라는 관련성에서만 작품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상정한 덕후라는 개념 자체가 수집과 대중문화 이 사이만을 맴돌고 있어 전시뿐만 아니라 작업의 층위가 납작해지고 지루해진다. ‘기획’전시로 작업의 층위가 되려 더 단순해진 것이다.

프로젝트 갤러리2로 넘어가면 이마저도 퇴색된다. 공간 가득 관객 자신이 덕후인지 아닌지, 그리고 덕후가 무엇인지 장황하게 설명하고, 스스로 덕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공간에서 한 커플이 “자기 집에도 피규어 엄청 많잖아, 작가네 작가” 말하는 것을 듣곤 오히려 이 전시가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일반 대중이 가진 작가라는 고정관념을 느슨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덕후를 물신화한 것일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http://sema.seoul.go.kr/korean/exhibition/exhibitionView.jsp?seq=527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7.03.25
다시 보기: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

2017년 3월 25일. 바닷 속에 1,073일간 잠겨 있던 세월호가 다시 우리 눈앞에-방송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라고 쓴 이유는, 우리는 그것이 가라앉는 실시간 사태를 TV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시청자인 나의 바깥으로 나와 당시의 보도와 그 시각 청와대의 상황을 되짚어본다.

당시 방송사로서 가장 먼저 11시 01분경 '전원 구조' 오보를 낸 MBC[1]의 오전 10시 <뉴스특보>[2]에서는 ‘현재 세월호가 침수중인데요’ 라는 멘트가 흘러나왔고, ‘안산 단원고생 300여 명 조난선 승선’이라는 자막이 떴다. 방송된 지 1시간 20분(11시 20분 즈음) '해경 '단원고 학생 325명 전원 구조'라고 뜨지만, 이와 동시에 상황을 전달하는 기자의 말은 다르다. ‘해경 발표에 따르면 오늘 오전 11시 현재, 함정에서 79명, 헬기에서 32명 등 모두 161명을 공식적으로 구조했다고 밝혔습니다.’ 뉴스특보는 1시간 29분 48초 즈음(11시 29분 48초), ‘여객선 완전 침몰...승객 전원 탈출 한 듯’, 그리고 최종적으로 ‘325명의 학생들을 전원 구조했다고 정부가 밝혔다’고 전달한다.


4월 16일 11:29
청와대: (구조인원이) 161명이면 나머지 한 300명이 배에 있다는 건가요?
해경: 일부 배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현장에서는. [3]

하지만 그때, 청와대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청자가 '전원 구조했다는 정부'의 말을 전달 받은 그 시각, 청와대는 전원 구조되지 않은 사실을 해경으로부터 직접 확인한다. 11시 29분, 300여명이 배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먼저 알았을 때, 국민에게는 허위 보도 되었다. 이날 오후 2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언론 브리핑에서 “오후 1시 기준 368명 구조됐다”고 보고했지만, 청와대는 “일부 중복이 있어 370명이 정확한 게 아니”라는 정정 보고를 1시 30분에 받았다고 한다. 내가 시청자로서 보고 알게 된 정보와 청와대와 해경간에 주고 받은 정보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국민의 '알권리'보다 행정권력의 은폐가 우위에서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땐 전혀 알지 못했지만, (참다운) 언론의 보도로 깨닫게 되었다.


[1]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국회의원측은 MBC는 당일 오전 11시 1분에 가장 먼저 '학생 전원 구조' 오보를 낸 것으로 확인했다.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방송사들, "쟤들이 먼저 오보했어요" (2014.05.21), 국민 TV 뉴스K, https://www.youtube.com/watch?v=_0eZ-Sr5sQQ
[2] 방송사 사이트에서 '뉴스특보'의 '기사입력' 시간은 오전 10시로 기입되어 있다. 이 영상의 1시간 02분 51초(11시 02분)즈음 '안산 단원고 "학생들 전원 구조" 자막이 뜬다. 이는 [1]에서 인용한 최민희 의원의 보고와 1분 정도 차이가 난다. http://imnews.imbc.com/replay/newsflash/list,1,list1,10.html
[3] 이하 자세한 경위는 다음 기사에 정밀하게 기술되어 있다. [단독] 청와대 ‘7시간 거짓말’…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오전부터 알았다, 정은주 기자, 한겨레, 2016-11-26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2072.html

# 조직하고 모으기 by @gusvjar
2017.03.12
소쇼룸 «기록으로서의 그림»

난해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자그마한 공간이 나타난다. 소쇼룸, 작은 쇼룸을 말하는 건가, 싶은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으로는 또 다른 문이 왼쪽으론 남산타워(들)이, 오른쪽으론 작은 크기의 화면에 담긴 꽈배기, 식물, 버섯 등이 그리고 그 옆으론 영상. 그 아래론 책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남산타워를 담은 그림이 보인다. 호상근 작가의 작품이다. 같은 풍경을 담지만, 어떤 때는 남산이, 어떤 때는 남산 타워가, 어떤 때는 하늘이 부각된다. 한 풍경에 3개의 레이어가 중첩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이 경계는 불분명한데, 아마 ‘날씨’탓인 것 같다.

세 발자국 정도 띄면 이우성 작가의 작품이 나온다. 영상이다. 영상 이미지보다 먼저 들어오는 것은 소리인데, 소리만으로도 작가가 집회 현장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상은 무수한 선들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다. 이 선들은 “기억을 토대로 그리거나 현장에서 직접 스케지를 한”[1] 것이다. 선과 소리는 작가의 신체와 가장 맞닿아 있다. 선과 소리 곳곳에서 집회 현장에서 걷고 보았을 작가를 볼 수 있다. 작가의 신체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기록이다.

영상 옆으로 배경 없이 정물만 그려진 작품이 놓여있다. 버섯, 식물, 꽈배기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우성 작가의 작품에서 빠르게 빠르게 흐르는 선들의 연속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대상을 오래도록 응시하고 대상을 채우는 면들을 볼 수 있다. 면, 그러니까 (유화의) 질감으로 대상이 구성되어 있기에 본래 사물이 가진 대상성이 흐려진다.

이 모든 작품은 “기록으로서의 그림(기획:윤재원)”으로 묶여있다. 여기서 기록은 기록의 양적인 측면보단, 어떻게 기록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기록은 작가가 대상과 거리를 어디에서 얼마나 두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작품에 반영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1] 전시장 배포 글 중에 이우성 작가 부분.

https://twitter.com/soshoroom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7.03.11
서울 종로구 종로 : 1500만, 광화문을 향한 길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이 결정된 이튿날, 종로와 광화문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촛불이 처음으로 광화문 사거리를 밝혔던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3월 11일까지, 20주 134일에 이르는 긴 여정이 어느덧 끝을 맺는 날이었다. 연인원 1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1]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지켜내고자 종로통으로 광화문으로 향했고, 마침내 끊임없이 후퇴하는 것만 같았던 역사의 방향을 트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종로와 광화문은 1500만, 혹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에게 승리의 공간으로 ‘좋았던 공간’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1500만명이 종로구에 모여드는 동안, 보수 정권 하에서 억눌려 왔던 '광장에서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굳이 입 밖으로 소리내어 구호를 외치지 않더라도, 피켓을 흔들지 않더라도, 광화문은 그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그저 광장의 인파 속에 섞여 있는 것만으로 정치적 자유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1500만명의 운집에는 당연히 교통통제가 뒤따랐고, 덕분에 주말 황금 시간대 종로의 한 가운데를 자동차가 아닌 사람들-시위 참가자들-이 차지하였다. 종로 하면 항상 막히고, 답답하고, 매연에 가득 곳이라는 인상을 받곤 하지만, 지난 20주 동안에는 달랐다. 버스에 실려 종로의 길 '위'를 이동하는 것이 아닌, 두 발로 직접 종로 한복판을 딛고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종로를 행진하면서 정치적 자유로움 뿐만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무의식 중에라도 분명히, 발견하였으리라.

지난 20주 동안, 1500만명의 시민들은 서울 도심, 종로와 광화문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데 성공하였다. 동시에 서울도, 본래의 자유로움을 되찾는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이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1] "[종합]2만명으로 시작한 촛불, '1500만명' 넘었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840496835181461506

# 도시 by @eun_gong
2017.03.01
«유영국, 절대와 자유»

유영국(劉永國, 1916년 4월 7일 ~ 2002년 11월 11일)의 전시 «절대와 자유»가 2016년 11월 4일부터 2017년 3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다. 전시는 유영국이 태어난 1916년부터 2002년까지를 4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구성하였다. 제1전시실은 1916년부터 1943년까지를 “도쿄 모던”으로 정리하고, 유영국이 문화학원文化學院에서 수학할 당시 사진 자료와 오리엔탈사진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었다. 대부분 경주를 찍은 것이었는데, 불상을 확대하거나 아래에서 위로 찍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권행가는 이러한 유영국 사진의 조형적 특징이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또다른 조형적 오브제로서의 공간”[1]을 확보한 것에 있다고 본다. 조형적 관심은 유영석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데, 이번 전시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화면을 채우는 색채였다.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천후궁›(1926)에 색채를 입힐 때, “실체에 가까운 색만 쓰자니 화면 전체가 너무 찬 기운이 돌”것을 걱정했다. 그렇다고 “온색을 너무 많이 쓰면 본체의 의미를 잊어버릴”[2] 터였다. 나혜석에게 대상의 리얼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유영국은 대상의 리얼리티를 어느 정도 풀어줌으로써, 색의 공간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유영국의 화면에는 무한한 색채(면)에 최소한의 대상성(선)의 조합이 나타나 있다. 혹은 색체(면)과 색채(면)을 배치하여 최소한의 형태를 확보한다. 유영국은 “창작과정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었을 때에” “항상 뚫고 나갈 길이 있다”[3]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이전 작업은 이후 작업을 하기 위한 “과정”이 되는 동시에,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연대기 순으로 전시된 작업을 보는 것은 시간 순서대로 그의 작업을 읽어나가는 것이기도 했지만, 작가가 막다를 골목에 부딪혔을 때, 길을 내는 과정을 살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1] 권행가, “전위사진과 유영국”, 『유영국, 절대와 자유』, 미술문화, 2016, 77쪽.
[2] 나혜석, “美展 出品 製作 中에”(조선일보 1926, 5, 21), 『나혜석 전집』, 태학사, 2000, 559쪽.
[3] 유영국, 『유영국, 절대와 자유』, 미술문화, 2016, 182쪽.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1603150000405&menuId=1010000000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7.02.21
피해자의 용기, 각자의 연대.

2017년 2월 21일,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디자인소호와의 합의서를 공개했다. [1] 작년 5월 이후 줄곧 고통받았을 피해자는 드디어 직접 사과를 받는다고 한다. 답답한 심경으로 사건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함께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약속들이 잘 이행되는지는 계속 지켜볼일이다) 이렇게 다행히도 디자인소호 사건은 '좋은 선례'[2]로 정리되는 모양새이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마땅히 항의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준다는 것.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그러니까 법정에 시간을 내어 방청을 간다거나, 기자회견에 참석한다거나, 적은 금액이라도 피해자를 위해 모금을 하거나, SNS에서 떠들기라도 하거나—하는 식으로 싸울 수 있다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언론노조와 같은 믿음직한 단체의 존재도 내 머릿속에 인상 깊게 자리 잡았다.

디자인소호 사건을 두고 2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회사가 이렇게 한 번에 훅 가는(?) 걸 보며, 한 회사의 대표로서 복잡한 심경이라 말을 한 여성이 있었다. 아마 그분이 경험한 세상은 피해자 구제가 불가능한 곳이었기에 그런 불쌍한 말을 했던 건 아닐까. 당연히 2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회사면 사태를 이렇게까지 만들지 않을 정도의 시스템은 갖추고 있었어야 했다. (실행여부와 상관없이) 지금이나마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하겠다는 디자인소호의 공개 사과문을 보며, 한 방에 훅 가는 게 안타깝다던 그분은 무슨 생각이실지 새삼 궁금하다. 부디 그분의 세상에도 작은 균열이 일어났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로 인해 가장 고생이 심했던 피해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피해자의 용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일이 완벽히 마무리 된 것은 아니라지만, 충분히 푹 쉬시고 빠른시간 내에 건강한 일상을 회복하시길, 원하는 걸 모두 이루시길 바란다.


[1] https://twitter.com/happybooknodong/status/833974775277981696
[2] http://filed-timeline.xyz/post/designsoho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7.02.16
문재인, it’s 2017!

“Because it’s 2015.” 재작년, 새로운 정부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구성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은 캐나다의 새로운 수상 쥐스탱 트뤼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답했다. 페미니스트들의 머릿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이상적인 국가 수장의 모습에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열광했다. 우리는 언제쯤 저런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로부터 2년 후,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대선후보 문재인은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 정책공감’이 주최한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1]. 쥐스탱 트뤼도를 보며 캐나다 이민을 꿈꾸기까지 했던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말에 설레기도 잠시, 같은 자리에서 그가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입니다.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라는 한 레즈비언 활동가의 절규에 “그 절박함을 이해한다”는 말 대신 “나중에 질문해달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2]. 해당 포럼이 열리기 며칠 전에 그는 기독교단체 대표들을 만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3].

문재인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의 미심쩍은 기운은 기조연설에서 발표된 성평등 정책 공약의 내용에서도 묻어난다. 시류에 적절한 용어들과 최근에 발생한 젠더 이슈들을 선정한 센스는 훌륭하나, 성평등 공약의 초점은 성평등 자체보다 보육정책 쪽으로 더 기울어 있다.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유권자가 모두 “어머니” 인 것은 아니다.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없는 “나머지 여성”들은 모든 여성 유권자들을 잠재적 “어머니” 취급하는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위한 구색 갖추기식 페미니스트 선언에 기뻐하지 않는다. 문재인은 잊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자를 배척하고,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비출산 여성을 주변화하는 사람에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는 너무 과분하다는 것을. 왜냐면, 지금은 2017년이기 때문이다.



[1]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111793
[2] http://www.womennews.co.kr/news/111816
[3] http://www.hankookilbo.com/v_print.aspx?id=08019db0d0d742689b30d1c55e50f77d
2017.02.16. 서울 중구 페럼타워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2.28
출산몬 GO

행정자치부에서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황급히 사이트를 내렸다[1]. 웹사이트에 포함된 "전국 가임기 여성 지도"라는 항목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과 출산이라니... 보건복지부와 착각한 게 아니냐고? 아니다, 웹사이트를 개설한 주체는 분명 행정자치부가 맞다[2]. 행자부 웹사이트에 게시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웹사이트는 "행자부가 발표한 「지자체 출산율 제고방안」의 핵심과제로서 국민들의 저출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지자체 간 지원혜택 비교를 통한 벤치마킹과 자율경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구축"되었다.

"지자체 간 지원혜택 비교를 통한 벤치마킹과 자율경쟁 유도"라는 말도 그렇고, 보건복지부가 아닌 행정자치부 산하에서 개설된 웹사이트이니 이 사이트의 메인 타겟은 출산을 계획 중인 여성이 아니라 해당 여성들이 거주하는 지역 자치단체의 공무원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지도는 특정 연령대의 여성들을 그냥 뚝 잘라서 지도상에 "가임기 여성"으로 표시할 뿐, 임신/출산 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여성들의 건강 상태, 거주 상태, 재정 상태, 거주지 치안 상태와 같은 변수들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씨만 뿌려주면 임신을 할 수 있는 가축들이 이렇게 분포되어 있으니 알아서 번식 계획을 짜 보라"는 듯이 말이다. 마치 다양한 종류의 포켓몬들을 지도상에 보여주고 유저들이 해당 지역에 있는 포켓몬을 포획하도록 만든 게임인 포켓몬GO와 비슷한 발상이다. 이런 행자부와 영혼의 교감이라도 한 것인지, 디씨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서는 이 출산지도를 "보지몬GO"라 부르며 "여기 지도에 있는 여자들을 강간하고 임신시키러 가야겠다"고 말하는 게시물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3]. 비록 "보지몬"이라는 이름은 주식갤러리에서 붙였을지언정, 그런 어처구니없는 명명이 가능한 판을 깔아준 것은 행자부인 것이다. 그러나 임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 생각이라면 출산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우등 정자 보유자 지도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온라인 상에서는 출산지도를 미러링한 성구매자 지도도 등장했다[4]) 그래야 공무원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남성들도 "포획"해서 출산 계획에 우겨넣을 수 있을 텐데. 게다가 지역별 출산율 제고를 위해 "대한민국 출산지도" 웹사이트는 개설하면서 여성 안전을 위한 "안전귀가" 앱의 서비스는 중단하다니[5], 정말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의지를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

만약 "출산 인프라"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임기 여성"이 아니라,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어려움 없이 출산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 인프라, 주거 인프라, 재정지원 인프라, 치안 인프라와 같은 요소들일 것이다. 출산율은 단순히 여성들을 쥐어짠다고 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출산은 여성들의 건강, 고용 상태, 재정 상태, 커리어 상태와 같이 인생의 전반적인 요소들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사건이기 때문이다. 출산을 망설이거나 기피하게 만드는 직장 내 성차별, 고용불안정, 경력단절, 임금차별, 빈약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시스템, 주거불안정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임기 여성 지도" 하나만 만들어 놓으면 지자체 간의 자율경쟁이 자연스레 유도되고 출산지원혜택이 자연스레 개선된다고 말하는 주체가 지하철에서 만난 익명의 개저씨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 부처라는 게 믿어지는가? 행자부가 실질적인 효용은 없는 생색내기용 웹사이트만 하나 개설해서 실적을 올리려고 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다.

[1]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2] http://www.moi.go.kr/frt/bbs/type010/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8&nttId=57148
[3] http://www.nocutnews.co.kr/news/4709870
[4] https://twitter.com/racoonoise/status/814358093949636608
[5] http://m2.womennews.co.kr/article.asp?num=110794#.WGtgaLE_rVo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2.28
작가성을 지운 이미지는 실용적인가?

시각 이미지를 생산하는 젊은 작업자들이 모여 기획한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 '더 스크랩'[1]에 다녀왔다. 매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설 때 가장 감각적으로 와닿은 것은 음악가 박다함이 선곡한 올해의 음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사운드는 신선하고 활력이 넘쳤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이 한 손에 체크 리스트를 든 채 이미지를 살펴보며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전시 공간과 판매용 설치 공간의 디자인이 서로 참조하는 디스플레이 형식은 낯설지 않다. 그것보다는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는 상태가 내게는 다소 새로웠다. 이 마켓이 삼은 원칙에 따라 어느 작가의 사진이든 A4 크기로 맞추고 작가의 이름을 지웠으며 데이터 용량의 오름차순으로 배열했다. 작가의 이름을 지움으로써 그의 작업적인 경향을 지시하는 기호가 가려졌고, 이미지 프레임의 크기를 규격화해 이미지의 내용과 형식의 긴장 또는 결속 관계가 와해되었다. 전시의 성격처럼 출품 사진가의 ‘작가적 위상과 작업의 독해’를 전제했다면 잘못된 방식이겠지만, 예술 창작물을 사고 판매하기 용이하도록 한 장치로서는 효율적이었다.
이는 참가 작가들 간에 작용하는 경력과 위상 차이도 제거해주었다. 언론 매체나 작가의 사진집 또는 작가의 트위터 계정 등으로 이미지를 보게된 관객은 작가가 누구인지 알거나 유추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작업의 생산 배경과 메시지라는 추상적인 암호가 제거된 이미지를 그럼 어떻게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트위터에서 검색한 후기나 주변 사람들의 소감을 들어보니, 이 이미지들은 돈과 교환되어 소비자 본인의 취향을 확인하는 매개물로 기능한 듯 보인다. 구매자는 작가의 작업 경향 혹은 현대 사진의 경향을 기준으로 작업의 가치를 내세우기보다, 구매자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인상을 좋아하든 이미지에 대한 패티쉬, 혹은 액자에 담아 공간에 걸어두는 실용성에 따라 구입할 필요가 생길 수 있고, 그럴 수 있도록 행사장에는 액자 프레임 상담 부스도 마련돼있었다. 어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작가를 후원하는 장치로 이 행사를 활용했다.

나는 평소와 같이 전시의 시각적인 형태만 보고 전시로 오인했지만, 사진 사이를 돌아다니며 작업의 결과물에 가정된 ‘메시지'를 읽고 저자성을 상상하고 그것과 대화하는 행위를 여기서는 작동시킬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 자신의 언어로 독해하고 싶은 욕망이 들어서는 순간도 없었다. 복면으로 가려진 작가의 얼굴을 알고 싶으면 할당된 수만큼 해당 사진을 구입해야 했다. 작가의 스테이트먼트를 얻는 방법이 적어도 이 장에서 그뿐이라니 저항감이 들었다. 만약 그 작가를 다른 공간이나 전시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면 그 상황은 어떤 문제를 암시하는 걸까. 작가의 사진을 예술 작업으로 마주하는 공간이 시장 '바깥'에 없다면 이것은 생산 제도의 어떤 문제를 가리키는 걸까?



[1] http://the-scrap.com

# 그 외 by @gusvjar
2016.12.22
쟤는 10만원이나 벌었는데 세금을 안냈대요!

12월 22일, ‘곺다'라는 동인은 웹갤러가 커미션[1]을 탈세로 문제삼아 자신을 신고한 사실과 함께 세무소에서 들은 답변을 트위터에 공유했다. 모두 알다시피 커미션 같은 소액 거래가 ‘탈세'로 문제될 일은 거의 없다. 곺다는 자신의 커미션 수익이 10만 원 가량이라는 트윗도 덧붙였다. 세금 문제가 있을 수도 없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간을 들여가며 세무소에 출석해야 했다. 커미션과 동인 통신판매만 신고한다는 웹갤러가 있을 정도이니, 아마 웹갤러들은 자신들이 정의라고 부르짖던 주장조차 잊어버린 모양이다. 어째서 웹갤러들이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면서 이런 일을 하는지는 이제 너무 투명하게 보이는 까닭에 굳이 글로 적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그리고 웹갤러들이 활발히 움직일수록 동인 활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받은 동인들의 사례도 쌓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걱정스러운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번째로는 ‘웹갤러의 깽판’이 동인활동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상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동인 활동은 다른 동인과의 교류를 통해 지속되고, 동인계는 활동하는 동인 서로가 가지고 있던 영역과 교류하면서 외연을 확장해 간다. 무엇보다 ‘덕질’에는 리스크가 없다. 하지만 웹갤러라는 리스크가 상수가 된다면, 기존의 동인들과 새롭게 유입되는 동인 모두에게 이는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부담이 된다. 다행히 최근의 동인계에는 옛날처럼 물 밑에 숨기보다는 훼방에 당당히 맞서려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두번째로 생각할 지점이 있다. 여전히 법에 대한 문제다. 우리의 활동은 법에 저촉되는가의 여부에 따라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예컨대 탈세에 걸리지 않는 커미션은 괜찮고, 걸리는 커미션은 괜찮지 않은 걸까? 만약 탈세 혐의가 적용된 동인이 있다면 과연 화살은 누구에게 돌아가게 될까? 이런 경우 웹갤러가 아닌 해당 동인을 같은 동인이 공격하게 되는 건 아닐까? 우리 스스로 동인계를 설명하고자 할 때 법을 기준으로 두게 되면 우리는 결국 웹갤러와 같은 논리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니까.

웹갤러가 동인들을 신고하고, 신고당한 동인이 상황을 공유하는 사례들이 점점 축적되고 있다. (어차피 법에 저촉되지 않으니)신고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분위기, 그리고 신고를 당해도 문제가 없었음을 알리는 생존신고가 이어지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 생존신고가 오히려 신고로 불이익을 당한 동인들의 이야기를 삭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시기다. 지금 동인계에는 ‘신고를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나는 괜찮다'라는 서사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는 조금 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누군가의 불이익이 전제되는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동인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건 같은 동인이다.


[1] 동인계에 정착한 일종의 작품 후원 방식. 동인은 커미션을 열어 리퀘스트를 받고, 해당하는 리퀘스트에 대해 후원금을 받는다. 금액은 천원 단위에서 만원 단위까지 다양하지만, 대체로 건당 10만원을 넘지 않는 소액이다.
[2] goo.gl/4k33e3 곺다님이 상황을 공유해 주신 트윗.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12.15
동행동의 «뜰채01»

표지를 열면 "사용 설명서"가 적혀있다.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 읽어”야 하는 이 책을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다행히 창으로 있는 그대로 볕이 들었고, 이 정도면 이 책의 “사용 설명서”에 충실한 듯 싶었다. “[제품명] 뜰채, [제품의 특장점] 외따로 가라앉았던 이야기를 건져 올렸습니다. 한데 모아서 엮었습니다.” 목차는 “먹다, 일하다, 아프다, 지내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카테고리에 “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글이 실려있다. “동행동은 여성으로 사는 삶을 함께 기록하는 모임”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행동은 서로에게 “안전한 공간”,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돌아보는 기록들은 삶에서 공백으로 남아있거나, 생각 없이 지나쳤던 부분들, 웃어넘겨야 했던 부분을, 사회에서 억지스럽게 여성성을 강요했던 부분을 차근히 되짚어 준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먹고 사는” 행위는 단지 “먹고 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단순하면서, 필수적이기에 구체성을 잃었던, “먹고 사는” 행위에 묘사가 덧붙여지면서,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들은 각자의 삶을 다시 “행동”하게 만든다. ‘삶→이야기→삶→이야기→…’로 이어지는 구조/모임은, 각자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동시에 서로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죽지 않아 줘서, 나는 결국 이 기록이 여섯 사람이 잘 버티며 살아 온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 죽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아주’ 죽지 않았다고 되어있다. 이 말은 곧,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이들이 그럼에도 버티며 삶을 이어나갔음을 서로가 “아주 죽지”않게 버팀목이 되어주었음을 말해준다. 뜰채01 마지막에서 람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계속 얘기해야지”다짐한다. 동행동은 글쓰기가 자신들의 “삶을 ( )하는 행동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결국 이 이야기로 여성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구체적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솔직히 ‘좋겠다.’와 ‘그리고’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야기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삶이 이야기가 되었고, 이 이야기는 또 삶이 된다. 여기서 각자 균형을 잡아나간다. 비행기가 착륙한다. 아직 잘 모르지 않는다.


https://twitter.com/WEBZINE_mugu/status/795601791068958720

# 독립출판 by @oneroom_twt
2016.12.14
서울 중구와 종로구 : 헌법 위의 경찰

2016년 1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서울 도심에는 경찰버스 ‘차벽’이 들어섰다. 대로는 물론이고 거주지의 비좁은 이면도로까지 틀어막는 경찰버스는 보수정권 8년 간 서울 도심의 일상이 된 지 오래이다. 경찰 차벽의 건너편에 거주하는 수 만명의 옥인동, 청운동 시민들은 이동권을 제약받고 있으며, 상인들은 매 주말마다 극심한 영업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1] 경찰은 ‘청와대에 막대기가 앉아있어도 지켜야 한다’[2]며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지만, 청와대와 1km도 넘게 떨어진 종로와 을지로에까지 차벽이 진출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도심의 도로를 경찰버스로 틀어막고, 시민들에게 ‘시위 때문에 차가 막힌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차벽 설치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지 벌써 7년이 지났다.[3] 하지만 경찰에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굳이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닌 듯하다. 엿새 전, 이철성 경찰청장은 서울행정법원이 5주 연속 청와대 부근의 집회에 대해 허가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법원과 경찰의 입장은 다르다"며 계속해서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사회의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행정 기관이 이렇게 헌법과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숨통이 조여지는 서울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2016년 서울 하늘 아래 경찰은 여전히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1] "차벽 때문에 매출 반 토막, 그래도 촛불집회 지지한다"
[2] "청와대에 막대기가 앉아있어도 지켜야 하는 게 경찰의 숙명"
[3] 경찰 차벽 왜 위헌·위법인가

# 도시 by @eun_gong
2016.12.10
시민의 의사를 전달하기 vs 빼돌리기

누적 인원 수백 만, 촛불집회의 에너지를 어떻게 국민주권의 행사를 통한 탄핵의 실행으로 이어갈 것인가?

네 명의 개발자, 기획자가 모여 자발적으로 만들었다는 <박근핵 닷컴>[1]은 이 질문에 대한 실용적이고 간단한 응답이다. 유권자들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게 하자. 포털에서 검색하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탄핵 청원 서비스. 국회의원 찾기, 청원, 메시지, 발송, 응답현황" 국회의원을 지목해 탄핵소추에 대한 의견을 직접 전하고 찬반 답변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을 믿고 탄핵 진행하라는 의사가 전달되면서 국회가 변하는 게 실시간으로 보여졌다.

한편 막상 탄핵 전엔 별 역할을 못하고 탄핵 이후 화제가 된 <시민의회>는 에둘러가는 대답이었다.[2] 국회가 국민을 대의하지 못하므로, 순수하게 시민들의 의견을 대의하고 정치권에 전달하는 시민의회를 만들자는 제안[3]에 "정치혐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내가 그 페이지를 열어봤을 때 김연아와 김제동이 시민의회 1, 2위를 앞다투고 있었다. 정치는 정치에 대한 욕망과 소명과 책임이 있는 인간이 사회와 소통하며 하는 일이다. 익명성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 그걸 대체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만 의미있는 실험이었다.


[1] 박근핵닷컴
[2] 시민의회 사이트 현재는 닫혀있다
[3] 시민의회 제안문이 담긴 공동제안자 신청 양식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12.01
# LGBT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길

세계 에이즈의 날을 시작으로 LGBT 콘텐츠를 소개하는 햇빛서점의 커뮤니티 공간인 Freckles에서 니쵸메에 위치한 HIV/AIDS 커뮤니티 센터인 “Akta”(악타)에서 나오는 동명의 무가지를 소개하는 전시가 열렸다. [1] 일본의 경우 1985년을 기점으로 HIV/AIDS 연구와 더불어 여러 커뮤니티가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당시의 감염인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감염 사실을 밝히기 힘들어했고,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활동이 미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90년대를 지나오며 “Rainbow Ring”과 같은 안정적인 예산을 지닌 NGO 단체가 설립되기 시작하며 HIV/AIDS에 대한 캠페인이 활발하게 열리기 시작했고 이는 2003년 Akta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Akta는 HIV/AIDS 양성자가 쓴 수기를 다른 이가 대신 낭독함으로써 양성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Living Together” 캠페인 등 다양한 이벤트와 전람회 개최 등을 통해 일본 게이 커뮤니티의 HIV/AIDS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Akta에서는 매월 센터의 일정과 소식 및 HIV/AIDS에 대한 정보가 실린 동명의 무가지를 배포하는데, 매번 한 명 이상의 인물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사진을 표지에 싣는 것으로 유명하다.

Freckles의 공간에 들어가면 그동안 Akta의 무가지에 실린 인터뷰이의 사진과 인터뷰 내용, 그리고 질의응답 형식으로 된 HIV/AIDS 지식에 대한 토막글이 실린 엽서들이 비치되어있다. 그들의 인터뷰에는 커밍아웃이나 세이프 섹스, HIV/AIDS에 대한 생각은 물론 좋아하는 체위 등 다소 노골적인 이야기도 가감 없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낯 뜨거울 순 있지만, 자신의 성정체성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듯, 성에 대한 이야기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사회의 시작은 성적으로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 탓에 금기시 되어있는 성정체성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 특히 HIV/AIDS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 공유함으로써 시작된다. 한국의 경우 지금도 종로와 이태원 근처에서는 HIV/AIDS 예방을 위한 콘돔 배부 운동과 주기적 검사 받기 캠페인이 아이샵을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HIV/AIDS에 대한 정보 교류나 인식 개선 차원에선 많이 뒤쳐져 있는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HIV/AIDS를 동성애만의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질병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이웃 나라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 https://twitter.com/duiro_mag/status/800957732589187072

# LGBT by @louderaloud
2016.11.26
우리는 평화-해요

“경찰을 때리기보다 꽃을 붙여주니 우리 입장에서는 훨씬 낫다”

11월 26일 제5차 촛불 집회에서 경찰차 벽에 시민들이 붙인 스티커를 두고 이철성 경찰청장이 한 말이다. [1] 단편적인 인용이긴 하지만, 저 말의 기본 전제는 '경찰'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옹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과 맞대응하는 시민,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독해해야 할까? '때린다'는 행위는 물리적인 충돌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폭력 행위'라는 이미지를 불러낸다. 그러나 우리는 그 행위자가 어떤 사회정치적 위계에 놓이는지에 따라 '폭력'은 정당한 방어 내지는 메시지를 표출하는 강력하고 또 유일한 수행(퍼포먼스)이 된다는 것을 안다. 현상으로만 보았을 땐 사적인 개인간의 충돌처럼 보이더라도, 그 개인들에게 배분된 권력의 크기에 따라, 권력을 갖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서 후자가 기득권을 전복할 수 있는 투쟁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꽃 스티커 부착을 제안한 이강훈 작가는 경찰차 벽에 스티커를 붙임으로써 '경찰차 벽'이 불법으로 우리, 시민들의 자율적인 동선과 반경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수행에 대해 경찰청장은 '우리 입장에서는 때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말하자면 '맞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소감'을 밝혔다. 공권력의 수장인 '경찰청장'이 아니라 신체의 자유를 지닌 한 사람으로서 말한 격이나 다름 없다. 누군들 맞는 걸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이 경찰청장 남성은 핵심적인 사실을 가렸다. 경찰 권력 체계 안에서 그가 발화하고 있다는 것, 그가 대표하는 상징 권력, 다시 말해 그 자신의 위치가 '시민권력'의 우위에서 억압하고 있는 경찰 권력, 행정 권력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자리에 있지 않은, 그 자리와 정당한 대칭축을 이뤄야 하는 시민이라면 그의 말에 감격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잘못된 논리다.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라는 것이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떤 것이라면, 궁극적인 것에 도달하기에 앞서 시행착오는 당연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는 '유사 평화' 즉, 평화처럼 보이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야만 '평화'의 원리를, 실천을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양한 시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우리를 둘러싼, 우리가 그 질서에 속해 있는 정치 체제를 적시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 좋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이전에 죽음의 문턱을 넘은 이들에게 빚진 시간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발명해야 할 어떤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평화'란 타자의 죽음에 따른 후속 사건이어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1]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1126000128

# 그 외 by @gusvjar
2016.11.26
어떤 성장

강남역살인사건 후 6개월여가 흘렀다. 가장 강렬한 기억일 것만 같았던 사건임에도 요즘 뉴스를 보며 헛웃음을 짓다 보면 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다. 그러나 그때 나풀거리는 포스트잇이 두텁게 쌓이도록 다짐했던 이들은 고맙게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짐을 행동으로, 행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들의 성장과 활약은 고구마가 풍년인 뉴스 틈새에서 빛나고 있다.

매주 토요일, 광장에서는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 박하여행의 건의로 자유 발언대에서의 혐오 발언이 제지를 당하고 여혐가사로 논란이 된 DJ DOC의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들은 기존 시위에서 볼 수 없었던 페미존을 구성하고 박근혜 다음 세상은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이어야 한다 외치고 있다. 26일 세종문화회관 앞 페미당당의 시국선언[1]은 귀에 박히도록 지겹게 들어온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말을 뒤집어 이렇게 말했다. “페미니스트는 해일이 올 때 조개를 줍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해일이 올 때 옆 사람들을 밀치고 뛸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밀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비상신호를 알리는 사람입니다.” 강남역에서 거울을 들고 나섰던 이들은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 6699press는 “한국, 여성, 그래픽디자인 11”이라는 여성 그래픽디자이너 대담집을 선보였다. 역시 강남역살인사건이 계기가 되어 기획, 제작된 이 책의 발간에 맞춰 참여 여성 디자이너들은 ‘Woo!’[2]라는 여성 디자이너 정책 연구 모임을 시작하고 여성 디자이너들이 온전히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리서치, 모니터링/아카이빙, 캠페인 활동을 약속했다.

나풀거리는 포스트잇은 두텁게 쌓였었다. 그 두터운 다짐은 잊혀지지 않았고 실체를 드러내며 성장하는 중이다.


[1] https://www.facebook.com/femidangdang/videos/1103727813088130/
[2] https://www.facebook.com/groups/wearewoo/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6.11.25
시절이 하 수상하니 여혐이나 해볼까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자,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다채로운 "시국비판형 여혐"들이 등장하고 있다. 집회 현장마다 심심찮게 눈에 띄는 씨발년, 미친년, 병신년 같은 여성비하 욕설이 담긴 현수막, 피켓에 이어 이제는 시국비판쏭에서도 대통령을 구 여친이나 매춘부에 빗대어 욕하거나[1] "미스박" 같은 여성비하 어휘를 넣어 욕을 한다[2].

특히 "미스박" 처럼 정치인 비판과는 관련이 없지만 대통령의 여성성을 콕 찝어 비하하겠다는 의도만은 명백한 어휘가 수차례 반복되는 DJ DOC의 신곡 <수취인 분명>은 원래 촛불집회 공연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페미니스트들은 분노했고, 페미당당과 강남역 10번출구에서는 해당 공연을 진행하는 민중총궐기 진행본부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항의했다[4]. 앞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촛불집회 사회자가 사용한 "미스박"이라는 용어에 대해 사과하고 현장에서 남발되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언행을 바로잡겠다는 약속을 한 바가 있었기에[5][6], 집회 현장의 다양성과 평등성을 지키고 더 많은 시민과 함께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에 따라 DJ DOC의 공연을 취소했다[3]. 그런데, DOC의 공연이 취소되니 시국비판에 앞장서는 민중해방열사 DJ DOC의 지지자들이 분연히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페이스북 페이지는 항의성 댓글로 도배되었고[7], 역사학자 전우용은 DOC의 공연 취소가 검열이라는 내용의 트윗을 남겼다[8].

모든 시민이 함께 모인 광장에서 "미스박"이 들어간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정당한 시국비판이고, 이것을 비판하며 제재하는 행위는 검열일까? 이를 판단하려면 왜 페미니스트들이 "미스"라는 표현에 딴지를 걸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9]. 비록 정치생활 내내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누군가의 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했던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막강한 지지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그조차도 정무능력의 한계가 발견되었을 때 정치인으로서의 능력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역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은 여자라서 공감능력과 문제해결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식의 비판에 더 자주 노출되었다. 하지만 남성 정치인은 정무능력의 한계가 발견되어도 그의 남성성을 호명하는 비판에 노출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스박"이 단지 수사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친 진공상태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존재를 결혼 여부에 따라 분류하는 고리타분함의 발현이자 여전히 미혼 여성에 대한 멸칭으로 손쉽게 쓰이는 "미스"라는 말을 붙여 권력자를 호명할 때, 그 순간만큼은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잃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호출되어 발언자의 공격 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사회적 약자로서 각종 혐오발언의 타겟이 되는 "여성"을 호명하여 욕하기란 얼마나 즐거운가? 이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된 우병우나 김기춘 같은 남성 인물들을 "미스터 우", "미스터 김"으로 지칭하여 욕하는 행위는 이만큼의 즐거움을 안겨줄 수 없을 것이다. 여성혐오는 엔터테인먼트지만, 남성혐오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만연한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의 기조에 편승하여 여성 권력자를 비웃는 행위를 "비판"이나 "풍자"라고 할 수 있을까?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전복"의 타이틀을 획득하고 싶은 게으름뱅이들의 변명은 아닐까.



[1] http://news.joins.com/article/20918769
[2] http://www.huffingtonpost.kr/2016/11/25/story_n_13221444.html
[3] http://www.womennews.co.kr/news/99912
[4] http://m.womennews.co.kr/news_detail.asp?num=99938#.WEEVHNKLSUk
[5]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3387693620284&id=1629891637303223
[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121232001&code=940100
[7]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8885676403819&id=1629891637303223&__tn__=%2As
[8] 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802366685709672449
[9] http://www.hankookilbo.com/v/165861b2f5b245c6a1d254f623f7c747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1.19
녹색당이 시들시들

파릇파릇한 희망으로 가득차 보이는 그 이름, 녹색당! 2016년 총선에서 한 표를 던질 정당과 후보를 찾아 헤매면서 난감함을 느꼈던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녹색당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이름이었다. 이상적인 페미정당은 세상에 없고, 그나마 이름난 페미니스트 국회의원들이 소속된 정당은 젠더 이슈를 주요 의제로 다루지 않고, 그나마 여성 유권자들의 표에 더 민감한 군소 정당들은 각종 여성혐오 언행 및 미제 상태의 성폭력 이슈로 시끄럽고, 여성 유권자들을 위한 "페미당" 창당의 움직임은 아직 준비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당장의 발 디딜 공간을 찾아 헤매던 페미니스트들에게 녹색당은 그나마 청정지역으로 손꼽혀 왔다. 여성 당원이 구성원의 50%를 넘고, (비록 환경문제와 동물권, 성소수자 의제에 비해 우선순위가 매우 낮지만 일단은) 성평등 의제를 주요 정체성 중 하나로 내세워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릇파릇해 보이던 희망의 색채가 우중충하게 바래고 있다. 11월 19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녹색당의 청년조직인 청년녹색당(이하 청녹)에서 터진 성폭력 사건 때문에 꽤나 소란스러워졌다. 지난 6월에 청녹 운영위원장이 저지른 데이트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 하고 묻힌 와중에 가해자는 물론이고 녹색당도 페미니즘 영역에서 활동반경을 꾸준히 넓혀가자 이에 분노한 사람들이 해당 사건을 공론화한 것이다[1][2][3][4]. 사건이 벌어진 것은 무려 지난 6월. 그런데 꽤나 심각한 내용에 비해서 사건의 처리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빈약했다. 가해자는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저는 평등문화침해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라는 무색무취의 경위서만을 남긴 채 자진 사퇴했고[5], 청녹 운영위원회는 "우리는 미숙했고 피해자도 딱히 잘 한 것은 없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노력하겠다"는 논지의 입장문을 게시했다[6]. 하지만 그 후로 5개월 간,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노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따라서 그 공백의 이유를 파악하려면 피해자가 그 당시의 정황을 직접 설명한 SNS 게시물을 읽어 보아야 한다[7].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이후에 대응기구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 했고, 성폭력 대응에 대한 항목을 당규에 추가 및 보완하도록 요구했지만 묵살당한 상태에서 2차 가해에 홀로 노출된 채 괴로워하던 중 결국 대응기구 구성원들에게 사과한 뒤 녹색당을 떠났다. 짐작컨대 청녹 운영위의 "해결"노력은 피해자의 탈당과 함께 영구 중단되었고, 녹색당 당규는 보완되지 않았으며, 가해자는 형사고발을 당하지도 당 내부에서의 징계를 받지도 않은 채 꾸준히 활동을 이어 왔다[8]. 무려 5개월 동안 말이다.

5개월 전의 사건이 뒤늦게 논란이 되자 전국 녹색당에서는 하위조직인 청녹 운영위원들을 모두 사퇴 처리하고 징계 절차를 논의하기 시작했다[9]. 녹색당 웹사이트에는 전국당 운영위원장단의 입장문이 게시되었고(11/21)[10], 청녹운영위 및 당시 성폭력 사건 대응기구 구성원들의 사과문도 게시되었다(11/21)[11]. 며칠 후, 전국당 운영위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한 1차 후속조치 공지를 게시했고(11/25)[12], 전국운영위원회 회의(11/27)를 거친 뒤에는 보다 더 상세한 내용의 2차 후속조치 공지도 게시했다(11/28)[13]. 하지만 이미 청녹 운영위의 부적절한 대처, 사건을 인식한 전국당 운영위의 미온적인 대응, 녹색당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거듭된 몇몇 녹색당원들의 2차 가해와 페미디아 대표 진 모 당원의 부적절한 자기고백[14][15]에 실망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녹색당을 떠났다. 진 모 당원은 사과문을 게시하고 페미디아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16] 피해자는 여전히 녹색당 내부에서 계속되는 2차 가해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17].

성폭력 발생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운 조직은 없다. 남성과 여성이 살아가는 대지는 평평하지 않아 손쉽게 폭력이 발생하고, 성폭력 대응 매뉴얼이 있어도 그 매뉴얼을 따르고자 하는 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결과물은 크게 달라진다. "청정지역" 녹색당이라 해서 먼지 한 톨 없는 무균지역일 것이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페미니스트 유권자로 각성한 이후로 딱히 발 디딜 곳을 찾지 못 하고 정처없이 헤매다가 엉성하게나마 겨우 정착해서 더 나은 미래를 그려 보려던 사람들에게 녹색당의 미숙한 대처는 큰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과연 녹색당이 이 잘못을 바로잡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녹색당의 대처를 지켜보는 페미니스트 유권자들은 이 막다른 길 앞에서 다시 뒤로 돌아가 주저앉을 것인지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든다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까? 과거의 문제와 현재 가지고 있는 대안들의 한계를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겨울이다.



[1] https://twitter.com/ideal_rain/status/799955919853350913
[2] https://twitter.com/ideal_rain/status/799956211185483776
[3] https://twitter.com/ideal_rain/status/799956108236337152
[4] https://twitter.com/ideal_rain/status/799956056419934209
[5] http://young.kgreens.org/386
[6] http://young.kgreens.org/388
[7] https://twitter.com/ppoppuppoppu/status/800364329631555584
[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241637001&code=940100
[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241637001&code=940100
[10] http://www.kgreens.org/notice/%EC%9E%85%EC%9E%A5%EB%AC%B8-2016%EB%85%84-6%EC%9B%94-%ED%98%B8%EC%86%8C%EB%90%9C-%EC%B2%AD%EB%85%84%EB%85%B9%EC%83%89%EB%8B%B9-%EC%A0%84-%EC%9A%B4%EC%98%81%EC%9C%84%EC%9B%90%EC%9E%A5%EC%97%90/
[11] http://www.kgreens.org/notice/2016%EB%85%84-6%EC%9B%94-%EC%B2%AD%EB%85%B9%EC%9A%B4%EC%98%81%EC%9C%84-%EB%B0%8F-%EC%82%AC%EA%B1%B4%EB%8C%80%EC%9D%91%EA%B8%B0%EA%B5%AC-%EB%8C%80%EC%9D%91-%EA%B4%80%EB%A0%A8-%EC%B2%AD%EB%85%84/
[12] http://www.kgreens.org/notice/%EC%B2%AD%EB%85%84%EB%85%B9%EC%83%89%EB%8B%B9-%EC%A0%84-%EA%B3%B5%EB%8F%99%EC%9A%B4%EC%98%81%EC%9C%84%EC%9B%90%EC%9E%A5-%EC%84%B1%ED%8F%AD%EB%A0%A5%EC%82%AC%EA%B1%B4%EC%97%90-%EB%8C%80%ED%95%9C-1/
[13] http://www.kgreens.org/notice/%EC%B2%AD%EB%85%84%EB%85%B9%EC%83%89%EB%8B%B9-%EC%A0%84-%EA%B3%B5%EB%8F%99%EC%9A%B4%EC%98%81%EC%9C%84%EC%9B%90%EC%9E%A5-%EC%84%B1%ED%8F%AD%EB%A0%A5%EC%82%AC%EA%B1%B4%EC%97%90-%EB%8C%80%ED%95%9C-2/
[14] https://twitter.com/our_alcohol/status/802859016145620992
[15] https://twitter.com/our_alcohol/status/802383554822819840
[16] https://twitter.com/our_alcohol/status/803231857579991044
[17] http://www.kgreens.org/notice/%EB%8B%B9%EC%9B%90%EB%93%A4%EA%BB%98-%EC%9A%94%EC%B2%AD%EB%93%9C%EB%A6%BD%EB%8B%88%EB%8B%A4/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1.16
폭로는 선택이 아니다

오타쿠 내 성폭력 해시태그를 빌어 피해자들은 서브컬쳐계의 성폭력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서브컬쳐계는 성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강간 문화를 키워왔다. 그러나 이토록 폭력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른 경우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길은 거의 없다. 또한 그가 자행한 폭력의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혹자는 폭로라는 방법을 택한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신고할 수도 있는데 왜 이런 방식을 택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선택이란 가짓수가 있는 길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오타쿠_내_성폭력을 빌어 쏟아져나온 고발들의 수는 고발 이외에는 이 폭력을 갈무리할 어떤 장치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해자들은 폭로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오직 폭로만이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이었다.

그렇다면 고발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래는 서브컬쳐계에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초롱아귀의 최근 트윗이다.

“안녕하세요 작곡가 초롱아귀입니다 현재 A와 B에 대한 형사 및 민사 소송 진행중입니다~ 그 외의 다른분들중 추가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시하거나 도가 지나친 악플, 업무방해관련 자료들도 전부 캡쳐되어 있으며 추가고소가 진행될 예정입니다”[1]

A와 B는 초롱아귀의 성폭력 사실을 고발했던 피해자들이다. 해시태그를 타고 나온 고발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고소를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피해자는 법을 사용할 수 없는데, 가해자는 손쉽게 법을 사용하는 상황. 이 지면을 빌어 다시금 피해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 기록은 적어도 폭력을 잊히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1] https://twitter.com/Agui___/status/798844396057694208
본문에 발췌한 초롱아귀의 원 트윗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11.12
서울 중구와 종로구 :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도시, 서울

2016년 11월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백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광화문광장에 미처 들어서지 못한 시민들은 제각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촉구하는 피켓과 촛불을 들고 종로, 을지로, 새문안로의 골목을 빠짐없이 채웠다. 평소에는 그저 서로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스쳐지나가기에 바빴던 도심의 길가에서, 이 날 만큼은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서로의 주장을 듣고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도시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효용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촛불집회가 끝나고,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성숙한 시민의식에 감사”하다며 “취지가 같다면” 율곡로 집회를 재차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러 보수 언론에서도 역시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된 시위였다”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이들은 ‘시민의식’이라는 단어를 시위대가 그들의 기준에 ‘비폭력적’으로 보일 때나 선심쓰듯이 활자에 담아 오며, 으레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난 다음 날엔 난장판이 된 서울 도심의 소식을 전하곤 하였다. 하지만 ‘비폭력적인 시위’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의 극치이다. 시위의 본질은 저항하는 시민들의 집단 의사 표출이다. 백만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폭력’임에도 이를 애써 모르는 척 하는 이들에게, 서울시가 만약 인격체였다면 비웃음과 냉소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비폭력적인 시위’에 만족하는 이들에게 백만명이 모인 이번 촛불집회는 다음과 같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수많은 이들이 모이는 서울은 태생적으로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도시이며,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서울에 들이대는 것만큼 소용없는 일은 없다’고.


서울경찰청장 “취지가 같다면 율곡로 집회·행진 허용” - KBS

# 도시 by @eun_gong
2016.11.12
공감 할 수 있는 영화들을 위하여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을 굳이 개봉 첫 주에 무조건 봐야겠다고 생각한건 예매 취소 테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1] 덕분에 적은 상영관 탓에 어쩔 수 없이 복잡한 명동까지 찾아가 <연애담>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잔뜩 흥분한 채로 그야말로 폭트를 했다. 하필이면 이 땅에 태어나서 성소수자로써 살아가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정말이지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내가 확인했던 성소수자 소재의 영화들은 성소수자가 아닌 관객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꾸만 극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과잉된 신파와 감정들로 점칠 되어 있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노력했고,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다루고 있는 시대나 배경이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 영화들에 지쳐있던 찰나에 <연애담>을 보게 된 것이다.

<연애담>엔 어떤 영화적 사건들도, 거창한 메시지도 없다. 대신 이현주 감독은 그저 한국을 살아가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 한 켠을 오려 스크린에 담아낸다. 그 오려낸 한 편의 ‘연애담’엔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 정부를 살아가며, 본가에서 나와 홍대 주변의 단칸방에서 자취하며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모습이 어떤 덧댐도 없이 담겨있다. 이 속엔 부모에게 애인을 친한 친구 내지는 아는 언니라고 소개할 때 깔리는 어색한 침묵, 커밍아웃 한 친한 친구를 향해 바로 혐오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려 하거나 없는 사람 취급하려는 호모포빅한 반응, 단칸방에서 청포도와 다이소 와인 잔에 와인을 마시는 가난과 경기도와 서울 사이의 가깝지만 먼, 미묘한 거리감 등 내가 사는 현실이 리얼하게 담겨있다. 그러니까, 내가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 “맞아, 맞아!” 라고 말하며 공감 할 수 있는 영화를 처음 만난것이다.

나는 이토록 성소수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애담> 같은 작은 기적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누군가는 우리가 영화를 보며 공감 할 가능성마저도 앗아가려 하지만[2], 그들의 뜻대로 이뤄지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연애담>을 지지하는 이유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이 <연애담>을 시작으로 더더욱 나타나길 바란다.


[1] 대량 예매 취소 사태에 부친 이현주 감독의 호소 https://twitter.com/forourlovestory/status/797684527636234240
[2] 개봉이 되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매 취소 사태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https://twitter.com/lunar_dawn/status/800718186962296832
https://twitter.com/geum_byul/status/799529241100644354

# 영화 by @louderaloud
2016.11.12
132만 명이 5,000만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함을 증명하다

나는 저녁 시간대에 안국에서 내렸다. 막연하게 친구랑 연락해서 만날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두 사람에게 연락했는데, 한 명은 정동에 있다고 했고, 또 한 명은 사직단에 있다고 했다. 누구는 종로3가에서 내렸다고 했다. 종로를 중심으로 사대문 안쪽은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익숙한 지역들이다. 그리고 정동이랑 안국동은 분명 다른 동네인데 거기에 우리가 다 한 이벤트에 온 사람들로서 동시에 있다니. 반경이 훅 확장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사람들은 계속하여 흘러왔다.

인터넷에서 앞으로의 집회에 대한 전략을 몇 가지 맞닥뜨렸는데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예컨대 2008년 촛불처럼 되지 않으려면 하루 이벤트가 아니라 의미 있는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든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든가 하는 전략들. 132만 명[1]이 거리로 나왔다.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는 당연히 다른 액션들이 이어져야 할 것이고 논쟁할 수 있지만, 132만 명이라는 '민중'은 이 시간과 장소로 충분히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략은 총궐기의 몫이 아니다. 132만 명 안에서 차 벽을 넘든, 춤을 추든, 쓰레기를 정리하든, 그저 머물다 가든. 132만 명은 정치인을, 검찰을, 언론을, 대통령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압력이다. 이러고도 미디어와 사법 시스템과 정치권이 제대로 대통령을 퇴출하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튼 132만 명이 후속 전략을 잘못 취한 문제는 아니다. 민중은 함께 존재함으로서 표출하는 집단이지 의사결정의 책임자는 아니므로, 그러니까 후에 어떤 결과가 온다고 해도 이 사건이 민중의 좌절과 민중의 냉소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온라인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집회 문화와, 폭력시위 프레임에 대해 의미있는 논쟁을 하고, 깃발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승리하기 위해서.


[1] 서울시에서 지하철 승하차 인구 수로 밝힌 참가자 수
참고링크: 시설 및 집회관련 정보가 업로드되는 광화문 커뮤니티 매핑
2016. 11.12 시청과 광화문을 중심으로 종로5가, 명동, 충정로부터 사직단까지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11.07
누구를 위한 음란물 신고일까?-포스타입 사태 정리

포스타입은 동인계 이용자들을 타겟으로 한 국내의 창작물 마켓이다. 포스타입의 결제 시스템을 통해 창작물의 웹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여타 서비스와의 차별점이었고, 성인 인증을 통해 성인물을 올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해 왔다. 그런데 포스타입은 지난 11월 7일 ‘포스타입 음란 포스트 관련 조치 - 성인물과 음란물은 다릅니다’라는 제목의 공지를 올렸다. ‘포스타입에 올라오는 음란물을 제재하겠다’는 요지의 짤막한 공지였다.[1] 그리고 공지가 올라오고 얼마 안되어 포스타입은 작가들에게 포스타입이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또 몇몇 작가들은 음란물 유포 혐의로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자진하여 수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누가 포스타입과 작가들을 신고했는지는 명확하다. 디씨인사이드의 웹갤에는 오래 전부터 ‘포스타입을 신고했다’는 글이 올라왔으므로, 이 일을 벌인 것은 웹갤러 중 한명일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 공지는 큰 논란이 되었고, 포스타입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포스타입은 11월 9일 다시 공지를 올렸다.[2] 11월 7일의 공지보다는 설명이 상세하고, 포스타입의 입장이 더 잘 드러나 있지만, 근본적인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신고한 사람이 누구고, 신고당한 사람이 누구건간에, 서브컬쳐계의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겠다는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웹갤러들은 남성향 작품 및 작가는 신고하지 않는다. 이들의 타겟은 오직 여성 작가, 여성향 작품뿐이다. 그리고 이 방법이 먹힌다는 선례가 생긴 이상, 이와 동일한 수법의 훼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포스타입은 새 공지에서 음란물과 청소년보호법 관련 조항들을 상세하게 적었고, 포스타입의 조치들은 ‘방어적인 입장’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이고, 이럴 수밖에 없음을 웹갤러들 또한 알고 있다. 따라서 신고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포스타입 건으로 수사를 받게 된 작가들 중 daki(@kcy2292)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작가는 이번 사건을 기록해 나가는 계정을 만들었다.[3] 웹갤러에게 신고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그를 위한 조처는 포스타입이 스스로 말하고 있듯 방어적이다. 그리고 이 상황이 지속되면 동인계가 쌓아온 자생적인 여성 시장의 존속을 보장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법이고, 제도이고, 인식이다. 웹갤러가 사용하는 법이라는 무기 자체를 뜯어고치고 여성의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포스타입 사태가 보여주듯 현행법상 음란물 제재는 동인계에 있어서는 성인 여성이 성인물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일을 막거나 제한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법의 힘은 실재하는 청소년과 여성들이 음란물로 피해를 받고 있는 현실에 집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1] http://blog.postype.com/post/436989/
11월 7일에 올라온 포스타임의 음란물 제재 예정 공지
[2] http://blog.postype.com/post/439835/
11월 9일에 올라온 포스타입의 새 공지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11.07
영화를 위한 집을 짓는다는 것

근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박찬욱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옛 영화를 위한 새집”인 시네마테크 건립이 드디어 행자부로부터 승인되었다. 작년에 서울시가 영화 발전 계획을 발표하며 2018년을 목표로 충무로에 시네마테크 부지가 새워질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행자부의 중앙투자심사에서 빈번히 탈락하는 바람에 불투명하게 보였던 옛 영화들의 제집 찾기가 드디어 첫 삽을 뜰 수 있게 된 것이다. 씨네코드 선재에 위치하다 낙원상가 꼭대기로 쫓겨나 초라한 모습으로 약 10년간 임시로 운영되었다가, 작년 말에 또다시 서울극장의 작은 구석으로 이전하게 된 서울아트시네마의 긴 표류 생활도 마침내 끝이 났다. 암울한 이야기들만 들리는 요즘 같은 상황에선 유난히 더욱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소수의 사람만이 보는 오래된 영화와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하나가 지어지는 게 뭐가 그리 대수냐고 물을 수 있다.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가 나빠지는 걸 구경한 다음에는, 세상에 나빠지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에겐 그의 말이 영화와 바보 같은 사랑에 빠진 어리석은 씨네필의 호들갑처럼 들리지 않는다. 영화는 정말 단순히 ‘영화일 뿐’일까? <국제시장>과 박근혜 정권 사이엔 과연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을까?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이른바 ‘알탕 영화’들의 극장가 점령은 어떨까? 크라카우어는 히틀러가 등장하기 직전의 시대의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 속에서 파시즘의 전초를 발견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들뢰즈의 선언(이자 정성일 평론가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사실 무척 섬뜩한 말이다.

때문에 시네마테크는 단순한 영화관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정부가 당시 시네마테크의 원장이었던 앙리 랑글루아를 일방적으로 해임하자 수많은 영화광들이 시네마테크 앞에 모여들었다. 프랑스 전역을 뒤덮었던 68혁명은 그렇게 한 극장 앞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수많은 부당과 싸우는 일일 것이다. 우린 나쁜 영화를 향해 거침없이 침을 뱉고, 나쁜 영화를 만든 이들과 그 사회를 향해 투쟁한다. 이 투쟁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기 위해선 먼저 무엇이 좋은 영화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이 드러난다. 좋은 영화를 발굴하고 주기적으로 상영해주며 우리로 하여금 영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는 시네마테크는, 영화가 나빠지는 것을, 즉 세상이 나빠지는 것을 막는 저지선이자 혁명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https://twitter.com/seoulartcinema/status/795546227567824896

# 영화 by @louderaloud
2016.11.05
# LGBT
헤테로가 허락한 퀴어들

“성소수자와 기업 :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핑크 산업의 전망과 비전”이라는 주제 아래 진행되는 신나는 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라이드 아카데미 강연이 11월 5일 구글캠퍼스에서 열렸다. [1] 문제가 된 것은 “여러분의 사랑은 정말 범죄입니까?”라는 소제목을 달고 나온 러쉬 코리아 대표로 나온 우승용 상무의 강연이었다. 그는 강연을 통해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스테레오타이핑 과정에 대해 말하는 과정에서 홍석천이 마녀사냥에서 누군가를 껴안은 것을 모자이크한 사진을 띄우며 유명인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2] 또한 그는 “당신이 핍박을 받는다 해서 자기를 더 드러내려고 하지 말라”하며 그 이유인즉슨 “티팬티 입고 엉덩이 까고 돌아다니면 다른 분들이 불편할 것”이며 “대중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것 또한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부모님께 인정을 받으”라는 눈물 나게 와 닿는 조언도 빼놓지 않고 해주었다. [3][4]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의 강연을 요약하자면, 우린 헤테로가 보기 좋은 퀴어운동을 해야 하며 “우리 존재 화이팅”은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만 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에 이어 ‘헤테로가 허락한 퀴어운동’이라니. 퀴어 프렌들리한 기업인 러쉬를 대표해 나온 당사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식하고 호모포빅하다. 그는 아무래도 게이들을 ‘똥꼬충’이라고 부르며 동성애 반대를 외칠 족속들은 우리가 티팬티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든 정장을 빼입고 다니든 어차피 똑같이 ‘똥꼬충’으로 부를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의 발언은 올해 퀴어퍼레이드에서 ‘러쉬 코리아’ 이름을 걸고 트럭에 올라타서 춤을 추고 행진을 함께해준 자사의 직원들과, 그동안 프라이드를 갖고 러쉬에서 일한 사람들(러쉬 알바생 중 적어도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성소수자일 텐데?)은 물론 그들의 제품을 구매한 퀴어 고객층 모두를 욕보이는 발언이다. 국내에서 러쉬만큼 성소수자를 빼놓고 돌아갈 수 없는 기업도 없을 텐데 말이다.

클리셰처럼 “네가 뭔데 나를 판단해? 나는 나야”라는 대사가 여기저기서 쓰이지만, 사실 그 대사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다. 여성들은 물론 성소수자들은 “나는 나야”를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까지 너무 많은 희생을 해야 했고, 그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헤테로가 보기 좋은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라’는 말은 “나는 나예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입장에 한 번도 처해본 적 없는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알량한 조언이다. 우린 당신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릎을 조아리며 당신들의 기분에 맞춰 줄 의무를 지닌 존재가 아니다. 당신의 기분이 어찌 되었던, 우린 우리로써 존재한다. 퀴어 퍼레이드는 당신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닌, 당신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나야”라고 마음껏 온 몸으로 외칠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운동에 무어라 조언할 권리가 없다.


[1] https://twitter.com/sinnaneuncenter/status/794093914256904192
[2] https://twitter.com/paulitowj/status/794772420347318272
[3] https://twitter.com/paulitowj/status/794776230004301824 타래 참조
[4] https://twitter.com/lunar_dawn/status/794781277077442560

# LGBT by @louderaloud
2016.10.30
감응의 성차

함영준 전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의 성추행과 가스라이팅에 피해를 입은 김소마 씨(이하 화자)가 이를 공개적으로 폭로한 글[1]을, 다소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할 것만 같아 어렵게 글을 올립니다'라는 문장에서 잠시 멈춰섰다.

화자는 사건 당시 가해자의 언행으로 불쾌함을 느꼈지만, 그것이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즉각 알아채지는 못했다. 몸은 부정성을 느꼈지만 그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언어'를 알고 있지 않아서였으리라. 하지만 문자화된 언어 바깥에 '암묵지'라는 것이 있다. 동일한 상대에게 유사한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며 화자(와 그녀들)는 '공통'의 경험에서 문제점을 판별했다. 신체가 착취된 순간을 경험한 여성들의 대화, 말의 어울림과 결성은 그 '경험'을 유형의 지식으로 만드는 일종의 의식화 작업이었을 것이다. 다수의 피해자가 속출할 때 문제의 원인은 개인성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구조의 차원으로 이동하고 확대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열띠게 접속한 모두가 알고 있듯, 함 씨는 그가 속한 기관, 그와 협력한 인사들이 보장한 일종의 공신력을 권력으로 전도해 남용했다. 권력의 보호 아래 행해진 성(권력으로 작동한)폭력임을 깨달은 화자는 자신의 말을 사회에 '들려주는' 쪽을 택했다. 무엇이 부정한지 알고 있지만, 부정의 반대 방향으로 행동할 때엔 위험이 따른다. 그러니 번뇌 끝에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또한 하나의 선택지였을 것이다. "아마 이 일을 공론화시켜서 잃는 것이 많은 것은 저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화자는 성권력이 작동시키는 '억압'에 자기 방어하는 방식으로 휘말려들기를 거부했다. '타자'가 있는 곳으로 가닿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저는 제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계속해서 피해자가 생길 것이고, 더 많은 여성들이 말 못하고 힘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을 열어 봅니다." 화자의 발화 행위는 피해자 개인들에 대한 지지이자 사회 성원으로서 실천한 연대였다.

여성들의 성폭력 경험이 SNS를 통해 더해지면서, 남성 가해자 개인의 행동이 '남성/남성성' 을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성권력 구조 내 폭력의 단면이라는 것이 층층이 밝혀진 가운데 손희정 비평가는 이렇게 짚었다. '피해자의 고통에 감응하고 그를 지지하는 것은 즉각적일 수밖에 없다.' [2] 말 그대로 나 또한 김소마 씨의 이야기에 '경험'으로써 접촉했다. '여성의 몸'이 겪었던 촉각적 기억과 그로 인해 경계하게 된 특정한 행동들. 일상 공간에서 마주하는 남성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기 고백을 들려주었다. 여성보다 상대적인 강자의 자리에 배치된 '남성'으로서 존재해야하는 불가피한 조건에서 자신들의 언행, 사고를 자성했고, 의도치 않게 폭력을 가했을 것을 생각하며 자괴했다. 사태에 대한 남성의 윤리적인 감응이 죄인의 자리에 가깝다면, 여성의 것과는 참 너무도 다른 것이리라. 내 몸에 가해진 폭력의 감각을 복기하는 것과 타자의 몸에 가한 폭력의 경험 혹은 그것을 방조한 과거를 복기하는 것, 이 출발점의 차이가 남성/여성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1] 안녕하세요 Soma Kim 입니다, 김소마, 2016.10.21 https://www.evernote.com/shard/s717/sh/efdba51b-18e8-474c-af90-a60cb8e700c6/4956cd847766ecc742963197f301a312
[2] [청춘직설]“온라인 생존자 말하기 대회”, 손희정, 2016.10.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10252119005

# 페미니즘 by @gusvjar
2016.10.29
바보야, 문제는 낙태죄야 #검은시위

폴란드에서 의회가 통과시킨 낙태금지법에 반발하여 파업을 선언하며 길거리로 뛰쳐나온 검은 옷의 여성들을 기억하는가? 보건복지부의 무책임한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안 입법예고[1]에 분노한 한국의 여성들도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다. 그냥 나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목청껏 소리치고 노래도 부르며 보신각 주위를 행진하고, 탁 트인 광장에서 낙태와 임신, 섹스, 신체자결권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시간도 가졌다. 사실 이것은 10월 15일의 #검은시위 이후 보신각에서 진행된 두 번째 시위다. 게다가 이번에는 500명 가량의 인원이 모인 덕분에 1차선 도로를 점거하여 행진하는 쾌거를 이루었다[2][3].

이 분노의 불씨를 지핀 것은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과 이에 반발한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의 낙태시술 전면중지 예고였지만, 사실 이 개정안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정안에서 의료면허 정지 처분 강화의 근거로 인용된 모자보건법 제14조이고[4],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하여 모자보건법의 필요성을 만드는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다[5]. 형법에서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모자보건법이 굳이 존재할 이유가 없고, 의사들이 낙태시술에 대한 면허 정지 처분이 강화될 것에 반발하여 불법낙태시술 전면중단을 선언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6]도 발생할 이유가 없다.

보건복지부와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지게 생긴 여성들의 분노가 #검은시위 를 통해 폭발하자, 여성계에서는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어" 낙태 비범죄화를 위한 움직임을 재개하고 있다[7][8]. 두 차례의 #검은시위 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페미당당의 심미섭 대표는 29일 #검은시위 현장의 자유발언대에서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의 전리품이 호주제 폐지였다면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들의 전리품은 낙태죄 폐지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3]. 과연 낙태죄 폐지는 이 시대의 "영" 페미니스트들의 전리품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는[5] #검은시위 에 동참하는 여성들의 분노에 일단 주목해볼 일이다.



[1] http://www.moleg.go.kr/lawinfo/lawNotice?ogLmPpSeq=34915&mappingLbicId=0&announceType=TYPE5&pageIndex=&rowIdx=94
[2] http://www.womennews.co.kr/news/99049
[3] http://thepin.ch/news/m3bz/black-protest-1029
[4] http://www.law.go.kr/%EB%B2%95%EB%A0%B9/%EB%AA%A8%EC%9E%90%EB%B3%B4%EA%B1%B4%EB%B2%95/%EC%A0%9C14%EC%A1%B0
[5] http://www.huffingtonpost.kr/2016/10/28/story_n_12684910.html?utm_id=daum
[6]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98530
[7] https://mobile.twitter.com/womenlink/status/789450330513694720
[8]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jqRhQ-J90r_aNvjdgZJ9N4Rmvscc37ON0RMPdpvmoj05mkA/viewform?c=0&w=1
2016.10.29. 보신각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0.29
2016년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은 누구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이 드러나며 나라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연설문 사전 검수로 시작된 이야기는 국가 예산 탈취와 대기업과의 거래로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경험해온 "시스템의 무능"의 실체가 얄팍한 사리사욕의 드라마로 드러나면서 그 주인공들인 대통령과 비선 실세, 순응해온 대기업, 눈감아 준 검찰과 정치권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요구되고 있다.

분노한 국민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10월 29일 5만 명, 11월 5일 20만 명이 참여했고(주최 측 추산) 다가오는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서는 200만명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집회에 처음으로 나가본다"는 증언들이 들려온다는 점에서 2008년을 상기시키는 이번 촛불집회에는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 1) 청소년들이 활약하는 가운데 2008년과 같은 기특한 촛불 소녀 프레임은 명확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 2) 이재명 성남시장은 10월 29일 발언에서 "근본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라는 표현을 썼다가 여성혐오적 표현이라는 빈축을 샀는데, 이러한 지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것.[1] 사회가 퇴보하고 있다고 느껴진 지난 9년 간 시민은 성장해온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는 조직화 되지 못하고 흩어진 군중들의 이벤트로, 정권교체도 못 이룬 실패담으로 공유되어 오곤 했다. 하지만 이후 나는 종종 2008년 광우병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각성의 계기'로 이야기하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2008년 촛불의 외연이 2002년 반미 촛불집회의 그것과 달랐듯 2016년은 또 확연히 다를 것인데, '깨어있는 시민과 촛불소녀와 유모차부대와 기타 등등'은 이미 지나 간 이야기이다.

한편 이 분노에 예전과 달리 보수 세력이 목소리를 얹고 있다는 것도 다른 점인데, 조선일보는 촛불집회의 "좌파적" 발언들이 일반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기사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 정도의 대규모 집회를 주관할 수 있는 인프라는 조직화 된 시민사회와 운동권이 '투쟁'으로 유지해 온 것일 텐데 염치없는 투정이다.


[1]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 그 레토릭의 위험" 2016.11.2 허핑턴 포스트
2016.10.29부터 청계광장, 종로, 광화문 일대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10.28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좋은 세상을 위한 발걸음은 모두 여성들이 먼저 내딛는 것 같다. 최근 이화여대 법학 전문 대학원생들로 이루어진 소모임 ‘풀하우스’가 ‘파트너 등록법’ 입법 촉구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1] 파트너 등록법은 “현대사회의 더 넓어진 가족형태를 인정하고,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으며 “혈연 또한 혼인 외의 사유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관계의 성립과 효력 및 그 등록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이다. [2] 기대 수명이 (반은 농담이지만) 끔찍하리만큼 늘어난 21세기에서 누구와 삶을 함께하는가를 선택하는 것은 누구나 행복을 위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지만 누군가의 선택들은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가족관에서 벗어난 파트너등록법을 통해선 아직 법제화되지 않은 성소수자 커플의 파트너십이나 비혼주의자 공동체 역시 법적으로 인정, 보장받을 수 있다.

아는 레즈비언 누나는 벌써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애인과 동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애인의 건강문제 탓에 긴 시간 동안 입원을 해야 하는 동안 누나는 옆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입원 절차조차 밟게 할 수 없는, 고작 ‘동거인’으로써 애인의 곁에 머무는 동안 누나는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녀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면서도 겪은 고통을 나라고 겪지 않을 수 있을까?

새로운 시대에는 그에 걸맞은 제도가 필요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파트너 등록법’과 같은 새로운 제도는 전통적인 삶의 많은 가치를 파괴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선다. 하지만 이 과정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과격하지 않다. 우린 기존의 제도 모든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 아닌, 그저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기존의 제도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당신들이 그 낡은 것들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삶은 피딱지처럼 말라가고 있다. 파트너 등록법은 단순히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제도일 것이다.


[1] https://twitter.com/_rexion/status/791861814388633601
[2] ‘풀하우스’ 소개 http://blog.naver.com/team_fullhouse/220771304249
[3] 현재 ‘풀하우스’에서는 파트너 등록법 입법 촉구를 위한 지지서명을 받고 있다. https://twitter.com/femi_booksalon/status/795965581270786048

# 그 외 by @louderaloud
2016.10.23
#ooo_내_성폭력, 침묵과 싸우는 사람들

10월 중순,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 때문에 촉발된 #오타쿠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트위터를 뒤덮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만연한 서브컬쳐계의 문제점을 폭로하던 이 해시태그는 곧 문단, 미술계, 음악계, 영화계, 공연계, 운동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어 트위터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다. 며칠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폭로 무브먼트는 특정 분야의 성폭력을 가시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래 다 그렇다"는 이유로 애써 무시하고 간과해 왔던 크고 작은 성폭력의 무게와 그것의 거대한 영향력을 새삼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했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성폭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수차례 누적되고 다수에 의해 반복 및 묵인되면서 일종의 대기(atmosphere)를 형성하고, 이러한 대기가 성폭력의 실질적, 잠재적 피해자들을 어떤 계(界)로부터 몰아냄으로써 특정 젠더집단에 배타적인 환경을 조성해 간다는 사실이 새삼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10월 23일, 일민미술관 앞에서는 수년 간 지속되어 온 수십 건의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일민미술관의 책임큐레이터인 함영준의 해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되었다. 스크린 속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ooo_내_성폭력 고발의 흐름이 오프라인 시위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궂은 날씨 탓인지 시위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카우보이 모자로 시작된 온라인 해시태그의 흐름이 궁극적으로 성폭력 가해자의 해임을 요구하는 오프라인 시위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곧 사람들이 성폭력 경험 공유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공론화하여 자신이 속한 계(界)의 대기 자체를 바꾸는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다양한 분야에서 확장된 해시태그가 꾸준히 나타났으며[1], 온라인 상에서도 각종 성폭력 폭로글을 기록하고 꾸준히 공론화하기 위한 아카이브 계정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했다[2] .

먼지처럼 만연하고 공기처럼 당연한 성폭력은 그것의 실질적, 잠재적 피해자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침묵하고 도망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며칠에 걸쳐 이어진 #ooo_내_성폭력 해시태그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바로 그 침묵이야말로 이 오염된 공기가 순환되는 것을 막고 자꾸만 고이게 만드는 원인이었으며, 평범한 개인들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공기의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배웠다. 당장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일상 속 성폭력과 맞서는 투사로 거듭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ooo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통해 침묵과 맞서 싸우는 방법을 알게 된 사람들의 미래는 분명 어제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오랫동안 침묵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가해자들의 미래 역시, 어제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1]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103010057271352
[2] http://news1.kr/articles/?2815727
2016.10.23. 일민미술관 앞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0.22
앞으로 ‘어쨋든’ ‘그냥’ 지나치치 않기를 다짐하며

강남역 포스트잇에 적힌 익명의 메시지들을 바라보던 지난 5월, 익명의 피해자가 문득 궁금했었다. 가해자도 꿈이 있는 신학도였다던데, 이번 피해자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궁금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어쨌든' 이 세상에 어떤 틈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오 개월 후, 그 틈새로 익명의 피해자들이 경험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막연히 우연히 살아 남았다 생각했던 나는 이번 피해자들의 증언을 읽어내려가며 비로소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어째서 ‘어쨋든’이라며 쉽게 넘겼을까. 사소했던, 수많은 불쾌한 경험도 함께 떠올랐다. 어째서 그때 ‘그냥’ 참고 웃어 넘겼을까.

가해자 중 한 사람은 나에게 보낸 메일의 첫 줄에 이렇게 적었다. “인아씨, 아시겠지만 제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여전히 대부분 사람들은 지금 이 고백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은 더욱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겐 그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뿐이다. 강남역살인사건이 내 옆자리 남성이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지 어렴풋이 깨닫는 계기였다면 이번 고백들을 통해 내 옆자리의 그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묵인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런 곳에서 얼마나 더 발버둥을 칠 수 있을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지금 너무 쉽게 희망을 말하는 것도 기만이다.

와중에 호주에 있는 대학 동기가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최순실 뉴스를 본 것이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000_내_성폭력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나의 이야기에 최초로, 정확한 지점에서 공감하여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최근 호주정부는 쿼터제를 도입해 지원금의 50%를 여성에게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뉴스를 더 찾아보니 ‘스크린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영화협회에서는 영화 내 여성 서사와 창작자의 기회 부족을 지적하며 이를 위해 40억 원을 창작 지원금과 커리어 지원금으로 마련했다고 한다.[1] '호주 정부 국가혁신 과학 아젠다'에서는 STEM(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계열의 여성 부족을 지적하며 5년간 113억 원을 지원한다.[2]

이미 이어지는 고발들만큼 여러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발 빠른 개인들의 노력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개인들의 노력은 종종 무색해지고, 쉽게 소멸한다. 이미 개인들의 정신과 육체를 갈아 넣으며 겨우 유지되는 이곳에서 개인들의 노력을 보며 희망을 찾는 건, 허무하다. 무엇보다도 아무도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은 사람이 없다. 그래도 지금 여기, 분명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위태로운 변화의 발걸음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건 제도적 장치라는 생각뿐이다. 호주제를 폐지하는데 걸린 시간 48년. 우리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까?


[1]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 Gender Matters 정책 홍보영상
[2] http://www.innovation.gov.au/page/opportunities-women-stem
[3] 영국 여성전용 창업자금 지원 공모
[4] 영국 영화계 공공지원금의 반을 여성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쿼터제 마련 촉구
[5] 스웨덴 정부웹페이지 양성평등 현황자료

# 그 외 by @sceneryoftoday
2016.10.20
손현선 개인전 «눈 숨 새 Eyes Breathe Time»

손현선 개인전 «눈 숨 새 Eyes Breathe Time»이 안국역 175갤러리에서 2016년 10월 20일부터 11월 3일까지 15일간 열렸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정면에 나란히 걸린 ‹어떤 남자›의 초상화 두 점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얼핏 보면 동일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다. 왼쪽으로는 공원 놀이터에 종종 설치되어 있는 야외 운동기구가 캔버스를 꽉 채우고 있다. 원형의 바퀴가 앞뒤로 달려있고 ‹반은 돌고 반은 멈춰 있는›듯 한쪽 바퀴가 미세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그 옆엔 몸체가 사라지고 바퀴만 남은 캔버스 두 점이 걸려 있다. 다른 한편엔 ‹가만히 돌고 있는› 실링팬(Ceiling fan)의 궤적이 짧게 또는 길게 캔버스에 담겨있고, 기둥 너머에는 달리는 레미콘과 돌아가는 레미콘 탱크, 그리고 탱크에 박힌 볼트가 그려져 있다.

들숨과 날숨 사이를 오가는 ‹어떤 남자›의 호흡은 전시장에 미세한 기류를 만들고, 호흡과 동기화된 시선의 교차는 관람객과 벽에 걸린 작품 모두를 관찰하며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반대편에 그려진 실링팬은 어떤 남자(혹은 작가 혹은 관람자)의 호흡과 시선의 교차로 묶이는 한 사이클 동안 망막에 누적된 장면처럼 보인다. 장노출 기법으로 찍은 사진처럼 그려진 실링팬과 운동기구의 바퀴 궤적은 작가가 대상을 바라보고 포착했던 시간이며, 그 시간의 길이는 조절된 호흡의 시작과 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고정된 사물의 운동을 지켜봤다면 작가는 시선을 확장하여 움직이며 돌아가는 것을 응시한다. 공사현장과 도로 위의 레미콘을 포착한 작가는 다시 한 번 같은 방식의 해석을 시도한다. 기울어진 축으로 육중하게 돌아가는 레미콘의 탱크와 도로를 달리는 레미콘의 바퀴는 상황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든다. 회전하며 이동하는 대상을 따라 관찰자의 시선도 움직인다. 작가는 조절된 호흡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추적하는 동시에 대상의 결절점을 찾는다. 레미콘 탱크에 박힌 볼트는 호흡의 시작과 끝이다. 밋밋한 표면의 모호함 속에서도 기준이 되는 지점을 찾아 포착한다. 그리고 그 지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호흡을 일치시키고 있다.


http://blog.naver.com/oneroom_blog/220858751409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10.17
#오타쿠_내_성폭력: 취향의 거죽을 쓴 폭력

10월 17일, 트위터의 한 유저가 #오타쿠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렸다. 이 해시태그는 #문단_내 성폭력, #예술계_내 성폭력 등 각계각층으로 퍼졌고 생존자와 피해자들은 이 태그를 통해 폭력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11월 4일인 지금도 #오타쿠_내_성폭력 태그를 통해 오타쿠들의 성폭력 고발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에게 취향이 있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 말은 오타쿠라면 모두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처럼 보였다. 생계나 업에 관련되지 않은 취미의 영역이므로 위계가 생기지 않고, 그래서 특별한 곳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성폭력은 성욕의 외피를 썼을 뿐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의사를 무시한 정신적, 신체적 침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실행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우리의 세계는 수평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말은 폭력을 가리는데 일조했다. 피해자들을 대하는 방식,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삭제하는 방식이 '바깥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더욱 참담하다.

여기에 더해, 오타쿠들이 지속적으로 접하는 작품들은 여성혐오에 기반해 만들어진다. 서브컬쳐의 수많은 서사들은 여성피해자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성 캐릭터는 강간당하거나 도륙당한 여성 캐릭터가 없다면 주인공으로서 각성할 수 있는가? 남성 캐릭터의 유능함은 멍청한 말을 하는 여성 캐릭터가 없다면 돋보일 수 있는가? 미소녀 동물원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언젠가 오타쿠와 섹스를 할 예비 섹스돌로서 존재하고, 캐릭터들은 가상이므로 상대를 이해하거나 상대의 고통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가해자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설정이다. 서브컬쳐가 제공한 여성혐오적 세계관은 청소년을 ‘로리’라고 부르며 낄낄댈 수 있게 만들었고, ‘모든 취향을 존중한다’는 오타쿠계의 모토는 성추행을 하고도 취향을 핑계로 대기만 하면 제지받지 않는 강간 문화를 만들었다. 남성 오타쿠와 여성 오타쿠가 만났을 때 여성은 같은 오타쿠, 나처럼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여성 오타쿠는 보지였고, 거유거나 빈유였고, 아헤가오였고, 챰피였으며, 로리였다. 가상의 설정과 현실의 인간도 구분하지 못한 채 가상에서만 용인될 수 있는 폭력을 사람에게 휘두르기까지 오타쿠 문화에 제동장치는 없었다.

우리는 이제 가상과 현실을 분리하려 한다. 취향이 경계를 넘어 현실로 기어나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이토록 끔찍하다. 현실을 침범한 가상 세계와 그에 경도된 자들, 이 폭력을 묵과하거나 ‘원래 그런 것’으로 정당화 해 주던 씬을 어떻게 뒤집고, 터뜨리고, 흔들 수 있을까. 이 무브먼트가 어디에 도착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제 폭력을 취향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트위터에서 #오타쿠_내_성폭력 검색하기 goo.gl/Cfm9Or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10.12
서울 중구 덕수궁과 환구단 : 누구를 위한 대한제국인가

10월 12일, 덕수궁 주변 서울광장과 환구단 일대에서 서울시의 <<정동, 그리고 대한제국13>>사업 계획[1]을 선포하는 행사가 열렸다. 정동 일대에 산재해 있는 대한제국 시절의 역사문화자원을 잇는 총 길이 2.6km의 역사탐방로를 중심으로 시청 서소문 별관에 <광무전망대>를 설치하고 한반도 최초의 근대식 호텔이었던 <손탁호텔>을 본딴 카페를 조성하는 등의 내용이 계획의 주된 골자이다.

겉으로 보기엔 흠잡을 데 없는 근대 유산 정비 사업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의문이 가는 부분이 눈에 띈다. 10월 12일의 선포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승리한 역사"로 규정하며 "국민주권국가가 탄생한 최초의 역사" 라고 발언하였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대한제국의 헌법이었던 <대한국 국제>의 그 어디에도 백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신민이라는 표현만이 등장할 뿐 대한제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구절은 없다. 고종 연간에 이루어졌던 환구단 조성, 전차 설치 등의 한성부 대개조 사업 또한 궁극적으로는 전제군주 왕권의 강화가 주된 목적이었지 백성들을 위해서 행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서울시가 '사람이 중심인 서울'을 모토로 시정을 꾸려나간지도 어느덧 수 년이 지났다. 이러한 현대의 서울에 '왕권과 제국의 공간'이었던 대한제국기의 서울을 녹여내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할 것이나, 이번 <<정동, 그리고 대한제국13>>에서 보여준 서울시의 시각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사업의 종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실제 사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박원순 "대한제국은 승리의 역사"…정동에 2.6㎞ 역사탐방로 조성>, 뉴시스, 2016.10.12

# 도시 by @eun_gong
2016.10.09
남산예술센터 개념기반극 (2) - <변칙판타지>

지난달 보았던 <아방가르드 신파극>에 이어 남산예술센터의 두 번째 개념기반극인 <변칙판타지>(정은영 작. 연출)을 보았다. 이래저래 기대가 많았던 극이었다. 일단 게이 코러스 집단인 지보이스와 함께 잊힌 여성국극을 다시 소환한다는 극의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여성국극이라는 용어가 생소해 찾아보니 여성국극이란 오로지 여성 연기자들로만 구성된 극을 말한다. 1948년에 박녹주, 김소희, 박귀희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여성국악동호회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국극인 <옥중화>를 공연하지만, 그보다는 이듬해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개작해 올린 <해님 달님>이 큰 인기를 끌게 되며 여성국극이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변칙판타지>는 2000년대 초 여성국극의 부활을 선언했던 <춘향전>을 우연히 보게 된 N이 주인공을 맡고 있다. N은 여성국극의 매력에 빠져 직접 선생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고 여성국극 배우로서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게도 이미 잊힌 여성국극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여전히 N은 여성국극을 꿈꾼다. <변칙판타지>는 설 곳이 없던 그녀가 그동안 꿈꿔왔던 자신의 무대를 꿰어 만든 극이다. 그녀는 지보이스와 함께 ‘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무엇인가? 젠더는 어떻게 학습되는가? 과연 타고난 성별이 이를 결정하는가? 여성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인 N과 남성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여성스러운’ 지보이스는 분명 우리 사회에서 ‘변칙적인’ 존재들일 것이다. 이들은 학습된 ‘성’에서 자유로운, 진정으로 자신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무대라는 공통된 공간에 목말라있다. 이런 그들의 만남의 끝엔 그토록 꿈꿔왔던 그들의 ‘판타지’가 실현되는 쇼가 펼쳐진다.

하지만 모두가 크로스드레싱을 즐기며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는 희망찬 엔딩으로 향하는 이 ‘변칙’들의 소란은 이제 너무 낡아 보인다. 극의 전반부는 여성국극에 대한 정보 전달과 무대가 없어 여성국극을 소개할 수 없었던 자신의 힘겨웠던 삶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탓에 무척 지루하며 젠더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되는 후반부의 성 역할 바꾸기 놀이도 신선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물론 “여성적인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이 극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찾아 볼 생각까지 하는 관객들은 흔한 게이 영화의 클리셰처럼 끝나는 한 편의 드랙쇼 그 이상의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극이 끝나고 나면 다시 혐오의 구렁텅이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이 안일한 ‘장밋빛 소동’을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없었다.


https://twitter.com/nsartscenter/status/783886289225392128

# 그 외 by @louderaloud
2016.10.05
# LGBT
여성혐오와 호모포빅은 우리의 전통

요즘은 인사동과 광화문 일대를 가면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 문화재청이 지난 2013년 10월부터 한복을 입으면 고궁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재정한 후, 젊은 층들 사이에서 한복을 입고 고궁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한복 무료 관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여성은 저고리에 한복 치마 차림, 남성은 저고리와 한복 바지 차림만을 한복으로 인정한다. 지정 성별에 따른 복식을 제한하고 있는 탓에 트렌스젠더 친구와 함께 여자 한복 차림으로 경복궁에 찾아간 한 직장인과 남자친구와 서로 한복을 바꿔 입고 간 한 대학생은 입장을 불허 받았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측에선 지정 성별에 따라 정해진 한복 차림을 따르지 않는 것은 “전통을 왜곡하는 일”이며, 행사의 취지에 어긋나므로 허락할 수 없다고 밝혔다. [1] [2]

그들이 말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에 따르면 남성은 '남성답게', 그리고 또 여성은 '여성답게' 입고 행동해야한다. 이 '전통'은 젠더차별적임은 물론, 호모포빅하기까지 하다. (나는 대부분의 호모포비아는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막말로 우리나라의 전통을 지켜야한다는 논리를 더 파고들자면 우리는 머리도 함부로 자를 수 없을 것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난 가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평가되며 그 과정 속에서 어느것은 유지되고 파괴된다. 남장여자를 다루는 퓨전 사극 드라마가 멀쩡히 방영되고 인기를 끄는 현 시점에서 지정 성별에 따라서만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이 '전통'은 과연 꼭 지켜져야 하는가. 나에겐 내가 원하는 대로 치마를 입고 돌아다닐 권리가 있다. 이것은 오랜 전통을 부수려는 일종의 테러 행위가 아닌,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유 권리의 문제이다.


[1] http://m.womennews.co.kr/news_detail.asp?num=98341
[2] https://twitter.com/tkddmsbest/status/782896593229848576

# LGBT by @louderaloud
2016.09.30
‹이중섭 작가론, 어떻게 쓸 것인가-신화에서 역사로›

“이중섭 작가론, 어떻게 쓸 것인가-신화에서 역사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다소 분명한 주제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에 관한 학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김명훈, 신수경, 김미정, 박소현이 발제자로 참여했으며, 미즈사와 츠토무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발표 뒤에는 ‘현장에서 본 이중섭 연구의 과제’라는 주제로 라운드테이블도 열렸다.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이중섭 그 자체보단 이중섭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고, 이해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특히 김미정의 ‘이중섭 회화의 재료와 기법의 독창성’은 이를 물질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는데, 이중섭의 개인사로 재료의 부족을 단정 짓지 않고, 그의 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재료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그래서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사실 개인사나 상황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뒤이어 박소현은 “‘이중섭 신화’의 또 다른 경로(매체)들: 1970년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이중섭이 왜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소위 신화적으로—이해되는지 규명하고 있었는데, 이중섭이라는 개인사가 그리고 그의 특이한 성향이 어떻게 그를 신화화했는지, 1970년대의 상황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었다. 발표자가 중심으로 말하는 것은 시인 고은이 쓴 이중섭 평전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문예영화 이중섭이다. 시인 고은이 쓴 이중섭 평전은 문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쓴 “‘장르확대’의 활동”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이중섭의 예술성을 이중섭 개인 생활을 통해 부각하려 했고, 이에 따라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이며 현대를 대표하는 천재이자 우상”으로 이중섭을 신화화한다. 여기에는 작가 이중섭이 아니라 ‘이중섭 신화’에 대한 재현만이 남을 뿐이다.

이중섭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보기 위해 지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뭔가 사람들은 사생활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그것만 계속 파려고 한다. 학회 시작에서 한 발표자는 이중섭이 신화화된 것이 미술사학자들의 태만 때문이라 지적했는데, 이게 단지 태만으로 생긴 결과일까, 이 발표를 다 듣고 그렇게 지적한 발표자가 여전히 태만을 지적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9.30
# LGBT
춤추는 퀴어들

최근 들어 부쩍 여성 퀴어 댄스팀이 늘었다. 취미로 춤을 추고 싶어 모인 이들은 대개 합정이나 망원동의 지하 연습실에서 합을 맞추고, 일년에 수 차례 여타 퀴어 밴드나 댄스팀과 협력해 공연을 꾸린다. 서울과 대구의 퀴어문화축제에서 플래시몹을 하거나 무대에 오른다. 그렇게 친구나 지인이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춤에 흥미를 갖는 사람도 늘어간다.

다양한 동작으로 몸을 뻗고 동료와 합을 맞추는 무용 고유의 즐거움은 크다. 더불어 생활체육으로서의 의의 외에도, 이 몇몇 팀들의 특징은 이들이 대개 남성 아이돌의 춤을 춘다는 것이다. (한국 레즈비언 문화의 큰 축이었던 팬코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여성에게 할당된 귀엽고 사랑스러운 몸짓을 적극적으로 벗어나고, 박력있고 힘 있다고 묘사되는 동작을 각자의 몸으로 구현한다. 일반 댄스 학원을 찾아서는 경험하긴 어려운 장점이다. 이들의 춤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달 말 홍대의 레즈비언 클럽 핑크 홀에서 열리는 ‹‹SLAM›› 파티에 가보는 건 어떨까.[1] 평소 레즈비언 클럽이 주최하는 펨투펨 파티나 스쿨룩 파티와는 달리, 이 파티의 이름인 SLAM은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성차별, 젠더이분법, 낙인과 차별을 박살내자는 뜻이다. 평소 배타적인 레즈비언 클럽도, 이날은 퀴어프렌들리한 모두에게 열려있다.


[1] https://twitter.com/930crazyparty

# LGBT by @sommium_
2016.09.27
# LGBT
<<서울프라이드페스티벌>>, 한 가지 색으로 무지개 칠하기

10월 29일 토요일에 열리는 <<서울프라이드페스티벌>>의 공식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1] “아시아 유일 성소수자 종합 예술제”를 표방하고 나선 프라이드페어의 공식 포스터라고 보기엔 다소 의아하다. 전나환 작가가 참여한 공식 포스터의 중심에 나타난것은 오로지 근육질의 게이/남성의 이미지뿐이다. 타임라인에선 이에 따른 즉각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 이와 같은 반응에 한 기획단은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에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라거나 모호한 상징물을 넣으라는 식으로 간섭을 하고 작가가 따랐다면 그것은 전나환의 그림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그의 그림이 아니라면 올해 가장 뜨거운 예술인에게 의뢰할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3] 이 해명 아닌 해명을 보고 의구심이 가시긴 커녕 더 어리둥절해질 뿐이다.

물론 지금까지 전나환 작가는 언제나 덩치가 있는 게이 남성의 이미지를 작업의 주된 이미지로 차용하곤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그러한 작가의 작업적 세계관이 아니다. 적어도 ‘아시아 유일의 성소수자의 종합 예술제’를 표방하고 나섰다면, 의도적으로라도 PC하려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는것이 이 많은 비판의 주된 요지다. 성소수자라는 개념에는 게이 남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한가지의 정체성만 앞세우는 순간 다른 정체성들은 그 내세워진 정체성 뒤로 가려진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한다. 정체성 삭제의 문제는 성소수자들이 평생에 걸쳐 싸워온 것이다. 퀴어 운동은 언제나 가시화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를 위해 행사를 연다면, 단순히 전나환 작가가 씬에서 핫한 작가라고 해서 그에게 나이브한 마음으로 작업을 부탁하는 것만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의도적인 PC함이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거나 지나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 성소수자를 내세우는 행사에선, 보다 PC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며, 필요하다.


[1] https://twitter.com/sinnaneuncenter/status/781011952411762688
[2] https://twitter.com/i/moments/781766421508345856
[3] https://twitter.com/unpcgay/status/781402010922868736

# LGBT by @louderaloud
2016.09.23
# LGBT
보고 있나, ‘라인’? 우린 존재한다

‘버디버디’를 시작으로 온라인 메신저 유행의 중심에 있는 건 언제나 사용자 각각의 개성을 표출 가능하게 하는 비주얼적인 요소였다. 싸이월드의 미니 홈페이지를 더욱 돋보기에 꾸미기 위해 도토리를 결제하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버디버디엔 아바타를 꾸미는 기능이 있었고 MSN 메신저의 경우엔 유저들끼리 각자 이모티콘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컴퓨터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온라인 메신저가 스마트폰 중심으로 넘어온 현 시대에서도 이러한 비주얼 요소의 중요성은 유효하다.

국내에서는 카카오톡에 다소 밀렸지만 국외에선 오히려 보다 큰 점유율을 자랑하는 네이버 자회사의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의 장점은 서비스 이용자가 직접 스티커를 만들어 배포할 수 있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 '라인'이 제공하는 사용자 참여형 마켓에서 준(JUN)이라는 필명으로 스티커를 제작해오던 한 이용자가 이성애 중심의 스티커 시장에서 벗어나 동성애 커플도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고자 게이 커플을 묘사한 스티커를 제작했다. 하지만 일주일 후 그는 라인으로부터 “스티커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캐릭터가 옷을 덜 입었다”는 이유로 한국 판매 불허 통보를 받았다. [1] 하지만 라인이 문제 삼은 스티커 이미지들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팩을 하는 식의 섹슈얼한 코드가 배제된, 평범한 일상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며, 이미 판매되고 있는 라인의 다른 스티커들과 비교 해봐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2] 심지어 이미 해외 쪽에선 보다 높은 수위의 게이 커플을 그린 스티커도 멀쩡히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3]

한국을 살아가면서 LGBT의 존재는 이런저런 이유로 ‘삭제’ 당하고, 게이와 레즈비언은 ‘브로맨스’나 ‘걸크러쉬’와 같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거부감이 덜 드는 용어로 대체된다. 정작 게이와 레즈비언은 그 존재조차도 용인 되지 않지만 브로맨스와 걸크러쉬는 "The New Black(핫한 트렌드)"로 평가받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보기 싫다고 외면하고 눈을 감아도 우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린 버젓이 당신의 눈 앞에 존재하고, 크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라, 우린 여기에 있다고. 언제까지나 당신들은 눈을 감고 있을 순 없을것이다.


[1]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2456.html?_fr=tw
[2] http://twitter.com/friedgil/status/779326614492426240
[3] http://twitter.com/coxmint/status/779217837814607872

# LGBT by @louderaloud
2016.09.17
모두의 관캐 ‘쿠지쿠라 마리루리’

“침묵의 요람”이라는 단커[1]의 캐릭터인 ‘쿠지쿠라 마리루리'[2]가 “카게로우 프로젝트"의 ‘마리'[3]라는 캐릭터를 베꼈다는 파쿠리(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끼는 행동) 고발이 있었다. 고발한 사람은 ‘베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고, 고발당한 사람은 ‘베끼기는커녕 참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 쿠지쿠라 마리루리는 마리를 베낀 캐릭터일까. 물론 두 캐릭터는 닮았다. 그리고 파쿠리가 아니다. 이 두 캐릭터가 닮은 건 일본의 서브컬쳐라는 동일한 레퍼런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흰 머리와 붉은 눈은 신비로우면서 아름답고 자기파괴적인 캐릭터를 만들때 고려하게 되는 스킨이다. ‘소녀캐' 역시 십수년에 걸쳐 수없이 변주되고 있는 템플릿이다. 이렇게 ’베낀 듯 닮은' 캐릭터는 오늘도 수십명씩 태어나고 있다. 그러나 후죠시에게 ‘누구누구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특정할 수 있는 그림체와 문체는 ‘자기 자신'과 동일한 위상을 지닌다. ‘나'란 감히 분류할 수 없는 것,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파쿠리나 트레이싱은 ’나 자신을 도둑질한 것'과 같은 죄다. 이 감각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베꼈다는 고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꼈다는 고발도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의식 과잉은 자신이 만드는 창작물이 어떤 계보의 말단에 있는지, 어떤 레퍼런스에 물들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점차 줄어들지만, 파쿠리 공론화가 동인계의 유희로 자리잡은 탓에 아이디만 바꾼 것 같은 고발이 끊이지 않는다.

이 일은 고발한 사람이 사과문을 게재함으로써 마무리되었고, 쿠지쿠라 마리루리는 모든 커뮤러가 원하는 관캐가 됐다. 관련글은 모두 삭제되어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같은 깔끔한 말소를 통해 파쿠리와 트레이싱 논란은 다시 동일한 형식으로 튀어나올 준비를 마친다.


[1] https://twitter.com/Shepherd_ITC ‘단커'는 ‘단간 커뮤니티'의 줄임말로 ‘단간론파'라는 애니메이션의 설정을 가져온 커뮤니티를 말한다.
[2] http://goo.gl/kNeKDg
[3] http://mekakushidan.com/actors/mari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9.16
비평적 거리두기에 실패한 카메라가 '소수자'의 세계를 보여줄 때

<왕초와 용가리>의 이창준 감독은 영등포역 근처 쪽방 마을 ‘안동네’에서 3년간 지역 사람들과 교우하고, 이중 ‘상현’, ‘정선’, ‘진태’, ‘복수’ 등 남성 인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들과 형 동생 사이로 지낸 감독은 그들의 생각을 들려주고 상황을 보여준다. 그 상황과 사건은 물론 ‘안동네’ 사람들을 폄하하거나 착취하는 사회의 인식과 제도 위에 놓여 있다. 감독은 그러나 사회 문제를 의제화하지 않고 이 공동체 내부의 모순에도 무감각하다.

이를테면 영등포구 구청장 후보자와 해병대 전우회, 조합장과 같은 세력이 결탁해 안동네 일대를 ‘밀어내’고 문래동 재개발을 추진하기로 선포한 단합 회의장에서, 이들을 돕고 있는 진태는 안동네 상현의 친구이다. 부산에서 온 그는 한때 상현과 같은 처지였으나, 한 복지 단체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인력이 필요해 그 기회로 취직했다. 그는 불안정한 삶의 그늘에서 탈출할 자유를 얻었지만 그가 속한 곳은 재개발을 이끄는 세력과 가까우며 그의 친구들은 터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이런 맥락을 관찰하면서도 진태에게 입장을 묻지 않는다. 암에 걸린 정선이 여성 지인에게 ‘(죽기 전에)너랑 한 번 (섹스)하고 싶다’라는 말을 던지고, 주변 사람들이 (심지어 같은 여성 또한) ‘얘랑 한번 자줘’라고 강조하는 시점에서도 감독은 은연중에 퍼져 있는 여성혐오 발언을 제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고유한 문화이고 그들 관계의 진실이므로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것이 윤리적인가. 그러나 위에 열거한 상황은 상대방을 약자로 만드는 데 주인공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자신이 신뢰하는 상대방에게 생각의 변화를 요청하지 않는 감독의 방식을 옹호할 수 없는 이유다. '상대방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고의 개선을 요구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감독 스스로 그 자신의 이웃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제거해버린 결과, 그는 그 누구보다도 그들의 친구에게 거리를 둔 사람이 되었다. 빈민이자 정치적으로 약자인 이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에 처한 모습, 예컨대 암 선고를 받은 시점에서 1년이 더 지나 눈에 띄게 기색이 나빠진 정선이 도로 난간에 쓰러지듯 누워 있는 모습을 찍을 때조차, 감독이 어느 '편'에서 정선의 고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가 설득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 없음의 태도' 때문에 관객은 감독이 실어 나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온정주의의 시선으로 수용하기 쉬워진다. 예컨대 안동네의 대장 격인 상현은 노숙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산하 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급식 및 생필품 배급 현장의 진행 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떨어져 사는 어린 아들과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또한 새로 배우자를 맞이하며 생긴 변화다. (영화에서 누군가가 말했듯) 교회의 무료급식 사업은 정부 지원금을 받는 ‘밥장사’라는 것, 다시 말해 빈민 이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폐기하고 자선 사업의 수혜자를 재생산할 뿐인 시스템 내부에서 상현이라는 인물이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회의 밑낯.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에 의한, 사람의 이야기',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그들은 그렇게 무례하거나 사납지 않은 그냥 우리의 이웃'[1] 관객은 사회 없는 개인, 사회와 단절된 개인에게서 '연대 없는 시스템'을 질문하지 않고, 각개전투하는 자신과 동일한 인물을 발견할 뿐이다. 이로써 저 '이웃'의 일상에 가로놓인 정치사회적 배경을 축소시킨다. 관객이 의식적으로 감독과의 비평적 거리를 견지해야 하는 이유다.


[1] 댓글을 보라.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3624
비평적 거리두기의 긴장이 와해되어 아쉬운 씨네21 리뷰(조재휘)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5136

# 영화 by @ gusvjar
2016.09.12
지진은 한국 사회를 흔들 수 있을까?

12일, 경주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된 지역이라 덜컥 겁이 났으나 곧 피해는 없다고 뉴스가 떴다. 그러다가 몇몇 학교가 야자를 하던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사실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도모한 학생들을 칭찬했다. 피해가 없기는커녕 일주일쯤 지나자 100억 원 가량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떴다. 지진 때문에 연착한 KTX를 미처 피하지 못한 직원 둘이 사망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국민안전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박근혜 대통령은 9일 후 눈에 익은 그 노란색 점퍼를 입고 경주를 방문했다. 잊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는데 잊고 싶어도 잊을 수도 없다.

2014년 4월엔 노란 리본 이미지가 SNS를 뒤덮었다. 비전문가들이 만든 이미지다 보니 모양도 가지각색이어서 끝이 리본 형태로 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둥 잡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노란 도쿄도방재책자 한국어판 이미지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이 책은 일본 도쿄종합방재부의 방대한 전문지식을 토대로 일본의 전문광고사 덴츠가 아이부터 어른까지, 단시간은 물론 긴 시간을 두고 읽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디자인한 책이다. 세심함의 연장선상에서 도쿄에 사는 외국인들을 고려해 만든 한국어판이 SNS를 통해 퍼져나간 것이다. 혹자는 도쿄와 한국의 상황이 다르다고 꼬집지만 나는 그저 이 아름다운 정보디자인이 한국 SNS에서 퍼져나가는 것이 신선했고 웃펐다. 얼마 후 각 정부관계처 SNS에 올라온 한국식 (배달의 민족 서체로 글자를 한가득 넣은 못생긴)'카드뉴스'를 보니 더욱더.

19일 일주일 만에 또 진도 4.5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야자를 강요한 학교도 없었으며 각자 습득한 지식으로 시민들은 차분하게 대피했다고 한다. 세월호가 침몰해서 바뀐거라곤 고작 '각자도생'을 칭찬하는 모습 뿐이라면 너무 절망적이다. 지진은 한국 사회를 흔들 수 있을까? 부디 소 잃었으면 외양간 좀 고쳤으면 좋겠다.


도쿄도방재책자

# 그 외 by @sceneryoftoday
2016.09.11
남산예술센터 개념기반극 (1) - <아방가르드 신파극>

남산예술센터가 하반기 시즌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방식의 연극을 모색하는 개념 기반 연극 3편을 연달아 올린다. 그 중 첫 번째로 9월 7일부터 11일까지 오른 극은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와 공동 제작한 적극 작 <아방가르드 신파극>이다. [1]

<아방가르드 신파극>은 ‘새로운 물결’이라는 본래의 뜻과 달리 오해받고 있는 ‘신파’를 다시 그 원류로 되돌리려는 시도이다. ‘신파’는 본래 17세기 말 민권운동이 시작과 함께 양식화 된 ‘구파’에 해당되는 가부키 극에 대항하며 나타났다. 하지만 오늘날 ‘신파’는 진부한 방식으로 관객의 눈물을 짜내는 데에만 혈안이 된 드라마를 뜻하고 있다.

극은 멜로드라마 장르의 중요한 작품인 1914년 작 무성 영화인 <폴린의 위기>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4차 가부키-장광설, 3차 가부키-조루리(인형을 활용한 극), 2차 가부키-노오 가면극(미소년극)을 지나, 어쩌면 아마도 신파의 원류일지도 모르는 고대의 종교의식처럼 보이는 1차 가부키-오쿠니 가부키(무용극)로 넘어간다. 이 신파 찾기의 과정은 “시를 쓰기 위해선 모든 시를 외우고 그것을 다시 모조리 까먹은 후 써야한다”고 극 중간에 삽입된 일화처럼, 신파극에 대한 개념을 천천히 복기하며 전부 해체하고 잃어버리는 과정처럼 보인다. 이 과정 사이사이엔 보르헤스의 단편이 조각처럼 끼어들고, 결국 신파극의 발달 과정에서 형성되고 굳어지며 고리타분해진 기본적인 구조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연극은 (말이나 단어가 아닌) 웅얼거림에 가까운 태초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어떠한 몸짓 혹은 몸부림에 가깝다.

‘아방가르드’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운 난해함이 극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의 뜻을 온전히 알긴 힘들어도 극 자체는 대중적으로도 재미있으며 객석에서 꽤 많은 웃음이 중간 중간 터져 나왔다. 나는 이런 실험극들이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방가르드 연극에 대한 개념을 몰라도 의외로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1] http://www.nsartscenter.or.kr/Home/Perf/PerfDetail.aspx?IdPerf=1075

# 그 외 by @louderaloud
2016.09.09
<해피아워> - ‘이후’의 순간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인디다큐 시간여행: 다큐와 픽션 사이를 횡단하는 7가지 방법>> 특별전의 일환으로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아워> 상영이 있었다. [1] 5시간 1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탓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한동안 국내에선 만나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는데, 꽤 빠른 시일 내에 여러곳에서 상영이 잡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2]

317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그것도 인터미션 없이 한 번에 견뎌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해피아워>는 무척 실험적이거나 거대한 예술적 야심을 가진 것일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해피아워>는 오히려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등장하는 배우 모두 고베에서 열린 한 즉흥 연기 워크숍에 참여해 연기를 처음 해보는 일반 시민들이였으며, 대본 역시 워크숍에 참여한 아마추어들이 합심해 집필했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워크숍 장면은 바로 이러한 제작 과정에서 나온 장면일 것이다) 영화의 제작 역시 시민들의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루어졌다. 또한 준, 사쿠라코, 후미와 아카리, 이 네 명의 여성들의 우정과 그들 각자의 일상을 파고드는 영화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으며 무척 재밌는 편이다.

<해피아워>는 남겨진 순간들의 퇴적으로 이루어져있다. 영화를 채우는 것은 먼저 일어난 친구가 앉아 있던 텅 빈 의자, 잠시 담배를 태우기 위해 홀로 베란다로 향하는 순간, 일이 끝나고 적막한 집에 꺼진 불을 켜는 시간들, 긴 대화 이후 찾아오는 침묵과 글의 마지막 마침표, 그리고 읽고 덮인 채 다신 들춰지지 않는 책들이다. '공허'나 '허무' 같은 극단적이고 단순한 단어로 치환될 수 없는 이 ‘이후’의 순간들은 사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글보다 글의 마침표가, 대화의 순간 보다 대화를 곱씹는 순간이, 대지진 이후의 시간, 혹은 차마 말 하지 못하고 홀로 삼킨 후 한숨이나 담배 연기에 부쳐 보내는 말들이 때론 중요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영화가 이토록 긴 러닝타임을 지닌것은 이 ‘이후’를 다루기 위해선 그 ‘이전’의 시간들을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피아워>는 지금을 살아가는 일본 사회의 현대 여성들을 읽어내는데 중요한 영화로 자리 잡는다. 여성의 이야기는 남편의 출근과 아이의 등교 이후, 혼자 ‘남겨진 시간’ 속에서 널어 두었던 빨래를 개는 과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던 이 여성들의 '이후'의 순간들 속엔 분노가 가득하다. 지난 세기 동안 여성들은 이 홀로 남겨진 순간들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 분노를 어떻게 표출 할 것인가에 대해 각기 다른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지만 분명히 표출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일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것이다. 남자들이 가득한 다수의 한국 영화들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여성들의 시간을 온전히 끌어오는 영화를 만나긴 흔치 않다.


[1] http://www.koreafilm.or.kr/cinema/program_view.asp?g_seq=150&p_seq=1017
[2] 곧 광주극장에서도 ‘폴링 in 전주’ 라는 특별전의 이름으로 9월 24일에 상영 될 예정이라고 한다. http://cafe.naver.com/cinemagwangju/

# 영화 by @louderaloud
2016.09.09
450, 10, 479, 고스트버스터즈

450, 훌륭한 음향 시스템과 광활한 스크린 사이즈로 유명한 메가박스 코엑스점 M2관의 전체 좌석 수. 10, 코엑스 M2관에서 진행될 <고스트버스터즈> 3D 단체관람의 선입금 참여신청이 마감되기까지의 시간 10분. 479, 단관 신청이 진행되는 10분 동안 부지런히 입금과 신청을 진행한 사람들의 수.

사실 아무도 이 단관이 성사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다. <고스트버스터즈> 아이맥스 3D 상영을 위해 영화 배급사 및 다수의 아이맥스 상영관과 수차례 통화하면서, 배급사와 극장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상영스케쥴과 DCP 대여/반납 여부를 결정짓는 동안 정작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어디에서도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몇 백명 규모의 대규모 집단으로 묶이지 않는 이상, 소수의 관객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극장에서 "운 좋게" 걸어주지 않으면 절대 그 영화를 볼 수 없는데, 극장과 배급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기 일쑤인 여성 코미디 팬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그 "운"의 간택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 그렇다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직접 돈과 관객을 모아서 우리의 구매력을 "증명"하고 상영관을 얻어내는 수밖에.[1]

400명을 채울 수 있을까 걱정하며 시작된 단관 신청은 겨우 10분만에 마감되었고, "고버 3D"라는 단어가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하지만 코엑스 M2관 대관을 확정짓고 기뻤던 것도 한 순간, 479명분의 돈을 관리하고 450명분의 좌석을 배정하는 작업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로 힘들었다. 일주일의 준비기간 내내 모든 자유시간과 자투리 시간을 단관 준비에 쏟아부어도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단관 당일인 9월 9일, 코엑스 로비의 파티 분위기와 상영관 내부의 열기는 관람 당일에 최악의 몸상태로 일하고 있던 스탭들에게까지도 엄청난 흥분을 안겨줄 만큼 기대 이상이었다. 400개가 넘는 좌석을 꽉 채운 사람들, 상영 시작 전 관객들이 흔드는 야광봉에서 느껴지는 설렘, 거대한 M2관에 영화 상영 내내 울려퍼진 환호성과 박수 소리, 쿠키 영상이 끝날 때까지 1명도 일어나지 않고 마지막 1분 1초까지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 현장에 함께한다는 흥분은 단관이 끝나고도 한동안 쉽게 가시지 않았다.

고버 3D 단관 이후의 트위터 반응[2]들을 보며 깨달은 것은, 사람들이 단지 3D 버전의 <고스트버스터즈>를 보기 위해서 모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여성중심적이고 진보적인 코미디 영화를 보는 여성들이, 자신과 비슷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자신과 비슷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며 크게 웃고 떠드는 경험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영화를 본 메가박스 코엑스점은 각종 덕후 행사가 많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런 코엑스에서, 그것도 가장 큰 상영관을 <고스트버스터즈>의 팬들이 독차지했다는 기록을 남긴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 기록[3]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되어 또 다른 여성중심적 미디어 컨텐츠를 위한 행사들이 꾸준히 추진될 수 있기를.



[1]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762663.html
[2] 고버 단관 반응들
[3] http://news.joins.com/article/20624798
2016.09.09 메가박스 코엑스점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9.09
녹색당 새 공동운영위원장의 전략은 "여성 청년 세력화"

녹색당은 위원장직에 여남 각각 1인을 선출한다. 나흘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녹색당 제 4기 당직 선거 결과 지난 9월 9일 공동운영위원장에 김주온, 최혁봉 후보가 당선되었다. 여성 정치세력화에의 의지가 확실한 신인이 뚜렷한 가치를 갖고 성장세에 있는 정당의 대표자가 되었다. 시의적절하고 반갑다. 이제 나아갈 것이고, 긴말은 아직 필요 없다.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명확한 당선 인사 일부를 아래 옮긴다.

"(...)차라리 작정하고 여성 청년 세력화를 얘기하면 내심 당황하는 분과 열광하는 분으로 나뉩니다. 열광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간 정치로부터 소외되어온 이들, 정치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지 않던 이들이 참여하는 정치야말로 녹색당 정치이며, 정말로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여성 청년은 보조나 부록이 아닙니다. 형식적 평등을 보증하는 토큰도 아닙니다. 이를 이해하는 당원들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저의 성장, 당원들의 성장, 녹색당의 성장이 한국 사회에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도자료] 녹색당, 제4기 당직선거 당선자 확정! ‘여성 청년’, ‘농민’이 정당 대표자로!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9.02
2016 북한미술세미나 — ‹북한미술 어제와 오늘›

2016년 9월 2일에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북한미술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 아래 2016 북한미술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분단 이후 북한미술의 흐름과 성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기획했으며, 황정연, 강민기, 홍지석, 박계리의 발표로 진행되었다. 황정연과 강민기는 각각 “북한의 한국미술사 연구(1945~2015)”와 “남한의 북한미술사 연구(1990~2015)를 발표했는데, 황정연은 북한의 미술가와 미술연구에 대해 강민기는 남한에서 이루어진 북한 관련 미술 전시와 그간의 연구들을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두 연구자 모두 북한의 자료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그리고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한계로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루어진 연구들을 되짚어 봤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홍지석은 북한의 작품 생산과 수용(유통, 소비)을 통해 북한에서 미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했다. 실상 북한에서 미술 작품은 사회를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정치 사회 상황에 따라 선전하려는 내용이 계속해서 바뀐다. 작품 내용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반면 형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북한 미술은 다양한 형식을 일원화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며, 사회주의 몰락 이후 새로운 활기를 외부에서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계속해서 형식이 아닌 내용에 대한 문제와 노동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북한 미술은 나아가고 있다. 고립된 체제에서 강도를 높이기만 하는 북한의 미술은 굉장히 위태로워 보일 뿐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 북한 미술에 관해 거의 관심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북한 미술을 말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근대미술사를 말할 때, 월북 작가나 해금 작가를 말할 때, 사회주의 미술을 말할 때, 재일 조선인을 말할 때, 고구려 고분벽화를 말할 때 등 북한 미술은 생각 보다 여러 곳에 공백으로 남아있다. 이 공백을 모르쇠 지나칠 수도 있지만 한 두번 걸리다 보면, 공백은 언제고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콤퓨터필림화"를 장려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미술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http://blog.naver.com/nrichpr/220800103141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9.02
파티하고 운동하고 춤추는 페미들

페미니스트들은 모이면 무엇을 할까? 흔히들 스터디와 세미나, 토론 모임을 떠올린다. 훌륭한 페미니즘 고전 도서를 함께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사색하고, 토론을 하는 것은 물론 뜻깊은 일이다. 하지만 일상의 도처에 만연한 성차별을 인식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수시로 공부하고 고민하고 싸우는 페미들에게도 때로는 본업(?)에서 벗어나 심신에 축적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여가활동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파티, 운동, 줌바댄스와 같은 것들이.

지난 5월 "강남역 거울행동"을 주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페미당당[1][2]에서는 지난 7월에 "Feeeeee-kkk" 파티를[3], 9월 2일에 "파티4"를 열었다[4]. 즐겁게 놀기 위해 모인 파티에서도 자기검열과 성적대상화에서 자유롭지 못 한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자는 취지로 진행된 이들의 두 파티는 모두 온라인에서 여성혐오적인 방언을 내뱉는 알계들에게서 이름을 따 온 것이다. "페미당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위트가 넘치고 당당한 이들의 파티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모아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나쁜 여자들의 밤길걷기", "천하제일 겨털대회", 언론중재위원회 항의 시위 등으로 잘 알려진 불꽃페미액션[5]에서는 다양한 페미 본업 활동들을 이어가는 한편으로, 페미들의 여가활동을 위한 여러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불꽃여자농구팀[6], 줌바댄스 소모임[7], 페미니즘 고전영화 소모임에 이르기까지 성차별과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여가활동을 위해 결성된 여러 모임에서, 페미들은 자신과 비슷한 시각을 가진 페미들과 만나서 스트레스를 풀고 친목을 다진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언제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7월에 진행되었던 "Feeeeee-kkk" 파티 이후에는 여자들이 모인 파티를 보며 흐리멍텅한 눈을 빛낸 개저들과 한남들에게 지친 여성들이 "이런 곳에서까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다니"라고 한탄하는 후기가 공유되었고, 9월에 진행된 "파티4"의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무통보 삭제되었다[8]. 다양한 공부를 통해 이미 여성혐오와 성폭력에 익숙해진 페미들이기에, 이런 잡음을 접하면서 "페미 모임을 결성하면 오히려 더 쉽게 폭력의 타겟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질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여러 경험을 통해 안다. 함께 모여서 즐겁게 웃고 떠들고 연대하는 것만큼 더 효과적인 폭력퇴치법도 없다는 것을. 일상적인 여성혐오나 성차별과 수시로 싸우면서 지쳐가는 페미들에게는 보다 더 다양한 여가활동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유발자인 여혐러나 성차별러들보다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페미들은 오늘도 열심히 파티를 열고 운동을 하고 춤을 춘다.


[1]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05262217015&code=940301
[2] https://www.facebook.com/events/513694088836873/
[3] https://twitter.com/femidangdang/status/749613351555084288
[4] https://twitter.com/femidangdang/status/768798885770780673
[5] http://www.womennews.co.kr/news/97857
[6] https://twitter.com/firefemiaction/status/774075775674744836
[7] https://twitter.com/firefemiaction/status/774076084153257985
[8] https://twitter.com/femidangdang/status/771204515022286849
"파티4" @ 서교동 프리버드2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9.02
서울 중구 소공동 : 스러져가는 '모던'

지난 한 달 동안, 부영 그룹이 매입한 소공동의 옛 오피스 빌딩군 보존 문제를 다룬 여러 건의 신문기사를 접했다. 소공동과 인접한 북창동을 아울러 이 지역을 '근대건축의 보고寶庫' 라고 칭한 기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사에선 문제의 근대건축물을 '도심의 흉물', '금싸라기에 버려진 땅'으로 칭하고 있었다. 기사 본문을 살펴보면 '근대건축물이라고 해서 꼭 문화재라고 볼 이유는 없다', '문화재가 아니니 보존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다' 라는 주장도 등장한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구 서울시청과 서울역사 정도를 제외하곤, 그 어떤 근현대 건축물도 굳이 도심에 남길 필요가 없어진다. 문화재가 아니니까. 분명 이들 언론사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언론들이 최소한 한 번 쯤은 '서울의 몰역사성'에 대하여 비판하며 구미권의 고풍스러운 도시 경관 보존 사례를 상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구미권의 오래된 오피스 빌딩이며 집합주거가 반드시 문화재라서 보존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아마 다들 모르고 계셨던 듯 하다.

식민지 조선에 '모던'이 도래한 이래, 강남과 도심 재개발에 그 지위를 내주기 이전까지 소공동과 그 일대는 줄곧 근대 서울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급속도로 진행된 재개발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오피스 '빌딩군'은 이제 부영이 매입한 7채의 건물이 전부이다. 잃어버리고서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음을, 수많은 근대건축물의 철거를 통해 이젠 깨달았을 법도 하건만 무엇이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서울은 이미 충분히 '모던'을 잃어버렸다.


http://jooncar4869.blog.me/220789234330

# 도시 by @eun_gong
2016.09.01
제2, 제3의 ‘디자인소호’를 각오하며.

디자인소호는 최근 성추행 피해자를 다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피해자가 남긴 유서를 문제 삼았다.[1] 몇 달 전 이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 당연히 분노했다. 나도 여성이고, 디자이너이며 편집디자인 회사에 다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잊혔던 이 사건은 Stronger Together가 정리한 사건 개요를 접하게 되면서[2] 나에게 조금 더 바싹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대표와의 문자 내용이 가장 결정적이었는데, 그 정도 폭언은 나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소호가 이름이 있는 회사라길래 검색을 해봤더니 잡플래닛에 올라온 리뷰들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 쓰인 내용 또한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상식이 통할 듯 통하지 않는 회사로 체력의 바닥을 체험할 수 있음"

"맡는 일이 많고, 그에 비해 대우받는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듬. 금방 그만두는 사람이 정말 많다. 고위직과 직원들 사이가 안좋음"

"퇴사율이 높은회사. 대외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많이 하지만 실상 직원들은 굉장히 답답함을 많이느끼고 실망을 많이 하는편.."[3]

사건은 작은 에피소드의 집합이다. 비상식적인 사건에 대한 책임을 한 사람에게만 지울 수 없다. 강남사건 역시 '정신병자'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로 쉽게 재단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건을 둘러싼 공기는 사건을 더욱 악화시킨다. 와중에 피해자는 더욱 고립되고, 2차 3차 피해를 입는다. 실제로 이 사건을 내가 '심도있게' 알기 바라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디자인소호를 감싸거나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는듯한 말을 직접 들었다. 혹여 어떤이는 "그 회사, 대표가 원래 이상한 걸로 유명했다"라는 말로 편리하게 이 일을 넘겨버리기도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제2, 제3의 디자인소호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 제3의 디자인소호를 각오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번 부당해고 피해자가 '좋은 선례'가 되어야 한다. 싸움에 지더라도, 이런 종류의 싸움에 기꺼이 힘이 되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남겨야 한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를 돕기 위한 모금이 진행되고 있다.[4] '좋은 선례'를 만들기 위해, 계속 사건의 경과를 지켜봐 주길, 또 각자의 자리에서 기꺼이 도움이 되어주길 부탁한다.


[1] https://twitter.com/Unfair0602/status/771269281136775168
[2] http://upforus.blogspot.kr/?m=1
[3] http://goo.gl/rdktQ9
[4] 피해자 후원하기

# 그 외 by @sceneryoftoday
2016.09.01
'포스트잇'으로 거리 뒤덮기

‘포스트잇’ 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포스트잇으로 이별 통보를 받는 장면이다.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라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포스트잇 절교를 받고 싶냐 는 둥의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웃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처럼 ‘포스트잇’이라는 단어를 두고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과 구의역 비정규직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와 이에 대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용된 주요 도구는 바로 ‘포스트잇’이였다.

최근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포스트잇을 이용한 아주 유쾌하고 재밌는 캠페인을 벌였다. [1] 신촌역과 홍대 일대를 거닐며 성차별적인 광고판에 ‘안 웃겨요’, ‘고조선이야 뭐야~’와 같은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이다. “혼자 먹는 밥 안녕, 솔로 안녕”이라는 신촌역의 한 결혼정보회사 광고[2]와 “신봉선을 아이유로 만들어주는 통기타 레슨”이라는 전단지엔 “안 웃겨요” 포스트잇이[3],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엔 “고조선이야 뭐야~” 포스트잇이 붙었다. [4] 늘 도처에 존재하지만 어떤 대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혼자 인상을 찌푸리거나 못 본 채 지나가는 이러한 일상적인 혐오 표현들에 대해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이 ‘포스트잇 거리 액션’을 보면서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포스트잇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을 때, 그녀가 화를 냈던 것은 본인이 차여서가 아닌 자신의 얼굴을 마주보고 말 할 용기가 없어 일회용 포스트잇에 짧은 문구로 이별 통보를 대신한 잭 버거의 무책임함 이였다. 하지만 강남역 10번 출구, 구의역 스크린도어와 신촌 및 홍대 일대에 붙은 ‘포스트잇’은 비록 쉽게 떼어질지언정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은 절대 가볍지 않다. ‘넷사세’라는 말로 늘 무시 받으며 실체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온라인 담론, 특히 140자로 제한되어 메시지가 단순화 되었다고 믿어지는 트위터의 목소리들에게 ‘포스트잇’은 그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디지털 시대의 자유롭고 간편한 아날로그적 도구이다. 나는 포스트잇으로 뒤덮인 거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포스트잇이 더 이상 붙지 않는 거리를 동시에 꿈꾼다.


[1] http://www.womenlink.or.kr/minwoo_actions/18293
[2] https://twitter.com/womenlink/status/771251705996464128
[3] https://twitter.com/womenlink/status/771252518693146625
[4] https://twitter.com/womenlink/status/771254099715108864

# 페미니즘 by @louderaloud
2016.09.01
서울시 청년허브 직원들의 노동조건 개선 1인 시위

지난 9월 1일 서울시 청년허브 앞에서 직원들의 1인 시위가 있었다. "청년허브 센터장에게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을 단 대자보에는 계약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요청,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노동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청년허브여서 놀랍지 않은 일이었던 한편 1인 시위와 같이 조직 외부에 문제를 공론화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어쩐지 의외였다. 관련된 내용은 당사자들의 SNS를 통해 알려진 게 전부여서 1인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없다. 서민정 청년허브 센터장의 SNS 게시물에 따르면 이 건으로 9월 5일 운영위원회가 열렸다고 한다. 청년허브 및 서울시의 입장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며 서민정 센터장은 향후 센터장직에서 물러나리라는 의사를 표했다. 대자보의 제목은 명확히 센터장의 책임을 묻고 있으나 청년허브는 사업체가 아니라 다양한 기관들이 운영에 참여하는 서울시 산하 기관이어서 센터장을 사용자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이것이 문제의 책임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로 모호한 정황인데, '중간지원조직'의 특성에 기인한 문제적 상황 같다. 관에 속하지 않은 주체가 관의 자원으로 관을 대변해서 민과 소통하고, 또 같은 역할을 반대방향으로도 해야 한다. 잘해도 본전인 일이고, 막상 그 자신은 더 모호해져 갈 수 밖에 없는 위치다. 모호함은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킨다. 이 건은 인건비가 관련된 문제이니 서울시가 나서서 개선을 약속해야 하지 않을까? 청년허브는 서울시의 주요 청년일자리 정책을 생산하고, 수행하고, 홍보하고, 때로는 수호해온 기관이기도 하다. 노동조건이 형편없다면 시가 부끄러워할 일이다.

중간지원조직의 고질적인 노동착취 문제가 논의 절차를 밟는 것은 정말 환영할 일이다. 서울시 청년허브는 지역 청년거버넌스 및 중간지원조직의 역할모델이다. 노동 환경의 획기적인 개선과 함께 해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좋은 선례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서울시 청년허브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8.30
147, 고스트버스터즈

페미니스트 코미디클럽 (이하 페미코미) 에서는 정기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코미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각자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코미디를 감상하고, 관람이 끝나면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인터넷에서 공수해 온 영상들을 감상하는 이 모임은, 자발적인 기록을 악착같이 남기지 않는 이상 어디에도 유의미한 수치로 카운트되지 않는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영화의 관객수로 집계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참석자들의 즐거움만을 위한 모임에 가깝다.

하지만 극장 단체관람은 그 의미가 다르다. 영화의 상영기간 동안에 극장을 찾은 인원은 그 영화의 인기와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래서 페미코미는 <고스트버스터즈>를 극장에서 단체관람하기로 했다. 이것은 "함께 즐겁게 웃으며 코미디를 보자"는 목적뿐만 아니라 여성중심적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수량적으로 가시화한다는 목적에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2~30명 규모로 계획된 단체관람은 갑작스레 규모가 늘어나 예상치 못한 "147석 만석 대관"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147명이라는 숫자가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숫자뿐만이 아니다. 단체관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상영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같은 타이밍에 웃음을 터뜨리고, 서로가 서로의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경험이 매우 즐거웠다고 이야기한다. 만두와 국물의 적정비율에 대한 애비의 집념에 박수를 치고, 경호원들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에린의 푼수같은 매력에 웃음을 터뜨리고, 쌍권총을 핥는 홀츠먼의 섹시함에 열광하고, 패티의 박력 넘치는 불꽃싸다구에 환호하고, 케빈의 푼수미에 즐거워하는 관객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 여자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살면서 너무나 드물게 느껴본 즐거움이 아니던가. 이 거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빠른 시일 내에 또 찾아와주기를 기대해 본다.


2016. 08. 30. 19:40 롯데시네마 합정점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759264.html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8.29
코믹월드의 성인 등급물 판매 불가 결정

웹갤이 동인계를 없애야 하는 당위로 내세운 궤변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궤변은 ‘음란물이 유포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앞에 당당할 수 있는 행사와 동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음란물이 유포된다'고 대관처에 전화를 걸기만 하면 행사는 취소되었고, ‘음란물을 그렸다'고만 하면 후죠시들을 쉽게 고소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이어져 온 동인행사이자 동인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큰 ’코믹월드’는 이에 대한 대처로 ‘합리적인 사회적 협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코믹월드 동인지 전시 교류전에서 성인전용 등급 회지를 제외하기로' 했다. 분쟁의 소지가 있더라도 성인물과 성인물 창작 동인을 행사에서 삭제하지 않으려 애썼던 동페나 케이스퀘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모두 금지'는 저렴한 비용과 신속히 나타나는 효과 덕분에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이 편한 길을 선택한다면 ‘사회적 협의'가 이뤄질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툭 치기만 해도 알아서 설설 기는데 협의를 논할 장이 마련되기는 할까?

성인물은 음란물인가. 음란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는 강간을 농담과 문화로 용인할 만큼 만사가 포르노화된 사회인데, 왜 등급을 맞춰 판매하는 성인물에 알러지 반응을 보일까. 가장 영향력 있던 행사의 편리하고 합리적인 금지령 덕분에 동인계에 접속한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의무가 생겼다. 무조건적인 금지는 합의나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금지의 배경에는 의견이 오가는 공론장조차 리스크로 취급하며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http://goo.gl/Q8vMZx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8.28
숲속으로 돌아간 "21세기 제너레이션?"

8월 28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21세기 제너레이션 기획 2편 <서울을 떠나 숲에서 전기, 가스, 수도 없이 맨몸으로 사는 부부를 만났다(인터뷰)>가 발행되었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숲에서 전기, 가스 없이 사는 젊은 부부였다.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비난이 쇄도했다. 처음은 전기나 가스를 안쓰고 "나무를 해다 쓰는 것"은 오히려 산림을 파괴한다거나 하는, 인터뷰 내용에 대한 비판들이 올라왔지만 한나절 지나서는 부모들의 백신 거부가 공공보건에 끼치는 해악에 대한 이슈로 넘어가 '야만'에 대한 비판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이전에 TV에서 이 부부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프레임은 비슷했다. "이런 대안적인 삶은 어떨까요?" 류의. 부부의 삶에는 별 유감이 없다. 다들 저 좋을 대로 살 일이니까. 그런데, 대안적 삶의 모델, 그것도 젊고, 새로운 모델로 제시하는 언론의 무책임함에 대해서는 깊이 유감스럽다. 새롭지도 않거니와 주류화될 수 없는 삶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소재라 여겼다면 다른 관점에서 다룰 수도 있었다. 예컨대 이 부부는 숲에 기거하며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서울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SNS로 소통하고, 서울의 플리마켓에서 수공예품을 판다) 숲, 농촌에서의 삶과 서울의 삶이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 질문하거나 이들의 삶의 양식을 한 극으로 참조해 다운시프트의 수준을 단계별로 설정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좀 유용했을 것 같다. 아무튼 숲이나 해외가 '헬조선'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청년의 삶에 대해서라면 특히나 더 그렇다. 도심을 빼앗기고도 청년들은 온·오프라인 여기저기서 북적이며 사건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데, 언론과 정치권이 여기에나 더 많은 관심을 둬 주었으면좋겠다. 미래로 이어지는 현재는 여기에 있다.


기사 : 서울을 떠나 숲에서 전기, 가스, 수도 없이 맨몸으로 사는 부부를 만났다

# 그 외 by @slowcoleslaw
2016.08.27
아트선재센터 «커넥트 1: 스틸 액츠»

2016년 8월 27일부터 11월 20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커넥트 1: 스틸 액츠»가 열렸다. 이 전시는 소장품을 “역사화해 쌓아놓거나 과거 자체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소장품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냄으로써 과거를 현재화”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이불, 정서영, 김소라의 (소장)작업이 전시되었으며, 이들의 작업은 “동시대적 고민을 수행적 담론으로 풀어내 작업에 담아왔”다고 한다. 여기서 동시대적 고민을 어떻게 수행적 담론으로 풀어내는 것인지, 그러니까 동시대적 고민이 어떻게 작업에 수행적 담론으로 드러나는지,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소장품을 (다시) 전시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이를 위해 전시가 택한 방식은 “첫째, 소장된 작업을 둘러싼 각종 레퍼런스를 통해 작업을 맥락화하는 것. 둘째, 과거 전시를 재현함과 동시에 새로운 작업으로 이를 현재화하는 것. 셋째, 프로젝트의 한 형식으로 작업을 불러오는 것”이다. 레퍼런스와 함께 소장품을 (다시)전시했을 때, 아카이브 전시로 보일 위험이 있고, 이를 지양하기 위해 프로젝트라는 형식을 가져온 것 같았다. 결국 «커넥트 1: 스틸 액츠»은 소장품을 통해 아트선재센터의 시간을 보여주지만, 과거의 시간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프로젝트라는 형식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라는 형식은 비숍의 말을 빌리자면 소장품을 “동시대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프로젝트"가 소장품을 동시대적으로 “커넥트”해주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선 과거의 작업을 단지 다른 공간에 전시하는 것 이외에는 더이상 드러난 것이 없어 보였다. 이것이 현재화일까, 그냥 현재의 모습에 맞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각종 레퍼런스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그것이 단지 전시장 입구에 작가의 도록을 두는 것 정도에 그친다면, 그것을 각종 레퍼런스라고, 작업을 (재)맥락화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아트선재센터의 이번 프로젝트는 과거를 현재에 맞게 조율하는 것에 그친 듯해 보였다.


http://artsonje.org/16_08_connect1/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8.26
항의자를 처벌하라

여기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경희대학교 학생 신지윤씨는 페이스북에 개설된 자대 대나무숲 페이지에서 후배를 폭행한 선배에 대한 제보글을 본 뒤 폭행사건의 성차별적 특성을 지적하기 위해 "가해자의 성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댓글로 남겼다. 이를 계기로 경희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의 댓글란은 순식간에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댓글로 뒤덮였고, 논란이 계속되자 대나무숲 운영자는 "여러분의 논쟁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권리는 없지만 이곳에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어휘 선택으로 분란을 일으키고 계신 분 하나가 있다"라며 신지윤씨를 차단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회사에 다니던 여성이 친하게 지내던 동료 직원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성추행 사실을 인지한 회사는 진상조사위원회를 열고 양측의 합의, 가해자들의 사과 및 가해자 감봉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뒤, 회사는 피해자가 회사의 기물을 파손하고 상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피해자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해고 통보로도 모자라 회사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피해자는 경제적 부담을 못이겨 포털사이트에 유서를 올린 뒤 자살을 기도했다.

두 이야기 속 여성들의 공통점은, "나만 가만히 있으면" 평화로운 성차별적 사회 속에서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는 것이다. 이 여성들이 소속된 집단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삭제한 뒤 마치 모든 갈등의 원인은 이 여성들이 가진 내적인 문제뿐이라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과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가 삭제당한 것이 성차별에 항의하는 여자에게 내려지는 성차별적 사회의 "처벌"을 상징한다는 걸.


http://strongertogether20160817.tistory.com/9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903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8.24
케이크 스퀘어(3) - JTBC의 만화행사 보도 유감

금번 케이크 스퀘어를 취재한 JTBC는 ‘성인물에 무방비 노출…‘도 넘은’ 만화페스티벌 논란’ 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내용은 제목과 같이 성인물이 마구잡이로 팔리는 행사라는 것이었다. JTBC의 안지현 기자는 케이크 스퀘어의 취재에 코믹월드에서 이뤄진 인터뷰를 짜집기했는데, 인터뷰를 교묘하게 잘라 붙여 성인지가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처럼 꾸몄다. 이 보도에는 레드존이 성인만 출입 가능한 구역이라는 사실도, 케스에서 자체심의를 진행했다는 사실도 모두 빠져있다.

그런데 이 취재가 이루어진 과정이 흥미롭다. 또 웹갤러가 등장한다.[2] 이 웹갤러는 디페스타에서 책을 구매해 음화반포로 고발을 준비할 만큼 동인계 박살내기에 적극적인데, 웹갤에 인증한 글에 따르면 아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고, 소개받은 JTBC기자에게 정보와 자료를 건네고 케이스 스퀘어를 ‘제보'한 것 같다. 하나 더 흥미로운건 아이디에 ‘4’라는 숫자를 붙이며 메갈과 페미니즘을 극도로 싫어하는 무리들과 웹갤러들이 협력관계라는 점이다.

여하간 아마추어 동인 시장을 공격하겠다는 사람의 '제보'만 믿고 보도를 선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데다, 케스 측에서 요청한 취재 가이드라인도 지키지 않은 기자의 태도에는 대단히 화가 난다. 그러나 이 보도는 지금까지 언론에 절대 노출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동인계의 전략이 무효함을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이제 우린 적극적으로 언론에 내보낼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고 언론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더 이상 웹갤러와 같은 시각을 가진 보도는 나오지 않도록.


[1] http://goo.gl/IoF78j
[2] http://goo.gl/K5AqRT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8.20
케이크 스퀘어(2) - 자체심의기구 설치

지난 8월 4일, 케이크 스퀘어는 레드존 취소 번복에 대한 사과에 더해 자체심의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는 공지[1]를 올렸다. 이 공지는 케스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는 올라오지 않았었는데, 동인들은 ‘(우리는 심의를 원하지 않는데) 심의를 몰래 할 생각이었느냐'며 분노했고, 레드존 건과 JTBC의 부정적 보도까지 맞물려 케스를 보이콧해서 없애겠다거나 참가를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심의위원회에 참여했던 김효진 교수는 케스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 동인행사의 자체심의가 할 수 있는 실질적 기능 및 동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짤막한 단상을 남겼다.[2] 하지만 동인들의 ‘케스 보이콧'은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부분은 논란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자체심의기구를 설치한 이유다. 동인행사의 자체심의는 일본의 코믹마켓에서도 실시하고 있는데, 혹시라도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되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동인행사는 자체 심의기구로 심의를 진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대응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체 심의는 소규모 동인 행사에서도 충분히 도입할 수 있으며, 대관처에 들어오는 악성 민원을 효과적으로 튕겨낼 전략으로도 고려할만 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동인들의 연대와 합의가 절실한 상황이다. 행사 직전에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미비한 부분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모쪼록 이 실험을 계속해주기를 바라고, 지지한다.


[1]http://cake2.co.kr/20180825-2/
[2]http://goo.gl/MmoGPc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8.19
“광화문 농성장과 반올림 농성장은 함께 승리한다.”

지난 8월 19일,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장애인 활동가와 연대 단체들의 부스가 즐비했다. 2012년 8월 21일에 시작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공동행동의 농성이 4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일상으로의 초대'가 그 타이틀이다. 투쟁 현장에서 밥을 실어 나르는 밥차 ‘밥통’이 이날 300인분의 식사를 준비했고, 민주노총의 부스 옆에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나란히 자리해 있었다. 객석 부근에선 홀쭉한 막대기 끝에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에서 일하며 뇌종양 피해를 얻은 한혜선 씨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단상에 올랐다. 비장애인 여성 노동자였던 한혜선 씨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면서 장애의 몸이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소개했다. 삼성 본관 앞에서만 370여일 노숙하며 싸우고 있지만, 삼성을 상대로 한 싸움만 거의 6년째라고 했다. 젊은 노동자들에게 다시는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 졸업장을 따지 못한 여성들의 안전과 인권 교육을 위해, 피해 및 희생자에 대한 배제 없는 보상을 위해 싸운다고 밝혔다.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조직된 설명‘문’을 들으며 다소 긴장하고 있는 사이, 김시녀 씨는 글이 아니라 ‘말’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300일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4년을 맞이했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장애인 분들이 휠체어로 (행진하고 항의해서)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든지도 몰랐어요.’

‘저희가 노숙을 해보니까 하루 이틀 백일 이백일 참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 말들을 들으며 긴장감이 풀렸다.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저쪽을 위로하는 말. ‘몰랐어요’, 당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말. ‘저희가 해보니까 힘들더라고요.’, 동질감을 들려주는 말. 그러니까, 그녀가 말미에 말한 두 농성장의 '승리'는 이 말들이 드러낸 그들의 일상을 모두 통과하고 난 다음 얻은 단어일 것이다. '승리한다'는 말로 의지를 맺기까지, '승리'가 불가능한 조건과 지속적으로 갈등하기 때문이다. 초대받은 한 사람으로서 그 일상의 단서를 발견하고 말았다.


광화문 광장

# 조직하고 모으기 by @gusvjar
2016.08.14
<<멀리 있는 방>> - 그림자들의 세계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암흑 공간은 유난히 더운 올 여름날의 햇빛에 익숙해진 시각을 순식간에 앗아간다.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진 공간에 놓인 오브제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손으로 더듬거리며 그 위치와 크기를 가늠해야 할 뿐이다. 마치 페드로 코스타의 작품들 속에 비친 유령들(‘유령’은 그의 작업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이다)과 함께 같은 공간에 위치하기 위해선 많은 것을 잃어(혹은 내려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멀리 있는 방>>에서 바깥세상에 존재하던 관람자들이 잃는 것은 시각뿐만이 아니다. 포르투갈에서 온 이 두 작가가 만들어낸 그림자들의 세계는 전시장 바깥에 위치한 빛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100kg이 넘는 후이 샤페즈의 철로 만들어진 오브제들은 그 강직도와 무게마저 잃어버린 채 액체(수은에 가까운)와 같은 매끈한 모습으로 허공에 부유하고 있다. 1층에 놓인 그가 만든 의자들은 본래 영화 상영 공간이었더라면 누군가를 앉히기 위해 존재했을 테지만 그 그림자들의 세계 속의 의자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위로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그것들 스스로가 <용암의 집>에서 따온 코스타의 영상물을 ‘관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스타의 유령들은 무어라 하는지 알 수 없는 주문을 읊조리고, 전시 공간의 스피커들은 이 주문이 어디서 흘러들어오는지 정확한 방향을 가늠할 수 없게끔 숨겨져 있다. 이 그림자들의 공간이 펼쳐진 일민 미술관이 서울의 가장 중심지에 위치한다는 사실도 상기해볼 필요가 있는데, 페드로 코스타의 영상들은 리스본의 재개발 빈민가 구역인 폰타이냐스에서 촬영된 영상들이기 때문이다.

코스타가 담아낸 폰타이냐스의 인물들은 전시를 보는 동안에 존재하다 곧 쉽게 증발할 양심적 가책이나 그들을 향한 연민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의 마지막 층으로 올라선 순간 ‘관람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자들의 세계는 견고하게 존재하고 무너지지 않는다. 과연 나는 이들의 얼굴을 ‘강인한 소수자의 얼굴’이라고 명칭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림자들의 세계에서 밀려나 밖으로, 서울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은 영화관의 공간과 닮아있다. 희미한 영화의 빛이 견고한 그림자들의 세계를 비춰내듯, 촛불 역시 그림자들의 세계를 비춰낸다.


일민미술관
http://ilmin.org/kr/exhibition/distant-rooms/

# 미술관과 그 근처 by @louderaloud
2016.08.12
NEMAF 2016 – 가상에서만 드러나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 중인 시네바캉스를 잠시 뒤로하고 인디스페이스에서 8월 4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2016>> (통칭 네마프, NEMAF) 을 다녔다. 이번 네마프의 주제는 ‘가상의 정치’였다. 디지털 판옵티콘의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들은 물리적인 실체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실존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스마트 프레임 안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유령들의 투쟁은 가상의 공간에서 가장 개인적인 코멘트를 한, 두개를 덧붙이는 일로 시작되지만, 그것은 가려졌던 불평등을 드러나게 하고, 곧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물리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 [1]

‘대안 영화 : 가상의 영화-매체 공간’ 섹션에서 상영된 <드라마 6번>에서 오용석 감독은 각기 다른 프레임을 결합해 하나의 프레임을 새롭게 창조한다. 그것은 실재 하는 공간과 같아 보이면서도 리얼리즘에 가깝게 실재 세계를 모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원근법은 왜곡되어 있으며, 물리적인 움직임들은 프레임 속에서 제한되며, 때론 그 법칙마저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동시에 또 다른 자신만의 가상-법칙을 따르고 있는데, 움직이는 실체(자동차부터 조깅하는 사람까지)가 그에게 할당된 프레임의 밖으로 벗어나려는 순간 그 세계는 닫힌다. ‘로그아웃’은 사실상 또 다른 가상의 프레임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세계를 완전히 닫아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세계는 그렇게 끊임없이 닫힘과 다시 열림을 반복하며 실재와 분리 된, 하나의 완전한 단독적인 (가상) 세계로써 존재한다.

회고전 섹션으로 상영한 트레이시 모펫의 경우, 그녀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필름들의 조각들을 모아서 하나의 새로운 푸티지를 완성시킬 때 그 조각 모음들은 기존 필름들, 혹은 그 내러티브 속에서 작용하던 의미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화면조정>에서 그녀가 영화 속 등장하는 흑인 하녀들의 모습을 한데 엮었을 때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고, <타자>에서 타 인종과의, 동성 간의 섹스 장면들이 교차편집 되는 순간 “실재세계에서는 오인과 낙인 장치로 인해 비가시화된 익명의 소수자”들은 모펫이 창조한 새로운 가상-할리우드 속에서 거대한 오르가즘이라는 짜릿하고, 순수하며,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강력한 연대로 향한다. [2] 올해의 네마프에서는 이런 "가상공간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여성 혐오가 '메갈리안'이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듯, 우리 곁에 너무나 공기처럼 존재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회 문제들은 때때로 가상에서만 비로소 드러난다는 점을 시사한다. 디지털 유령들의 연대는 '넷사세'가 아니며, 당신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1] http://www.nemaf.net/page/ainfo162
[2] http://www.okulo.kr/2016/08/news-001.html

# 영화 by @louderaloud
2016.08.10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 훌륭한 공간의 조건

지난 8월 3일에 있었던 첫 번째 시위에 이어 이화여대 재학생 및 졸업생의 2차 총시위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경찰 추산으로는 1차 시위 때보다 1,500여명 가량 적은 3,500명이 모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캠퍼스를 채운 인원은 1차 때의 몇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학생들을 강제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로 가득 찼던 캠퍼스는 어느새 진정한 '학교의 주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캠퍼스의 순환 도로는 학생과 졸업생 참가자들로 가득했으며, 캠퍼스의 랜드마크인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이하 ECC)는 다시 한 번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수놓은 불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시위 현장에 있던 이들 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를 접한 사람이라면, 학생들이 캠퍼스라는 공간을 통해 당연히 그들이 얻어야 마땅한-그러나 수많은 편견에 의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시위의 당위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에 누구라도 공감하리라.

ECC의 설계자인 도미니크 페로가 이날의 시위 광경을 보았더라면 분명히 감격했을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창조한 공간 중에 이토록 위대하게 사용된 예가 또 얼마나 있을까. 이번 시위는 우리에게 "훌륭한 공간은 훌륭한 사용자가 있기에 비로소 존재함"을 일깨워준 시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763397592411537408

# 도시 by @eun_gong
2016.08.07
<비밀은 없다>와 ‘리벤지 포르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7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열리는 <시네바캉스 서울 2016> 특별전의 일환으로 8월 7일에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 상영과 함께 시네토크가 열렸다. [1] <비밀은 없다>는 보기 드물게 여성 감독이 그린 여성 원톱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다양한 담론을 불어 일으키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영화가 다소 저조한 흥행을 기록했다는 사실마저도 이 작품을 컬트작으로 완성시키는 마침표로써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씨네21>>에서는 “모처럼 기자들이 만장일치로 지지한 영화” 라고 밝히며 꽤 많은 지면을 <비밀은 없다>에 할애했다. [2]

<비밀은 없다>가 과연 페미니즘 영화인가에 대해선 이경미 감독 스스로도 대담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으나 영화를 둘러싼 담론의 중심에 놓인 것은 페미니즘이었다.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영화의 서사가 “억압받고 주변에 밀려난 이들의 위치에 선 후, 연대” 하게끔 직조 되었다는 점 [3], 영화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모성애를 두면서도 기존의 영화 속 ‘어머니’에 대한 게으르고 타자화 된 묘사를 넘어서 “가부장제 매트릭스”의 붕괴와 “새로운 성체계”의 도래를 그린다는 점 [4] 등의 다양한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가장 큰 약점이 존재한다. 결말부에서 주 캐릭터인 김연홍(손예진 분)이 손소라 (최유홍 분)에게 복수를 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손소라와 김종찬(김주혁 분)의 ‘섹스 몰카’를 업로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 대해 서울아트시네마의 시네토크에 참여한 한 남성 관객이 “손소라를 향한 복수로써의 강도가 약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5] ‘리벤지 포르노’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여성 인권 측면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비윤리적인 순간이며, 심지어 손소라의 가슴이 줌인 되는 순간엔 나는 참을 수 없는 불쾌함까지 느꼈다. 나는 이 ‘리벤지 포르노’를 통한 복수가 가장 악질의 행위라고 생각했으며, 영화에 대한 지지를 보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누군가에겐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젠더권력은 이렇게 영화를 보는 시선의 차이에서도 드러난다.


<비밀은 없다> GV 시간에 던져진 위의 남성 관객의 한 질문이, 사실은 오해였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접했다. 현재 기존에 링크 되어있던 원 트윗은 삭제되고 해명과 함께 보다 자세한 당시의 정황이 담긴 정정 트윗이 새롭게 올라왔다.[6] <비밀은 없다> 속 몰카 장면을 둘러싼 이 글 역시 그릇된 오해를 기반으로 질문자에 대해 지나치게 공격적인 어조로 쓰여진 글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이미 올라 온 글을 삭제하는 것 보다는 정확한 정정에 대한 기록과 함께 공식적인 사과를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보다 신중하게 사실을 파악한 후 ‘파일드-타임라인’에 기록을 채워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1] https://twitter.com/seoulartcinema/status/761489661365657602
[2]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4617
[3]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4661
[4]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4662
[5] https://twitter.com/coervos/status/762312999352741888
[6] https://twitter.com/coervos/status/763047688023584768

# 영화 by @louderaloud
2016.08.04
케이크 스퀘어(1) - 세텍의 행사계약파기 논란

웹갤러들은 예스컷 운동과 함께 동인계 조지기 운동[1]을 진행하고 있다. 동인계를 조지는 이유는 동인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웹툰에 많이 데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동인계는 음란물을 유포하고, 세금도 안내면서 책을 파는 등 어쨌든 ‘국가'가 정해둔 ‘법'에 저촉되니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한다.

웹갤러들은 온리전 대관처에 항의 민원을 넣어 온리전을 취소시키려 하고, 실제로 행사에 찾아가 경찰을 부르기도 하고, 직접 책을 사서 고발장을 작성하는가 하면, 심지어 동인지를 찍어주는 인쇄소까지 ‘음화제조'로 신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인 출력소 한 곳은 출력시 사진촬영 금지를 공지하기도 했다.[2] 안정적으로 정착한 듯 보였던 케이크 스퀘어도 금번에 레드존(성인 대상 동인지를 판매하는 부스를 모아놓은 구역)을 없애겠다고 공지했다가 이를 다시 번복하는 일이 있었다.[3] 웹갤러들이 세텍에도 민원을 넣었고, 세텍의 대관 담당자가 케스에 대관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는 식의 통보를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리전 대관처에 민원을 넣어 행사를 취소시키는 방해는 사실 후죠들이 같은 후죠에게 해왔던 짓이다. 방해는 쉽지만, 대처는 쉽지 않다. 온리전의 경우 개인이 주최하다 보니 장소를 비밀로 하다가 하루 전에 장소를 공개하거나, 결국 행사를 취소당해 다른 대관처를 급히 찾는 방법 말고는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행사와 교류는 동인 문화에 필수적인 요소인 만큼, 대응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1] http://goo.gl/XN7KQo
[2] http://goo.gl/U4nK7u
[3] http://cake2.co.kr/20160804-2/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8.02
서울시가 청년 2,800명에게 14억원을 “살포”하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만 19세~29세 중 주당 근무시간 30시간 미만인 서울 사는 청년을 대상으로 지원자 중 총 3000명에게 월 50만원을 최대 6개월 간 지급하는 정책이다. 유럽의 청년보장(youth guarantee)을 벤치마킹 했다고 선보여진 이 정책은 여러모로 모호해서 얘깃거리가 많다.

50만 원은 학교에도, 직장에도 속하지 못한 "사회 밖 청년"을 위한 사회참여활동비의 명목으로 지급된다. 청년들은 이에 대한 사용계획과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이는 기존 중앙정부의 "취업성공패키지"와 같은 일자리 정책을 유연화해 더 업데이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기초연금, 청년배당, 기본소득 같은 현금지급 정책이 트렌드로 떠오르자 조건없는 소득지원 정책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게 되었다. 한쪽에는 단순 현금 지급이 아닌 청년의 구직활동을 보장하는 생산적 복지정책으로, 또 다른쪽에는 보편적 소득지원 정책의 씨앗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 모호한 정책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면 무려 서울시 표 청년 거버넌스가 등장하고 만다.

여기서부터가 재미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든 이야기는 박원순 시장의 진정성 대 중앙정부의 선심성 싸움으로 요약되고 있다. 8월 2일 서울시는 별 다른 공지 없이 "기습적으로" 50만원을 대상자들의 통장에 지급했다. 이에 복지부는 "무분별한 현금 살포 행위가 현실화됐다"[1]고 말하며 4일 직권취소를 조처했다. 이 와중에 또 고용노동부는 취업성공패키지 대상자들에게도 6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하겠다는 발표를 해 빈축을 사고 있다.[2] 아수라장 속에서 빈곤 청년의 호주머니를 거쳐 유유히 흘러가고 있을 50만원의 여정을 머릿 속에 그려본다. 우리는 더 과격한 현금살포를 맞아도 싸다.


[1]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04/2016080400436.html
[2] 이 돈의 출처는 다름 아닌 지난해 청년고용절벽해소대책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솔선수범 제안한 민간기금 "청년희망펀드"이다.

# 기본소득 by @slowcoleslaw
2016.07.31
이대에서 ‘다시 만난 세계’

실은 몇 번 내 타임라인을 지나갔던 이슈였다. 경찰이, 그것도 1,600명이, 학교에, 부당하게 많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잔인하게도 익숙했다. 무덤덤하게 그 장면을 흘려보내는 동안 (정말 부끄럽게도) 이대학생들은 '공부시위'[1]도 하고 '교수 수치플'[2]도 하고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3]를 부르고 있었다. 1,600명의 경찰 앞에서, 추임새까지 곁들여가면서! 친구에게 뒤늦게 접한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그 장면이 좋았던 이유 5가지를 빠르게 꼽았다. "1. 다 따라부를 수 있음(당사자인 또래로부터 공감을 쉽게 획득함) 2. 제 언어임 3. 난 멋짐을 전시하지 않음(좋게, 아주 좋게 대중적임) 4. 밝음 밝음 밝음!!!!!!!!!!!! 5. 비장함 없음!!!!!!!!!!!!!!!"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6. 이런게 가능할 거라 상상도 하지 못함." 운동을 새롭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인 줄 알았다. (아유 요즘 왜 이렇게 일 잘하는 여자들이 눈에 많이 띄는지.)

이대 학생들은 연대를 거부[4]하고 언론도 멀리했으며 느려도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기존 언어를 모두 사양하면서도 동시에 효과적으로 본인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고[5] 있다. 이 꽉 문 비장함도 삭발도 단식도 없이 경찰 1,600명을 호출했던 총장은 미래라이프 철회를 발표했다. 남은 건 사과와 사퇴. 수백만 가지 해설이 나올, 기념적인 사건이지만 가장 옳은 해석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대생들은 이대생답게 이대생만의 방식으로 다시, 세계를 만나고 있다. 한국의 시위/집회 문화는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점프해버렸다.


[1] http://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9979
[2] https://twitter.com/ovaovain/status/759664941783584769
[3] https://youtu.be/Lo3UMxYFNW0
[4] https://goo.gl/HzGle8
[5] http://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9987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Save Our Ehwa 페이스북 페이지

# 조직하고 모으기 by @sceneryoftoday
2016.07.31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부른 옛 노래

고등학교 때 수련회를 다녀오는데 버스에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최신곡이 하나도 없는 낡은 기계였다. 처음엔 다들 김이 샜지만 이내 90년대 중후반 아이돌 노래와 '만화영화' 주제곡 메들리가 이어지자 흥이 났다. '우리의', '옛날', '노래'라는 것이 주는 또래 집단의 공동체성은 낯설고 기분좋은 기시감을 주었다. 그 순간 누구와도 상관없이 약간 '다 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대학 학과 구조조정 문제는 내가 학교에 다니던 2000년대 중반부터 이미 터져 나왔다. 어학연수를 함께 했던 중앙대 독문과 친구가 느려터진 인터넷으로 학과 게시판을 들어가 보고는 "우리 과 없어졌대"라고 말하던 황망한 표정이 기억난다.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저항하지 못했다. 학생은 학교의 존재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사학에 있어 정부에 비하면, 기업에 비하면 임시적이고, 미약한 이해관계자에 불과했다.

미래라이프설립 대학에 반대하는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의 농성에서, 경찰에 맞서 몸을 엮고 소녀시대의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동영상을 보는데,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한 '우리'가 있었다. 새롭고, 강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가진.


정부의 대학 지원 정책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 기사를 추천한다. <이화여대 사태가 보여준 '대학정책 10년'>(경향)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7.29
«휴면 동굴» — 뒤집힌 스킨

동굴에 비유될 만한 신체기관은 무엇일까? 어렵지 않게 식도를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의 의지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곳. 활동과 휴면의 분기가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복잡한 기관이다. 식도는 또한 신체의 외부기관이다. 신체는 외부기관과 내부기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신체는 팔, 다리처럼 외부 세계에 노출된 기관과 심장, 콩팥, 간처럼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서는 외부 세계와 만날 수 없는 기관으로 나뉘는데 식도는 입을 열면 바깥에 바로 노출되므로 외부기관인 것이다. 내부이면서 외부이기도 한 식도는 안팎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중의적 표피다.

‘과잉으로 치닫는 근래의 네트워크 현실’은 인간 안의 동굴인 식도와 닮아있다. 내, 외부가 모호하며 그 성질의 변화는 자율적이기도 하지만, 뇌분비계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제어되기도 한다. 현실에서의 스킨은 물리적인 부피감을 지니고 있지만 네트워크상에서의 스킨은 관념에 불과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순서의 관계다. 식도와 동굴은 안과 밖이 뒤집힌 스킨의 유희다. 안성석과 니콜라스 펠처는 «휴면 동굴»에서 이 순서의 관계를 해부하고 있는 듯하다.

«휴면 동굴»에서 안성석은 작업 ‹내피 a›, ‹내피 b›, ‹내피 c›, ‹양성외피›를 통해 스스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모터) 돌려지는 반 수동적(자동적) 오브제를 만든다. 오브제 끝에 달린 고무판은 탄성을 유지한 채 수축과 응축을 반복하며 오브제를 회전시킨다. 식도가 음식물을 삼키며 연동운동을 하듯 스킨의 이미지는 소화기관으로 밀려 내려간다. 한편 니콜라스 펠처는 ‹재질의 자세#5›에서 가상의 오브제에 재질 이미지(Material Texture)를 입히고 의도적으로 모델링을 꼬아버린다. 모델링에 흡착된 이미지도 함께 꼬인다. 하지만 여기서 내, 외부의 교차라든지 이미지의 탈착은 일어나지 않는다. 외부세계는 스스로 뒤집고 꼬아도 외부세계일 뿐이다.


http://space-nowhere.com/201608/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7.29
'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 공지

넥슨지티와 넥슨이 야심차게 준비했다던 1인칭 슈팅게임 ‘서든어택 2’가 2016년 9월 29일에 서비스를 종료할 것을 알렸다.[1] 서든어택2는 출시 후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때문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서든어택2의 신캐릭터이자 여캐인 ‘미야'와 ‘김지윤'은 공격을 당하면 이상한 포즈를 취하며 쓰러지는데[2], 유저들은 이 여성 캐릭터의 무너진 자세와 강조된 가슴, 둔부 등을 캡쳐하며 즐거워했다. 여캐들이 쓰러질 때 가슴과 보지를 강조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 게임 내에서 공격을 당했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은 어떤 이미지를 레퍼런스 삼아 나온 것일까. 한국에서는 강간이 일반적인 정서다. 폭력과 성애가 협착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 유저들은 마치 강간용 약물을 먹은 것처럼 무력한 여캐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다. 이 게임의 여성혐오에 대한 지적에 대해 ‘서브컬쳐에서 여캐는 원래 이렇다'고 응수한 건 이들이 폭력을 당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포르노로 즐겨왔음을 자인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하던 대로' 폭력과 성애를 분리하지 않는다면, 젠더와 인권에 대한 의식 없이 게임을 제작한다면, 게임 제작의 결정권이 계속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면, 미야와 김지윤은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제발 출시할 때부터 혐오를 덜어내고 만들어주길.

오늘도 나는 오버워치를 하러 간다.


[1] http://sa2.nexon.com/mainpage
[2] http://goo.gl/jiif6k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7.28
# LGBT
‘항문’이 뚫릴 것을 두려워하는 군대

미군에서 근무하며 가장 놀랐던 것은 군대 내 LGBT에 대한 열린 인식이었다. 레즈비언들은 자신들의 성적지향을 드러내길 꺼려하지 않았으며 나와 같은 섹션에서 근무를 했던 한 미군은 바이라고 늘 자신을 밝히곤 했다. 그가 다소 특이한 인물인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의 성적지향에 대한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가장 흔한 미군들의 농담 레퍼토리 중 하나인 “It’s okay in the Army”와 같은 농담까지 온전히 PC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흔한 농담의 일부로 발화될 수 있는 환경의 존재와 호모포빅한 근거를 바탕으로 둔 한국군의 ‘비누 농담’과는 전혀 다른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얘기할 필요가 있다.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제 92조의 6 ‘그 밖의 추행’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옛 군형법 제 92조 5에는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 되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 군형법에 강간과 강제추행에 대한 처벌이 명시돼있기 때문에 ‘그 밖의 추행’ 조항은 사실상 강간이나 강제추행이 아닌, 동성애 자체를 처벌하는 법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 법안이 개정된 92조 6에서는 ‘계간’이라는 단어가 삭제되고 ‘항문성교’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달라진 건 없으며 그저 더 우스꽝스러워졌을 뿐이다.

이 ‘항문성교’ 법에서 동성애 행위를 금지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번 합헌 결정을 내리며 헌법재판소에서는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인 위해”가 간다며 군 기강 해이를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한 “비정상적인 동성 간의 성적교섭행위”와 “혐오감을 일으키는” 등의 호모포빅한 워딩을 미루어 보았을 때, 동성애 처벌의 근거가 어디서 기인하고 있는지는 명백하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7/28/story_n_11234960.html

# LGBT by @louderaloud
2016.07.26
«지속가능을 묻는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10주년 특별전»

서울대학교 미술관 개관 10주년 특별전 «지속가능을 묻는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10주년 특별전»이 2016년 5월 17일부터 7월 24일까지 열렸다. 미술관에 들어가면 1층에서 티켓을 발권한 후 자연스럽게 건물 스킨에 붙어있는 동선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2층에는 «세 가지 축: 건축, 전시, 교육 아카이브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의 약자로, 건축가 램쿨하스가 이끄는 건축설계사무소)의 서울대 미술관 설계 자료들(도면, 모형, 드로잉 등)이 있었고,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는 그간 서울대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포스터와 도록 아카이브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3층에는 김춘수, 박진영, 이완, 이인현, 이정민, 정직성, 토마스 스트루트의 작품이 “지속 가능을 묻는다”라는 주제 아래 모여 있었다. (조혜진의 작품은 미술관 외부에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는 전시공간을 나누어 작가별로 작품을 모아 독립적으로 전시되는 방식이었고, 참여작가들의 작품 도면과 작가 노트가 담긴 페이퍼가 각각의 전시공간 밑에 놓여 있었다. 페이퍼를 한 장씩 떼가면서 작품과 전시를 둘러 보았다. 작가 노트에는 작품을 지속하는 것과 생활인으로서 삶을 지속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뤘다. 작품을 지속하는 것도 삶을 지속 하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작품과 삶의 거리가 작가마다 차이를 보였지만, 어쨌든 각자 이 둘의 거리를 조절해 가면서 작업을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전시는 이렇게 작품을 통해서, 미술관이라는 건축물을 통해서, 그리고 그간 이루어졌던 전시를 통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속할 것을 다짐한다. OMA의 첫 설계 시안이 1996년에 나오고 10년 동안 세차례 수정을 거쳐 미술관이 최종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10년 동안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지속했던 시간을 점검하고 앞으로 지속할 시간에 대해 고민하는 것. 이는 단지 미술관의 고민에 한정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보여준 것처럼 (작품이나 삶을)지속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기도 하며, 단체도 개인의 꾸준함이 담보될 때에만 지속할 수 있다. 전시는 그렇게 과거의 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지속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http://www.snumoa.org/Moa_new/programs/exhibitions_view.asp?id=107&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7.24
#내가메갈이다

1년 전 메갈리아가 처음 등장한 이후로, 온라인상의 성차별주의자들은 성차별에 조금이라도 반대한다 싶으면 "너 메갈하니?" 라는 질문을 들이대며 일종의 사상검증을 시도해 왔다. "아니다"라고 하면 사상검증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게 되고, "그렇다"고 하는 순간부터는 집요한 괴롭힘에 시달리게 된다. 성차별주의자들은 사상검증을 통해 "(남자가 정의하는)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여자"를 가려내고, 그런 평가 기준이 여자의 인생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과거에는 이 자리에 "꼴페미"가 있었다. 여자들이 성차별에 항의하는 자그마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너 꼴페미니?"라고 묻는 것이다. 이 작업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는 말로 포석을 까는 것이 성차별 항의 프로세스의 정석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부당한 낙인을 이토록 번거로운 방식으로 피해가야 할까?

메갈리아의 행보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의견들이 많다. 대표적인 전략인 '미러링'에 대해 혐오에 혐오로 맞서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 한동안 논란이 되어 워마드, 레디즘 등으로 커뮤니티가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던 게이 혐오 문제도 말끔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깔끔하게 정비된 대열이 있는 것도 아니요, 언어는 과격하고 그 구성원들은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메갈리아가 아니다"라고 선뜻 말해버릴 수는 없다. 애초에 메갈리아가 생겨나게 만든 원인인 일베와 온라인 상의 여러 성차별주의자 집단은 메갈리아만큼 집요한 사상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차별적 언행은 종종 "우리 사회의 아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포용되곤 하는데 유독 메갈리아만큼은 그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 한국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각종 프레임들의 젠더편향적 속성을 잘 드러내 준다.

지난 1년간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의 구분법에 시달려 온 트위터의 페미니스트들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이 부당한 사상검증을 깨부수는 방식은 말도 안 되는 프레임 자체를 거부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점을 안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낙인을 피하고자 메갈리아를 배척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 대신 이렇게 외친다. "내가 메갈이다"라고.


https://twitter.com/chiclix/status/757148360801263617
https://twitter.com/chiclix/status/757191930874728448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7.24
페미니즘 관점의 서브컬쳐/잡학 위키: 아름드리 위키 등장

‘나무위키'[1]는 엔젤하이로 위키(엔하위키)를 전신으로 하는 서브컬쳐 특화 위키로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 최대 이용자 수를 자랑한다. 하지만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들의 목록인 ‘살생부'를 만든 곳이 나무위키다. 아름드리 위키는 이처럼 서브컬쳐에 관련한 해석이나 정보조차 남성중심적 언술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위키다. 아름드리 위키[2]는 ‘페미니즘 관점의 서브컬쳐/잡학 위키’를 표방하며 다양한 사안과 인물, 작품들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해설하겠다는 목표를 드러냈다.

덕후 커뮤니티에서 여성 덕후는 손쉽게 지워지거나 폄하된다. 같은 작품을 덕질해도 여성의 덕질은 저급이고 남성의 덕질은 진정성 있다는 인식이 당연한 듯 통용되고 있다. 누구나 키보드를 칠 수 있으니 누구나 평등해 보이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성별 비대칭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모쪼록 아름드리 위키가 서브컬쳐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남덕이 알고 있고 여덕들은 불확실한 정보만 알고 있으니 남덕이 가르쳐줘야 한다던가, 여덕은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게 아니라던가 하는 덕후 씬의 성각본을 완전히 재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름드리 위키에서는 함께 위키를 만들어나갈 사람을 필요로 한다. 간단한 페미니스트 인증을 통해 필자로 활동할 수 있으니 위키 문서 작성에 많이 참여해 주시기를.


[1] http://namu.wiki/
[2] http://ko.areumdri.wikidok.net/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7.20
납작한 세계에 사는 납작한 인간들의 납작한 캠페인 - 예스컷

예스컷 운동은 ‘웹툰을 국가가 규제하고 검열해야 한다'는 취지로 디씨인사이드의 웹툰 갤러리에서 시작한 캠페인이다. 예스컷의 심볼은 2012년 방송통심심의위원회(방심위)가 다수의 웹툰 작품들을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한 데 반발해 웹툰 작가들이 펼쳤던 노컷운동의 심볼을 패러디한 것인데[1], 예스컷의 모순과 무논리를 비판하기 위해 만화계가 겪었던 극심한 검열에 직업과 삶을 걸고 맞섰던 만화가들의 역사를 가져오는 건 그 노고에도 예의가 아닐 듯하다. 애초에 예스컷은 그저 ‘기분이 나빠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의 발단은 티셔츠 한 장이었다. 성우 김자연씨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가 페이스북 코리아에 대한 소송비용을 마련하는 티셔츠 펀딩에 후원을 했고 자신의 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를 입은 인증샷을 올렸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김자연 성우는 계약을 파기당하고, 게임 내 목소리를 삭제당했다. 이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이들 중에는 게임업계인들 뿐만 아니라 웹툰 작가들도 있었다. 그 작가들을 응징하기 위해 예스컷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예스컷 지지자들은 웹툰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웹툰의 표현이나 내용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다. 작가들이 감히 제 목소리를 내며 ‘독자(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 작품을 검열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 행동을 ‘노쉴드(웹툰을 지켜주지 않겠다)’라 하든, 사전검열이 아닌 사전등급제라고 하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갖다붙여 정당성을 주장하든 이건 그냥 자신의 기분나쁨을 알아달라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짓 이상이 될 수 없다. 독자=왕, 소비자=왕, 메갈=나쁨 밖에 없는 이들의 세계관은 영장류의 세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리고 이 납작한 세계관 덕분에 파시즘은 파시즘을 겪어본 적 없는 세대로부터 정당성을 찾아가고 있다.[2]


[1] goo.gl/xFlMbz
[2] goo.gl/cjUcWo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7.18
한 장의 페미니즘이 퍼뜨린 불길

성우 김자연. 이제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넥슨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에서 신규 캐릭터의 목소리로 캐스팅되어 활약할 예정이었던 그녀는 SNS에 올린 글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SNS에 글이 올라오자마자 논란이 되고, 논란이 시작된 지 단 하루 만에 게임 회사 측에서 신속한 속도로 성우를 교체하도록 만든 이 문제의 원흉은, 단 한 장의 티셔츠였다.

이 티셔츠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의 텀블벅 모금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페이스북 코리아는 "김치녀"와 같은 여성혐오성 페이지에 대한 신고는 기각시키면서 "메갈리아" 같은 페이지는 순식간에 차단하는 등 이용자들이 납득하기 힘든 운영 방식으로 꾸준히 논란을 만들어 왔다. "메갈리아4"는 이런 페이스북 코리아의 운영 행태에 항의하는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소송 비용을 모으기 위해 힘을 보태 주었다. 김자연 성우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자신에게 배송된 티셔츠를 입고 촬영한 사진을 SNS에 올렸다. 그리고, BOOM! 그녀는 일자리를 잃었다.

성우 교체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거센 항의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페미니스트 일반은 물론이고 게임 소비자와 게임업계 내부 관계자들에 이르기까지 김자연 성우를 응원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트윗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넥슨의 성우 교체 결정에 항의하기 위한 넥슨코리아 본사 방문 항의 시위가 조직되었으며, 정의당과 녹색당에서는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논평을 발표했으며, 웹툰 작가들은 김자연 성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트윗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움직임들을 고깝게 여긴 사람들은 넥슨코리아 본사 앞 시위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며 낄낄대고,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 성차별적인 항의글을 도배하고, 김자연 성우의 해고 조치에 반발하는 입장을 표명한 웹툰 작가들에게 "너희에겐 검열이 필요하다"며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웹툰 플랫폼에서 퇴출시킬 것을 요구하기까지 하는 중이다. 이 모든 논란은 현재진행형이고, 어떤 형태로 끝이 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속성이 몇년 전과는 현저하게 달라져 버린 지금, 페미니스트들이 순순히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곳곳에 가득한 사회에서,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은 과연 어떤 새로운 역사를 축적할 수 있을까. 불길은 이미 퍼지기 시작했고, 이제 세상은 어제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7/19/story_n_11063566.html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60601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7.15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연구소 소장의 기본소득 반대 소신 발언

기본소득[1]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기본소득이란 아이디어에 한 치 의구심도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돈과 공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소득 운동은 꽃길이다. 기본소득 활동가들이 "아름답"고 "예쁜"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을 전파하면, '대중'은 순식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며" 행렬에 동참한다.[2] 화폐거래가 전산화되고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뛰어넘는 생산력을 발휘하는 이 21세기에 수 세기 전부터 존재해 온 기본소득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실현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2016년 한국에서 "나는 기본소득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일일까? 기본소득 운동단체에서 활동해온 다수파인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외압에도 불구하고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은 꿋꿋이, 소신 있게 기본소득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3]에 올려 의외의 큰 호응을 얻었고, 주간경향에서는 이 내용을 제목으로 한 인터뷰 기사를 썼다.[4] 나는 그의 글에서 읽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결기에서 그의 강인한 용기를 짐작해 이러한 문장들을 적어볼 뿐이다. (이처럼 "꿈", "낭만" 같은 수사를 통해 기본소득 운동을 격하하는 진보진영의 반응은 지루하게 반복되어온 패턴인데, "실체"가 없고 그래서 무례하며, 그만큼 발화자 본인의 세계관만을 비추어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진지한 내용으로 넘어가자. 그는 기본소득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로 "사회안전망의 획기적인 강화, 노동시장 내의 불평등의 완화, 부족하기 그지없는 복지체제의 확충,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등"이 더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좀 투박하고 재미없어도" '복지국가 선도정당', '비정규직 정당'이라는 당의 노선을 지켜야 한다고 청자들을 설득한다. 나는 "투박"과 "재미"는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고 이 모든 게 결핍된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이 갖는 특수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공공부조의 획기적인 확대와 계층 간 불평등 완화 및 노동자의 거부권 보장을 위한 점진적 현금 지급 정책의 로드맵 제시할 수 있으며, 소수자-당사자 운동을 넘어선 보편화 된 '불안'을 가시화 할 수 있는 정책이다. 또한 꽤 많은 개인들에게 기본소득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의미, 조금 편히 잠들 수 있는 밤이라는 효용을 가질 것이다. 왜 아니겠으며, 뭐가 문제인가?


[1] 모든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조건없이 지급되는 일정 정도의 소득
[2] 본 포스트의 모든 인용의 출처는 [3]이다
[3] https://www.facebook.com/jodeng78/posts/1069591639777202
[4] http://weekly.khan.co.kr/khnm.html?www&mode=view&art_id=201607270936301&dept=115

# 기본소득 by @slowcoleslaw
2016.07.13
하이큐! 통합 온리전 TSA 무사개최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온리전이었다. 같은 후죠시들의 악의적 방해로 두 번이나 대관처를 바꿨고, 임대(임시 대피소)에서는 계속 ‹하이큐› 통온(통합 온리전)을 방해하겠다는 찌질한 후죠시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고진검래›가 뜻밖의 장소를 대관하며 개최에 성공한 것처럼 ‹하이큐› 통온은 양재 ‘더 케이’ 호텔 컨벤션홀 3개를 모두 대관하여 행사를 치러냈다. 하지만, 이걸 온리전의 좋은 개최 예시로 사용할 수는 없다. 호텔을 대관하는 데 성공한 건 온리전 문화에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 전에 악성 민원이 없었다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수고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온리전 방해에 정의로운 명분을 붙이는 성의를 보였으나, 이제는 이유 없이 그냥 방해한다. 이를 어찌할까? 더구나 행사 후 주최측은 사과문을 썼다. 입장객 몇천 명이 드는 대규모 행사를 전문 업체가 아닌 후죠시 개인들이 열 때는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생긴다. 그런데 그런 부분까지 사과를 요구하거나, 자신이 지불한 돈에 대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알량한 ‘소비자’ 후죠시들을 어찌할까? 지금 동인계 후죠시들의 태도는 시장 체제 안의 소비자와 다를 바가 없다. 소비자 주체는 할 수 있는 일이 소비뿐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권리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동인 문화는 창작자와 독자, 콘텐츠 제작자와 향유자 모두가 신(scene)의 일부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신이다. 후죠시들은 모두 소비자인 동시에 기획자이다. 이런 진상이 늘어난다면, 결국 자신이 동인지나 행사를 만들고자 할 때도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텐데. 이제 이 트롤링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저지선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이큐 통합온리전 TSA 홈페이지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7.09
SSQQ 오픈 스튜디오, 금강식물원—이소요 관상용 선인장 디자인: 선인장 접목 워크샵

‘슬로우슬로우퀵퀵’은 중구 산림동 1번지에 있는데, 막상 찾아가 보면 약간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장소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건물은 3층으로, 1층은 공연장, 화원, 식당 등이 있는 복합 공간, 2층과 3층은 작업실 겸 전시 공간으로 나름 알차게 사용되고 있었다. 오픈 스튜디오는 7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 중 ‘금강식물원-이소요 관상용 선인장 디자인: 선인장 접목 워크샵’(이하 선인장 접목 워크샵)에 참여했다.

선인장 접목 워크샵은 선인장 접목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직접 선인장을 접목해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워크샵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접목된 선인장이 우리나라 주력 수출 상품이라는 것, 그러나 정작 품종 등록은 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모른 채 지냈을 것이다. 물론 몰라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대부분 워크샵은 해보는 것, 경험하는 것에만 의의를 둔다. 그러나 선인장 접목 워크샵은 선인장 접목 방식뿐만 아니라, 접목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도 충분히 알려주었으며, 이는 곧 작가의 작업을 이루는 내용이기도 해서 워크샵을 통해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었다.

설명이 끝나고 자리를 옮겨 선인장을 직접 접목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테이블 위에는 접목을 위한 도구와 선인장들이 종류별로 놓여 있었다. 선인장 접목은 서로 다른 종류의 선인장의 물관을 맞붙여주면 되는 것이어서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날씨는 후덥지근했지만, 테이블에 여럿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게 오랜만이기도 했고, 설명으로만 듣던 접목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나저나 어설프게 시도했던 선인장 접목이 제대로 이뤄졌을까? 수술 회복 기간은 3주라고 한다.


http://slowslowquickquick.net/wp/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7.07
제 16차 기본소득지구대회, 국제대회의 효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BIEN)는 격년에 한 번 전 세계 기본소득 운동의 성과를 공유하고 활동가 및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를 촉진하는 자리인 기본소득국제대회를 개최한다. 제16차 기본소득국제대회(이하 국제대회)는 지난 7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에서 열렸다.

아직 실현된 적 없는 아이디어인 기본소득은 다양한 영역에 대해 변화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3일간 4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주제로 세션이 열렸다. 한국의 젊은 기본소득 운동단체인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BIYN)에서는 동아시아 기본소득 여성활동가 라운드 테이블 및 활동가 개더링을 제안했다. 기본소득 담론의 역사는 유럽 중심적으로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및 도시화라는 공통점을 지닌 동아시아에서 기본소득은 분명히 다른 맥락의 필요성을 가지며 우리는 이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이에 김주온(한국,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청 푸루이(중국, 사회과학대학), 가오리 가타다(일본, 호세이 대학교), 쥐쿠 션광(대만, 글로벌기본소득사회복지추진회) 아시아 4개국의 여성 기본소득 활동가들이 모여 인사하고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가 처음으로 열렸다. 각자의 이야기는 균질하지 않았으며 흥미로웠다. 정치적으로 역동적인 시기를 보내고있는 대만에서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1,000명을 웃도는 지지자들이 모여 단체 발족을 준비하고 있고(스위스의 국민투표가 계기였다고 한다), 중국에는 일종의 기본소득이라 할 법한 제도가 실행되고 있는 마을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커뮤니티가 수천 개는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새로운 움직임과 다른 역사의 발굴이 기대되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서로의 존재에 대한 확인이 반가운 자리였다. 당장 눈 앞에 발 디딜 자리가 너무 좁을 때,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붕 뜬 실체는 허공에 발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묘한 장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른 어느 곳 보다도 이 테이블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에게 이번 대회가 발밑을 조직할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한편 개회식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참석하여 언론에 다수 보도되었다. 2년 전, 국제행사 유치 강국 한국이 차기 기본소득국제대회의 개최지로 선정되었을 때에는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네덜란드와 핀란드에서의 실험계획 발표, 미국 실리콘밸리의 반응, 스위스 국민투표라는 흐름 바로 뒤에 이어진 국제대회는 여러 가지로 유용한 무대가 되었다.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집권야당의 책임 있는 행보를 기대한다.


16차 기본소득국제대회 공식사이트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서강대학교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7.05
# LGBT
그 캐릭터는 레즈비언입니다

늘 체크셔츠 차림에 짧은 투블럭컷을 한 여성. 해군 출신이며 전쟁터에서 고아가 된 여자아이 둘을 데려와 딸로 삼고, 여생을 결혼하지 않고 두 딸과 함께 감귤 농장을 운영한다. 어린 시절엔 마을 최고의 말썽꾸러기였다.

이 여성은 레즈비언인가? 적어도 그는 레즈비언 클리셰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절대 동성애자로는 읽을 수 없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캐롤>을 보고도 테레즈의 사랑에 있어 “하필이면 캐롤이 여자였을 뿐”[1]이라 평하고, <아가씨>의 “지나친 베드신으로 모성애를 상징하던 것들이 퇴색”[2]되었다고 여긴다. 섹스가 등장하지 않은 경우 이러한 주장은 더 거세서, 캐릭터의 소수자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독해를 원작에 대한 곡해라고 여긴다. 앞서 말한 여성은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벨메일이다. 그가 레즈비언이라는 해석[3]을, 이들은 일개 독자의 편견과 망상[4],[5],[6]이라 일축하려 애쓴다.

이렇듯 일관된 착각과 분노의 원인은 물론 해당 캐릭터가 그들에게 있어 인간의 기본 단위인 시스젠더 이성애자라는 믿음이다. 특징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말은 바로 그 믿음에 종사하면서, 소수자가 소수자를 읽어내는 일을 편견으로 치부한다. 드디어 등장한 성소수자의 서사에서 성소수자라는 점만을 애써 탈락시킨다. 동시에 어떤 인물이 성소수자로 읽히게 하는 특성들은 바로 그 성소수자들이 온몸으로 개발해낸 것이다. 그래서 이때 이용되는 편견이라는 단어는 더욱 목적이 분명한 기만이다. 그러니 당신이 혹은 당신의 이웃이, 종로나 홍대의 어느 업소에서만 간신히 자신으로 읽히기를 원치 않는다면 기꺼이 편견을 드러내자. 테레즈는, 숙희는, 벨메일은, 그 캐릭터는 레즈비언이라고.


[1] http://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9940243
[2] http://blog.naver.com/zin885/220774240827
[3] https://twitter.com/RepliLuxe/status/750502933536518144
[4] https://twitter.com/ra_wangko/status/750931734858870784
[5] https://twitter.com/Bexter_twit/status/750931257341587456
[6] https://twitter.com/greeneyedmoon02/status/750924557133897729

# LGBT by @sommium_
2016.06.25
후죠시 기업 'THECOOYA'등장

재미있는 회사가 하나 등장했다. ‘후죠시들이 차린 회사’라는 것과 (방해로 인해 대형 온리전 개최에 곤란을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안전한 온리전 개최’와 ‘동인 문화 발전’에 힘쓰겠다는 말이 ‘더쿠야’가 공식적으로 올려놓은 소개의 전부다. 금일부터 서포터즈 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여타 기업에서 서포터즈는 마케팅을 위해 활용하는 반면 더쿠야는 추후 직원 충원을 위한 인력풀로 활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덕후 기업 대부분은 ‘코믹월드’라는 대형 서브컬처 행사의 대체 행사를 만들려는 케이스였다. 더쿠야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기업일까? 어떤 수익 모델을 보고 이 일을 시작했을까? 간만에 호기롭게 등장한 회사인 만큼 (게다가 오타쿠가 아닌 후죠시들이 모인 회사인 만큼)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지 예의 주시할 예정.


http://thecooya.kr/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6.20
오큘로 2호 – ‘먼지’로서의 이미지

미디어버스에서 발간하는 영상비평 계간지인 <<오큘로>>의 2호가 나왔다. <<오큘로>> 2호는 “오늘날의 많은 영상에는 서사와 무관하거나 지속적인 몰입을 요구하지 않는 (중략) 먼지처럼 미세한 이미지들”을 특집으로 다뤘다. ‘먼지’로써 존재하는 이미지들은 그 어떤 방식의 내러티브의 맥락과도 관계없이 돌출하거나 존재하지만 어떤 중요한 함의도 담아내지 않기 때문에 독해가 불가능에 가까우며, 때론 비평에서도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먼지들은 미세하지만 분명히 영화 내에서 존재하며 내러티브의 표면 위로 가라앉거나, 때론 그것을 덮어버린다. 고다르가 발표하는 근래의 영화들이나 벤 리버스, 라야 마틴, 리산드로 알론소 등 한 없이 댈 수 있는 이름들과 영화들은 ‘먼지’를 어떻게 읽어내느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문제는 필름 시대의 먼지 이미지와 디지털 시대의 먼지 이미지가 서로 다른 층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름 시대에 먼지 이미지로만 이루어진 앤디 워홀의 <엠파이어>는 이것이 극장에서 상영 된다는 것만으로도 미학적인 혁명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영화는 그 무게를 잃어버린 채 비물질로써 표류한다. <<오큘로>>의 첫 글인 <먼지와 기념비 사이의 ‘콘텐츠’ : 오디오비주얼 이미지의 진동>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변화된 영상-보기 시대를 짚어내며 콘텐츠로 변모한 디지털 영상들은 “먼지와 기념비 사이”를 부유한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보자면 진 영블러드의 “흐름의 차원에서의 영화”를 글 속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꽤 흥미롭다. 액체로써 존재하는 디지털 영화들은 이제 기체로써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http://www.okulo.kr/2016/06/okulo-002.html

# 독립출판 by @louderaloud
2016.06.20
소년24

엠넷에서 ‹소년24›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프로듀스101›처럼 아이돌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남자 버전이다. 과연 ‹프로듀스101›처럼 흥미진진한 서바이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데 웬걸? 출연자들의 외모는 물론이고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심상찮다. 두 프로그램의 차이를 결정짓는 요소들이 대체 무엇이길래?

‹소년24›는 ‹프로듀스101›과 달리 연예인 연습생이 아닌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진행 방식이 영 시원찮다. 미남 스타 장근석이 "사장님"으로 등장했던 ‹프로듀스101›과 달리, ‹소년24›의 진행을 맡은 미녀 스타 오연서는 "뮤즈"로 불린다. 24명의 "소년"들은 자신을 뽑아달라는 노래를 부르며 귀엽게 (혹은 멋지게) 춤을 추는 아이돌이 아니라, 데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라이징 스타"들로 묘사된다.

왜 소녀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나와서 제발 나를 뽑아달라며 귀엽고 깜찍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춰야 하고, 소년들은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스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이 불균형은 너무나 이상하다. 게다가 경력이 상당한 여배우를 데려와서 데뷔도 하지 않은 출연자들의 뮤즈 삼아버리다니. 만약 아주 잘생긴 남자 배우를 뮤즈 삼았다면 시대를 앞서 나가는 프로그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루하고 안일한 방식을 선택했고, 덕분에 프로그램은 매우 지루해졌다. 아, 게다가 ‹소년24› 속 소년들은 ‹프로듀스101› 속 소녀들보다 외모가 출중하지 않다. 여자 아이돌들은 아무리 예쁜 얼굴에 날씬한 몸매를 가져도 ‘상업성 평가’를 빙자한 비판에 시달려야 하는데, 남자 아이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대체 이 불균형의 원인은 무엇일까? 남녀의 성별만 바뀌면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의의도 달라지는 것일까?


http://boys24.mnet.com/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6.17
오뉴블 4, 여성 내러티브의 새로운 가능성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인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새 시즌이 공개되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는 <오뉴블>의 배우들이 넷플릭스 코리아 행사 참석 겸 시리즈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다. 다양한 여성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독보적 시리즈로 이미 무려 시즌7까지 제작 계약이 끝난 <오뉴블>의 이번 시즌은 코미디의 장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현실적인 이슈들로 초점을 옮기며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명백한 장점이라 또 말해봤자 입만 아플 지경이지만, <오뉴블>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다. 여자 교도소를 그려 내기 위한 ‘토큰 백인'으로 설정된 주인공 파이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면서도 주인공이 아니다. 파이퍼로부터 시작된 시리즈는 점점 교도소의 핵심 인구집단인 마이너리티 재소자들에게로 초점을 맞춰 간다. 파이퍼는 재소자들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서 린치를 당할 수도 있지만, 그녀에겐 다른 재소자들이 인권을 침해당하는 상황을 조성할 수 있는 인종적 특권이 있다. 이 특권은 점점 더 심각한 구조적 인권침해에 노출되는 비백인계 재소자들의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파이퍼와 특히 대비되는 캐릭터는 시즌4 후반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푸세다. 그녀의 죽음은 사고였지만, 교도소에서 그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영향력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푸세의 죽음과 그것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미국에서 #BlackLivesMatter 운동을 촉발한 에릭 가너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연상시킨다. 시리즈에서 가장 사랑받던 캐릭터를 죽임으로써 이것이 단순한 익명의 타인의 죽음이 아닌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처럼 느껴지길 바랐다는 제작진의 연출은, 상당수의 흑인이 "실수로" 죽는 일들이 가볍게 취급당하는 현실 속 문제들을 정확히 겨냥한다.

이런 <오뉴블>이 한국에도 서비스되고,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쇼 중 하나라는 사실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대다수 드라마나 영화의 여자 캐릭터들이 남자들의 멋짐을 부각시켜주는 들러리 역할만 떠안는 한국의 미디어 환경을 고려해볼 때, <오뉴블> 같은 쇼를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오뉴블> 속 여성들이 드라마의 중심에서 환하게 빛나는 동안, 남자들은 대부분의 순간에 주변인으로 물러나 있다. 여자가 전면에 선 이야기도 현실적일 수 있고, 존엄할 수 있으며,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오뉴블>의 한국 시장 진출이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미디어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61909547290434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6.11
서울 중구 서소문로 124 : 우연히 살아남은 1970

6월의 어느 날, 시청 앞을 지나다니면서 눈길만 주어 왔던 알리안츠 서소문빌딩(이하 알리안츠빌딩)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2호선 시청역의 코앞이라는 목 좋은 입지에 어울리지 않게 외장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빌딩이었다. ‘외벽 청소는 안 하나’, ‘언제쯤 재개발을 하려나’하는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에 주변에 펜스가 둘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알리안츠 빌딩은 1970년 준공된 이래로 바로 이웃의 대한빌딩(2011년 철거), 길 건너편의 연호빌딩, 한 블럭 건너 위치한 동화빌딩 등과 함께 반 세기에 가까운 세월 내내 시청 오피스 타운의 탄생과 변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흰색으로 도색된 전면 파사드와 검정 타일로 마감된 측면부가 이루는 대조 덕분에 다른 빌딩에 비해 유난히 눈에 띄기도 했었다. 알리안츠 빌딩과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 보니 빌딩의 재개발은 이미 수년 전부터 추진되어 오고 있었다고 한다. 이 빌딩을 포함한 서소문구역 5지구는 이미 2008년에 재개발 예정 지구로 결정이 난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건물 소유와 투자를 둘러싸고 전직 대통령의 영식과 외국계 자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에 재개발 추진이 더딘 상황이었단다. 이분들의 힘겨루기 덕에 기념할 만한 서울의 근현대 도시 공간이 재개발지구 지정으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나마' 남아 있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재밌으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741656414611857410

# 도시 by @eun_gong
2016.06.04
자연스럽게 관계 맺는 것의 어려움

월곡동에 자리한 '인포숍 카페별꼴'(이하 별꼴)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진 만들기 워크숍을 연다. 별꼴은 장애인문화예술인의 활동을 돕는 사회단체 ‘장애인문화예술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교육 워크숍, 전시 등을 상시로 기획한다. '진 캠프Ⓐ'(2016.5.21~22)와 ‘진 페스트Ⓐ’(2016.6.4)는 별꼴의 진 메이킹 워크숍에서 수강생으로, 워크숍 진행자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여 열게 된 행사다.

이중 '진 캠프Ⓐ'는 ‘하나의 주제를 함께 생각하며 포스터와 진, 티셔츠, 배지 등을 제작하는 1박 2일 워크숍’으로, 1회 주제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였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광화문역 개찰구 바깥에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이 진행 중이다. 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의 초상과 제도 폐지를 위해 서명을 받는 활동가들의 테이블이 마주한 가운데 통로로 사람들이 바삐 통과한다. 활동가들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이 조그맣고 엄중한 공간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일까. 발달장애인법 보드게임을 하고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차별에 저항하라'는 주황색 문구를 티셔츠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고 비슷한 구호를 적어 버튼도 만들었다. 캠프장 바깥에선 독립문 옥바라지 골목 강제 철거의 비통함과 강남역 10번 출구의 여성혐오 살해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일상의 리듬을 깨고 어떤 현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런저런 사건 탓에 더욱 밀려왔다. 비록 이 공간에 일시적으로 들어온 격이지만 이곳에 함께 있는 만큼은 이 장소를 오랫동안 지켜온 분들의 시선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랐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이 열릴 시간을 기다리는 잠깐 동안 서명 테이블에 앉아 보행자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료함이 몰려왔다. 상주하는 장애인 활동가들과는 어떤 소재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할지 몰랐지만, 식사를 같이하고 몸에 그린 그림을 서로 보여주며 웃었다.

그렇게 고민은 남았다. 여전히 이 공간의 시간과 이곳 사람들의 경험을 동등하게 경험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 온전히 가닿지 않은 한계를 느꼈다. 두 행사를 함께 기획한 어느 지인은 '진 캠프Ⓐ'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묻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뇌며 장애인 혹은 누군가와 만나왔을 때의 뭔가 조마조마했던 자기검열을 잠시 거두고, 편하게 관계 맺는 방식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비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동등한 입장으로 서로의 말을 나누는 방식은 무엇일까. 현장의 언어를 들으려 하고, 그것을 자기의 언어로 번역해 현장 바깥으로 매개하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http://zinefest.xyz/
https://www.facebook.com/Zinefest/

# 조직하고 모으기 by @scopesculpture
2016.05.27
‘시각문화리뷰’ Ep.04 공개 녹음, 포토닷&오큘로 매거진과 함께

‘시각문화리뷰’는 “미술, 시각문화 관련 책과 글을 소개”하는 팟캐스트이다. 우리는 더북소사이어티에서 열린 «90년대 한국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토크에서 시각문화리뷰를 처음 접했다. 토크는 두 진행자(최지혜, 박재용)와 저자인 문혜진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토크가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점, 그리고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후에 이 토크를 팟캐스트로 들었을 때는 편집과 팟캐스트라는 매체의 한계로 현장감이나 내용들 간의 긴밀함이 느껴지지 않아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미술 관련 책을 얘기하는 시각문화리뷰의 ‘리뷰’가 궁금해 계속해서 팟캐스트를 구독했다. 시각문화리뷰는 잊을 만하면 팟캐스트를 하나씩 업로드 했다. 두세 개의 에피소드가 올라오고, 또 다른 공개 녹음에 대한 공지가 있었다. 이번 공개 녹음은 «오큘로»의 편집자인 이한범, «포토닷»의 편집장인 박지수와 두 명의 진행자 그리고 작가 진시우와 함께 진행되었다.

녹음은 각각 잡지에 대한 소개와 잡지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할 수 있었는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잡지가 완성되는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박지수 편집장은 그간 사진 잡지가 “동향지” 혹은 “국외의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에 멈춰 있었다고 지적했다. «오큘로»의 이한범은 어떤 장르나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이 분명 존재하지만, 장르나 매체를 이유로 미술 잡지나 영화 잡지에서 이들의 작업을 실질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다. 이들 잡지는 단지 상황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떠한 식으로든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잠시, «포토닷»은 누구나 느낄 만한 지금의 모습이 모두가 느낀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다시 변화를 갖는다. «오큘로»도 새로운 필자와 글을 소개하지만, 여전히 글과 필자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더 많아져야 하고, 그래야 작품이든 공간이든 뭐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곳에서 이뤄진 공개 녹음도 팟캐스트로 업로드 될 텐데,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책을 읽고 그 책이 계속해서 읽혀 어느 순간 또 하나의 책이 출간되는 것처럼 말이다.


http://www.v-c-r.org/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5.25
‘YaoiCon 2016’ 개최 확정

2001년부터 열린 야오이 컨퍼런스 ‘야오이콘’의 2016년 개최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었다. 9월 16-18일, 총 3일간 샌프란시스코 하얏트 리젠시에서 열리며 올해의 주제는 ‘스팀펑크 야오이’. 오타쿠들이 네코미미(고양이귀)에 반응하는 것처럼 스팀펑크풍을 좋아하는 후죠시들은 단안경과 정장에 반응한다. 이처럼 야오이콘은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지만 일본 서브컬처와 BL의 최신 경향과 스타일을 적극 반영하는 행사다. 학술적인 주제를 다루는 집담회나 대담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야오이 장르를 애호하는 팬들을 위한 즐거운 행사다. 올해의 빅 게스트는 일본의 성우인 후쿠야마 쥰인데, 미묘하게 그의 이름 뒤에 Oppa를 붙여 놓은 것이 신경 쓰인다. 설마 말 그대로 오빠인 건 아니겠지?


http://www.yaoicon.com/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5.21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요

무슨 영문인지 갑작스럽게 트위터에 20초짜리 영상이 하나 떠돌기 시작했다. 1994년도 MBC 뉴스에서 X세대의 ‘파격적인’ 옷차림들을 다루면서 삽입한, 2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어느 인터뷰 장면이었다. 군화를 신고 배꼽티를 입은 여성들과 이들을 보고 놀란 인터뷰어와의 대화를 살펴보자.

"잠깐만요, 이렇게 군화 신은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군화를 신으면 의외로 섹시한 멋도 나고요. 그리고 남자들이 주로 신는 거여서 그런지 남자들하고 대등한,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습니까?”

"아뇨,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누가 발췌해서 올린 영상이 리트윗을 통해 퍼지면서 트위터에서는 ‘X세대 언니들’의 당당함을 반가워하는 여자들의 트윗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사람은 2016년에도 사회의 간섭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만의 패션을 즐길 자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전히 '조크든요' 정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농담삼아 꺼냈고, 흥이 넘치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데일리룩을 공유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여기에 동참해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데일리룩 셀카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중에는 굳이 해시태그 응원이 필요 없어 보이는 무난한 옷차림도 많았지만, 평소에 길거리에서 보기 힘들거나 주위 사람들의 폭풍 고나리질 대상이 되곤 하는 파격적인 옷차림도 많았다. 덕분에 해시태그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이 열기에 힘입어 #이렇게화장하면기분이조크든요, #이렇게머리하면기분이조크든요, #이렇게네일하면기분이조크든요 등 자매품도 신나게 등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 도전해보지 못한 패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평소에 옷이나 머리 때문에 폭풍 고나리질을 받던 사람들은 자신의 셀카에 대한 리트윗과 좋아요 수를 보면서 반가움을 느끼는 즐거운 무브먼트였다. 지금까지 엄마가 허락한 힙합처럼 사회 규범이 허락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만 안전하게 걸쳐 왔다면, #조크든요 해시태그를 보면서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https://twitter.com/MMMGNT/status/734016855472406533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38566_19434.html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5.20
우연히 죽고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

강남에 갈 일이 좀처럼 없다. 일 년에 한 서너 번 가려나… 서울에 산 지 오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강남에 가려고 한강 다리를 건너면 '서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그날 살인 사건에서 ‘강남’만 떼어 놓고 본다면 나는 안전했는지도 모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보도된 살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강남역에 추모의 공간이 열렸다. 사람들은 포스트잇에 자신은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나도 강남역으로 향했다. 이번만큼은 몸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추모 공간의 무거운 공기와 공기만큼 두껍게 쌓인 포스트잇의 메시지들은 하나둘씩 사람들을 울렸다. 나의 몫의 추모를 하고 되돌아가는 길, 내가 걸은 강남역의 밤거리는 깨끗하고 밝았다. 주로 걷는 을지로와 성북동 거리보다 한결 안전해 보였다. 그제야 또 깨달았다. ‘강남’만 떼어 놓고 보아도, 나는 안전하지 않았다. 나도 썼어야 했다.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며칠 후 강남역의 추모 공간은 서울시청으로 옮겨 정리되었다. 질질 끌지 않아 마무리가 좋았다. 언론에서는 끝끝내 인정하기 싫어했지만 ‘여성혐오’와 ‘혐오범죄’라는 개념이 오르내렸다. 페미디아, @Shadow__Pins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움직임들이 눈에 띈다. 그렇게 ‘여느때와 다름없는’ 한 죽음이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이 죽음이 기록된 이상 어떤 죽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을 수 없다.


페미디아 / @Shadow__Pins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6.05.20
언제나 ‘세컨드’, ‘납작한 여자’.

퍼스트가 아닌, 언제나 ‘세컨드’의 위치에 머무르던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탐구 영역의 전면에 내세운 잡지 «세컨드» 1호 ‘납작한 여자’가 발간되었다. 그동안 남성들에 의한 서사 속에서 지워졌거나 가려지고 잊혔던 ‘여성’들은 사실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초로 극영화를 만들었던 여성 감독 알리스 기-블라쉐의 이름은 영화사에서 지워지고 그 자리는 뤼미에르, 멜리아스, 그리피스 등으로 메워졌다. 첫 번째 ‘스타 배우’였던 플로렌스 로렌스는 배우로 살아온 그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이름이 삭제된 채, 자신이 활동했던 영화사의 이름을 딴 ‘바이오그래피 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고다르나 트뤼포로 대표되는 누벨바그의 시작엔 여성 감독이였던 아네스 바르다가 있었다.

«세컨드»의 경우 이러한 가려진 여성들에 대한 논의를 비교적 근 시간대에 개봉한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로 국한시킨 모양이다. 잡지의 에디토리얼에서 밝혔듯이 그들은 “전형화되어 별다른 고민 없이 만들어지고 익숙하게 소비되는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 ‘납작한 여자’라 명명하고 문제제기”를 한다. 그동안 페미니즘 비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전면에 내세운 잡지의 등장이 무척 반갑기만 하다. 다만 잡지 전반이 긴 지면을 소모하며 같은 문제를 반복하며 제기하는 데만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아쉽다.

반면 피처로 실린 ‹천만 영화 호황 속 가난한 여성 캐릭터에 대하여›는 꽤 재밌게 읽었다. “여성들은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며 여성 캐릭터의 기근 원인을 여성 관객 탓으로 돌리는 제작사 대표의 말에 대해 반론하며 필자가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은 변화하며 다각화하는 관객들의 요구에 비해 기존 흥행 영화들의 공식을 단순 반복하는 데 그치는 제작 형태이다. 사실 남성 캐릭터를 섹슈얼하게 소비하는 ‘브로맨스 코드’가 흥행의 큰 요소로 자리 잡은 현 영화 시장에서 제작사 대표의 말은 어찌 보면 거짓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영화 속 재현의 장에서 사라진 여성들이 오히려 시장에서 적극적인 소비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만들고 있는 것에 가깝다.[1] 그로 인해 쏟아지는 '브로맨스'의 세계 속에서 여성 관객들은 이제 질식 직전에 놓였다. 지쳐버린 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좋은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 역시 자본의 논리 속에서 돌아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그들에겐 페미니즘 역시 돈이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1] 아주 오래전 최보은 평론가는 100% 수컷 정서를 뽐내는 영화 ‹친구›에 매혹되었다고 밝히며 “자신이 수컷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수컷들의 세계를 동경하기까지 한다”고 밝혔던 적이 있다. 여성 역시 거대 집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연대를 이루자는 취지를 담은 글의 말미에 “박근혜가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그를 찍을 작정이다”라는 문장 때문에 그해 가장 큰 논란을 가져온 글이 되었지만.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426
https://tumblbug.com/secondfilmmagazine

# 독립출판 by @louderaloud
2016.05.11
# LGBT
아시아 성소수자 부모 모임 초청 포럼

중앙대학교에서 아시아 성소수자 부모 모임 초청 포럼이 열렸다. 미국, 중국, 일본과 한국 각 국의 성소수자 가족 모임의 대표가 “그래, 우리 같이”라는 포럼의 슬로건 아래에서 각국 성소수자 인권의 오늘을 이야기 하는 자리가 마련 되었다.

포럼에 참여한 일본 성소수자 부모 모임의 심벌은 네잎클로버였다. 왜 심벌을 네잎클로버로 정했느냐는 질문에 대표로 참석한 나카지마 미쓰코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아이들은 네잎클로버와 같아요. 네잎클로버는 부자연스럽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 좀 특이하고 다른 것뿐입니다. 우린 애들을 다른 세잎클로버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잎 하나를 뗄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 아름답다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https://chingusai.net/xe/freeboard/469031

# LGBT by @louderaloud
2016.04.24
«조판 연습: 길 잃은 새들» — 말은 쉬워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

포스터가 익숙했다.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포스터였다. 그때 누가 나에게 “이거 어때?”라고 물어봤다. “그냥 워크룸 같다”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었다. 후에 이경수 디자이너의 작업을 몇 번 더 접한 후, 내 대답을 몇 번이나 후회했다. 다시 포스터를 봤다. 같은 글귀이긴 했다. 그 포스터가 아니었다. 빨리 날을 잡아야 했다.

전시장은 예상했던 대로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편안하고 정갈했다. 그의 작업과 클라이언트, 동료들의 코멘트와 작업물을 번갈아 보며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정재일의 앨범 ‹바리›를 위한 작업이 걸려 있는 작은 공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음악이 신경을 자극하니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모든 작업을 봤으니 전시장을 나서려는데 전시장을 이루고 있는 (프레임, 그 안의 작업, 프레임 밖 텍스트의) 그리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다시 보니 각 코멘트들의 조판이 모두 다르다는 게 보였다. 다음엔 프레임 안 종이의 질감이 눈에 들어왔다. 프레임 안에 종이를 겹쳐 넣어 실제 작업물(책)의 의도를 살린 작업도 있었다. 그다음엔 들고 있던 팸플릿에 글자 스펙과 작업 밑 코멘트들의 글자 스펙이 같다는 게 보였다. (확대/크롭된 작업물은 어떤 비율로, 확대 재생산된 걸까?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다음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보였다. 분명히 내가 아는 ‘sm신중고딕'인데 처음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러고 나니 끝내는 글자와 글자 사이 공간이 자꾸 보였다. 상식으로 알았던 것들이 뒤집히고 덧씌웠다. 작업에 다가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한 꺼풀씩 새로운 차원이 열릴 때마다 감탄했다. 동시에 흰 종이 위 검은 글씨만으로도 봐야 하고 곱씹을 게 너무 많아 진이 다 빠졌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전시장이 꽉 차오르자 방심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가 가장 큰 인상으로 남았다. “거슬림 없는 편안함, 정갈함”이라고 들어서며 쉽게 재단했지만 그건 당연히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방심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 당연한 태도 역시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귀한 태도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당연한 것을 지켜 나간다. 큰 위안이었다.


갤러리 팩토리 http://factory483.org/exhibition/2616

# 미술관과 그 근처 by @sceneryoftoday
2016.04.22
2030 여자들의 정치세력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서강대학교 여성주의학회 이음에서 주최한 20대 총선 평가 집담회 ‹Beyond 20, Toward 2020›에 다녀왔다. 이번 총선에 출마했던 김주온(녹색당), 남영희(더불어민주당), 문정은(정의당), 하윤정(노동당) 후보들과 더불어민주당의 19대 국회 청년비례대표 장하나 의원이 참석했고, 녹색당, 여성주의학회 이음, 레인보우 보트,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고용복지연금선진화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패널들도 참석했다.

20대 총선을 젠더와 청년 문제 중심으로 되돌아보며 평가한 이 집담회에서는 국회의원 성비의 심각한 불균형, 젠더정치 중심의 여성 후보 부족, 여성 청년들의 권익을 대변할 국회의원 부족 문제, 20대 총선 직전에 터진 정의당의 중식이밴드 논란, 여연에서 진행한 페미당 활동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집담회를 기획하고 주최한 여.세.연에서 제작∙배포한 보고서에는 남녀 투표율 트렌드, 20대 총선 여성 당선인 명단, 국회의 고령화 문제, 여성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 대한 간략한 분석도 포함되어 있어서 패널들의 토크를 듣는 동안 자료집도 매우 열심히 읽었다. 공짜로 이런 자료를 읽는 기회는 흔치 않고, 양질의 자료는 귀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단체에 소속된 패널들이 함께 모인 자리였기 때문에 엇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다각도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고, 서로 다른 목적과 방향성을 가진 여성들이 각계각층에서 느슨한 연대를 이어가자는 여.세.연 측의 최종 마무리 제안도 좋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생각보다 참석자가 너무 적었다는 점. 앞으로도 이런 논의들이 계속되어 21대 총선에서는 신선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서강대학교 다산관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4.16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 광장의 본질

퇴근길에 매일같이 지나가던 광화문 광장에 내려봤다. 수백 번 넘게 봐 왔던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보슬비가 내리는 속에서 추모하기 위해 차분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추모 행렬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모두가 추모 행렬을 존중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정확히 1년 전, 역시 퇴근길에 마주했던 광화문 광장의 추모 행렬이 어떠한 벽에 부딪혔는지 떠올려본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차분한 추모 행렬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 텐데, 1년 전의 기억 때문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서울에 질리도록 살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수백 건이 넘는 행사를 지켜봐 왔다. 하지만 일 년 중 이날만큼 광화문 광장이 광장으로서의 본질을 찾는 날이 또 있을지, 추모 행렬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721251083499151360

# 도시 by @eun_gong
2016.04.08
언론의 여성혐오적 클릭베이트와 싸우는 여성들

4월은 연합뉴스가 여성의 적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달이었다. 4월 8일에는 소라넷 운영자에 빙의해서 쓴 1인칭 시점의 기사가 트위터에 올라오면서 큰 논란을 만들었고, 4월 28일에는 도시 청년(여성)층의 비혼 트렌드 때문에 농촌 총각이 상처를 받는다는 기사로 또 한 번 논란을 낳았다. 연합뉴스는 논란이 되자 사과 한마디 없이 기사들을 슬그머니 삭제하거나 수정했는데, 언젠가부터 비슷하게 반복되는 논란의 패턴을 보며 여성들은 이것이 의도적인 클릭베이트 기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항의의 움직임이 거대하고 굳건한 여혐 장사의 시스템을 깨지 못해서 오히려 이들의 돈벌이를 돕는 게 아닐까 싶어진 것. 그래서 여성들은 트위터 밖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소라넷 빙의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 제소를 진행했고,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 팀과 트위터 유저들은 연합뉴스 본사에 항의 방문을 했다. 비혼 기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트위터 유저들이 항의를 했고, 그 중에서도 트위터유저 @nojamhater는 이것을 계기로 클릭베이트 기사에 대한 언론공정위 제소 릴레이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거대한 여혐 마켓이 주는 무기력에 빠지기보다는 작고 꾸준한 민원 공격으로 부지런히 되받아치며 이 구조에 균열을 만들자는 것. 언론의 공격은 지겨울 정도로 계속되지만, 이에 맞서는 여성들의 전략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https://twitter.com/mediadaum/status/725161756272812033
https://twitter.com/chiclix/status/725865119121428481
https://twitter.com/Shadow__Pins/status/718446586842353664
https://twitter.com/nojamhater/status/727353480776544256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4.01
공원일기와 공원기록

2016년 4월 1일 남그린은 자신의 책 «공원일기»(2015)와 EZSUP의 책 «GREEN NOTE 공원기록»(2016)의 닮음을 지적하는 글을 게시했다. 그에 따르면 두 책은 레이아웃・폰트 사용을 비롯한 전반적인 디자인의 측면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문단 구조・단어 등에서 살필 수 있는 텍스트의 측면에서 “너무도 비슷”하다. 덧붙이는 글에서 남그린은 EZSUP과 주고받은 메세지를 게재했다. EZSUP은 남그린의 문제 제기―“제작물 자체”를 두고 봤을 때의 “지나친 유사성 혹은 참고 이상”이라는 의견에 대하여 자신의 제작 컨셉을 설명하며 “텍스트 참고 및 인용은 없”었고 “외려 우연하지만 취향과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이 있어 공감했었”다고 답했다. 이에 남그린은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번 견지하고는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며 더는 일언 첨부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나는 두 책 모두 직접 보지 못한 삼자로 역시 한마디 보태지 않을 생각이다. 남그린의 게시물만 봐서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떤 판단을 내리기 불가능하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비’에서 아무것도 읽지 않을 생각은 없다. (사실 관계가 어떻든) 이미 판매가 완료된 소규모 출판물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공공연히 언급하는 일은 자신이 만든 세계와 그곳을 디뎌 간 이들에 대한 예우임이 분명하다.


https://twitter.com/nam_green/status/704608771515949056

# 독립출판 by @modusleep
2016.03.31
역자후기 Translator’s Note 6 — 클레어 비숍, «래디컬 뮤지엄»

‘역자후기’는 일민 미술관에서 “동시대 미술 담론을 구성하는 다양한 서적의 번역자들을 초청하여 직접 주해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3월 31일에는 역자후기 6번째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며, 클레어 비숍의 «래디컬 뮤지엄»이 다뤄졌다. «래디컬 뮤지엄»은 전문 번역가가 아닌, 스터디 모임 ‘오프스쿨’이 번역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오프스쿨 구성원 중 구정연, 김해주, 윤지원이 참석해 책 전반에 관한 내용과 번역 과정을 설명해줬다.

비숍은 «래디컬 뮤지엄»에서 "변증법적 동시대성"을 강조한다. 비숍이 말하는 변증법적 동시대성은 “현재와 연관이 있는 과거의 돌발적인 출현으로 미래를 재부팅 하려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이다. 이에 따라 비숍은 동시대적인 것을 “시대 구분이나 담론의 문제”가 아닌, “모든 역사 시기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 혹은 실천”으로 본다. 여기서 미술관은 변증법적 동시대성을 정교하게 일궈내는 주체로 작동한다. 변증법적 동시대성을 실천하기 위해선 좀 더 구체적으로 미술관의 소장품과 기획이 중요하다. 이 자리에서도 미술관 소장품의 범주, 동시대성이라는 말이 갖는 모호함, 소장품과 아카이브에 대한 질의가 오갔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문득 궁금해져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리스트를 찾아보았다. 소장품은 총 7,839점이었고, 황규백 <바이올린, 장미, 소파> 이후로는 “저작권 협의” 때문에 작품 이미지를 볼 수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매년 꾸준히 소장품 전시를 하고 있다. 이에 의의를 둘 수 있으나, 이 책에서 비숍은 “소장품을 유물 창고로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공통재의 아카이브로 새롭게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소장품을 ‘다시’ 전시하기보단, 무엇을 어떻게 호출하는지가 중요하며, 여기에 미술관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소장품 전시를 보고 소장품을 “공통재의 아카이브로 새롭게 상상”하는 것이 가능할까?


http://ilmin.org/kr/program/translators-note-6/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3.27
사람들이 지랄을 하면 설리는 휘핑크림을 먹어요

전직 함수니,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짤막한 영상이 인터넷과 각종 언론 매체를 휩쓸었다.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스프레이형 휘핑크림을 입안에 짜 넣고 짓궂게 미소를 짓는 영상이었다. 미성년자였던 f(x) 활동 시절부터도 색기가 넘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고 최강 자지를 가졌다는 한 래퍼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더욱 노골적인 성희롱의 타겟이 된 지도 오래인 와중에, 문제의 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영상 자체의 성적인 함의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설리를 둘러싼 사람들의 뒤틀린 시선들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폭발한 여러 논란은 흥미로웠다. 어떤 사람들은 “공인이 야한 것을 연상시키는 행위를 찍어 올리는 것은 문제”라 말했고, 어떤 사람은 “성희롱당해도 싸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트위터 페미들의 중론은, 설현과 같이 객체적이고 수동적인 섹시함을 드러내는 여자는 환영을 받지만 설리처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섹시함을 드러내는 여자는 마녀사냥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되어도 설리는 여전히 ‘야한 것을 연상시키는’ 사진들을 올리며 “뭐”라는 코멘트만을 달아 놓을 뿐이다. 마침내 한국에서도 성적인 함의를 드러내거나 또는 그렇다고 해석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뉴타입 여자 연예인이 탄생한 것이다. “눈빛으로 뻐큐를 날린다”는 트위터 유저들의 평처럼, 주눅 들지 않은 섹슈얼리티를 당당히 드러내는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여 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https://www.instagram.com/p/BDcryKLREYD/?taken-by=jin_ri_sul
https://twitter.com/lifeinaurora/status/714481604010225665
https://twitter.com/yjezmo/status/714270416684982272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3.21
물 밑이여 안녕

‘북큐브’는 이북 판매 사이트인데, 3월에 BL소설 연재 서비스를 신설하며 홍보를 시작했다. 그런데 선정 작가들의 상당수가 ‘성인동’의 유명 작가들이었다. 성인동은 BL소설 연재를 기반으로 한 폐쇄적인 커뮤니티인데, 이전부터 성인동은 작가들이 전자책을 출판하면 커뮤니티에서 강퇴를 시키는 등 데뷔를 강하게 막아 왔다. 그러나 북큐브의 작가 라인업에서 알 수 있듯 성인동에서 활동하던 많은 작가가 ‘북큐브’와 계약을 맺었다. 물론 성인동 이용자들은 격분한 상태다. 성인동은 작가들에게 계속 성인동 안에서 머물러 있을 것을 강제한다. 이북 사이트는 미성년자가 접근해서 BL을 읽을 수도 있기 때문에 BL을 연재하면 안 된다고도 말한다. 사실 국내에는 BL 상업시장이라 할만한 규모의 마켓이 존재한 적이 없었지만, 북큐브를 비롯해 BL 작품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고, 대형 인터넷 서점에도 BL이라는 장르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BL작품을 판매하면서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던 예전과는 흐름이 달라졌다. BL은 더 이상 음지 문화가 아니고, 상업 시장이 금단의 영역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BL 문화의 존속을 위해서는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서라는 위선적인 태도로 BL의 물밑화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작게나마 시장이 형성될 수 있게끔 손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고인물은 썩고, 썩은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http://www.bookcube.com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3.16
‘종이’ 시사주간지 «워커스» 창간

‘꿘’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한 «워커스»가 창간됐다. 이건 흡사 TK지역 새누리당 지지하는 부모님에게 노동당을 전도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워커스» 창간 소식은 반갑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렵게 구한 «워커스»의 첫인상은 합리적이고 영리했다. 사진가들이 사진을 전담하고 기사와 분리해 (좋은 사진은커녕 좋은 해상도의 사진을 구하면 다행인) 여건을 극복했고, 주간지의 짧은 호흡을 고려해 네 팀의 디자이너가 돌아가며 맡는다. 디자인도 맥락을 생각하면 신선했다.[1] 사진과 디자인이 주는 기대감을 안고 찬찬히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장 큰 약점이 드러났다. 편집이다. 굳이 종이로 나와야 하는지 의심스러운 질과 양의 기사들이 이어졌다. 호흡도 너무 짧고 내용도 얕았다. 특히 첫 호 첫 기획특집은 삼류 찌라시에나 나올 법한, 아니 인터넷 게시판 한구석에서나 우연히 발견할 법한 내용이었다. 이건희를 찾아 삼성병원에 세 번이나 갔다가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한 허무맹랑한 기사를 첫 호 특집으로 싣는다고? 자못 비장했던 “비난받는 언론이 되겠다”는 선언이 힘을 잃었다. 기대감이 너무 컸는지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종이’ 매체임을 강조한 주간지이기에 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홍석만 편집장은 미디어스와의 인터뷰[2]에서 끝끝내 “왜 종이인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젖은잡지»나 «악스트»를 성공 사례로 들며 종이 매체에 주목했다고 했다. «워커스»가 더 위태롭게 보였다. «워커스»는 오래 갈 수 있을까?


[1]다만 각 디자인팀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1호를 맡은 ‘일상의실천’ 스타일이 가장 강하게 느껴졌다. 다른 팀의 변주는 너무 소극적이라 오히려 잡지의 일관성을 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나쁜 디자인은 아니었다. 이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각 팀의 성격까지 드러났다면 이 주간지가 갖는 의미가 더 풍성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2]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584
http://www.newscham.net/workers/

# 독립출판 by @sceneryoftoday
2016.03.14
국선즈연 토론회 ‹예술 통제와 검열의 현재성›

국선즈(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에 즈음한 미술인들의 모임) 활동의 “마감”과 “검열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을 천명”하는 토론회가 충무아트홀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다. ‘검열’이라는 주제 아래 미술가, 기획자, 교수 등 예술 전반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발표가 오고 갔다. 연극계에서 나타나는 검열의 사례를 역사적으로 되짚어보거나(임인자), 검열의 실체나 검열에 대한 저항의 모습을 밝히는 내용(이동연, 서동진)으로 발제가 진행되었다. 특히, 미술 현장에서 작동하는 '자기 검열'을 비롯한 모든 (제도적) 검열에 대한 발제(안소현)가 흥미로웠다. 검열은 결국 “재계약”이나 “예산”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검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괜한 일’을 만드는 것이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편하다. 외부에서 검열하기 전에 자신을 검열하게 ‘만드는’ 것, 지금 우리 눈앞에 놓인 검열의 모습이다.

발제가 끝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검열 주체에 관한 질문이 주가 되었으며, 이 질문은 너무 쉽게 “국가보안법”으로 수렴되었다. 검열의 주체나 기준이 궁금하면 차라리 검열하는 사람에게 묻는 편이 낫다. 검열이 국가보안법 때문이라고 한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노력하면 된다.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검열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 정도였다. “예술이 명료하지 않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다의적이고 복합적이라는 의미에서의 애매성은 검열의 해석적인 단순성, 단의성과 어떤 깊은 수준에서 대립한다. 검열이 다만 몇 개의 작품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예술을 그런 식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 자체가 예술 전체를 멍청하게 단순화하는 아주 나쁜 도구이다.”(박찬경, 최근 미술계에서 있었던 검열사태를 보며)


https://www.facebook.com/groups/petition4art/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3.11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 존재하는가

유명 연사들을 섭외하고 규모도 있었지만, 그다지 주목은 받지 못한 행사였다. 네트워크가 확실한 공적 기관에서 행사를 준비할 때 홍보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못한다는 인상을 곧잘 받는다. 특히 대학의 경우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학생 몇 명 동원 가능한가' 식의 숫자 계산에 그친다. 좀 썰렁한 대회의실에서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와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가 도시 청년의 삶의 기회를 주제로 발표하고,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과 강남훈 한신대 교수가 각자 기획 과정에 참여한 서울시 청년수당과 성남시 청년배당에 대해 발제했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3,000여 명의 NEET 청년(직장도 없고, 교육 및 훈련을 받지 않는 청년)을 선발하여 월 50만 원씩 최대 6개월간 지원하는 정책이고 성남시 청년배당은 만 24세의 모든 주민에게 연 50만 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청년당사자 활동가들과 발제자들이 패널토론 시간을 가졌는데, 여기에서는 시행을 앞둔 두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오고 갔다. 재미있는 점은 청년수당 설계에 참여한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이 궁극적으로는 청년수당이 보편적 기본소득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논의를 마무리한 것이었다. (이에 현장의 오랜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명백히 서로 다른 철학과 방법론에 근거한 입장과 토론할 때 각을 세우기보다는 포섭해서 외연을 넓히는 전략을 취하는 것. 이것은 이기고 싶다는 욕망보다 지기 싫다는 욕망에 근거한 듯 보이는데 비약적이지만 야당이 선거에 대응하는 자세가 묘하게 겹쳐졌다. '진보'를 위한 기제로는 마땅찮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학술대회 미래세대의 기회와 도시의 청년복지 /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관 1층 대회의실 / 강남훈(성공회대), 곽노완(서울시립대), 구교현(노동당대표, 전 알바노조위원장), 박성호(시사평론가), 백희원(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우석훈(성공회대), 전효관(서울시 혁신기획관), 정준영(청년유니온)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3.10
“죽지 않을 만큼” 먹으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아라, 여자들!

디스패치에서 걸그룹 멤버들의 말을 인용하여 여성들을 위한 다이어트 식단을 추천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중에서 EXID 멤버 하니의 “죽지 않을 만큼 먹으면서 다이어트했다”는 말을 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젊은 여성들이 ‘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서 살을 빼고 몸매 관리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문제의식을 못 가지고, 심지어 그걸 기사로 써서 권장까지 해주는 디스패치를 보며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디스패치를 향한 분노를 계기로 타임라인에서는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미의 기준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미용 체중’ 이야기였다. 비정상적인 기준에 맞춰서 살을 빼느라 몸이 망가진 여성들의 이야기와 소위 ‘미용 체중’이라는 몸무게를 가진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현실적인 건강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타임라인에 넘쳐 흘렀다. 건강한 몸을 가졌으면서도 '미용 체중'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하다가 몸이 망가진 여성들의 자기 고백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좀 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들도 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 잡지만 제작해서 판매할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건강을 위한 잡지도 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해서 여성 건강 잡지에 실릴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안해보았다. 산부인과 검진 정보, 피트니스 센터 정보, 영양제 정보 등 여성 전용 건강 잡지의 콘텐츠로 담기면 좋을 내용들에 대한 제안들이 등장하자 몇몇 잡지 편집자들도 관심을 보였다. 비정상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플로우는 다양한 몸무게와 체형에 대한 긍정과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며 신선한 임파워링의 계기가 되었다.


https://twitter.com/dispatchsns/status/707847284478898176 https://twitter.com/distancier/status/708111168418635777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2.25
필리버스터 모에 - 모에가 원본을 납작하게 만들 때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필리버스터에서도 오타쿠들과 후죠시는 모에의 불씨를 찾아냈다. 작가 도짱이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던 은수미 의원의 팬아트를 그리는가 하면,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강기정 의원 사이의 케미를 포착해 BL 커플링으로 만들기도 했다. 실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을 모에의 대상으로 삼은 다른 예로는 일본에서 등장했던 전 수상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의 BL동인지, 그리고 대만의 차이잉원의 사례가 있다.

모에화라는 건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어떤 대상을 서브컬처의 문법으로 다시 그리는 것을 뜻한다. 도짱이 그린 은수미 의원 일러스트에는 이 정치인의 많은 면 중 냉철한 여성 의원(모에 요소 중엔 쿨한 계통)이라는 부분이 모에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강기정 의원, 김용익 의원 등 모에화 되는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모에화된 그들의 몇몇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사라진다. 모에는 ‘애정’, ‘사랑’의 오타쿠적 표현이다. 따라서 ‘싫어하는 점’을 모에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모에화 된 정치인은 인간 정치인보다 열광하고 사랑하기 더 쉽다. 대만 총통 차이잉원이 자신의 홍보에 모에 전략을 적극 활용한 건 그래서 영리하다.

하지만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과’ ‘사랑(모에)’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따라 지지를 보내다가도 철회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 판단에는 모에화 된 부분이 아닌 삭제된 부분들이 필요한 법이다.


https://twitter.com/dochan81/status/702895774040870912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2.25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1주년, 그리고 진화

지난해 2월 10일에 시작되어 트위터 세계를 뒤흔들었던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이하 나페미) 선언으로부터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에 붙은 낙인을 떼어내기 위한 일상적 선언으로 시작된 이 선언 이후로 크고 작은 무브먼트들이 생겨나거나 사라졌고, 소위 '진짜 페미니스트'를 찾는 세력들은 이런 움직임을 수시로 비웃곤 했다. 그러나 그 비웃음이 얼마나 만연하고 집요하든 상관없이, 이 선언에 참여했던 여성들 각각은 ‘트페미’라는 거대하고 느슨한 군집을 형성하면서 꾸준히 진화해 가고 있다. 균질한 집단이기보다는 이질적인 개인들의 집합체에 가까운 트페미들은 사회 각각의 다양한 이슈들을 시시각각 매우 빠른 속도로 흡수하여 격렬하게 논쟁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 꾸물꾸물 성장해 나간다.

2월 25일 새벽, 여러 평범한 여성들의 변화와 각성의 계기가 되었던 나페미 선언 1주년 기념 이벤트를 해보자는 트윗들을 보고 나는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며 트페미들이 성장해 온 만큼 이제는 '-입니다'로 끝나지 않는 당당한 선언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를 시작했다. 이것은 나페미 선언이 시작되던 시기에도 이미 몇몇 사람들이 꾸준히 제안했던 방향이기도 하다. 2월 25일 새벽에 시작된 해시태그 선언은 조심스럽고 엄숙했던 작년과 달리 당당한 자기선언과 스웩 넘치는 움짤 파티가 되어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 동안 실시간 트렌드에 머무르는 기록을 세웠다. 여전히 공부가 부족하며 페미니스트 선언을 망설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이제는 페미니즘이 문명인에게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라는 태도를 취하면서 즐겁게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흐름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꾸준히 지속되고 더 진화하길 기대한다.


https://twitter.com/urgonnadiebabe/status/702266980103946240
https://twitter.com/neawgim/status/702514999739068417
https://twitter.com/distancier/status/702700066750885889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2.24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령집회

지난해 4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집회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는 공공건물 주변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인 '시민 안전법'에 대한 항의로, 홀로그램이라는 형식은 이를 비꼬기 위함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이를 본따 집회 시위의 자유를 주제로 광화문 광장에서 홀로그램 집회를 진행했다. 사전 홍보와 예고가 눈에 띄었던 데 비해 막상 당일의 사진은 SNS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 필리버스터가 화제가 되어서인지, 홀로그램 이미지의 완성도가 높지 않아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해외 운동단체들은 캠페인에서 한 컷의 인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을 중요시하고 잘하는데, 국내의 경우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구현하기 위한 노력도 강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다만 이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는 궁금하다. 그리고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즉, 한국에서는 언제나 한국적 이미지가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카피할 만한 해외 사례에 늘 목말라 있을까? 더 좋은 방법보다 새로운 방법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짐작을 해본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시도되는 홀로그램 집회를 기획한 기저에도.


광화문 북측 광장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2.24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반대 시민 필리버스터

이번 필리버스터의 의의는 여러 포인트가 있겠지만, 말 같은 말이 대의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멀쩡히 유통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그간 말이 안 되는 문장 구조를 사용해서 말문을 막는 현 대통령의 어이없는 통치술에 시달려 온 만큼 더. 김광진 의원이 첫 번째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고 한 시간 뒤 참여연대, 진보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국회 정문 앞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필리버스터가 진행되었다. 사실 그간 숱하게 해온 거리 집회, 만민공동회, 집담회 등과 형식적으로는 크게 다를 것 없는 자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언로가 막혀서 시위에 나서 직접 발화할 때와, 정치인이 먼저 움직이고 이를 지지하기 위해 발화할 때 말의 효용은 얼마나 다른 것인가. 이번 기회에 정치가 작동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약간은 회복되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 진정성보다 합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지 않고 들여다볼 마음이 생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로가 트인 셈이다. 가설이지만, 정말로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같은 조직화 전략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비록 3월 1일 현재 '개인은 뛰어난데 조직은 멍청하다'는 익숙하고 한심한 결과로 마무리되어가고 있지만.


국회의사당 정문 앞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2.24
마이국회텔레비전, 필리버스터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이 직권상정으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야당은 47년만에 필리버스터, 무제한 토론에 돌입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했고, 새누리당이 만든 선진화법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던 이 사건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의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냈다. 유투브 채널 생중계는 채팅과 함께 참여하며 감상할 수 있었고 실시간으로 주요 내용이 정리되어 아카이브 되었다. 별풍선 대신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의원들의 후원 계좌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다양한 짤과 2차창작물이 등장했다. 빈 의정석과 대비되는 빽빽한 방청석 또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던 젊은 정치인, 전문성으로 무장한 똑똑한 정치인, 사이다를 쏟아내는 여성 정치인이 나타났고, 썩고 한심하게만 보였던 늙은 정치인들은 뜻밖의 아재(매)력을 과시하며 자신들만의 '진정성'을 설득력있게 호소했다. 아, 무엇보다도 힐러리라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그렇게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여의도는 그 어느 곳보다도 가까웠다. 그러나 10일까지 계속할 수 있다고 장담하던, 그리고 그렇게만 보였던 필리버스터를 마무리 짓는다는 소식이 3월 1일 공식 기사화 되었다. 견고해 보였던 새 시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여의도는 다시 멀어졌다. 그러나 설령 신기루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해도 23일부터 1일까지의 근 일주일은 실제했다. 새로운 가능성은 언제든 다시 출몰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국회TV와 팩트티비 유투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 / 참여의원 (순서별) 김광진 문병호 은수미 박원석 유승희 최민희 김제남 신경민 강기정 김경협 서기호 김현 김용익 배재정 전순옥 추미애 정청래 진선미 최규성 오제세 박혜자 권은희 이학영 홍종학 서영교 최원식 홍익표 (3월 1일 이후)이언주 전정희 임수경 안민석 김기준 김관영 박영선 주승용 정진후 심상정 이종걸

# 그 외 by @sceneryoftoday
2016.02.17
이 남자들아, 설현도 인간이야

YTN 뉴스에서 ‘설현 밧줄 광고’에 대한 남녀의 엇갈린 반응을 보도했다. 여기까진 평범한데, 그 내용이 트윗에 올라오고 여자들이 불쾌감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되었다. 설현을 다루는 미디어의 태도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과, 그런 페미니스트들을 비웃고 욕하며 그들이 설현을 공격한다고 말하는 자칭 ‘친-설현’ 안티-페미니스트들의 설전이 언제나처럼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다.

사실 미디어가 설현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은 이미 많았다. 하지만 저 뉴스를 본 남자들이 설현을 등장시킨 광고를 '선정적이다'라고 비판하는 여자들의 반응에 대놓고 비아냥을 보내기 시작하자 분노가 폭발해버린 것. 그럼 과연 그 광고는 무슨 내용이었을까? 많은 여자들은 몸매가 부각되는 원피스를 입은 채 눈밭에 다소곳하게 누운 설현을 땅에 묶은 포르노적 시선의 광고를 보며 그녀의 육체적 매력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로밍 서비스 광고에까지 덧씌워진 성적 대상화 필터가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당수의 남자들은 그 사진이 걸리버 여행기 컨셉일 뿐이라며 '너희들의 뇌가 더러운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현이 나온 G마켓 광고와 쿠팡의 택배 광고를 비교하는 트윗들이 잇따라 등장했지만, 이번엔 섹시한 여자/남자 모델이 등장하는 외국 광고들을 언급하면서 "성 상품화는 광고의 효과적 장치일 뿐”이라는 일침러와 "성을 파는 것은 광고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이라는 술주정러가 가세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엇박자 논란의 흐름은 애초에 “설현을 고깃덩이처럼 소비하는 남자 소비자들의 관점 문제”를 지적하며 시작된 것인데, 정작 그 당사자인 남자 소비자들이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문제 해결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https://twitter.com/Anarchy_KR/status/699894059943403520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2.16
텍스트 지도를 내 삶에 동기화하기

2016년 2월 16일 «인덱스카드 인덱스»(동신사, 2015)에 대한 안은별의 서평 ‹읽었던 시간에 공간적 질서를 부여하기›가 발표됐다. 나는 그것을 읽고 나의 인덱스카드에 ‘동기화’와 ‘지도’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인덱스카드 인덱스»에서 둘을 찾아보면 ‘동기화’는 나오지 않지만 ‘지도’는 52쪽의 “손으로 그린 지도 701”, 71쪽의 “인쇄 지도 701”, 82쪽의 “중세의 지도 제작 537”로 나타난다. 이는 ‘손으로 그린 지도’와 ‘인쇄 지도’, ‘중세의 지도 제작’이라는 단어 또는 그와 관련된 글이 김동신의 인덱스카드 701번과 537번에 각각 적혀 있다는 뜻이다. 김동신의 701번 카드와 537번 카드가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표제어를 토대로 그것을 추측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701번 카드는 손으로 그린 지도와 인쇄 지도의 차이를, 혹은 인쇄기가 지도를 그리는 손을 대체하는 시기를, 혹은 구글 지도를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537번 카드는 701번 카드와 사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들이 어떤 지형의 일부일지 그려보는 것. 내가 이해한바 (혹은 박성용이 ‹묶이지 않은 종이 뭉치에 글을 쓰기›를 통해 말하는바) 인덱스카드는 일종의 대화용 도구인데, ‘텍스트’-‘읽는 나’-‘쓰는 나’-‘텍스트’ 사이사이에서 끊임없이 상호 간의 대화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는 당연하게도 인덱스카드와 인덱스카드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며, 말하자면 이 글은 ‘지도’를 표제어로 하는 인덱스카드를 매개로 스치듯 일어나는 짧은 대화인 것이다.


https://twitter.com/dongshinsa/status/699605873929252864

# 독립출판 by @modusleep
2016.02.15
한겨레 정치 bar ‹청춘아 정치하자 피티쑈 2회: 정당들이 청년에게›

2012년 4월 총선이 끝났을 때 청년 문제라는 이슈는 이번 선거에서 효용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선거를 심심하게 지나고 이번 선거에서 청년은 '흙수저', '헬조선'이라는 수사와 함께 좀 더 근본적인 시대적 과제로 등장했다. 한겨레 정치BAR에서 각 정당의 청년 정책을 15분 동안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정의당은 청년 실업을 세대 문제가 아닌 시대 문제로 보편화하며 고용안전망 혁신과 주거임대시장 안정화를 이야기했다.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복지국가의 행복한 삶의 이미지를 곁들인 설명이었다. 반면 녹색당은 일자리가 없는 상황을 인정하고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통한 접근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청년의 정치 참여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일자리창출,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익숙한 정책을 말했는데, 청년을 약자로 프레이밍하지 않고 가장 많이 교육받은 세대로 이야기했다는 점은 전과 달랐다. 새누리당은 자유, 기회 균등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강조하며 맞춤형 지원과 개인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고용 훈련을 이야기했다.

문제는 '어떻게 지킬 것이냐'이다. 이 질문에 더민주는 집권당이 되면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은 요약하자면, 정책 설계와 실현을 위해 열심히 발로 뛰고 있다고 답했다. 정의당은 진보 정책이 당의 존재 근거이기 때문에 타 당과의 타협이 있다 해도 공약은 지킬 것이라고 답했다. 녹색당은 장기적 관점에서 의제를 제안하는 당이므로 반드시 의석을 얻지 못해도 꾸준한 공론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고 답했다. 우리는 정책 정치의 승리를 본 경험이 없다. 이 중 확신을 주는 답은 없지만 각자 마음이 가는 답 정도는 찾을 수 있겠고, 가장 한심한 답이 무엇인지는 확실한 것 같다.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 / 김정훈 더불어민주당 연구위원, 김주온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정현호 새누리당 청년혁신위원장,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2.13
레진코믹스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

레진코믹스는 성인물 작가인 안나래의 인터뷰를 공개한 후 독자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현재는 수정되어 있지만 인터뷰 중 작가의 외모를 거론하는 부분, 작가를 그라비아 화보 구도로 촬영한 것 등 ‘성인물을 그리는 작가를 성적 대상화’하는 태도가 문제시된 것이다. 인터뷰는 수정되었지만 남성 작가의 인터뷰와 비교해보면 아직도 레진코믹스에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 대상 웹툰, 즉 포르노에서는 극단적 성적 대상화가 판타지의 한 장르로 자리할 수 있겠지만 실존하는 인물인 작가도 ‘대상화해도 된다’는 듯이 그라비아 아이돌 포즈의 사진을 찍게 하고, ‘성인물을 그리는 여성 작가’를 강조하는 문장으로 소개하면서 일말의 문제의식도 없는 걸 보면, 남자들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물을 그리는 여성 작가, 또는 섹스 칼럼을 쓰는 여성 필자는 성적 대상화 해도 된다는 발상. 대체 언제쯤에나 여성을 사람으로 안 보는(심지어 자사 소속 작가마저도 여자면 성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다는) 이 역겨운 시선 처리를 안 보게 될까.


세컨드 작가 안나래 인터뷰. 이 코너는 작가들의 인터뷰를 싣는 코너다.
http://www.lezhin.com/comic/second/p001
‹딜리셔스›의 작가 김민소 인터뷰. 안나래 작가와 김민소 작가의 사진 구도를 비교해보자.
http://www.lezhin.com/comic/delicious/p001
“안녕하세요 레진코믹스 SNS담당자입니다. ‹세컨드› 안나래 작가님 인터뷰 관련 사과 말씀 드립니다. 미인 작가님께서 만화도 잘 그리신다는 내용을 자기 비하 농담과 함께 전하려 하였으나 의도를 잘못 표현하였습니다. 불쾌한 표현으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https://twitter.com/LezhinComics/status/698450566783987713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2.05
교역소 기획전 «헤드론 저장소»

교역소 기획전 «헤드론 저장소»가 2016년 1월 15일부터 2월 5일까지 열렸다. 전시 관람은 예약을 통해 진행되었다. 전시장을 찾느라 한참 헤맸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관객 수에 놀랐다. 전시장은 마트 뒤편 물류 창고로 보이는 건물 지하에 있었다. 지하는 꽤 넓었고, 전시된 작업 대부분 영상과 설치였다. 더 넓게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업처럼 보였다. 따라서 벽이 허물어져 있는 곳에 영상이 놓여 있어도, 설령 코타츠 안에서 영상을 본다고 해도 작업을 관람하는 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작업을 보는 행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2015 1월 24일 김희천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커먼센터가 문을 닫았다. 교역소 또한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모든 교역을 종료한다.” 교역소는 명사라기보단 형용사처럼 보였다. 고정되어 있기보단 상태나 성질에 가깝게 느껴졌고, 관객들은 자신의 관람 행위에 교역소와 같은 수식어를 더하길 즐겼다. 하나의 아이템이 줄었다. 이 아이템은 점점 줄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미술을 보는 것은 또 어떤 식으로 변화할까. 앞으로의 시간이 궁금하다.


교역소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2.05
성지영 - 모에가 원본을 풍부하게 할 때

성지영은 성남시에서 쓰레기 분리배출 전용 그물망 사용 홍보 영상에 사용한 캐릭터이다. 공기관의 홍보물은 묘한 구석이 있다. 성지영의 경우도 웹툰이 ‘최신식 홍보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방법론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막상 일을 수주하는 홍보 업체는 ‘모에’라는 오타쿠 문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제작하다 보니 ‘웹툰 비스무레하긴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작업’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맥락 없고 퀄리티 낮은 ‘비스무레한’ 작업들 중 성지영은 뜻밖의 지점을 타격하면서 포텐을 터뜨렸다. 지자체의 그저 그런 어중간한 홍보 캐릭터로 흘러갔을 운명이었던 성지영은 오타쿠와 후죠시, 그리고 그들의 2차 창작 문화를 만나서 힘을 얻고 유효 기간을 연장했다. 2차 창작은 원본에 새로운 설정을 덧붙이며 원본의 생명을 늘려 나간다. 원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정보를 덧입혀 복제하는 것은 오타쿠 2차 창작 활동의 목적 그 자체다. 아무리 파동이 커도 오타쿠가 2차 창작을 하는 데 오타쿠 아닌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성남시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움직임은 ‘홍보 성공’으로 읽히는 듯하다. 만약 성남시가 이 파도를 타보고자 제대로 모에 캐릭터를 만든다면 망할 거라는 데 한 표 던진다. 오타쿠들이 성지영에 열광한 가장 큰 이유는 성지영의 모에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발생했다는 부분이었으니까.


http://1boon.kakao.com/issue/yanderegirl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1.31
재난 속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작년부터 이어진 건물주 싸이와의 갈등에 재난을 선포하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1월에도 끊임없이 낭독회, 퍼포먼스, 공연, 설치, 시위, 포럼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강제 집행을 대비하고 있다.

내 기억 속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인스타 사진 찍기 좋은 곳이었다. 커피 값은 유난히 비싸도 재미있고 아름다운 신문 형태의 메뉴와 인테리어, 빽빽한 아파트가 보이는 시원한 창 등이 기억에 남는, 쾌적하고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공간이었다. 얼마 전 다시 방문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선 불쾌한 냄새가 났고, 내부 집기는 엉망이었으며 사람들도 지쳐 있었다. 페이스북엔 매일매일 싸이를 호명하는 긴 글이, 고통스럽게 업데이트된다. 이렇게 모든 방법이 소진된 듯한 기색으로, 무관심 속에서 지난한 시간이 또, 31일 흘렀다.

자연스럽게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인스타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대신 “PSY OUT”을 외치는 맘상모 회원들과 진보 시민단체들, 급하게 작업한 음악과 작품을 설치하는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아직도 테이크아웃드로잉일까? 지금, 싸이로부터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지켜 내면, 그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어떤 테이크아웃드로잉일까?


테이크아웃드로잉

# 도시 by @sceneryoftoday
2016.01.30
이동진의 특급 어리둥절행

19일 이동진은 영화 ‹캐롤›에 평점 만점을 선사하며 “멜로드라마의 역사가 장르에 내린 햇살 같은 축복.”이라 평했다. ‹캐롤›은 ‘이동진의 라이브톡’에 새해 첫 선정된 영화로, 30일 여러 기대를 품고 압구정 CGV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과 함께 첫 선을 보였다. 그날, 캐롤을 해설하며 이동진은 “테레즈는 그러니까 레즈비언이라기보다는 그 캐롤을 사랑한 것인데 그 캐롤이 하필이면 여자였던 것이죠”라는 말을 꺼냈고, 까였다. 아마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 레즈비언의 사랑을 커다란 스크린관에서 보며 벅찬 감정을 느꼈을 어떤 성소수자의 존재를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을 무시하고 ‘다수’의 ‘눈높이’에만 맞춰 무언가를 하기에 그의 발언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커졌고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또한 어느 때보다 커져 있었다. (대중이라 불리는 ‘다수’의 눈높이를 어느 수준으로 상정하고 행동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참담하기도 하다.) 어떤 균열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균열은 작아도, 한번 일어난 균열은 메꿀 수 없다.


http://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9936938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6.01.27
콜트콜텍 수요문화제 연대는 더크게 Vol.3 사운드캠페인

행사 시작 전의 간단한 설명에 따르면, 기타 회사인 콜트콜텍은 2006년 국내 공장을 닫고 해외로 이전하며 대규모 정리해고를 강행했고 콜트콜텍 노동조합은 9년째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9년째 끈질긴 투쟁이 가능한 것은 오늘 이 자리와 같은 '연대의 힘' 아니겠느냐고 자기 소개를 잊은 사회자가 말했다. 연대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듣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자리를 빌어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요즘 어디서나 듣는 네트워크 확장이 연대의 최신 버전임을 깨쳤다. 첫 순서인 콜밴은 조합원분들이 직접 결성한 밴드로 투쟁 과정을 소재로 삼은 솔직한 자작곡들을 들려주었다. 콜밴의 보컬분은 물질을 중요시하며 인간을 기계 취급하는 풍조에 대한 비판의 멘트를 던졌고, 행사를 기획한 청개구리제작소는 다음 순서로 무대에 올라 목소리를 바코드로 변환해 인쇄한 뒤 스마트폰으로 다시 읽어내는 퍼포먼스를 했다. 비균질적인 기계음이 부르는 노래는 '청계천 8가'였다. 이어 다이애나 밴드가 와이파이를 이용해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이 그에 맞춰 일제히 합창과 연주를 하는 방식으로 '앞으로 앞으로’를 불렀다. 아마도 두 다리 안팎의 지인들일 삼십여 명의 관객들은 즐겁게 환호했다. 가능한 시도는 모두 거친 끝에 지속 가능성 자체가 지향이 되는 투쟁은 이제 미적인 차원에서 봐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나도 박수를 더 크게 쳤다.


홍대 클럽 빵 / 콜밴, 김하민, 다이애나밴드,배민경, 배인숙, 청개구리제작소 / 입장료 : 1만원

# 조직하고 모으기 by @slowcoleslaw
2016.01.24
김희천 개인전 «랠리»

김희천 개인전 «랠리»가 커먼센터에서 2015년 12월 17일부터 이듬해 1월 24일까지 열렸다. 김희천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가끔 집으로 들어오는 빛이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 때가 있었는데, 되게 싫더라구요. 그럴 때 사람들이 이상하게 걸어 다니는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면 조금 중화되는 듯해서 그런 이미지를 많이 생각”한다고 밝힌 적 있다. «랠리»에도 빛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빛은 사람의 망막으로 향하기보단, 유리창에 머문다. 유리창의 빛은 되려 바깥을 반사한다. 반사된 창에선 차가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고, 사람들이 서로를 통과하는데,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유리창이 제거된 커먼센터 안에선 영상을 찾아다니거나 본 사람들이, 창틀로 보이는 서울의 장면들과 랠리를 벌이고 있었다.


http://commoncenter.kr/exhibitions/12172015-1242016-%EA%B9%80%ED%9D%AC%EC%B2%9C-%EB%9E%A0%EB%A6%AC/
http://heecheon-kim.tumblr.com/text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1.16
넷플릭스, “라면 먹고 갈래?”

2015년 12월 13일 뉴욕타임스는 2015년 최고의 TV쇼 10개를 꼽아 소개했다. 한창 ‹Parks and Recreation›을 보고 있을 때라 자연스레 아지즈 안사리(Aziz Ansari)가 출연하고 제작한 ‘넷플릭스 시리즈’인 ‹Master of None›이 눈에 들어왔다. 넷플릭스 웹에 가면 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웹페이지를 찾았다. 그곳엔 “아직 한국은 아직 서비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굴림체로 죽은 채 떠 있었다. 2015년 1월 16일, 넷플릭스 한국이 정식 론칭했다. 엉망진창 붓으로 쓴 ‘넷플릭스’ 광고 영상을 시작으로 “라면 먹고 갈래?”의 미국 버전이라는 “Netflix and chill?”이라는 유행어가 소개되었고 많은 사람이 신문물에 대한 찬양과 간증을 남겼다. 넷플릭스의 한국 서비스 론칭은 과거 아이폰 출시와 비슷한 인상을 풍긴다. 넷플릭스로 접한 2011, 2013년 영국 채널 4의 ‘블랙미러’는 너무 쩌는 시리즈라 중2 시절 ‘라르크-앙-시엘’의 가사를 보고 받았던 충격급의 충격을 받았다. 티브이를 켜지 않는 날이 늘어 가고 있다.


https://www.netflix.com/kr/

# 그 외 by @sceneryoftoday
2016.01.05
트위터의 여자 자기자랑 운동

트위터 유저 @mind_mansion의 제안으로 시작된 해시태그 ‘#여자_자기자랑’은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자기가 가진 능력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하는 경향성을 극복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별다른 검열 없이 자기의 잘난 능력을 내세우거나 내가 어딘가에 이만큼 기여했다고 자기PR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자연스러운 것과 달리 여자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기여도를 인정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데에 소극적인 편이다. 그래서 연봉 협상 테이블이나 성과 평가에서도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1월 5일 이후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여자들의 자기자랑 트윗에서는 외모 자랑, 요리 실력이나 손재주 자랑, 운동 능력 등 다양한 자기자랑이 등장했지만, 학교나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성취를 얼마나 이루었는지에 대한 내용들도 많았다. 독해력이 좋은 여자, 빠른 학습을 하는 여자, 여러 개의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여자,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여자 등, 잘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자랑하지 않고 있던 겸손한 여자들이 여성들이 자신이 가진 장점을 돌아보고 그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자랑하는 기회를 가져 보는 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칭찬하고 그 가치를 더 인정하게 되었고, 다른 여자분들의 트윗들을 보며 자극을 받고 서로의 멋진 능력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유능한 여자들을 위한 임파워링 무브먼트, #여자_자기자랑 해시태그는 아직도 트위터에서 계속되고 있다.


https://twitter.com/search?q=%23%EC%97%AC%EC%9E%90_%EC%9E%90%EA%B8%B0%EC%9E%90%EB%9E%91&src=typd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1.01
팬시 프론티어에 대만 총통 차이잉원 등장

지난 12월, 대만의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차이잉원은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이고, 샹샹과 아차이(총통이 기르는 고양이들)는 대만 최초로 총통 관저에 입성한 고양이가 되었다. 그리고 1월 30일에 열렸던 대만 동인 행사인 팬시 프론티어에 총통 본인이 직접 행차한 사건은 전 세계 오타쿠와 후죠시에게 충격과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권력자가 동인 행사에 방문한 이벤트’는 동인 역사에서도 처음 발생한 이벤트다.

그러나 이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맥락은 있다. 차이잉원은 선거 운동 당시 자신의 무거운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고양이 집사’ 모에화 캐릭터를 선거 운동에 이용했었다. 선거 운동에 자신의 모에화 캐릭터를 사용하다니. 게다가 자신이 모에하게 그려진 굿즈를 직접 구입하다니. 현지 후죠시에게 들어 보니 차잉잉원의 모에 캐릭터로 팬시 프론티어에 참가한 동인들이 꽤 많았다는 모양이다. 총통의 캐릭터는 선거 후에도 꾸준히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총통 이미지가 들어간 머그잔은 같은 재질의 머그잔보다 3배 비싸게 팔리고 있다나. 모에 세계에서 총통은 고양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통받거나, 고양이들을 위해 메카를 장착하고 싸우는 이미지로 그려진다. 누구보다 짱 세지만 내 고양이에게는 빌빌댄다니. 이 갭모에를 싫어하는 덕후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인 행사에는 성인 대상 이미지를 갖고 나오는 동인들도 많다. 특히 팬시 프론티어는 남성향 동인이 강세인 행사다. 즉 벗은 여자 그림이 많다. 그 부분이 여성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르진 않았을까 걱정스러웠지만 ‘고수위 이미지를 잘 보이는 곳에 게재하지만 말아달라’는 지시 외에는 어떤 규제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대만의 서브컬처, 동인 문화의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차이잉원이 팬시 프론티어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 시각, 트위터 이곳저곳에서는 충격과 부러움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오타쿠들은 자국의 상황을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베 총리가 코미케에 나타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케이크 스퀘어에 나타난다면? 애초에 권력자를 모에화한 캐릭터가 권력자 본인에게 전달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할까?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무리 선거 운동을 위해서라 해도, 돈을 준다고 해도, 나로서는 모에화하고 싶은 자국 정치인이 1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모에화야말로 사랑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궁극의 애정 표현이니까. ‘총통 등장 이벤트’는 대만 동인계에 묘한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대만어를 배워야겠다는 의욕이 불타기 시작했다.


萌版《亮點》 선거 운동에 사용되었던 동영상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