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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쟤는 10만원이나 벌었는데 세금을 안냈대요!

12월 22일, ‘곺다'라는 동인은 웹갤러가 커미션[1]을 탈세로 문제삼아 자신을 신고한 사실과 함께 세무소에서 들은 답변을 트위터에 공유했다. 모두 알다시피 커미션 같은 소액 거래가 ‘탈세'로 문제될 일은 거의 없다. 곺다는 자신의 커미션 수익이 10만 원 가량이라는 트윗도 덧붙였다. 세금 문제가 있을 수도 없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간을 들여가며 세무소에 출석해야 했다. 커미션과 동인 통신판매만 신고한다는 웹갤러가 있을 정도이니, 아마 웹갤러들은 자신들이 정의라고 부르짖던 주장조차 잊어버린 모양이다. 어째서 웹갤러들이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면서 이런 일을 하는지는 이제 너무 투명하게 보이는 까닭에 굳이 글로 적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그리고 웹갤러들이 활발히 움직일수록 동인 활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받은 동인들의 사례도 쌓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걱정스러운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번째로는 ‘웹갤러의 깽판’이 동인활동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상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동인 활동은 다른 동인과의 교류를 통해 지속되고, 동인계는 활동하는 동인 서로가 가지고 있던 영역과 교류하면서 외연을 확장해 간다. 무엇보다 ‘덕질’에는 리스크가 없다. 하지만 웹갤러라는 리스크가 상수가 된다면, 기존의 동인들과 새롭게 유입되는 동인 모두에게 이는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부담이 된다. 다행히 최근의 동인계에는 옛날처럼 물 밑에 숨기보다는 훼방에 당당히 맞서려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두번째로 생각할 지점이 있다. 여전히 법에 대한 문제다. 우리의 활동은 법에 저촉되는가의 여부에 따라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예컨대 탈세에 걸리지 않는 커미션은 괜찮고, 걸리는 커미션은 괜찮지 않은 걸까? 만약 탈세 혐의가 적용된 동인이 있다면 과연 화살은 누구에게 돌아가게 될까? 이런 경우 웹갤러가 아닌 해당 동인을 같은 동인이 공격하게 되는 건 아닐까? 우리 스스로 동인계를 설명하고자 할 때 법을 기준으로 두게 되면 우리는 결국 웹갤러와 같은 논리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니까.

웹갤러가 동인들을 신고하고, 신고당한 동인이 상황을 공유하는 사례들이 점점 축적되고 있다. (어차피 법에 저촉되지 않으니)신고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분위기, 그리고 신고를 당해도 문제가 없었음을 알리는 생존신고가 이어지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 생존신고가 오히려 신고로 불이익을 당한 동인들의 이야기를 삭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시기다. 지금 동인계에는 ‘신고를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나는 괜찮다'라는 서사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는 조금 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누군가의 불이익이 전제되는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동인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건 같은 동인이다.


[1] 동인계에 정착한 일종의 작품 후원 방식. 동인은 커미션을 열어 리퀘스트를 받고, 해당하는 리퀘스트에 대해 후원금을 받는다. 금액은 천원 단위에서 만원 단위까지 다양하지만, 대체로 건당 10만원을 넘지 않는 소액이다.
[2] goo.gl/4k33e3 곺다님이 상황을 공유해 주신 트윗.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11.16
폭로는 선택이 아니다

오타쿠 내 성폭력 해시태그를 빌어 피해자들은 서브컬쳐계의 성폭력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서브컬쳐계는 성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강간 문화를 키워왔다. 그러나 이토록 폭력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른 경우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길은 거의 없다. 또한 그가 자행한 폭력의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혹자는 폭로라는 방법을 택한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신고할 수도 있는데 왜 이런 방식을 택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선택이란 가짓수가 있는 길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오타쿠_내_성폭력을 빌어 쏟아져나온 고발들의 수는 고발 이외에는 이 폭력을 갈무리할 어떤 장치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해자들은 폭로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오직 폭로만이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이었다.

그렇다면 고발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래는 서브컬쳐계에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초롱아귀의 최근 트윗이다.

“안녕하세요 작곡가 초롱아귀입니다 현재 A와 B에 대한 형사 및 민사 소송 진행중입니다~ 그 외의 다른분들중 추가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시하거나 도가 지나친 악플, 업무방해관련 자료들도 전부 캡쳐되어 있으며 추가고소가 진행될 예정입니다”[1]

A와 B는 초롱아귀의 성폭력 사실을 고발했던 피해자들이다. 해시태그를 타고 나온 고발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고소를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피해자는 법을 사용할 수 없는데, 가해자는 손쉽게 법을 사용하는 상황. 이 지면을 빌어 다시금 피해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 기록은 적어도 폭력을 잊히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1] https://twitter.com/Agui___/status/798844396057694208
본문에 발췌한 초롱아귀의 원 트윗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11.07
누구를 위한 음란물 신고일까?-포스타입 사태 정리

포스타입은 동인계 이용자들을 타겟으로 한 국내의 창작물 마켓이다. 포스타입의 결제 시스템을 통해 창작물의 웹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여타 서비스와의 차별점이었고, 성인 인증을 통해 성인물을 올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해 왔다. 그런데 포스타입은 지난 11월 7일 ‘포스타입 음란 포스트 관련 조치 - 성인물과 음란물은 다릅니다’라는 제목의 공지를 올렸다. ‘포스타입에 올라오는 음란물을 제재하겠다’는 요지의 짤막한 공지였다.[1] 그리고 공지가 올라오고 얼마 안되어 포스타입은 작가들에게 포스타입이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또 몇몇 작가들은 음란물 유포 혐의로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자진하여 수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누가 포스타입과 작가들을 신고했는지는 명확하다. 디씨인사이드의 웹갤에는 오래 전부터 ‘포스타입을 신고했다’는 글이 올라왔으므로, 이 일을 벌인 것은 웹갤러 중 한명일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 공지는 큰 논란이 되었고, 포스타입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포스타입은 11월 9일 다시 공지를 올렸다.[2] 11월 7일의 공지보다는 설명이 상세하고, 포스타입의 입장이 더 잘 드러나 있지만, 근본적인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신고한 사람이 누구고, 신고당한 사람이 누구건간에, 서브컬쳐계의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겠다는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웹갤러들은 남성향 작품 및 작가는 신고하지 않는다. 이들의 타겟은 오직 여성 작가, 여성향 작품뿐이다. 그리고 이 방법이 먹힌다는 선례가 생긴 이상, 이와 동일한 수법의 훼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포스타입은 새 공지에서 음란물과 청소년보호법 관련 조항들을 상세하게 적었고, 포스타입의 조치들은 ‘방어적인 입장’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이고, 이럴 수밖에 없음을 웹갤러들 또한 알고 있다. 따라서 신고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포스타입 건으로 수사를 받게 된 작가들 중 daki(@kcy2292)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작가는 이번 사건을 기록해 나가는 계정을 만들었다.[3] 웹갤러에게 신고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그를 위한 조처는 포스타입이 스스로 말하고 있듯 방어적이다. 그리고 이 상황이 지속되면 동인계가 쌓아온 자생적인 여성 시장의 존속을 보장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법이고, 제도이고, 인식이다. 웹갤러가 사용하는 법이라는 무기 자체를 뜯어고치고 여성의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포스타입 사태가 보여주듯 현행법상 음란물 제재는 동인계에 있어서는 성인 여성이 성인물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일을 막거나 제한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법의 힘은 실재하는 청소년과 여성들이 음란물로 피해를 받고 있는 현실에 집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1] http://blog.postype.com/post/436989/
11월 7일에 올라온 포스타임의 음란물 제재 예정 공지
[2] http://blog.postype.com/post/439835/
11월 9일에 올라온 포스타입의 새 공지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10.17
#오타쿠_내_성폭력: 취향의 거죽을 쓴 폭력

10월 17일, 트위터의 한 유저가 #오타쿠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렸다. 이 해시태그는 #문단_내 성폭력, #예술계_내 성폭력 등 각계각층으로 퍼졌고 생존자와 피해자들은 이 태그를 통해 폭력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11월 4일인 지금도 #오타쿠_내_성폭력 태그를 통해 오타쿠들의 성폭력 고발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에게 취향이 있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 말은 오타쿠라면 모두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처럼 보였다. 생계나 업에 관련되지 않은 취미의 영역이므로 위계가 생기지 않고, 그래서 특별한 곳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성폭력은 성욕의 외피를 썼을 뿐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의사를 무시한 정신적, 신체적 침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실행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우리의 세계는 수평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말은 폭력을 가리는데 일조했다. 피해자들을 대하는 방식,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삭제하는 방식이 '바깥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더욱 참담하다.

여기에 더해, 오타쿠들이 지속적으로 접하는 작품들은 여성혐오에 기반해 만들어진다. 서브컬쳐의 수많은 서사들은 여성피해자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성 캐릭터는 강간당하거나 도륙당한 여성 캐릭터가 없다면 주인공으로서 각성할 수 있는가? 남성 캐릭터의 유능함은 멍청한 말을 하는 여성 캐릭터가 없다면 돋보일 수 있는가? 미소녀 동물원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언젠가 오타쿠와 섹스를 할 예비 섹스돌로서 존재하고, 캐릭터들은 가상이므로 상대를 이해하거나 상대의 고통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가해자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설정이다. 서브컬쳐가 제공한 여성혐오적 세계관은 청소년을 ‘로리’라고 부르며 낄낄댈 수 있게 만들었고, ‘모든 취향을 존중한다’는 오타쿠계의 모토는 성추행을 하고도 취향을 핑계로 대기만 하면 제지받지 않는 강간 문화를 만들었다. 남성 오타쿠와 여성 오타쿠가 만났을 때 여성은 같은 오타쿠, 나처럼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여성 오타쿠는 보지였고, 거유거나 빈유였고, 아헤가오였고, 챰피였으며, 로리였다. 가상의 설정과 현실의 인간도 구분하지 못한 채 가상에서만 용인될 수 있는 폭력을 사람에게 휘두르기까지 오타쿠 문화에 제동장치는 없었다.

우리는 이제 가상과 현실을 분리하려 한다. 취향이 경계를 넘어 현실로 기어나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이토록 끔찍하다. 현실을 침범한 가상 세계와 그에 경도된 자들, 이 폭력을 묵과하거나 ‘원래 그런 것’으로 정당화 해 주던 씬을 어떻게 뒤집고, 터뜨리고, 흔들 수 있을까. 이 무브먼트가 어디에 도착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제 폭력을 취향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트위터에서 #오타쿠_내_성폭력 검색하기 goo.gl/Cfm9Or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9.17
모두의 관캐 ‘쿠지쿠라 마리루리’

“침묵의 요람”이라는 단커[1]의 캐릭터인 ‘쿠지쿠라 마리루리'[2]가 “카게로우 프로젝트"의 ‘마리'[3]라는 캐릭터를 베꼈다는 파쿠리(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끼는 행동) 고발이 있었다. 고발한 사람은 ‘베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고, 고발당한 사람은 ‘베끼기는커녕 참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 쿠지쿠라 마리루리는 마리를 베낀 캐릭터일까. 물론 두 캐릭터는 닮았다. 그리고 파쿠리가 아니다. 이 두 캐릭터가 닮은 건 일본의 서브컬쳐라는 동일한 레퍼런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흰 머리와 붉은 눈은 신비로우면서 아름답고 자기파괴적인 캐릭터를 만들때 고려하게 되는 스킨이다. ‘소녀캐' 역시 십수년에 걸쳐 수없이 변주되고 있는 템플릿이다. 이렇게 ’베낀 듯 닮은' 캐릭터는 오늘도 수십명씩 태어나고 있다. 그러나 후죠시에게 ‘누구누구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특정할 수 있는 그림체와 문체는 ‘자기 자신'과 동일한 위상을 지닌다. ‘나'란 감히 분류할 수 없는 것,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파쿠리나 트레이싱은 ’나 자신을 도둑질한 것'과 같은 죄다. 이 감각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베꼈다는 고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꼈다는 고발도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의식 과잉은 자신이 만드는 창작물이 어떤 계보의 말단에 있는지, 어떤 레퍼런스에 물들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점차 줄어들지만, 파쿠리 공론화가 동인계의 유희로 자리잡은 탓에 아이디만 바꾼 것 같은 고발이 끊이지 않는다.

이 일은 고발한 사람이 사과문을 게재함으로써 마무리되었고, 쿠지쿠라 마리루리는 모든 커뮤러가 원하는 관캐가 됐다. 관련글은 모두 삭제되어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같은 깔끔한 말소를 통해 파쿠리와 트레이싱 논란은 다시 동일한 형식으로 튀어나올 준비를 마친다.


[1] https://twitter.com/Shepherd_ITC ‘단커'는 ‘단간 커뮤니티'의 줄임말로 ‘단간론파'라는 애니메이션의 설정을 가져온 커뮤니티를 말한다.
[2] http://goo.gl/kNeKDg
[3] http://mekakushidan.com/actors/mari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8.29
코믹월드의 성인 등급물 판매 불가 결정

웹갤이 동인계를 없애야 하는 당위로 내세운 궤변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궤변은 ‘음란물이 유포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앞에 당당할 수 있는 행사와 동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음란물이 유포된다'고 대관처에 전화를 걸기만 하면 행사는 취소되었고, ‘음란물을 그렸다'고만 하면 후죠시들을 쉽게 고소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이어져 온 동인행사이자 동인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큰 ’코믹월드’는 이에 대한 대처로 ‘합리적인 사회적 협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코믹월드 동인지 전시 교류전에서 성인전용 등급 회지를 제외하기로' 했다. 분쟁의 소지가 있더라도 성인물과 성인물 창작 동인을 행사에서 삭제하지 않으려 애썼던 동페나 케이스퀘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모두 금지'는 저렴한 비용과 신속히 나타나는 효과 덕분에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이 편한 길을 선택한다면 ‘사회적 협의'가 이뤄질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툭 치기만 해도 알아서 설설 기는데 협의를 논할 장이 마련되기는 할까?

성인물은 음란물인가. 음란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는 강간을 농담과 문화로 용인할 만큼 만사가 포르노화된 사회인데, 왜 등급을 맞춰 판매하는 성인물에 알러지 반응을 보일까. 가장 영향력 있던 행사의 편리하고 합리적인 금지령 덕분에 동인계에 접속한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의무가 생겼다. 무조건적인 금지는 합의나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금지의 배경에는 의견이 오가는 공론장조차 리스크로 취급하며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http://goo.gl/Q8vMZx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8.24
케이크 스퀘어(3) - JTBC의 만화행사 보도 유감

금번 케이크 스퀘어를 취재한 JTBC는 ‘성인물에 무방비 노출…‘도 넘은’ 만화페스티벌 논란’ 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내용은 제목과 같이 성인물이 마구잡이로 팔리는 행사라는 것이었다. JTBC의 안지현 기자는 케이크 스퀘어의 취재에 코믹월드에서 이뤄진 인터뷰를 짜집기했는데, 인터뷰를 교묘하게 잘라 붙여 성인지가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처럼 꾸몄다. 이 보도에는 레드존이 성인만 출입 가능한 구역이라는 사실도, 케스에서 자체심의를 진행했다는 사실도 모두 빠져있다.

그런데 이 취재가 이루어진 과정이 흥미롭다. 또 웹갤러가 등장한다.[2] 이 웹갤러는 디페스타에서 책을 구매해 음화반포로 고발을 준비할 만큼 동인계 박살내기에 적극적인데, 웹갤에 인증한 글에 따르면 아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고, 소개받은 JTBC기자에게 정보와 자료를 건네고 케이스 스퀘어를 ‘제보'한 것 같다. 하나 더 흥미로운건 아이디에 ‘4’라는 숫자를 붙이며 메갈과 페미니즘을 극도로 싫어하는 무리들과 웹갤러들이 협력관계라는 점이다.

여하간 아마추어 동인 시장을 공격하겠다는 사람의 '제보'만 믿고 보도를 선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데다, 케스 측에서 요청한 취재 가이드라인도 지키지 않은 기자의 태도에는 대단히 화가 난다. 그러나 이 보도는 지금까지 언론에 절대 노출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동인계의 전략이 무효함을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이제 우린 적극적으로 언론에 내보낼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고 언론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더 이상 웹갤러와 같은 시각을 가진 보도는 나오지 않도록.


[1] http://goo.gl/IoF78j
[2] http://goo.gl/K5AqRT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8.20
케이크 스퀘어(2) - 자체심의기구 설치

지난 8월 4일, 케이크 스퀘어는 레드존 취소 번복에 대한 사과에 더해 자체심의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는 공지[1]를 올렸다. 이 공지는 케스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는 올라오지 않았었는데, 동인들은 ‘(우리는 심의를 원하지 않는데) 심의를 몰래 할 생각이었느냐'며 분노했고, 레드존 건과 JTBC의 부정적 보도까지 맞물려 케스를 보이콧해서 없애겠다거나 참가를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심의위원회에 참여했던 김효진 교수는 케스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 동인행사의 자체심의가 할 수 있는 실질적 기능 및 동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짤막한 단상을 남겼다.[2] 하지만 동인들의 ‘케스 보이콧'은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부분은 논란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자체심의기구를 설치한 이유다. 동인행사의 자체심의는 일본의 코믹마켓에서도 실시하고 있는데, 혹시라도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되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동인행사는 자체 심의기구로 심의를 진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대응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체 심의는 소규모 동인 행사에서도 충분히 도입할 수 있으며, 대관처에 들어오는 악성 민원을 효과적으로 튕겨낼 전략으로도 고려할만 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동인들의 연대와 합의가 절실한 상황이다. 행사 직전에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미비한 부분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모쪼록 이 실험을 계속해주기를 바라고, 지지한다.


[1]http://cake2.co.kr/20180825-2/
[2]http://goo.gl/MmoGPc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8.04
케이크 스퀘어(1) - 세텍의 행사계약파기 논란

웹갤러들은 예스컷 운동과 함께 동인계 조지기 운동[1]을 진행하고 있다. 동인계를 조지는 이유는 동인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웹툰에 많이 데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동인계는 음란물을 유포하고, 세금도 안내면서 책을 파는 등 어쨌든 ‘국가'가 정해둔 ‘법'에 저촉되니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한다.

웹갤러들은 온리전 대관처에 항의 민원을 넣어 온리전을 취소시키려 하고, 실제로 행사에 찾아가 경찰을 부르기도 하고, 직접 책을 사서 고발장을 작성하는가 하면, 심지어 동인지를 찍어주는 인쇄소까지 ‘음화제조'로 신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인 출력소 한 곳은 출력시 사진촬영 금지를 공지하기도 했다.[2] 안정적으로 정착한 듯 보였던 케이크 스퀘어도 금번에 레드존(성인 대상 동인지를 판매하는 부스를 모아놓은 구역)을 없애겠다고 공지했다가 이를 다시 번복하는 일이 있었다.[3] 웹갤러들이 세텍에도 민원을 넣었고, 세텍의 대관 담당자가 케스에 대관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는 식의 통보를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리전 대관처에 민원을 넣어 행사를 취소시키는 방해는 사실 후죠들이 같은 후죠에게 해왔던 짓이다. 방해는 쉽지만, 대처는 쉽지 않다. 온리전의 경우 개인이 주최하다 보니 장소를 비밀로 하다가 하루 전에 장소를 공개하거나, 결국 행사를 취소당해 다른 대관처를 급히 찾는 방법 말고는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행사와 교류는 동인 문화에 필수적인 요소인 만큼, 대응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1] http://goo.gl/XN7KQo
[2] http://goo.gl/U4nK7u
[3] http://cake2.co.kr/20160804-2/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7.29
'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 공지

넥슨지티와 넥슨이 야심차게 준비했다던 1인칭 슈팅게임 ‘서든어택 2’가 2016년 9월 29일에 서비스를 종료할 것을 알렸다.[1] 서든어택2는 출시 후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때문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서든어택2의 신캐릭터이자 여캐인 ‘미야'와 ‘김지윤'은 공격을 당하면 이상한 포즈를 취하며 쓰러지는데[2], 유저들은 이 여성 캐릭터의 무너진 자세와 강조된 가슴, 둔부 등을 캡쳐하며 즐거워했다. 여캐들이 쓰러질 때 가슴과 보지를 강조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 게임 내에서 공격을 당했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은 어떤 이미지를 레퍼런스 삼아 나온 것일까. 한국에서는 강간이 일반적인 정서다. 폭력과 성애가 협착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 유저들은 마치 강간용 약물을 먹은 것처럼 무력한 여캐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다. 이 게임의 여성혐오에 대한 지적에 대해 ‘서브컬쳐에서 여캐는 원래 이렇다'고 응수한 건 이들이 폭력을 당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포르노로 즐겨왔음을 자인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하던 대로' 폭력과 성애를 분리하지 않는다면, 젠더와 인권에 대한 의식 없이 게임을 제작한다면, 게임 제작의 결정권이 계속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면, 미야와 김지윤은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제발 출시할 때부터 혐오를 덜어내고 만들어주길.

오늘도 나는 오버워치를 하러 간다.


[1] http://sa2.nexon.com/mainpage
[2] http://goo.gl/jiif6k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7.24
페미니즘 관점의 서브컬쳐/잡학 위키: 아름드리 위키 등장

‘나무위키'[1]는 엔젤하이로 위키(엔하위키)를 전신으로 하는 서브컬쳐 특화 위키로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 최대 이용자 수를 자랑한다. 하지만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들의 목록인 ‘살생부'를 만든 곳이 나무위키다. 아름드리 위키는 이처럼 서브컬쳐에 관련한 해석이나 정보조차 남성중심적 언술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위키다. 아름드리 위키[2]는 ‘페미니즘 관점의 서브컬쳐/잡학 위키’를 표방하며 다양한 사안과 인물, 작품들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해설하겠다는 목표를 드러냈다.

덕후 커뮤니티에서 여성 덕후는 손쉽게 지워지거나 폄하된다. 같은 작품을 덕질해도 여성의 덕질은 저급이고 남성의 덕질은 진정성 있다는 인식이 당연한 듯 통용되고 있다. 누구나 키보드를 칠 수 있으니 누구나 평등해 보이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성별 비대칭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모쪼록 아름드리 위키가 서브컬쳐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남덕이 알고 있고 여덕들은 불확실한 정보만 알고 있으니 남덕이 가르쳐줘야 한다던가, 여덕은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게 아니라던가 하는 덕후 씬의 성각본을 완전히 재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름드리 위키에서는 함께 위키를 만들어나갈 사람을 필요로 한다. 간단한 페미니스트 인증을 통해 필자로 활동할 수 있으니 위키 문서 작성에 많이 참여해 주시기를.


[1] http://namu.wiki/
[2] http://ko.areumdri.wikidok.net/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7.20
납작한 세계에 사는 납작한 인간들의 납작한 캠페인 - 예스컷

예스컷 운동은 ‘웹툰을 국가가 규제하고 검열해야 한다'는 취지로 디씨인사이드의 웹툰 갤러리에서 시작한 캠페인이다. 예스컷의 심볼은 2012년 방송통심심의위원회(방심위)가 다수의 웹툰 작품들을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한 데 반발해 웹툰 작가들이 펼쳤던 노컷운동의 심볼을 패러디한 것인데[1], 예스컷의 모순과 무논리를 비판하기 위해 만화계가 겪었던 극심한 검열에 직업과 삶을 걸고 맞섰던 만화가들의 역사를 가져오는 건 그 노고에도 예의가 아닐 듯하다. 애초에 예스컷은 그저 ‘기분이 나빠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의 발단은 티셔츠 한 장이었다. 성우 김자연씨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가 페이스북 코리아에 대한 소송비용을 마련하는 티셔츠 펀딩에 후원을 했고 자신의 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를 입은 인증샷을 올렸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김자연 성우는 계약을 파기당하고, 게임 내 목소리를 삭제당했다. 이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이들 중에는 게임업계인들 뿐만 아니라 웹툰 작가들도 있었다. 그 작가들을 응징하기 위해 예스컷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예스컷 지지자들은 웹툰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웹툰의 표현이나 내용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다. 작가들이 감히 제 목소리를 내며 ‘독자(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 작품을 검열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 행동을 ‘노쉴드(웹툰을 지켜주지 않겠다)’라 하든, 사전검열이 아닌 사전등급제라고 하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갖다붙여 정당성을 주장하든 이건 그냥 자신의 기분나쁨을 알아달라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짓 이상이 될 수 없다. 독자=왕, 소비자=왕, 메갈=나쁨 밖에 없는 이들의 세계관은 영장류의 세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리고 이 납작한 세계관 덕분에 파시즘은 파시즘을 겪어본 적 없는 세대로부터 정당성을 찾아가고 있다.[2]


[1] goo.gl/xFlMbz
[2] goo.gl/cjUcWo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7.13
하이큐! 통합 온리전 TSA 무사개최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온리전이었다. 같은 후죠시들의 악의적 방해로 두 번이나 대관처를 바꿨고, 임대(임시 대피소)에서는 계속 ‹하이큐› 통온(통합 온리전)을 방해하겠다는 찌질한 후죠시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고진검래›가 뜻밖의 장소를 대관하며 개최에 성공한 것처럼 ‹하이큐› 통온은 양재 ‘더 케이’ 호텔 컨벤션홀 3개를 모두 대관하여 행사를 치러냈다. 하지만, 이걸 온리전의 좋은 개최 예시로 사용할 수는 없다. 호텔을 대관하는 데 성공한 건 온리전 문화에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 전에 악성 민원이 없었다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수고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온리전 방해에 정의로운 명분을 붙이는 성의를 보였으나, 이제는 이유 없이 그냥 방해한다. 이를 어찌할까? 더구나 행사 후 주최측은 사과문을 썼다. 입장객 몇천 명이 드는 대규모 행사를 전문 업체가 아닌 후죠시 개인들이 열 때는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생긴다. 그런데 그런 부분까지 사과를 요구하거나, 자신이 지불한 돈에 대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알량한 ‘소비자’ 후죠시들을 어찌할까? 지금 동인계 후죠시들의 태도는 시장 체제 안의 소비자와 다를 바가 없다. 소비자 주체는 할 수 있는 일이 소비뿐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권리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동인 문화는 창작자와 독자, 콘텐츠 제작자와 향유자 모두가 신(scene)의 일부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신이다. 후죠시들은 모두 소비자인 동시에 기획자이다. 이런 진상이 늘어난다면, 결국 자신이 동인지나 행사를 만들고자 할 때도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텐데. 이제 이 트롤링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저지선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이큐 통합온리전 TSA 홈페이지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6.25
후죠시 기업 'THECOOYA'등장

재미있는 회사가 하나 등장했다. ‘후죠시들이 차린 회사’라는 것과 (방해로 인해 대형 온리전 개최에 곤란을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안전한 온리전 개최’와 ‘동인 문화 발전’에 힘쓰겠다는 말이 ‘더쿠야’가 공식적으로 올려놓은 소개의 전부다. 금일부터 서포터즈 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여타 기업에서 서포터즈는 마케팅을 위해 활용하는 반면 더쿠야는 추후 직원 충원을 위한 인력풀로 활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덕후 기업 대부분은 ‘코믹월드’라는 대형 서브컬처 행사의 대체 행사를 만들려는 케이스였다. 더쿠야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기업일까? 어떤 수익 모델을 보고 이 일을 시작했을까? 간만에 호기롭게 등장한 회사인 만큼 (게다가 오타쿠가 아닌 후죠시들이 모인 회사인 만큼)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지 예의 주시할 예정.


http://thecooya.kr/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5.25
‘YaoiCon 2016’ 개최 확정

2001년부터 열린 야오이 컨퍼런스 ‘야오이콘’의 2016년 개최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었다. 9월 16-18일, 총 3일간 샌프란시스코 하얏트 리젠시에서 열리며 올해의 주제는 ‘스팀펑크 야오이’. 오타쿠들이 네코미미(고양이귀)에 반응하는 것처럼 스팀펑크풍을 좋아하는 후죠시들은 단안경과 정장에 반응한다. 이처럼 야오이콘은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지만 일본 서브컬처와 BL의 최신 경향과 스타일을 적극 반영하는 행사다. 학술적인 주제를 다루는 집담회나 대담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야오이 장르를 애호하는 팬들을 위한 즐거운 행사다. 올해의 빅 게스트는 일본의 성우인 후쿠야마 쥰인데, 미묘하게 그의 이름 뒤에 Oppa를 붙여 놓은 것이 신경 쓰인다. 설마 말 그대로 오빠인 건 아니겠지?


http://www.yaoicon.com/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3.21
물 밑이여 안녕

‘북큐브’는 이북 판매 사이트인데, 3월에 BL소설 연재 서비스를 신설하며 홍보를 시작했다. 그런데 선정 작가들의 상당수가 ‘성인동’의 유명 작가들이었다. 성인동은 BL소설 연재를 기반으로 한 폐쇄적인 커뮤니티인데, 이전부터 성인동은 작가들이 전자책을 출판하면 커뮤니티에서 강퇴를 시키는 등 데뷔를 강하게 막아 왔다. 그러나 북큐브의 작가 라인업에서 알 수 있듯 성인동에서 활동하던 많은 작가가 ‘북큐브’와 계약을 맺었다. 물론 성인동 이용자들은 격분한 상태다. 성인동은 작가들에게 계속 성인동 안에서 머물러 있을 것을 강제한다. 이북 사이트는 미성년자가 접근해서 BL을 읽을 수도 있기 때문에 BL을 연재하면 안 된다고도 말한다. 사실 국내에는 BL 상업시장이라 할만한 규모의 마켓이 존재한 적이 없었지만, 북큐브를 비롯해 BL 작품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고, 대형 인터넷 서점에도 BL이라는 장르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BL작품을 판매하면서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던 예전과는 흐름이 달라졌다. BL은 더 이상 음지 문화가 아니고, 상업 시장이 금단의 영역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BL 문화의 존속을 위해서는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서라는 위선적인 태도로 BL의 물밑화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작게나마 시장이 형성될 수 있게끔 손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고인물은 썩고, 썩은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http://www.bookcube.com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2.25
필리버스터 모에 - 모에가 원본을 납작하게 만들 때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필리버스터에서도 오타쿠들과 후죠시는 모에의 불씨를 찾아냈다. 작가 도짱이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던 은수미 의원의 팬아트를 그리는가 하면,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강기정 의원 사이의 케미를 포착해 BL 커플링으로 만들기도 했다. 실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을 모에의 대상으로 삼은 다른 예로는 일본에서 등장했던 전 수상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의 BL동인지, 그리고 대만의 차이잉원의 사례가 있다.

모에화라는 건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어떤 대상을 서브컬처의 문법으로 다시 그리는 것을 뜻한다. 도짱이 그린 은수미 의원 일러스트에는 이 정치인의 많은 면 중 냉철한 여성 의원(모에 요소 중엔 쿨한 계통)이라는 부분이 모에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강기정 의원, 김용익 의원 등 모에화 되는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모에화된 그들의 몇몇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사라진다. 모에는 ‘애정’, ‘사랑’의 오타쿠적 표현이다. 따라서 ‘싫어하는 점’을 모에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모에화 된 정치인은 인간 정치인보다 열광하고 사랑하기 더 쉽다. 대만 총통 차이잉원이 자신의 홍보에 모에 전략을 적극 활용한 건 그래서 영리하다.

하지만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과’ ‘사랑(모에)’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따라 지지를 보내다가도 철회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 판단에는 모에화 된 부분이 아닌 삭제된 부분들이 필요한 법이다.


https://twitter.com/dochan81/status/702895774040870912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2.13
레진코믹스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

레진코믹스는 성인물 작가인 안나래의 인터뷰를 공개한 후 독자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현재는 수정되어 있지만 인터뷰 중 작가의 외모를 거론하는 부분, 작가를 그라비아 화보 구도로 촬영한 것 등 ‘성인물을 그리는 작가를 성적 대상화’하는 태도가 문제시된 것이다. 인터뷰는 수정되었지만 남성 작가의 인터뷰와 비교해보면 아직도 레진코믹스에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 대상 웹툰, 즉 포르노에서는 극단적 성적 대상화가 판타지의 한 장르로 자리할 수 있겠지만 실존하는 인물인 작가도 ‘대상화해도 된다’는 듯이 그라비아 아이돌 포즈의 사진을 찍게 하고, ‘성인물을 그리는 여성 작가’를 강조하는 문장으로 소개하면서 일말의 문제의식도 없는 걸 보면, 남자들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물을 그리는 여성 작가, 또는 섹스 칼럼을 쓰는 여성 필자는 성적 대상화 해도 된다는 발상. 대체 언제쯤에나 여성을 사람으로 안 보는(심지어 자사 소속 작가마저도 여자면 성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다는) 이 역겨운 시선 처리를 안 보게 될까.


세컨드 작가 안나래 인터뷰. 이 코너는 작가들의 인터뷰를 싣는 코너다.
http://www.lezhin.com/comic/second/p001
‹딜리셔스›의 작가 김민소 인터뷰. 안나래 작가와 김민소 작가의 사진 구도를 비교해보자.
http://www.lezhin.com/comic/delicious/p001
“안녕하세요 레진코믹스 SNS담당자입니다. ‹세컨드› 안나래 작가님 인터뷰 관련 사과 말씀 드립니다. 미인 작가님께서 만화도 잘 그리신다는 내용을 자기 비하 농담과 함께 전하려 하였으나 의도를 잘못 표현하였습니다. 불쾌한 표현으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https://twitter.com/LezhinComics/status/698450566783987713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2.05
성지영 - 모에가 원본을 풍부하게 할 때

성지영은 성남시에서 쓰레기 분리배출 전용 그물망 사용 홍보 영상에 사용한 캐릭터이다. 공기관의 홍보물은 묘한 구석이 있다. 성지영의 경우도 웹툰이 ‘최신식 홍보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방법론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막상 일을 수주하는 홍보 업체는 ‘모에’라는 오타쿠 문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제작하다 보니 ‘웹툰 비스무레하긴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작업’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맥락 없고 퀄리티 낮은 ‘비스무레한’ 작업들 중 성지영은 뜻밖의 지점을 타격하면서 포텐을 터뜨렸다. 지자체의 그저 그런 어중간한 홍보 캐릭터로 흘러갔을 운명이었던 성지영은 오타쿠와 후죠시, 그리고 그들의 2차 창작 문화를 만나서 힘을 얻고 유효 기간을 연장했다. 2차 창작은 원본에 새로운 설정을 덧붙이며 원본의 생명을 늘려 나간다. 원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정보를 덧입혀 복제하는 것은 오타쿠 2차 창작 활동의 목적 그 자체다. 아무리 파동이 커도 오타쿠가 2차 창작을 하는 데 오타쿠 아닌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성남시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움직임은 ‘홍보 성공’으로 읽히는 듯하다. 만약 성남시가 이 파도를 타보고자 제대로 모에 캐릭터를 만든다면 망할 거라는 데 한 표 던진다. 오타쿠들이 성지영에 열광한 가장 큰 이유는 성지영의 모에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발생했다는 부분이었으니까.


http://1boon.kakao.com/issue/yanderegirl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
2016.01.01
팬시 프론티어에 대만 총통 차이잉원 등장

지난 12월, 대만의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차이잉원은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이고, 샹샹과 아차이(총통이 기르는 고양이들)는 대만 최초로 총통 관저에 입성한 고양이가 되었다. 그리고 1월 30일에 열렸던 대만 동인 행사인 팬시 프론티어에 총통 본인이 직접 행차한 사건은 전 세계 오타쿠와 후죠시에게 충격과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권력자가 동인 행사에 방문한 이벤트’는 동인 역사에서도 처음 발생한 이벤트다.

그러나 이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맥락은 있다. 차이잉원은 선거 운동 당시 자신의 무거운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고양이 집사’ 모에화 캐릭터를 선거 운동에 이용했었다. 선거 운동에 자신의 모에화 캐릭터를 사용하다니. 게다가 자신이 모에하게 그려진 굿즈를 직접 구입하다니. 현지 후죠시에게 들어 보니 차잉잉원의 모에 캐릭터로 팬시 프론티어에 참가한 동인들이 꽤 많았다는 모양이다. 총통의 캐릭터는 선거 후에도 꾸준히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총통 이미지가 들어간 머그잔은 같은 재질의 머그잔보다 3배 비싸게 팔리고 있다나. 모에 세계에서 총통은 고양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통받거나, 고양이들을 위해 메카를 장착하고 싸우는 이미지로 그려진다. 누구보다 짱 세지만 내 고양이에게는 빌빌댄다니. 이 갭모에를 싫어하는 덕후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인 행사에는 성인 대상 이미지를 갖고 나오는 동인들도 많다. 특히 팬시 프론티어는 남성향 동인이 강세인 행사다. 즉 벗은 여자 그림이 많다. 그 부분이 여성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르진 않았을까 걱정스러웠지만 ‘고수위 이미지를 잘 보이는 곳에 게재하지만 말아달라’는 지시 외에는 어떤 규제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대만의 서브컬처, 동인 문화의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차이잉원이 팬시 프론티어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 시각, 트위터 이곳저곳에서는 충격과 부러움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오타쿠들은 자국의 상황을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베 총리가 코미케에 나타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케이크 스퀘어에 나타난다면? 애초에 권력자를 모에화한 캐릭터가 권력자 본인에게 전달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할까?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무리 선거 운동을 위해서라 해도, 돈을 준다고 해도, 나로서는 모에화하고 싶은 자국 정치인이 1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모에화야말로 사랑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궁극의 애정 표현이니까. ‘총통 등장 이벤트’는 대만 동인계에 묘한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대만어를 배워야겠다는 의욕이 불타기 시작했다.


萌版《亮點》 선거 운동에 사용되었던 동영상

# 후죠시와 서브컬쳐 by @pakha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