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드-타임라인은 2016년 1월부터 시작한 기록 프로젝트 입니다.
각자가 주목한 작은 사건들이 직조되어 기억되고 이야기가 이어지길 바라며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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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8
비공일호 «핫써머»

핫써머 전시를 보러 간 날 최고기온이 34도였다. 아마 체감온도는 더 했겠지. 주소를 따라가다 보면 다세대 주택, 그리고 빌라, 다시 다세대 주택, 등등이 모여있는 주거지역이 나온다. 전시장이 있을 거라 상상할 수 없는 곳, 비슷비슷하게 생긴 빌라 중 하나인 북아현동 “대성아트빌”의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지하 1층 B01호가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이 나오고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실내화를 신으려니 영 어색하다.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면 그곳은 ‘거의’ 전시 공간 같다. 거실과 이어진 부엌은 가벽으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고, 전시 공간으로 쓰이는 거실과 방은 하얀 벽지로 도배되어 있다. 반지하이기 때문에 적당히 빛이 차단된 공간에 긴 LED 등으로 빛을 공간에 고루 퍼트려 장판만 아니면 ‘거의’ 전시장처럼 보인다. 원래 다른 용도로 존재했던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어 전시하는 일은 이제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본래 장소가 갖고 있던 상징성을 한 번이라도 이용하려고 한다.

가령 «벽돌 수족관 파이프»(행화탕, 2017. 04. 08- 04. 15)는 행화탕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던 ‘공중목욕탕’이라는 상징성이 강해 피하기 어려웠겠지만, 오랜 세월 축적된 공간의 상징성을 작품이나 전시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금이 가 있거나 원래 놓여 있던 사물이 작품처럼 보여 도면을 몇 번이고 다시 봐야 했고, 영상 작업이 재생 안되는가 하면, 작품이 설치된 상태가 위태로워 전시를 보면서 간혹 작품 컨디션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작품 역시 행화탕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기획과 설치 때문에 계속해서 공간과의 연속 선상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공일호는 장소에 얽매이는 대신 “현실 감각”을 호출하여 장소를 전시공간으로 치환한다.

전시공간의 모습에서 이들의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한 류한솔, 이나하, 지용일 역시 스스로의 현실 감각을 가져와 드로잉으로, 회화로, 조각으로 다시 세운다. 그리고 작업은 이 감각을 드로잉으로, 회화로, 조각으로 다시 세우는 과정에 존재하고 있다. 단지 궁금한 것은 이 현실 감각이 재현의 대상이 된 이상 매체 혹은 감각 모두 본래 갖고 있던 성격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과정이 전달을 목적으로 할 때 원래의 맥락이나 의미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나하나 지용일이 가져오는 “디지털 환경”에는 오히려 역사나 깊이 혹은 미래가 없다. 그러니까 이 모습은 전체 전시 기획과는 반대로 나아가는 태도 아닌가 싶었다.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볼 문제이다. 축적을 불신하고 미래를 맹신하지만, 그렇게 구축된 미래가 시시해질 무렵 다시 한쪽에선 무언가를 다시 세우려 하고 있다. 여름이고, (언제나 그렇듯) 여름은 덥다. 전시는 7월 2일까지이다.


https://www.artbava.com/exhibit/%ED%95%AB%EC%8D%A8%EB%A8%B8-hot-summer/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7.04.11
«덕후 프로젝트:몰입하다»

처음 전시명을 보곤 한국에서 덕후라는 말과 개념이 얼마나 쉽게 남용되는지 비판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인가, 그럼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몰입”이라는 말을 덧붙였나, 몰입, 너무 모호한데, 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일본의 오타쿠를 경유해서 한국의 덕후를 말하려고 하나, 그럼 전시보단 글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것도 아니면, 아주 단순하게 작가가 덕후이거나, 작업에서 덕후적인 모습이 보여야 할 텐데,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어떤 기준에서 작가를 덕후라고 지칭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덕후인 작가와 아닌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고, 작업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덕후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무언가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좋아하거나 수집하는 모습을 보이면 곧잘 “덕후”라고 수식하는데, 이 주관적이고 애매한 수식어를 기준 삼아 전시를 진행하진 않았겠거니 했다.

기획자는 전시를 크게 "창작의 모티브가 되거나 대중문화의 동향을 읽을 수 있는 수집(김성재, 박미나)”와 “예술적 태도와 긴밀히 연결되는 취미활동(김이박, 진기종)”, 그리고 “영화, 만화의 장면이나 연출 방식 등 관심 있는 특정 장르의 소재나 어휘를 차용한 작업(신창용, 이권, 이현진, 장지우)”, “덕후에 반영된 고정관념(조문기)”, 마지막으로 “SNS의 생산 소비 구조 속 유행의 유동적 속성에 대해 고찰(송민정)”로 구분하여 전시한다.

이러한 구분에서 볼 수 있듯, “덕후 프로젝트”는 개별 작업을 투명하게 통과해서 전시에서 형상화한 덕후라는 개념을 보여주기 때문에 덕후라는 관련성에서만 작품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상정한 덕후라는 개념 자체가 수집과 대중문화 이 사이만을 맴돌고 있어 전시뿐만 아니라 작업의 층위가 납작해지고 지루해진다. ‘기획’전시로 작업의 층위가 되려 더 단순해진 것이다.

프로젝트 갤러리2로 넘어가면 이마저도 퇴색된다. 공간 가득 관객 자신이 덕후인지 아닌지, 그리고 덕후가 무엇인지 장황하게 설명하고, 스스로 덕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공간에서 한 커플이 “자기 집에도 피규어 엄청 많잖아, 작가네 작가” 말하는 것을 듣곤 오히려 이 전시가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일반 대중이 가진 작가라는 고정관념을 느슨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덕후를 물신화한 것일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http://sema.seoul.go.kr/korean/exhibition/exhibitionView.jsp?seq=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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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2
소쇼룸 «기록으로서의 그림»

난해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자그마한 공간이 나타난다. 소쇼룸, 작은 쇼룸을 말하는 건가, 싶은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으로는 또 다른 문이 왼쪽으론 남산타워(들)이, 오른쪽으론 작은 크기의 화면에 담긴 꽈배기, 식물, 버섯 등이 그리고 그 옆으론 영상. 그 아래론 책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남산타워를 담은 그림이 보인다. 호상근 작가의 작품이다. 같은 풍경을 담지만, 어떤 때는 남산이, 어떤 때는 남산 타워가, 어떤 때는 하늘이 부각된다. 한 풍경에 3개의 레이어가 중첩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이 경계는 불분명한데, 아마 ‘날씨’탓인 것 같다.

세 발자국 정도 띄면 이우성 작가의 작품이 나온다. 영상이다. 영상 이미지보다 먼저 들어오는 것은 소리인데, 소리만으로도 작가가 집회 현장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상은 무수한 선들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다. 이 선들은 “기억을 토대로 그리거나 현장에서 직접 스케지를 한”[1] 것이다. 선과 소리는 작가의 신체와 가장 맞닿아 있다. 선과 소리 곳곳에서 집회 현장에서 걷고 보았을 작가를 볼 수 있다. 작가의 신체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기록이다.

영상 옆으로 배경 없이 정물만 그려진 작품이 놓여있다. 버섯, 식물, 꽈배기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우성 작가의 작품에서 빠르게 빠르게 흐르는 선들의 연속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대상을 오래도록 응시하고 대상을 채우는 면들을 볼 수 있다. 면, 그러니까 (유화의) 질감으로 대상이 구성되어 있기에 본래 사물이 가진 대상성이 흐려진다.

이 모든 작품은 “기록으로서의 그림(기획:윤재원)”으로 묶여있다. 여기서 기록은 기록의 양적인 측면보단, 어떻게 기록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기록은 작가가 대상과 거리를 어디에서 얼마나 두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작품에 반영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1] 전시장 배포 글 중에 이우성 작가 부분.

https://twitter.com/sosho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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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유영국, 절대와 자유»

유영국(劉永國, 1916년 4월 7일 ~ 2002년 11월 11일)의 전시 «절대와 자유»가 2016년 11월 4일부터 2017년 3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다. 전시는 유영국이 태어난 1916년부터 2002년까지를 4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구성하였다. 제1전시실은 1916년부터 1943년까지를 “도쿄 모던”으로 정리하고, 유영국이 문화학원文化學院에서 수학할 당시 사진 자료와 오리엔탈사진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었다. 대부분 경주를 찍은 것이었는데, 불상을 확대하거나 아래에서 위로 찍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권행가는 이러한 유영국 사진의 조형적 특징이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또다른 조형적 오브제로서의 공간”[1]을 확보한 것에 있다고 본다. 조형적 관심은 유영석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데, 이번 전시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화면을 채우는 색채였다.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천후궁›(1926)에 색채를 입힐 때, “실체에 가까운 색만 쓰자니 화면 전체가 너무 찬 기운이 돌”것을 걱정했다. 그렇다고 “온색을 너무 많이 쓰면 본체의 의미를 잊어버릴”[2] 터였다. 나혜석에게 대상의 리얼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유영국은 대상의 리얼리티를 어느 정도 풀어줌으로써, 색의 공간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유영국의 화면에는 무한한 색채(면)에 최소한의 대상성(선)의 조합이 나타나 있다. 혹은 색체(면)과 색채(면)을 배치하여 최소한의 형태를 확보한다. 유영국은 “창작과정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었을 때에” “항상 뚫고 나갈 길이 있다”[3]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이전 작업은 이후 작업을 하기 위한 “과정”이 되는 동시에,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연대기 순으로 전시된 작업을 보는 것은 시간 순서대로 그의 작업을 읽어나가는 것이기도 했지만, 작가가 막다를 골목에 부딪혔을 때, 길을 내는 과정을 살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1] 권행가, “전위사진과 유영국”, 『유영국, 절대와 자유』, 미술문화, 2016, 77쪽.
[2] 나혜석, “美展 出品 製作 中에”(조선일보 1926, 5, 21), 『나혜석 전집』, 태학사, 2000, 559쪽.
[3] 유영국, 『유영국, 절대와 자유』, 미술문화, 2016, 182쪽.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1603150000405&menuId=101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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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0
손현선 개인전 «눈 숨 새 Eyes Breathe Time»

손현선 개인전 «눈 숨 새 Eyes Breathe Time»이 안국역 175갤러리에서 2016년 10월 20일부터 11월 3일까지 15일간 열렸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정면에 나란히 걸린 ‹어떤 남자›의 초상화 두 점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얼핏 보면 동일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다. 왼쪽으로는 공원 놀이터에 종종 설치되어 있는 야외 운동기구가 캔버스를 꽉 채우고 있다. 원형의 바퀴가 앞뒤로 달려있고 ‹반은 돌고 반은 멈춰 있는›듯 한쪽 바퀴가 미세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그 옆엔 몸체가 사라지고 바퀴만 남은 캔버스 두 점이 걸려 있다. 다른 한편엔 ‹가만히 돌고 있는› 실링팬(Ceiling fan)의 궤적이 짧게 또는 길게 캔버스에 담겨있고, 기둥 너머에는 달리는 레미콘과 돌아가는 레미콘 탱크, 그리고 탱크에 박힌 볼트가 그려져 있다.

들숨과 날숨 사이를 오가는 ‹어떤 남자›의 호흡은 전시장에 미세한 기류를 만들고, 호흡과 동기화된 시선의 교차는 관람객과 벽에 걸린 작품 모두를 관찰하며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반대편에 그려진 실링팬은 어떤 남자(혹은 작가 혹은 관람자)의 호흡과 시선의 교차로 묶이는 한 사이클 동안 망막에 누적된 장면처럼 보인다. 장노출 기법으로 찍은 사진처럼 그려진 실링팬과 운동기구의 바퀴 궤적은 작가가 대상을 바라보고 포착했던 시간이며, 그 시간의 길이는 조절된 호흡의 시작과 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고정된 사물의 운동을 지켜봤다면 작가는 시선을 확장하여 움직이며 돌아가는 것을 응시한다. 공사현장과 도로 위의 레미콘을 포착한 작가는 다시 한 번 같은 방식의 해석을 시도한다. 기울어진 축으로 육중하게 돌아가는 레미콘의 탱크와 도로를 달리는 레미콘의 바퀴는 상황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든다. 회전하며 이동하는 대상을 따라 관찰자의 시선도 움직인다. 작가는 조절된 호흡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추적하는 동시에 대상의 결절점을 찾는다. 레미콘 탱크에 박힌 볼트는 호흡의 시작과 끝이다. 밋밋한 표면의 모호함 속에서도 기준이 되는 지점을 찾아 포착한다. 그리고 그 지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호흡을 일치시키고 있다.


http://blog.naver.com/oneroom_blog/22085875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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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이중섭 작가론, 어떻게 쓸 것인가-신화에서 역사로›

“이중섭 작가론, 어떻게 쓸 것인가-신화에서 역사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다소 분명한 주제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에 관한 학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김명훈, 신수경, 김미정, 박소현이 발제자로 참여했으며, 미즈사와 츠토무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발표 뒤에는 ‘현장에서 본 이중섭 연구의 과제’라는 주제로 라운드테이블도 열렸다.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이중섭 그 자체보단 이중섭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고, 이해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특히 김미정의 ‘이중섭 회화의 재료와 기법의 독창성’은 이를 물질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는데, 이중섭의 개인사로 재료의 부족을 단정 짓지 않고, 그의 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재료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그래서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사실 개인사나 상황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뒤이어 박소현은 “‘이중섭 신화’의 또 다른 경로(매체)들: 1970년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이중섭이 왜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소위 신화적으로—이해되는지 규명하고 있었는데, 이중섭이라는 개인사가 그리고 그의 특이한 성향이 어떻게 그를 신화화했는지, 1970년대의 상황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었다. 발표자가 중심으로 말하는 것은 시인 고은이 쓴 이중섭 평전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문예영화 이중섭이다. 시인 고은이 쓴 이중섭 평전은 문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쓴 “‘장르확대’의 활동”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이중섭의 예술성을 이중섭 개인 생활을 통해 부각하려 했고, 이에 따라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이며 현대를 대표하는 천재이자 우상”으로 이중섭을 신화화한다. 여기에는 작가 이중섭이 아니라 ‘이중섭 신화’에 대한 재현만이 남을 뿐이다.

이중섭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보기 위해 지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뭔가 사람들은 사생활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그것만 계속 파려고 한다. 학회 시작에서 한 발표자는 이중섭이 신화화된 것이 미술사학자들의 태만 때문이라 지적했는데, 이게 단지 태만으로 생긴 결과일까, 이 발표를 다 듣고 그렇게 지적한 발표자가 여전히 태만을 지적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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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2
2016 북한미술세미나 — ‹북한미술 어제와 오늘›

2016년 9월 2일에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북한미술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 아래 2016 북한미술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분단 이후 북한미술의 흐름과 성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기획했으며, 황정연, 강민기, 홍지석, 박계리의 발표로 진행되었다. 황정연과 강민기는 각각 “북한의 한국미술사 연구(1945~2015)”와 “남한의 북한미술사 연구(1990~2015)를 발표했는데, 황정연은 북한의 미술가와 미술연구에 대해 강민기는 남한에서 이루어진 북한 관련 미술 전시와 그간의 연구들을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두 연구자 모두 북한의 자료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그리고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한계로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루어진 연구들을 되짚어 봤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홍지석은 북한의 작품 생산과 수용(유통, 소비)을 통해 북한에서 미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했다. 실상 북한에서 미술 작품은 사회를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정치 사회 상황에 따라 선전하려는 내용이 계속해서 바뀐다. 작품 내용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반면 형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북한 미술은 다양한 형식을 일원화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며, 사회주의 몰락 이후 새로운 활기를 외부에서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계속해서 형식이 아닌 내용에 대한 문제와 노동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북한 미술은 나아가고 있다. 고립된 체제에서 강도를 높이기만 하는 북한의 미술은 굉장히 위태로워 보일 뿐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 북한 미술에 관해 거의 관심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북한 미술을 말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근대미술사를 말할 때, 월북 작가나 해금 작가를 말할 때, 사회주의 미술을 말할 때, 재일 조선인을 말할 때, 고구려 고분벽화를 말할 때 등 북한 미술은 생각 보다 여러 곳에 공백으로 남아있다. 이 공백을 모르쇠 지나칠 수도 있지만 한 두번 걸리다 보면, 공백은 언제고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콤퓨터필림화"를 장려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미술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http://blog.naver.com/nrichpr/22080010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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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7
아트선재센터 «커넥트 1: 스틸 액츠»

2016년 8월 27일부터 11월 20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커넥트 1: 스틸 액츠»가 열렸다. 이 전시는 소장품을 “역사화해 쌓아놓거나 과거 자체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소장품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냄으로써 과거를 현재화”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이불, 정서영, 김소라의 (소장)작업이 전시되었으며, 이들의 작업은 “동시대적 고민을 수행적 담론으로 풀어내 작업에 담아왔”다고 한다. 여기서 동시대적 고민을 어떻게 수행적 담론으로 풀어내는 것인지, 그러니까 동시대적 고민이 어떻게 작업에 수행적 담론으로 드러나는지,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소장품을 (다시) 전시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이를 위해 전시가 택한 방식은 “첫째, 소장된 작업을 둘러싼 각종 레퍼런스를 통해 작업을 맥락화하는 것. 둘째, 과거 전시를 재현함과 동시에 새로운 작업으로 이를 현재화하는 것. 셋째, 프로젝트의 한 형식으로 작업을 불러오는 것”이다. 레퍼런스와 함께 소장품을 (다시)전시했을 때, 아카이브 전시로 보일 위험이 있고, 이를 지양하기 위해 프로젝트라는 형식을 가져온 것 같았다. 결국 «커넥트 1: 스틸 액츠»은 소장품을 통해 아트선재센터의 시간을 보여주지만, 과거의 시간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프로젝트라는 형식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라는 형식은 비숍의 말을 빌리자면 소장품을 “동시대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프로젝트"가 소장품을 동시대적으로 “커넥트”해주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선 과거의 작업을 단지 다른 공간에 전시하는 것 이외에는 더이상 드러난 것이 없어 보였다. 이것이 현재화일까, 그냥 현재의 모습에 맞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각종 레퍼런스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그것이 단지 전시장 입구에 작가의 도록을 두는 것 정도에 그친다면, 그것을 각종 레퍼런스라고, 작업을 (재)맥락화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아트선재센터의 이번 프로젝트는 과거를 현재에 맞게 조율하는 것에 그친 듯해 보였다.


http://artsonje.org/16_08_connect1/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8.14
<<멀리 있는 방>> - 그림자들의 세계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암흑 공간은 유난히 더운 올 여름날의 햇빛에 익숙해진 시각을 순식간에 앗아간다.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진 공간에 놓인 오브제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손으로 더듬거리며 그 위치와 크기를 가늠해야 할 뿐이다. 마치 페드로 코스타의 작품들 속에 비친 유령들(‘유령’은 그의 작업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이다)과 함께 같은 공간에 위치하기 위해선 많은 것을 잃어(혹은 내려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멀리 있는 방>>에서 바깥세상에 존재하던 관람자들이 잃는 것은 시각뿐만이 아니다. 포르투갈에서 온 이 두 작가가 만들어낸 그림자들의 세계는 전시장 바깥에 위치한 빛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100kg이 넘는 후이 샤페즈의 철로 만들어진 오브제들은 그 강직도와 무게마저 잃어버린 채 액체(수은에 가까운)와 같은 매끈한 모습으로 허공에 부유하고 있다. 1층에 놓인 그가 만든 의자들은 본래 영화 상영 공간이었더라면 누군가를 앉히기 위해 존재했을 테지만 그 그림자들의 세계 속의 의자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위로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그것들 스스로가 <용암의 집>에서 따온 코스타의 영상물을 ‘관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스타의 유령들은 무어라 하는지 알 수 없는 주문을 읊조리고, 전시 공간의 스피커들은 이 주문이 어디서 흘러들어오는지 정확한 방향을 가늠할 수 없게끔 숨겨져 있다. 이 그림자들의 공간이 펼쳐진 일민 미술관이 서울의 가장 중심지에 위치한다는 사실도 상기해볼 필요가 있는데, 페드로 코스타의 영상들은 리스본의 재개발 빈민가 구역인 폰타이냐스에서 촬영된 영상들이기 때문이다.

코스타가 담아낸 폰타이냐스의 인물들은 전시를 보는 동안에 존재하다 곧 쉽게 증발할 양심적 가책이나 그들을 향한 연민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의 마지막 층으로 올라선 순간 ‘관람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자들의 세계는 견고하게 존재하고 무너지지 않는다. 과연 나는 이들의 얼굴을 ‘강인한 소수자의 얼굴’이라고 명칭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림자들의 세계에서 밀려나 밖으로, 서울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은 영화관의 공간과 닮아있다. 희미한 영화의 빛이 견고한 그림자들의 세계를 비춰내듯, 촛불 역시 그림자들의 세계를 비춰낸다.


일민미술관
http://ilmin.org/kr/exhibition/distant-rooms/

# 미술관과 그 근처 by @louderaloud
2016.07.29
«휴면 동굴» — 뒤집힌 스킨

동굴에 비유될 만한 신체기관은 무엇일까? 어렵지 않게 식도를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의 의지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곳. 활동과 휴면의 분기가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복잡한 기관이다. 식도는 또한 신체의 외부기관이다. 신체는 외부기관과 내부기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신체는 팔, 다리처럼 외부 세계에 노출된 기관과 심장, 콩팥, 간처럼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서는 외부 세계와 만날 수 없는 기관으로 나뉘는데 식도는 입을 열면 바깥에 바로 노출되므로 외부기관인 것이다. 내부이면서 외부이기도 한 식도는 안팎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중의적 표피다.

‘과잉으로 치닫는 근래의 네트워크 현실’은 인간 안의 동굴인 식도와 닮아있다. 내, 외부가 모호하며 그 성질의 변화는 자율적이기도 하지만, 뇌분비계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제어되기도 한다. 현실에서의 스킨은 물리적인 부피감을 지니고 있지만 네트워크상에서의 스킨은 관념에 불과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순서의 관계다. 식도와 동굴은 안과 밖이 뒤집힌 스킨의 유희다. 안성석과 니콜라스 펠처는 «휴면 동굴»에서 이 순서의 관계를 해부하고 있는 듯하다.

«휴면 동굴»에서 안성석은 작업 ‹내피 a›, ‹내피 b›, ‹내피 c›, ‹양성외피›를 통해 스스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모터) 돌려지는 반 수동적(자동적) 오브제를 만든다. 오브제 끝에 달린 고무판은 탄성을 유지한 채 수축과 응축을 반복하며 오브제를 회전시킨다. 식도가 음식물을 삼키며 연동운동을 하듯 스킨의 이미지는 소화기관으로 밀려 내려간다. 한편 니콜라스 펠처는 ‹재질의 자세#5›에서 가상의 오브제에 재질 이미지(Material Texture)를 입히고 의도적으로 모델링을 꼬아버린다. 모델링에 흡착된 이미지도 함께 꼬인다. 하지만 여기서 내, 외부의 교차라든지 이미지의 탈착은 일어나지 않는다. 외부세계는 스스로 뒤집고 꼬아도 외부세계일 뿐이다.


http://space-nowhere.com/201608/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7.26
«지속가능을 묻는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10주년 특별전»

서울대학교 미술관 개관 10주년 특별전 «지속가능을 묻는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10주년 특별전»이 2016년 5월 17일부터 7월 24일까지 열렸다. 미술관에 들어가면 1층에서 티켓을 발권한 후 자연스럽게 건물 스킨에 붙어있는 동선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2층에는 «세 가지 축: 건축, 전시, 교육 아카이브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의 약자로, 건축가 램쿨하스가 이끄는 건축설계사무소)의 서울대 미술관 설계 자료들(도면, 모형, 드로잉 등)이 있었고,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는 그간 서울대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포스터와 도록 아카이브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3층에는 김춘수, 박진영, 이완, 이인현, 이정민, 정직성, 토마스 스트루트의 작품이 “지속 가능을 묻는다”라는 주제 아래 모여 있었다. (조혜진의 작품은 미술관 외부에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는 전시공간을 나누어 작가별로 작품을 모아 독립적으로 전시되는 방식이었고, 참여작가들의 작품 도면과 작가 노트가 담긴 페이퍼가 각각의 전시공간 밑에 놓여 있었다. 페이퍼를 한 장씩 떼가면서 작품과 전시를 둘러 보았다. 작가 노트에는 작품을 지속하는 것과 생활인으로서 삶을 지속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뤘다. 작품을 지속하는 것도 삶을 지속 하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작품과 삶의 거리가 작가마다 차이를 보였지만, 어쨌든 각자 이 둘의 거리를 조절해 가면서 작업을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전시는 이렇게 작품을 통해서, 미술관이라는 건축물을 통해서, 그리고 그간 이루어졌던 전시를 통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속할 것을 다짐한다. OMA의 첫 설계 시안이 1996년에 나오고 10년 동안 세차례 수정을 거쳐 미술관이 최종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10년 동안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지속했던 시간을 점검하고 앞으로 지속할 시간에 대해 고민하는 것. 이는 단지 미술관의 고민에 한정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보여준 것처럼 (작품이나 삶을)지속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기도 하며, 단체도 개인의 꾸준함이 담보될 때에만 지속할 수 있다. 전시는 그렇게 과거의 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지속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http://www.snumoa.org/Moa_new/programs/exhibitions_view.asp?id=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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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9
SSQQ 오픈 스튜디오, 금강식물원—이소요 관상용 선인장 디자인: 선인장 접목 워크샵

‘슬로우슬로우퀵퀵’은 중구 산림동 1번지에 있는데, 막상 찾아가 보면 약간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장소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건물은 3층으로, 1층은 공연장, 화원, 식당 등이 있는 복합 공간, 2층과 3층은 작업실 겸 전시 공간으로 나름 알차게 사용되고 있었다. 오픈 스튜디오는 7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 중 ‘금강식물원-이소요 관상용 선인장 디자인: 선인장 접목 워크샵’(이하 선인장 접목 워크샵)에 참여했다.

선인장 접목 워크샵은 선인장 접목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직접 선인장을 접목해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워크샵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접목된 선인장이 우리나라 주력 수출 상품이라는 것, 그러나 정작 품종 등록은 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모른 채 지냈을 것이다. 물론 몰라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대부분 워크샵은 해보는 것, 경험하는 것에만 의의를 둔다. 그러나 선인장 접목 워크샵은 선인장 접목 방식뿐만 아니라, 접목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도 충분히 알려주었으며, 이는 곧 작가의 작업을 이루는 내용이기도 해서 워크샵을 통해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었다.

설명이 끝나고 자리를 옮겨 선인장을 직접 접목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테이블 위에는 접목을 위한 도구와 선인장들이 종류별로 놓여 있었다. 선인장 접목은 서로 다른 종류의 선인장의 물관을 맞붙여주면 되는 것이어서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날씨는 후덥지근했지만, 테이블에 여럿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게 오랜만이기도 했고, 설명으로만 듣던 접목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나저나 어설프게 시도했던 선인장 접목이 제대로 이뤄졌을까? 수술 회복 기간은 3주라고 한다.


http://slowslowquickquick.net/wp/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5.27
‘시각문화리뷰’ Ep.04 공개 녹음, 포토닷&오큘로 매거진과 함께

‘시각문화리뷰’는 “미술, 시각문화 관련 책과 글을 소개”하는 팟캐스트이다. 우리는 더북소사이어티에서 열린 «90년대 한국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토크에서 시각문화리뷰를 처음 접했다. 토크는 두 진행자(최지혜, 박재용)와 저자인 문혜진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토크가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점, 그리고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후에 이 토크를 팟캐스트로 들었을 때는 편집과 팟캐스트라는 매체의 한계로 현장감이나 내용들 간의 긴밀함이 느껴지지 않아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미술 관련 책을 얘기하는 시각문화리뷰의 ‘리뷰’가 궁금해 계속해서 팟캐스트를 구독했다. 시각문화리뷰는 잊을 만하면 팟캐스트를 하나씩 업로드 했다. 두세 개의 에피소드가 올라오고, 또 다른 공개 녹음에 대한 공지가 있었다. 이번 공개 녹음은 «오큘로»의 편집자인 이한범, «포토닷»의 편집장인 박지수와 두 명의 진행자 그리고 작가 진시우와 함께 진행되었다.

녹음은 각각 잡지에 대한 소개와 잡지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할 수 있었는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잡지가 완성되는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박지수 편집장은 그간 사진 잡지가 “동향지” 혹은 “국외의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에 멈춰 있었다고 지적했다. «오큘로»의 이한범은 어떤 장르나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이 분명 존재하지만, 장르나 매체를 이유로 미술 잡지나 영화 잡지에서 이들의 작업을 실질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다. 이들 잡지는 단지 상황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떠한 식으로든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잠시, «포토닷»은 누구나 느낄 만한 지금의 모습이 모두가 느낀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다시 변화를 갖는다. «오큘로»도 새로운 필자와 글을 소개하지만, 여전히 글과 필자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더 많아져야 하고, 그래야 작품이든 공간이든 뭐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곳에서 이뤄진 공개 녹음도 팟캐스트로 업로드 될 텐데,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책을 읽고 그 책이 계속해서 읽혀 어느 순간 또 하나의 책이 출간되는 것처럼 말이다.


http://www.v-c-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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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4
«조판 연습: 길 잃은 새들» — 말은 쉬워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

포스터가 익숙했다.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포스터였다. 그때 누가 나에게 “이거 어때?”라고 물어봤다. “그냥 워크룸 같다”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었다. 후에 이경수 디자이너의 작업을 몇 번 더 접한 후, 내 대답을 몇 번이나 후회했다. 다시 포스터를 봤다. 같은 글귀이긴 했다. 그 포스터가 아니었다. 빨리 날을 잡아야 했다.

전시장은 예상했던 대로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편안하고 정갈했다. 그의 작업과 클라이언트, 동료들의 코멘트와 작업물을 번갈아 보며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정재일의 앨범 ‹바리›를 위한 작업이 걸려 있는 작은 공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음악이 신경을 자극하니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모든 작업을 봤으니 전시장을 나서려는데 전시장을 이루고 있는 (프레임, 그 안의 작업, 프레임 밖 텍스트의) 그리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다시 보니 각 코멘트들의 조판이 모두 다르다는 게 보였다. 다음엔 프레임 안 종이의 질감이 눈에 들어왔다. 프레임 안에 종이를 겹쳐 넣어 실제 작업물(책)의 의도를 살린 작업도 있었다. 그다음엔 들고 있던 팸플릿에 글자 스펙과 작업 밑 코멘트들의 글자 스펙이 같다는 게 보였다. (확대/크롭된 작업물은 어떤 비율로, 확대 재생산된 걸까?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다음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보였다. 분명히 내가 아는 ‘sm신중고딕'인데 처음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러고 나니 끝내는 글자와 글자 사이 공간이 자꾸 보였다. 상식으로 알았던 것들이 뒤집히고 덧씌웠다. 작업에 다가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한 꺼풀씩 새로운 차원이 열릴 때마다 감탄했다. 동시에 흰 종이 위 검은 글씨만으로도 봐야 하고 곱씹을 게 너무 많아 진이 다 빠졌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전시장이 꽉 차오르자 방심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가 가장 큰 인상으로 남았다. “거슬림 없는 편안함, 정갈함”이라고 들어서며 쉽게 재단했지만 그건 당연히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방심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 당연한 태도 역시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귀한 태도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당연한 것을 지켜 나간다. 큰 위안이었다.


갤러리 팩토리 http://factory483.org/exhibition/2616

# 미술관과 그 근처 by @sceneryoftoday
2016.03.31
역자후기 Translator’s Note 6 — 클레어 비숍, «래디컬 뮤지엄»

‘역자후기’는 일민 미술관에서 “동시대 미술 담론을 구성하는 다양한 서적의 번역자들을 초청하여 직접 주해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3월 31일에는 역자후기 6번째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며, 클레어 비숍의 «래디컬 뮤지엄»이 다뤄졌다. «래디컬 뮤지엄»은 전문 번역가가 아닌, 스터디 모임 ‘오프스쿨’이 번역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오프스쿨 구성원 중 구정연, 김해주, 윤지원이 참석해 책 전반에 관한 내용과 번역 과정을 설명해줬다.

비숍은 «래디컬 뮤지엄»에서 "변증법적 동시대성"을 강조한다. 비숍이 말하는 변증법적 동시대성은 “현재와 연관이 있는 과거의 돌발적인 출현으로 미래를 재부팅 하려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이다. 이에 따라 비숍은 동시대적인 것을 “시대 구분이나 담론의 문제”가 아닌, “모든 역사 시기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 혹은 실천”으로 본다. 여기서 미술관은 변증법적 동시대성을 정교하게 일궈내는 주체로 작동한다. 변증법적 동시대성을 실천하기 위해선 좀 더 구체적으로 미술관의 소장품과 기획이 중요하다. 이 자리에서도 미술관 소장품의 범주, 동시대성이라는 말이 갖는 모호함, 소장품과 아카이브에 대한 질의가 오갔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문득 궁금해져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리스트를 찾아보았다. 소장품은 총 7,839점이었고, 황규백 <바이올린, 장미, 소파> 이후로는 “저작권 협의” 때문에 작품 이미지를 볼 수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매년 꾸준히 소장품 전시를 하고 있다. 이에 의의를 둘 수 있으나, 이 책에서 비숍은 “소장품을 유물 창고로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공통재의 아카이브로 새롭게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소장품을 ‘다시’ 전시하기보단, 무엇을 어떻게 호출하는지가 중요하며, 여기에 미술관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소장품 전시를 보고 소장품을 “공통재의 아카이브로 새롭게 상상”하는 것이 가능할까?


http://ilmin.org/kr/program/translators-note-6/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3.14
국선즈연 토론회 ‹예술 통제와 검열의 현재성›

국선즈(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에 즈음한 미술인들의 모임) 활동의 “마감”과 “검열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을 천명”하는 토론회가 충무아트홀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다. ‘검열’이라는 주제 아래 미술가, 기획자, 교수 등 예술 전반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발표가 오고 갔다. 연극계에서 나타나는 검열의 사례를 역사적으로 되짚어보거나(임인자), 검열의 실체나 검열에 대한 저항의 모습을 밝히는 내용(이동연, 서동진)으로 발제가 진행되었다. 특히, 미술 현장에서 작동하는 '자기 검열'을 비롯한 모든 (제도적) 검열에 대한 발제(안소현)가 흥미로웠다. 검열은 결국 “재계약”이나 “예산”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검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괜한 일’을 만드는 것이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편하다. 외부에서 검열하기 전에 자신을 검열하게 ‘만드는’ 것, 지금 우리 눈앞에 놓인 검열의 모습이다.

발제가 끝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검열 주체에 관한 질문이 주가 되었으며, 이 질문은 너무 쉽게 “국가보안법”으로 수렴되었다. 검열의 주체나 기준이 궁금하면 차라리 검열하는 사람에게 묻는 편이 낫다. 검열이 국가보안법 때문이라고 한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노력하면 된다.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검열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 정도였다. “예술이 명료하지 않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다의적이고 복합적이라는 의미에서의 애매성은 검열의 해석적인 단순성, 단의성과 어떤 깊은 수준에서 대립한다. 검열이 다만 몇 개의 작품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예술을 그런 식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 자체가 예술 전체를 멍청하게 단순화하는 아주 나쁜 도구이다.”(박찬경, 최근 미술계에서 있었던 검열사태를 보며)


https://www.facebook.com/groups/petition4art/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2.05
교역소 기획전 «헤드론 저장소»

교역소 기획전 «헤드론 저장소»가 2016년 1월 15일부터 2월 5일까지 열렸다. 전시 관람은 예약을 통해 진행되었다. 전시장을 찾느라 한참 헤맸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관객 수에 놀랐다. 전시장은 마트 뒤편 물류 창고로 보이는 건물 지하에 있었다. 지하는 꽤 넓었고, 전시된 작업 대부분 영상과 설치였다. 더 넓게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업처럼 보였다. 따라서 벽이 허물어져 있는 곳에 영상이 놓여 있어도, 설령 코타츠 안에서 영상을 본다고 해도 작업을 관람하는 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작업을 보는 행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2015 1월 24일 김희천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커먼센터가 문을 닫았다. 교역소 또한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모든 교역을 종료한다.” 교역소는 명사라기보단 형용사처럼 보였다. 고정되어 있기보단 상태나 성질에 가깝게 느껴졌고, 관객들은 자신의 관람 행위에 교역소와 같은 수식어를 더하길 즐겼다. 하나의 아이템이 줄었다. 이 아이템은 점점 줄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미술을 보는 것은 또 어떤 식으로 변화할까. 앞으로의 시간이 궁금하다.


교역소

# 미술관과 그 근처 by @oneroom_twt
2016.01.24
김희천 개인전 «랠리»

김희천 개인전 «랠리»가 커먼센터에서 2015년 12월 17일부터 이듬해 1월 24일까지 열렸다. 김희천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가끔 집으로 들어오는 빛이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 때가 있었는데, 되게 싫더라구요. 그럴 때 사람들이 이상하게 걸어 다니는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면 조금 중화되는 듯해서 그런 이미지를 많이 생각”한다고 밝힌 적 있다. «랠리»에도 빛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빛은 사람의 망막으로 향하기보단, 유리창에 머문다. 유리창의 빛은 되려 바깥을 반사한다. 반사된 창에선 차가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고, 사람들이 서로를 통과하는데,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유리창이 제거된 커먼센터 안에선 영상을 찾아다니거나 본 사람들이, 창틀로 보이는 서울의 장면들과 랠리를 벌이고 있었다.


http://commoncenter.kr/exhibitions/12172015-1242016-%EA%B9%80%ED%9D%AC%EC%B2%9C-%EB%9E%A0%EB%A6%AC/
http://heecheon-kim.tumblr.com/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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