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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5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10

월간 <디자인> 4709호 스페셜 피쳐 기사는 이예주, 정희연, 오새날, 소목장 세미, 신모래, 둘셋 디자인 스튜디오, 양민영, 김소영, 니키 리, 정새우 이상 10명의 디자이너를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로 선정해 소개했다. 항간에는 '왜 남자 디자이너가 없냐'는 공허한 외침도 들린다. (최근 트렌드 처럼 퍼지고 있는 남성주의에 경도 된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소수의 남성주의자들에게 선동되기 보단 냉철하게 현실을 보라. 여성 디자이너가 수가 더 많고 그러니 당연히 잘 할 확률도 높다. 디자인 잡지에서 작업을 잘하는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데 남자, 여자가 어디 있겠나? 게다가 남성주의자들이 원하는 대로 그동안 월간 <디자인>의 에디터들은 양성평등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들여 남성 디자이너를 발굴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로지 한국 디자인 계를 위해 4709호를 이어온 월간 <디자인>의 역사도 모른 채, 이제 와서 '남성 디자이너'를 찾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살펴 볼 지점은 또 있다. 왜 10명인가? 잘하는 여성 디자이너의 수를 생각해보라. 10명만 소개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지금 내 머리에만 스페셜 피쳐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10' 2, 3, 4, 5, 6, 7, 8, 9, 10이 기획되고 있다. 리스트가 끝도 없다. 아쉽기도 하다. 한꺼번에 소개해버리니 각각 주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성주의를 찾아 광광 댈 것인가?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다.


월간 디자인 4709호 사러가기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7.02.21
피해자의 용기, 각자의 연대.

2017년 2월 21일,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디자인소호와의 합의서를 공개했다. [1] 작년 5월 이후 줄곧 고통받았을 피해자는 드디어 직접 사과를 받는다고 한다. 답답한 심경으로 사건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함께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약속들이 잘 이행되는지는 계속 지켜볼일이다) 이렇게 다행히도 디자인소호 사건은 '좋은 선례'[2]로 정리되는 모양새이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마땅히 항의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준다는 것.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그러니까 법정에 시간을 내어 방청을 간다거나, 기자회견에 참석한다거나, 적은 금액이라도 피해자를 위해 모금을 하거나, SNS에서 떠들기라도 하거나—하는 식으로 싸울 수 있다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언론노조와 같은 믿음직한 단체의 존재도 내 머릿속에 인상 깊게 자리 잡았다.

디자인소호 사건을 두고 2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회사가 이렇게 한 번에 훅 가는(?) 걸 보며, 한 회사의 대표로서 복잡한 심경이라 말을 한 여성이 있었다. 아마 그분이 경험한 세상은 피해자 구제가 불가능한 곳이었기에 그런 불쌍한 말을 했던 건 아닐까. 당연히 2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회사면 사태를 이렇게까지 만들지 않을 정도의 시스템은 갖추고 있었어야 했다. (실행여부와 상관없이) 지금이나마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하겠다는 디자인소호의 공개 사과문을 보며, 한 방에 훅 가는 게 안타깝다던 그분은 무슨 생각이실지 새삼 궁금하다. 부디 그분의 세상에도 작은 균열이 일어났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로 인해 가장 고생이 심했던 피해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피해자의 용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일이 완벽히 마무리 된 것은 아니라지만, 충분히 푹 쉬시고 빠른시간 내에 건강한 일상을 회복하시길, 원하는 걸 모두 이루시길 바란다.


[1] https://twitter.com/happybooknodong/status/833974775277981696
[2] http://filed-timeline.xyz/post/designsoho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7.02.16
문재인, it’s 2017!

“Because it’s 2015.” 재작년, 새로운 정부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구성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은 캐나다의 새로운 수상 쥐스탱 트뤼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답했다. 페미니스트들의 머릿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이상적인 국가 수장의 모습에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열광했다. 우리는 언제쯤 저런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로부터 2년 후,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대선후보 문재인은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 정책공감’이 주최한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1]. 쥐스탱 트뤼도를 보며 캐나다 이민을 꿈꾸기까지 했던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말에 설레기도 잠시, 같은 자리에서 그가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입니다.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라는 한 레즈비언 활동가의 절규에 “그 절박함을 이해한다”는 말 대신 “나중에 질문해달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2]. 해당 포럼이 열리기 며칠 전에 그는 기독교단체 대표들을 만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3].

문재인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의 미심쩍은 기운은 기조연설에서 발표된 성평등 정책 공약의 내용에서도 묻어난다. 시류에 적절한 용어들과 최근에 발생한 젠더 이슈들을 선정한 센스는 훌륭하나, 성평등 공약의 초점은 성평등 자체보다 보육정책 쪽으로 더 기울어 있다.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유권자가 모두 “어머니” 인 것은 아니다.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없는 “나머지 여성”들은 모든 여성 유권자들을 잠재적 “어머니” 취급하는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위한 구색 갖추기식 페미니스트 선언에 기뻐하지 않는다. 문재인은 잊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자를 배척하고,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비출산 여성을 주변화하는 사람에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는 너무 과분하다는 것을. 왜냐면, 지금은 2017년이기 때문이다.



[1]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111793
[2] http://www.womennews.co.kr/news/111816
[3] http://www.hankookilbo.com/v_print.aspx?id=08019db0d0d742689b30d1c55e50f77d
2017.02.16. 서울 중구 페럼타워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2.28
출산몬 GO

행정자치부에서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황급히 사이트를 내렸다[1]. 웹사이트에 포함된 "전국 가임기 여성 지도"라는 항목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과 출산이라니... 보건복지부와 착각한 게 아니냐고? 아니다, 웹사이트를 개설한 주체는 분명 행정자치부가 맞다[2]. 행자부 웹사이트에 게시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웹사이트는 "행자부가 발표한 「지자체 출산율 제고방안」의 핵심과제로서 국민들의 저출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지자체 간 지원혜택 비교를 통한 벤치마킹과 자율경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구축"되었다.

"지자체 간 지원혜택 비교를 통한 벤치마킹과 자율경쟁 유도"라는 말도 그렇고, 보건복지부가 아닌 행정자치부 산하에서 개설된 웹사이트이니 이 사이트의 메인 타겟은 출산을 계획 중인 여성이 아니라 해당 여성들이 거주하는 지역 자치단체의 공무원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지도는 특정 연령대의 여성들을 그냥 뚝 잘라서 지도상에 "가임기 여성"으로 표시할 뿐, 임신/출산 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여성들의 건강 상태, 거주 상태, 재정 상태, 거주지 치안 상태와 같은 변수들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씨만 뿌려주면 임신을 할 수 있는 가축들이 이렇게 분포되어 있으니 알아서 번식 계획을 짜 보라"는 듯이 말이다. 마치 다양한 종류의 포켓몬들을 지도상에 보여주고 유저들이 해당 지역에 있는 포켓몬을 포획하도록 만든 게임인 포켓몬GO와 비슷한 발상이다. 이런 행자부와 영혼의 교감이라도 한 것인지, 디씨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서는 이 출산지도를 "보지몬GO"라 부르며 "여기 지도에 있는 여자들을 강간하고 임신시키러 가야겠다"고 말하는 게시물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3]. 비록 "보지몬"이라는 이름은 주식갤러리에서 붙였을지언정, 그런 어처구니없는 명명이 가능한 판을 깔아준 것은 행자부인 것이다. 그러나 임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 생각이라면 출산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우등 정자 보유자 지도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온라인 상에서는 출산지도를 미러링한 성구매자 지도도 등장했다[4]) 그래야 공무원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남성들도 "포획"해서 출산 계획에 우겨넣을 수 있을 텐데. 게다가 지역별 출산율 제고를 위해 "대한민국 출산지도" 웹사이트는 개설하면서 여성 안전을 위한 "안전귀가" 앱의 서비스는 중단하다니[5], 정말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의지를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

만약 "출산 인프라"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임기 여성"이 아니라,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어려움 없이 출산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 인프라, 주거 인프라, 재정지원 인프라, 치안 인프라와 같은 요소들일 것이다. 출산율은 단순히 여성들을 쥐어짠다고 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출산은 여성들의 건강, 고용 상태, 재정 상태, 커리어 상태와 같이 인생의 전반적인 요소들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사건이기 때문이다. 출산을 망설이거나 기피하게 만드는 직장 내 성차별, 고용불안정, 경력단절, 임금차별, 빈약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시스템, 주거불안정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임기 여성 지도" 하나만 만들어 놓으면 지자체 간의 자율경쟁이 자연스레 유도되고 출산지원혜택이 자연스레 개선된다고 말하는 주체가 지하철에서 만난 익명의 개저씨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 부처라는 게 믿어지는가? 행자부가 실질적인 효용은 없는 생색내기용 웹사이트만 하나 개설해서 실적을 올리려고 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다.

[1]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75
[2] http://www.moi.go.kr/frt/bbs/type010/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8&nttId=57148
[3] http://www.nocutnews.co.kr/news/4709870
[4] https://twitter.com/racoonoise/status/814358093949636608
[5] http://m2.womennews.co.kr/article.asp?num=110794#.WGtgaLE_rVo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1.26
어떤 성장

강남역살인사건 후 6개월여가 흘렀다. 가장 강렬한 기억일 것만 같았던 사건임에도 요즘 뉴스를 보며 헛웃음을 짓다 보면 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다. 그러나 그때 나풀거리는 포스트잇이 두텁게 쌓이도록 다짐했던 이들은 고맙게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짐을 행동으로, 행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들의 성장과 활약은 고구마가 풍년인 뉴스 틈새에서 빛나고 있다.

매주 토요일, 광장에서는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 박하여행의 건의로 자유 발언대에서의 혐오 발언이 제지를 당하고 여혐가사로 논란이 된 DJ DOC의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들은 기존 시위에서 볼 수 없었던 페미존을 구성하고 박근혜 다음 세상은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이어야 한다 외치고 있다. 26일 세종문화회관 앞 페미당당의 시국선언[1]은 귀에 박히도록 지겹게 들어온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말을 뒤집어 이렇게 말했다. “페미니스트는 해일이 올 때 조개를 줍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해일이 올 때 옆 사람들을 밀치고 뛸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밀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비상신호를 알리는 사람입니다.” 강남역에서 거울을 들고 나섰던 이들은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 6699press는 “한국, 여성, 그래픽디자인 11”이라는 여성 그래픽디자이너 대담집을 선보였다. 역시 강남역살인사건이 계기가 되어 기획, 제작된 이 책의 발간에 맞춰 참여 여성 디자이너들은 ‘Woo!’[2]라는 여성 디자이너 정책 연구 모임을 시작하고 여성 디자이너들이 온전히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리서치, 모니터링/아카이빙, 캠페인 활동을 약속했다.

나풀거리는 포스트잇은 두텁게 쌓였었다. 그 두터운 다짐은 잊혀지지 않았고 실체를 드러내며 성장하는 중이다.


[1] https://www.facebook.com/femidangdang/videos/1103727813088130/
[2] https://www.facebook.com/groups/wearewoo/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6.11.25
시절이 하 수상하니 여혐이나 해볼까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자,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다채로운 "시국비판형 여혐"들이 등장하고 있다. 집회 현장마다 심심찮게 눈에 띄는 씨발년, 미친년, 병신년 같은 여성비하 욕설이 담긴 현수막, 피켓에 이어 이제는 시국비판쏭에서도 대통령을 구 여친이나 매춘부에 빗대어 욕하거나[1] "미스박" 같은 여성비하 어휘를 넣어 욕을 한다[2].

특히 "미스박" 처럼 정치인 비판과는 관련이 없지만 대통령의 여성성을 콕 찝어 비하하겠다는 의도만은 명백한 어휘가 수차례 반복되는 DJ DOC의 신곡 <수취인 분명>은 원래 촛불집회 공연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페미니스트들은 분노했고, 페미당당과 강남역 10번출구에서는 해당 공연을 진행하는 민중총궐기 진행본부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항의했다[4]. 앞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촛불집회 사회자가 사용한 "미스박"이라는 용어에 대해 사과하고 현장에서 남발되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언행을 바로잡겠다는 약속을 한 바가 있었기에[5][6], 집회 현장의 다양성과 평등성을 지키고 더 많은 시민과 함께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에 따라 DJ DOC의 공연을 취소했다[3]. 그런데, DOC의 공연이 취소되니 시국비판에 앞장서는 민중해방열사 DJ DOC의 지지자들이 분연히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페이스북 페이지는 항의성 댓글로 도배되었고[7], 역사학자 전우용은 DOC의 공연 취소가 검열이라는 내용의 트윗을 남겼다[8].

모든 시민이 함께 모인 광장에서 "미스박"이 들어간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정당한 시국비판이고, 이것을 비판하며 제재하는 행위는 검열일까? 이를 판단하려면 왜 페미니스트들이 "미스"라는 표현에 딴지를 걸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9]. 비록 정치생활 내내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누군가의 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했던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막강한 지지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그조차도 정무능력의 한계가 발견되었을 때 정치인으로서의 능력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역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은 여자라서 공감능력과 문제해결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식의 비판에 더 자주 노출되었다. 하지만 남성 정치인은 정무능력의 한계가 발견되어도 그의 남성성을 호명하는 비판에 노출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스박"이 단지 수사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친 진공상태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존재를 결혼 여부에 따라 분류하는 고리타분함의 발현이자 여전히 미혼 여성에 대한 멸칭으로 손쉽게 쓰이는 "미스"라는 말을 붙여 권력자를 호명할 때, 그 순간만큼은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잃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호출되어 발언자의 공격 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사회적 약자로서 각종 혐오발언의 타겟이 되는 "여성"을 호명하여 욕하기란 얼마나 즐거운가? 이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된 우병우나 김기춘 같은 남성 인물들을 "미스터 우", "미스터 김"으로 지칭하여 욕하는 행위는 이만큼의 즐거움을 안겨줄 수 없을 것이다. 여성혐오는 엔터테인먼트지만, 남성혐오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만연한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의 기조에 편승하여 여성 권력자를 비웃는 행위를 "비판"이나 "풍자"라고 할 수 있을까?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전복"의 타이틀을 획득하고 싶은 게으름뱅이들의 변명은 아닐까.



[1] http://news.joins.com/article/20918769
[2] http://www.huffingtonpost.kr/2016/11/25/story_n_13221444.html
[3] http://www.womennews.co.kr/news/99912
[4] http://m.womennews.co.kr/news_detail.asp?num=99938#.WEEVHNKLSUk
[5]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3387693620284&id=1629891637303223
[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121232001&code=940100
[7]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8885676403819&id=1629891637303223&__tn__=%2As
[8] 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802366685709672449
[9] http://www.hankookilbo.com/v/165861b2f5b245c6a1d254f623f7c747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1.19
녹색당이 시들시들

파릇파릇한 희망으로 가득차 보이는 그 이름, 녹색당! 2016년 총선에서 한 표를 던질 정당과 후보를 찾아 헤매면서 난감함을 느꼈던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녹색당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이름이었다. 이상적인 페미정당은 세상에 없고, 그나마 이름난 페미니스트 국회의원들이 소속된 정당은 젠더 이슈를 주요 의제로 다루지 않고, 그나마 여성 유권자들의 표에 더 민감한 군소 정당들은 각종 여성혐오 언행 및 미제 상태의 성폭력 이슈로 시끄럽고, 여성 유권자들을 위한 "페미당" 창당의 움직임은 아직 준비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당장의 발 디딜 공간을 찾아 헤매던 페미니스트들에게 녹색당은 그나마 청정지역으로 손꼽혀 왔다. 여성 당원이 구성원의 50%를 넘고, (비록 환경문제와 동물권, 성소수자 의제에 비해 우선순위가 매우 낮지만 일단은) 성평등 의제를 주요 정체성 중 하나로 내세워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릇파릇해 보이던 희망의 색채가 우중충하게 바래고 있다. 11월 19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녹색당의 청년조직인 청년녹색당(이하 청녹)에서 터진 성폭력 사건 때문에 꽤나 소란스러워졌다. 지난 6월에 청녹 운영위원장이 저지른 데이트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 하고 묻힌 와중에 가해자는 물론이고 녹색당도 페미니즘 영역에서 활동반경을 꾸준히 넓혀가자 이에 분노한 사람들이 해당 사건을 공론화한 것이다[1][2][3][4]. 사건이 벌어진 것은 무려 지난 6월. 그런데 꽤나 심각한 내용에 비해서 사건의 처리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빈약했다. 가해자는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저는 평등문화침해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라는 무색무취의 경위서만을 남긴 채 자진 사퇴했고[5], 청녹 운영위원회는 "우리는 미숙했고 피해자도 딱히 잘 한 것은 없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노력하겠다"는 논지의 입장문을 게시했다[6]. 하지만 그 후로 5개월 간,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노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따라서 그 공백의 이유를 파악하려면 피해자가 그 당시의 정황을 직접 설명한 SNS 게시물을 읽어 보아야 한다[7].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이후에 대응기구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 했고, 성폭력 대응에 대한 항목을 당규에 추가 및 보완하도록 요구했지만 묵살당한 상태에서 2차 가해에 홀로 노출된 채 괴로워하던 중 결국 대응기구 구성원들에게 사과한 뒤 녹색당을 떠났다. 짐작컨대 청녹 운영위의 "해결"노력은 피해자의 탈당과 함께 영구 중단되었고, 녹색당 당규는 보완되지 않았으며, 가해자는 형사고발을 당하지도 당 내부에서의 징계를 받지도 않은 채 꾸준히 활동을 이어 왔다[8]. 무려 5개월 동안 말이다.

5개월 전의 사건이 뒤늦게 논란이 되자 전국 녹색당에서는 하위조직인 청녹 운영위원들을 모두 사퇴 처리하고 징계 절차를 논의하기 시작했다[9]. 녹색당 웹사이트에는 전국당 운영위원장단의 입장문이 게시되었고(11/21)[10], 청녹운영위 및 당시 성폭력 사건 대응기구 구성원들의 사과문도 게시되었다(11/21)[11]. 며칠 후, 전국당 운영위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한 1차 후속조치 공지를 게시했고(11/25)[12], 전국운영위원회 회의(11/27)를 거친 뒤에는 보다 더 상세한 내용의 2차 후속조치 공지도 게시했다(11/28)[13]. 하지만 이미 청녹 운영위의 부적절한 대처, 사건을 인식한 전국당 운영위의 미온적인 대응, 녹색당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거듭된 몇몇 녹색당원들의 2차 가해와 페미디아 대표 진 모 당원의 부적절한 자기고백[14][15]에 실망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녹색당을 떠났다. 진 모 당원은 사과문을 게시하고 페미디아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16] 피해자는 여전히 녹색당 내부에서 계속되는 2차 가해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17].

성폭력 발생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운 조직은 없다. 남성과 여성이 살아가는 대지는 평평하지 않아 손쉽게 폭력이 발생하고, 성폭력 대응 매뉴얼이 있어도 그 매뉴얼을 따르고자 하는 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결과물은 크게 달라진다. "청정지역" 녹색당이라 해서 먼지 한 톨 없는 무균지역일 것이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페미니스트 유권자로 각성한 이후로 딱히 발 디딜 곳을 찾지 못 하고 정처없이 헤매다가 엉성하게나마 겨우 정착해서 더 나은 미래를 그려 보려던 사람들에게 녹색당의 미숙한 대처는 큰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과연 녹색당이 이 잘못을 바로잡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녹색당의 대처를 지켜보는 페미니스트 유권자들은 이 막다른 길 앞에서 다시 뒤로 돌아가 주저앉을 것인지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든다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까? 과거의 문제와 현재 가지고 있는 대안들의 한계를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겨울이다.



[1] https://twitter.com/ideal_rain/status/799955919853350913
[2] https://twitter.com/ideal_rain/status/799956211185483776
[3] https://twitter.com/ideal_rain/status/799956108236337152
[4] https://twitter.com/ideal_rain/status/799956056419934209
[5] http://young.kgreens.org/386
[6] http://young.kgreens.org/388
[7] https://twitter.com/ppoppuppoppu/status/800364329631555584
[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241637001&code=940100
[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241637001&code=940100
[10] http://www.kgreens.org/notice/%EC%9E%85%EC%9E%A5%EB%AC%B8-2016%EB%85%84-6%EC%9B%94-%ED%98%B8%EC%86%8C%EB%90%9C-%EC%B2%AD%EB%85%84%EB%85%B9%EC%83%89%EB%8B%B9-%EC%A0%84-%EC%9A%B4%EC%98%81%EC%9C%84%EC%9B%90%EC%9E%A5%EC%97%90/
[11] http://www.kgreens.org/notice/2016%EB%85%84-6%EC%9B%94-%EC%B2%AD%EB%85%B9%EC%9A%B4%EC%98%81%EC%9C%84-%EB%B0%8F-%EC%82%AC%EA%B1%B4%EB%8C%80%EC%9D%91%EA%B8%B0%EA%B5%AC-%EB%8C%80%EC%9D%91-%EA%B4%80%EB%A0%A8-%EC%B2%AD%EB%85%84/
[12] http://www.kgreens.org/notice/%EC%B2%AD%EB%85%84%EB%85%B9%EC%83%89%EB%8B%B9-%EC%A0%84-%EA%B3%B5%EB%8F%99%EC%9A%B4%EC%98%81%EC%9C%84%EC%9B%90%EC%9E%A5-%EC%84%B1%ED%8F%AD%EB%A0%A5%EC%82%AC%EA%B1%B4%EC%97%90-%EB%8C%80%ED%95%9C-1/
[13] http://www.kgreens.org/notice/%EC%B2%AD%EB%85%84%EB%85%B9%EC%83%89%EB%8B%B9-%EC%A0%84-%EA%B3%B5%EB%8F%99%EC%9A%B4%EC%98%81%EC%9C%84%EC%9B%90%EC%9E%A5-%EC%84%B1%ED%8F%AD%EB%A0%A5%EC%82%AC%EA%B1%B4%EC%97%90-%EB%8C%80%ED%95%9C-2/
[14] https://twitter.com/our_alcohol/status/802859016145620992
[15] https://twitter.com/our_alcohol/status/802383554822819840
[16] https://twitter.com/our_alcohol/status/803231857579991044
[17] http://www.kgreens.org/notice/%EB%8B%B9%EC%9B%90%EB%93%A4%EA%BB%98-%EC%9A%94%EC%B2%AD%EB%93%9C%EB%A6%BD%EB%8B%88%EB%8B%A4/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0.30
감응의 성차

함영준 전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의 성추행과 가스라이팅에 피해를 입은 김소마 씨(이하 화자)가 이를 공개적으로 폭로한 글[1]을, 다소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할 것만 같아 어렵게 글을 올립니다'라는 문장에서 잠시 멈춰섰다.

화자는 사건 당시 가해자의 언행으로 불쾌함을 느꼈지만, 그것이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즉각 알아채지는 못했다. 몸은 부정성을 느꼈지만 그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언어'를 알고 있지 않아서였으리라. 하지만 문자화된 언어 바깥에 '암묵지'라는 것이 있다. 동일한 상대에게 유사한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며 화자(와 그녀들)는 '공통'의 경험에서 문제점을 판별했다. 신체가 착취된 순간을 경험한 여성들의 대화, 말의 어울림과 결성은 그 '경험'을 유형의 지식으로 만드는 일종의 의식화 작업이었을 것이다. 다수의 피해자가 속출할 때 문제의 원인은 개인성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구조의 차원으로 이동하고 확대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열띠게 접속한 모두가 알고 있듯, 함 씨는 그가 속한 기관, 그와 협력한 인사들이 보장한 일종의 공신력을 권력으로 전도해 남용했다. 권력의 보호 아래 행해진 성(권력으로 작동한)폭력임을 깨달은 화자는 자신의 말을 사회에 '들려주는' 쪽을 택했다. 무엇이 부정한지 알고 있지만, 부정의 반대 방향으로 행동할 때엔 위험이 따른다. 그러니 번뇌 끝에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또한 하나의 선택지였을 것이다. "아마 이 일을 공론화시켜서 잃는 것이 많은 것은 저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화자는 성권력이 작동시키는 '억압'에 자기 방어하는 방식으로 휘말려들기를 거부했다. '타자'가 있는 곳으로 가닿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저는 제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계속해서 피해자가 생길 것이고, 더 많은 여성들이 말 못하고 힘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을 열어 봅니다." 화자의 발화 행위는 피해자 개인들에 대한 지지이자 사회 성원으로서 실천한 연대였다.

여성들의 성폭력 경험이 SNS를 통해 더해지면서, 남성 가해자 개인의 행동이 '남성/남성성' 을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성권력 구조 내 폭력의 단면이라는 것이 층층이 밝혀진 가운데 손희정 비평가는 이렇게 짚었다. '피해자의 고통에 감응하고 그를 지지하는 것은 즉각적일 수밖에 없다.' [2] 말 그대로 나 또한 김소마 씨의 이야기에 '경험'으로써 접촉했다. '여성의 몸'이 겪었던 촉각적 기억과 그로 인해 경계하게 된 특정한 행동들. 일상 공간에서 마주하는 남성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기 고백을 들려주었다. 여성보다 상대적인 강자의 자리에 배치된 '남성'으로서 존재해야하는 불가피한 조건에서 자신들의 언행, 사고를 자성했고, 의도치 않게 폭력을 가했을 것을 생각하며 자괴했다. 사태에 대한 남성의 윤리적인 감응이 죄인의 자리에 가깝다면, 여성의 것과는 참 너무도 다른 것이리라. 내 몸에 가해진 폭력의 감각을 복기하는 것과 타자의 몸에 가한 폭력의 경험 혹은 그것을 방조한 과거를 복기하는 것, 이 출발점의 차이가 남성/여성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1] 안녕하세요 Soma Kim 입니다, 김소마, 2016.10.21 https://www.evernote.com/shard/s717/sh/efdba51b-18e8-474c-af90-a60cb8e700c6/4956cd847766ecc742963197f301a312
[2] [청춘직설]“온라인 생존자 말하기 대회”, 손희정, 2016.10.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10252119005

# 페미니즘 by @gusvjar
2016.10.29
바보야, 문제는 낙태죄야 #검은시위

폴란드에서 의회가 통과시킨 낙태금지법에 반발하여 파업을 선언하며 길거리로 뛰쳐나온 검은 옷의 여성들을 기억하는가? 보건복지부의 무책임한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안 입법예고[1]에 분노한 한국의 여성들도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다. 그냥 나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목청껏 소리치고 노래도 부르며 보신각 주위를 행진하고, 탁 트인 광장에서 낙태와 임신, 섹스, 신체자결권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시간도 가졌다. 사실 이것은 10월 15일의 #검은시위 이후 보신각에서 진행된 두 번째 시위다. 게다가 이번에는 500명 가량의 인원이 모인 덕분에 1차선 도로를 점거하여 행진하는 쾌거를 이루었다[2][3].

이 분노의 불씨를 지핀 것은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과 이에 반발한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의 낙태시술 전면중지 예고였지만, 사실 이 개정안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정안에서 의료면허 정지 처분 강화의 근거로 인용된 모자보건법 제14조이고[4],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하여 모자보건법의 필요성을 만드는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다[5]. 형법에서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모자보건법이 굳이 존재할 이유가 없고, 의사들이 낙태시술에 대한 면허 정지 처분이 강화될 것에 반발하여 불법낙태시술 전면중단을 선언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6]도 발생할 이유가 없다.

보건복지부와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지게 생긴 여성들의 분노가 #검은시위 를 통해 폭발하자, 여성계에서는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어" 낙태 비범죄화를 위한 움직임을 재개하고 있다[7][8]. 두 차례의 #검은시위 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페미당당의 심미섭 대표는 29일 #검은시위 현장의 자유발언대에서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의 전리품이 호주제 폐지였다면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들의 전리품은 낙태죄 폐지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3]. 과연 낙태죄 폐지는 이 시대의 "영" 페미니스트들의 전리품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는[5] #검은시위 에 동참하는 여성들의 분노에 일단 주목해볼 일이다.



[1] http://www.moleg.go.kr/lawinfo/lawNotice?ogLmPpSeq=34915&mappingLbicId=0&announceType=TYPE5&pageIndex=&rowIdx=94
[2] http://www.womennews.co.kr/news/99049
[3] http://thepin.ch/news/m3bz/black-protest-1029
[4] http://www.law.go.kr/%EB%B2%95%EB%A0%B9/%EB%AA%A8%EC%9E%90%EB%B3%B4%EA%B1%B4%EB%B2%95/%EC%A0%9C14%EC%A1%B0
[5] http://www.huffingtonpost.kr/2016/10/28/story_n_12684910.html?utm_id=daum
[6]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98530
[7] https://mobile.twitter.com/womenlink/status/789450330513694720
[8]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jqRhQ-J90r_aNvjdgZJ9N4Rmvscc37ON0RMPdpvmoj05mkA/viewform?c=0&w=1
2016.10.29. 보신각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10.23
#ooo_내_성폭력, 침묵과 싸우는 사람들

10월 중순,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 때문에 촉발된 #오타쿠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트위터를 뒤덮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만연한 서브컬쳐계의 문제점을 폭로하던 이 해시태그는 곧 문단, 미술계, 음악계, 영화계, 공연계, 운동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어 트위터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다. 며칠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폭로 무브먼트는 특정 분야의 성폭력을 가시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래 다 그렇다"는 이유로 애써 무시하고 간과해 왔던 크고 작은 성폭력의 무게와 그것의 거대한 영향력을 새삼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했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성폭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수차례 누적되고 다수에 의해 반복 및 묵인되면서 일종의 대기(atmosphere)를 형성하고, 이러한 대기가 성폭력의 실질적, 잠재적 피해자들을 어떤 계(界)로부터 몰아냄으로써 특정 젠더집단에 배타적인 환경을 조성해 간다는 사실이 새삼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10월 23일, 일민미술관 앞에서는 수년 간 지속되어 온 수십 건의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일민미술관의 책임큐레이터인 함영준의 해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되었다. 스크린 속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ooo_내_성폭력 고발의 흐름이 오프라인 시위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궂은 날씨 탓인지 시위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카우보이 모자로 시작된 온라인 해시태그의 흐름이 궁극적으로 성폭력 가해자의 해임을 요구하는 오프라인 시위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곧 사람들이 성폭력 경험 공유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공론화하여 자신이 속한 계(界)의 대기 자체를 바꾸는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다양한 분야에서 확장된 해시태그가 꾸준히 나타났으며[1], 온라인 상에서도 각종 성폭력 폭로글을 기록하고 꾸준히 공론화하기 위한 아카이브 계정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했다[2] .

먼지처럼 만연하고 공기처럼 당연한 성폭력은 그것의 실질적, 잠재적 피해자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침묵하고 도망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며칠에 걸쳐 이어진 #ooo_내_성폭력 해시태그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바로 그 침묵이야말로 이 오염된 공기가 순환되는 것을 막고 자꾸만 고이게 만드는 원인이었으며, 평범한 개인들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공기의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배웠다. 당장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일상 속 성폭력과 맞서는 투사로 거듭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ooo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통해 침묵과 맞서 싸우는 방법을 알게 된 사람들의 미래는 분명 어제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오랫동안 침묵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가해자들의 미래 역시, 어제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1]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103010057271352
[2] http://news1.kr/articles/?2815727
2016.10.23. 일민미술관 앞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9.09
450, 10, 479, 고스트버스터즈

450, 훌륭한 음향 시스템과 광활한 스크린 사이즈로 유명한 메가박스 코엑스점 M2관의 전체 좌석 수. 10, 코엑스 M2관에서 진행될 <고스트버스터즈> 3D 단체관람의 선입금 참여신청이 마감되기까지의 시간 10분. 479, 단관 신청이 진행되는 10분 동안 부지런히 입금과 신청을 진행한 사람들의 수.

사실 아무도 이 단관이 성사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다. <고스트버스터즈> 아이맥스 3D 상영을 위해 영화 배급사 및 다수의 아이맥스 상영관과 수차례 통화하면서, 배급사와 극장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상영스케쥴과 DCP 대여/반납 여부를 결정짓는 동안 정작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어디에서도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몇 백명 규모의 대규모 집단으로 묶이지 않는 이상, 소수의 관객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극장에서 "운 좋게" 걸어주지 않으면 절대 그 영화를 볼 수 없는데, 극장과 배급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기 일쑤인 여성 코미디 팬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그 "운"의 간택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 그렇다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직접 돈과 관객을 모아서 우리의 구매력을 "증명"하고 상영관을 얻어내는 수밖에.[1]

400명을 채울 수 있을까 걱정하며 시작된 단관 신청은 겨우 10분만에 마감되었고, "고버 3D"라는 단어가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하지만 코엑스 M2관 대관을 확정짓고 기뻤던 것도 한 순간, 479명분의 돈을 관리하고 450명분의 좌석을 배정하는 작업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로 힘들었다. 일주일의 준비기간 내내 모든 자유시간과 자투리 시간을 단관 준비에 쏟아부어도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단관 당일인 9월 9일, 코엑스 로비의 파티 분위기와 상영관 내부의 열기는 관람 당일에 최악의 몸상태로 일하고 있던 스탭들에게까지도 엄청난 흥분을 안겨줄 만큼 기대 이상이었다. 400개가 넘는 좌석을 꽉 채운 사람들, 상영 시작 전 관객들이 흔드는 야광봉에서 느껴지는 설렘, 거대한 M2관에 영화 상영 내내 울려퍼진 환호성과 박수 소리, 쿠키 영상이 끝날 때까지 1명도 일어나지 않고 마지막 1분 1초까지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 현장에 함께한다는 흥분은 단관이 끝나고도 한동안 쉽게 가시지 않았다.

고버 3D 단관 이후의 트위터 반응[2]들을 보며 깨달은 것은, 사람들이 단지 3D 버전의 <고스트버스터즈>를 보기 위해서 모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여성중심적이고 진보적인 코미디 영화를 보는 여성들이, 자신과 비슷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자신과 비슷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며 크게 웃고 떠드는 경험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영화를 본 메가박스 코엑스점은 각종 덕후 행사가 많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런 코엑스에서, 그것도 가장 큰 상영관을 <고스트버스터즈>의 팬들이 독차지했다는 기록을 남긴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 기록[3]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되어 또 다른 여성중심적 미디어 컨텐츠를 위한 행사들이 꾸준히 추진될 수 있기를.



[1]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762663.html
[2] 고버 단관 반응들
[3] http://news.joins.com/article/20624798
2016.09.09 메가박스 코엑스점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9.02
파티하고 운동하고 춤추는 페미들

페미니스트들은 모이면 무엇을 할까? 흔히들 스터디와 세미나, 토론 모임을 떠올린다. 훌륭한 페미니즘 고전 도서를 함께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사색하고, 토론을 하는 것은 물론 뜻깊은 일이다. 하지만 일상의 도처에 만연한 성차별을 인식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수시로 공부하고 고민하고 싸우는 페미들에게도 때로는 본업(?)에서 벗어나 심신에 축적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여가활동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파티, 운동, 줌바댄스와 같은 것들이.

지난 5월 "강남역 거울행동"을 주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페미당당[1][2]에서는 지난 7월에 "Feeeeee-kkk" 파티를[3], 9월 2일에 "파티4"를 열었다[4]. 즐겁게 놀기 위해 모인 파티에서도 자기검열과 성적대상화에서 자유롭지 못 한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자는 취지로 진행된 이들의 두 파티는 모두 온라인에서 여성혐오적인 방언을 내뱉는 알계들에게서 이름을 따 온 것이다. "페미당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위트가 넘치고 당당한 이들의 파티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모아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나쁜 여자들의 밤길걷기", "천하제일 겨털대회", 언론중재위원회 항의 시위 등으로 잘 알려진 불꽃페미액션[5]에서는 다양한 페미 본업 활동들을 이어가는 한편으로, 페미들의 여가활동을 위한 여러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불꽃여자농구팀[6], 줌바댄스 소모임[7], 페미니즘 고전영화 소모임에 이르기까지 성차별과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여가활동을 위해 결성된 여러 모임에서, 페미들은 자신과 비슷한 시각을 가진 페미들과 만나서 스트레스를 풀고 친목을 다진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언제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7월에 진행되었던 "Feeeeee-kkk" 파티 이후에는 여자들이 모인 파티를 보며 흐리멍텅한 눈을 빛낸 개저들과 한남들에게 지친 여성들이 "이런 곳에서까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다니"라고 한탄하는 후기가 공유되었고, 9월에 진행된 "파티4"의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무통보 삭제되었다[8]. 다양한 공부를 통해 이미 여성혐오와 성폭력에 익숙해진 페미들이기에, 이런 잡음을 접하면서 "페미 모임을 결성하면 오히려 더 쉽게 폭력의 타겟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질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여러 경험을 통해 안다. 함께 모여서 즐겁게 웃고 떠들고 연대하는 것만큼 더 효과적인 폭력퇴치법도 없다는 것을. 일상적인 여성혐오나 성차별과 수시로 싸우면서 지쳐가는 페미들에게는 보다 더 다양한 여가활동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유발자인 여혐러나 성차별러들보다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페미들은 오늘도 열심히 파티를 열고 운동을 하고 춤을 춘다.


[1]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05262217015&code=940301
[2] https://www.facebook.com/events/513694088836873/
[3] https://twitter.com/femidangdang/status/749613351555084288
[4] https://twitter.com/femidangdang/status/768798885770780673
[5] http://www.womennews.co.kr/news/97857
[6] https://twitter.com/firefemiaction/status/774075775674744836
[7] https://twitter.com/firefemiaction/status/774076084153257985
[8] https://twitter.com/femidangdang/status/771204515022286849
"파티4" @ 서교동 프리버드2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9.01
'포스트잇'으로 거리 뒤덮기

‘포스트잇’ 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포스트잇으로 이별 통보를 받는 장면이다.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라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포스트잇 절교를 받고 싶냐 는 둥의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웃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처럼 ‘포스트잇’이라는 단어를 두고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과 구의역 비정규직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와 이에 대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용된 주요 도구는 바로 ‘포스트잇’이였다.

최근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포스트잇을 이용한 아주 유쾌하고 재밌는 캠페인을 벌였다. [1] 신촌역과 홍대 일대를 거닐며 성차별적인 광고판에 ‘안 웃겨요’, ‘고조선이야 뭐야~’와 같은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이다. “혼자 먹는 밥 안녕, 솔로 안녕”이라는 신촌역의 한 결혼정보회사 광고[2]와 “신봉선을 아이유로 만들어주는 통기타 레슨”이라는 전단지엔 “안 웃겨요” 포스트잇이[3],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엔 “고조선이야 뭐야~” 포스트잇이 붙었다. [4] 늘 도처에 존재하지만 어떤 대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혼자 인상을 찌푸리거나 못 본 채 지나가는 이러한 일상적인 혐오 표현들에 대해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이 ‘포스트잇 거리 액션’을 보면서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포스트잇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을 때, 그녀가 화를 냈던 것은 본인이 차여서가 아닌 자신의 얼굴을 마주보고 말 할 용기가 없어 일회용 포스트잇에 짧은 문구로 이별 통보를 대신한 잭 버거의 무책임함 이였다. 하지만 강남역 10번 출구, 구의역 스크린도어와 신촌 및 홍대 일대에 붙은 ‘포스트잇’은 비록 쉽게 떼어질지언정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은 절대 가볍지 않다. ‘넷사세’라는 말로 늘 무시 받으며 실체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온라인 담론, 특히 140자로 제한되어 메시지가 단순화 되었다고 믿어지는 트위터의 목소리들에게 ‘포스트잇’은 그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디지털 시대의 자유롭고 간편한 아날로그적 도구이다. 나는 포스트잇으로 뒤덮인 거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포스트잇이 더 이상 붙지 않는 거리를 동시에 꿈꾼다.


[1] http://www.womenlink.or.kr/minwoo_actions/18293
[2] https://twitter.com/womenlink/status/771251705996464128
[3] https://twitter.com/womenlink/status/771252518693146625
[4] https://twitter.com/womenlink/status/771254099715108864

# 페미니즘 by @louderaloud
2016.08.30
147, 고스트버스터즈

페미니스트 코미디클럽 (이하 페미코미) 에서는 정기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코미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각자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코미디를 감상하고, 관람이 끝나면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인터넷에서 공수해 온 영상들을 감상하는 이 모임은, 자발적인 기록을 악착같이 남기지 않는 이상 어디에도 유의미한 수치로 카운트되지 않는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영화의 관객수로 집계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참석자들의 즐거움만을 위한 모임에 가깝다.

하지만 극장 단체관람은 그 의미가 다르다. 영화의 상영기간 동안에 극장을 찾은 인원은 그 영화의 인기와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래서 페미코미는 <고스트버스터즈>를 극장에서 단체관람하기로 했다. 이것은 "함께 즐겁게 웃으며 코미디를 보자"는 목적뿐만 아니라 여성중심적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수량적으로 가시화한다는 목적에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2~30명 규모로 계획된 단체관람은 갑작스레 규모가 늘어나 예상치 못한 "147석 만석 대관"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147명이라는 숫자가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숫자뿐만이 아니다. 단체관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상영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같은 타이밍에 웃음을 터뜨리고, 서로가 서로의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경험이 매우 즐거웠다고 이야기한다. 만두와 국물의 적정비율에 대한 애비의 집념에 박수를 치고, 경호원들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에린의 푼수같은 매력에 웃음을 터뜨리고, 쌍권총을 핥는 홀츠먼의 섹시함에 열광하고, 패티의 박력 넘치는 불꽃싸다구에 환호하고, 케빈의 푼수미에 즐거워하는 관객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 여자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살면서 너무나 드물게 느껴본 즐거움이 아니던가. 이 거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빠른 시일 내에 또 찾아와주기를 기대해 본다.


2016. 08. 30. 19:40 롯데시네마 합정점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759264.html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8.26
항의자를 처벌하라

여기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경희대학교 학생 신지윤씨는 페이스북에 개설된 자대 대나무숲 페이지에서 후배를 폭행한 선배에 대한 제보글을 본 뒤 폭행사건의 성차별적 특성을 지적하기 위해 "가해자의 성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댓글로 남겼다. 이를 계기로 경희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의 댓글란은 순식간에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댓글로 뒤덮였고, 논란이 계속되자 대나무숲 운영자는 "여러분의 논쟁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권리는 없지만 이곳에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어휘 선택으로 분란을 일으키고 계신 분 하나가 있다"라며 신지윤씨를 차단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회사에 다니던 여성이 친하게 지내던 동료 직원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성추행 사실을 인지한 회사는 진상조사위원회를 열고 양측의 합의, 가해자들의 사과 및 가해자 감봉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뒤, 회사는 피해자가 회사의 기물을 파손하고 상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피해자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해고 통보로도 모자라 회사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피해자는 경제적 부담을 못이겨 포털사이트에 유서를 올린 뒤 자살을 기도했다.

두 이야기 속 여성들의 공통점은, "나만 가만히 있으면" 평화로운 성차별적 사회 속에서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는 것이다. 이 여성들이 소속된 집단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삭제한 뒤 마치 모든 갈등의 원인은 이 여성들이 가진 내적인 문제뿐이라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과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가 삭제당한 것이 성차별에 항의하는 여자에게 내려지는 성차별적 사회의 "처벌"을 상징한다는 걸.


http://strongertogether20160817.tistory.com/9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903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7.24
#내가메갈이다

1년 전 메갈리아가 처음 등장한 이후로, 온라인상의 성차별주의자들은 성차별에 조금이라도 반대한다 싶으면 "너 메갈하니?" 라는 질문을 들이대며 일종의 사상검증을 시도해 왔다. "아니다"라고 하면 사상검증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게 되고, "그렇다"고 하는 순간부터는 집요한 괴롭힘에 시달리게 된다. 성차별주의자들은 사상검증을 통해 "(남자가 정의하는)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여자"를 가려내고, 그런 평가 기준이 여자의 인생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과거에는 이 자리에 "꼴페미"가 있었다. 여자들이 성차별에 항의하는 자그마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너 꼴페미니?"라고 묻는 것이다. 이 작업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는 말로 포석을 까는 것이 성차별 항의 프로세스의 정석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부당한 낙인을 이토록 번거로운 방식으로 피해가야 할까?

메갈리아의 행보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의견들이 많다. 대표적인 전략인 '미러링'에 대해 혐오에 혐오로 맞서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 한동안 논란이 되어 워마드, 레디즘 등으로 커뮤니티가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던 게이 혐오 문제도 말끔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깔끔하게 정비된 대열이 있는 것도 아니요, 언어는 과격하고 그 구성원들은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메갈리아가 아니다"라고 선뜻 말해버릴 수는 없다. 애초에 메갈리아가 생겨나게 만든 원인인 일베와 온라인 상의 여러 성차별주의자 집단은 메갈리아만큼 집요한 사상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차별적 언행은 종종 "우리 사회의 아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포용되곤 하는데 유독 메갈리아만큼은 그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 한국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각종 프레임들의 젠더편향적 속성을 잘 드러내 준다.

지난 1년간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의 구분법에 시달려 온 트위터의 페미니스트들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이 부당한 사상검증을 깨부수는 방식은 말도 안 되는 프레임 자체를 거부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점을 안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낙인을 피하고자 메갈리아를 배척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 대신 이렇게 외친다. "내가 메갈이다"라고.


https://twitter.com/chiclix/status/757148360801263617
https://twitter.com/chiclix/status/757191930874728448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7.18
한 장의 페미니즘이 퍼뜨린 불길

성우 김자연. 이제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넥슨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에서 신규 캐릭터의 목소리로 캐스팅되어 활약할 예정이었던 그녀는 SNS에 올린 글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SNS에 글이 올라오자마자 논란이 되고, 논란이 시작된 지 단 하루 만에 게임 회사 측에서 신속한 속도로 성우를 교체하도록 만든 이 문제의 원흉은, 단 한 장의 티셔츠였다.

이 티셔츠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의 텀블벅 모금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페이스북 코리아는 "김치녀"와 같은 여성혐오성 페이지에 대한 신고는 기각시키면서 "메갈리아" 같은 페이지는 순식간에 차단하는 등 이용자들이 납득하기 힘든 운영 방식으로 꾸준히 논란을 만들어 왔다. "메갈리아4"는 이런 페이스북 코리아의 운영 행태에 항의하는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소송 비용을 모으기 위해 힘을 보태 주었다. 김자연 성우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자신에게 배송된 티셔츠를 입고 촬영한 사진을 SNS에 올렸다. 그리고, BOOM! 그녀는 일자리를 잃었다.

성우 교체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거센 항의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페미니스트 일반은 물론이고 게임 소비자와 게임업계 내부 관계자들에 이르기까지 김자연 성우를 응원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트윗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넥슨의 성우 교체 결정에 항의하기 위한 넥슨코리아 본사 방문 항의 시위가 조직되었으며, 정의당과 녹색당에서는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논평을 발표했으며, 웹툰 작가들은 김자연 성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트윗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움직임들을 고깝게 여긴 사람들은 넥슨코리아 본사 앞 시위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며 낄낄대고,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 성차별적인 항의글을 도배하고, 김자연 성우의 해고 조치에 반발하는 입장을 표명한 웹툰 작가들에게 "너희에겐 검열이 필요하다"며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웹툰 플랫폼에서 퇴출시킬 것을 요구하기까지 하는 중이다. 이 모든 논란은 현재진행형이고, 어떤 형태로 끝이 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속성이 몇년 전과는 현저하게 달라져 버린 지금, 페미니스트들이 순순히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곳곳에 가득한 사회에서,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은 과연 어떤 새로운 역사를 축적할 수 있을까. 불길은 이미 퍼지기 시작했고, 이제 세상은 어제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7/19/story_n_11063566.html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60601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6.20
소년24

엠넷에서 ‹소년24›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프로듀스101›처럼 아이돌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남자 버전이다. 과연 ‹프로듀스101›처럼 흥미진진한 서바이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데 웬걸? 출연자들의 외모는 물론이고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심상찮다. 두 프로그램의 차이를 결정짓는 요소들이 대체 무엇이길래?

‹소년24›는 ‹프로듀스101›과 달리 연예인 연습생이 아닌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진행 방식이 영 시원찮다. 미남 스타 장근석이 "사장님"으로 등장했던 ‹프로듀스101›과 달리, ‹소년24›의 진행을 맡은 미녀 스타 오연서는 "뮤즈"로 불린다. 24명의 "소년"들은 자신을 뽑아달라는 노래를 부르며 귀엽게 (혹은 멋지게) 춤을 추는 아이돌이 아니라, 데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라이징 스타"들로 묘사된다.

왜 소녀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나와서 제발 나를 뽑아달라며 귀엽고 깜찍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춰야 하고, 소년들은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스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이 불균형은 너무나 이상하다. 게다가 경력이 상당한 여배우를 데려와서 데뷔도 하지 않은 출연자들의 뮤즈 삼아버리다니. 만약 아주 잘생긴 남자 배우를 뮤즈 삼았다면 시대를 앞서 나가는 프로그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루하고 안일한 방식을 선택했고, 덕분에 프로그램은 매우 지루해졌다. 아, 게다가 ‹소년24› 속 소년들은 ‹프로듀스101› 속 소녀들보다 외모가 출중하지 않다. 여자 아이돌들은 아무리 예쁜 얼굴에 날씬한 몸매를 가져도 ‘상업성 평가’를 빙자한 비판에 시달려야 하는데, 남자 아이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대체 이 불균형의 원인은 무엇일까? 남녀의 성별만 바뀌면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의의도 달라지는 것일까?


http://boys24.mnet.com/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6.17
오뉴블 4, 여성 내러티브의 새로운 가능성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인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새 시즌이 공개되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는 <오뉴블>의 배우들이 넷플릭스 코리아 행사 참석 겸 시리즈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다. 다양한 여성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독보적 시리즈로 이미 무려 시즌7까지 제작 계약이 끝난 <오뉴블>의 이번 시즌은 코미디의 장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현실적인 이슈들로 초점을 옮기며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명백한 장점이라 또 말해봤자 입만 아플 지경이지만, <오뉴블>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다. 여자 교도소를 그려 내기 위한 ‘토큰 백인'으로 설정된 주인공 파이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면서도 주인공이 아니다. 파이퍼로부터 시작된 시리즈는 점점 교도소의 핵심 인구집단인 마이너리티 재소자들에게로 초점을 맞춰 간다. 파이퍼는 재소자들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서 린치를 당할 수도 있지만, 그녀에겐 다른 재소자들이 인권을 침해당하는 상황을 조성할 수 있는 인종적 특권이 있다. 이 특권은 점점 더 심각한 구조적 인권침해에 노출되는 비백인계 재소자들의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파이퍼와 특히 대비되는 캐릭터는 시즌4 후반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푸세다. 그녀의 죽음은 사고였지만, 교도소에서 그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영향력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푸세의 죽음과 그것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미국에서 #BlackLivesMatter 운동을 촉발한 에릭 가너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연상시킨다. 시리즈에서 가장 사랑받던 캐릭터를 죽임으로써 이것이 단순한 익명의 타인의 죽음이 아닌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처럼 느껴지길 바랐다는 제작진의 연출은, 상당수의 흑인이 "실수로" 죽는 일들이 가볍게 취급당하는 현실 속 문제들을 정확히 겨냥한다.

이런 <오뉴블>이 한국에도 서비스되고,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쇼 중 하나라는 사실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대다수 드라마나 영화의 여자 캐릭터들이 남자들의 멋짐을 부각시켜주는 들러리 역할만 떠안는 한국의 미디어 환경을 고려해볼 때, <오뉴블> 같은 쇼를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오뉴블> 속 여성들이 드라마의 중심에서 환하게 빛나는 동안, 남자들은 대부분의 순간에 주변인으로 물러나 있다. 여자가 전면에 선 이야기도 현실적일 수 있고, 존엄할 수 있으며,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오뉴블>의 한국 시장 진출이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미디어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61909547290434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5.21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요

무슨 영문인지 갑작스럽게 트위터에 20초짜리 영상이 하나 떠돌기 시작했다. 1994년도 MBC 뉴스에서 X세대의 ‘파격적인’ 옷차림들을 다루면서 삽입한, 2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어느 인터뷰 장면이었다. 군화를 신고 배꼽티를 입은 여성들과 이들을 보고 놀란 인터뷰어와의 대화를 살펴보자.

"잠깐만요, 이렇게 군화 신은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군화를 신으면 의외로 섹시한 멋도 나고요. 그리고 남자들이 주로 신는 거여서 그런지 남자들하고 대등한,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습니까?”

"아뇨,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누가 발췌해서 올린 영상이 리트윗을 통해 퍼지면서 트위터에서는 ‘X세대 언니들’의 당당함을 반가워하는 여자들의 트윗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사람은 2016년에도 사회의 간섭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만의 패션을 즐길 자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전히 '조크든요' 정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농담삼아 꺼냈고, 흥이 넘치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데일리룩을 공유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여기에 동참해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데일리룩 셀카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중에는 굳이 해시태그 응원이 필요 없어 보이는 무난한 옷차림도 많았지만, 평소에 길거리에서 보기 힘들거나 주위 사람들의 폭풍 고나리질 대상이 되곤 하는 파격적인 옷차림도 많았다. 덕분에 해시태그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이 열기에 힘입어 #이렇게화장하면기분이조크든요, #이렇게머리하면기분이조크든요, #이렇게네일하면기분이조크든요 등 자매품도 신나게 등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 도전해보지 못한 패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평소에 옷이나 머리 때문에 폭풍 고나리질을 받던 사람들은 자신의 셀카에 대한 리트윗과 좋아요 수를 보면서 반가움을 느끼는 즐거운 무브먼트였다. 지금까지 엄마가 허락한 힙합처럼 사회 규범이 허락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만 안전하게 걸쳐 왔다면, #조크든요 해시태그를 보면서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https://twitter.com/MMMGNT/status/734016855472406533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38566_19434.html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5.20
우연히 죽고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

강남에 갈 일이 좀처럼 없다. 일 년에 한 서너 번 가려나… 서울에 산 지 오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강남에 가려고 한강 다리를 건너면 '서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그날 살인 사건에서 ‘강남’만 떼어 놓고 본다면 나는 안전했는지도 모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보도된 살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강남역에 추모의 공간이 열렸다. 사람들은 포스트잇에 자신은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나도 강남역으로 향했다. 이번만큼은 몸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추모 공간의 무거운 공기와 공기만큼 두껍게 쌓인 포스트잇의 메시지들은 하나둘씩 사람들을 울렸다. 나의 몫의 추모를 하고 되돌아가는 길, 내가 걸은 강남역의 밤거리는 깨끗하고 밝았다. 주로 걷는 을지로와 성북동 거리보다 한결 안전해 보였다. 그제야 또 깨달았다. ‘강남’만 떼어 놓고 보아도, 나는 안전하지 않았다. 나도 썼어야 했다.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며칠 후 강남역의 추모 공간은 서울시청으로 옮겨 정리되었다. 질질 끌지 않아 마무리가 좋았다. 언론에서는 끝끝내 인정하기 싫어했지만 ‘여성혐오’와 ‘혐오범죄’라는 개념이 오르내렸다. 페미디아, @Shadow__Pins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움직임들이 눈에 띈다. 그렇게 ‘여느때와 다름없는’ 한 죽음이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이 죽음이 기록된 이상 어떤 죽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을 수 없다.


페미디아 / @Shadow__Pins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6.04.22
2030 여자들의 정치세력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서강대학교 여성주의학회 이음에서 주최한 20대 총선 평가 집담회 ‹Beyond 20, Toward 2020›에 다녀왔다. 이번 총선에 출마했던 김주온(녹색당), 남영희(더불어민주당), 문정은(정의당), 하윤정(노동당) 후보들과 더불어민주당의 19대 국회 청년비례대표 장하나 의원이 참석했고, 녹색당, 여성주의학회 이음, 레인보우 보트,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고용복지연금선진화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패널들도 참석했다.

20대 총선을 젠더와 청년 문제 중심으로 되돌아보며 평가한 이 집담회에서는 국회의원 성비의 심각한 불균형, 젠더정치 중심의 여성 후보 부족, 여성 청년들의 권익을 대변할 국회의원 부족 문제, 20대 총선 직전에 터진 정의당의 중식이밴드 논란, 여연에서 진행한 페미당 활동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집담회를 기획하고 주최한 여.세.연에서 제작∙배포한 보고서에는 남녀 투표율 트렌드, 20대 총선 여성 당선인 명단, 국회의 고령화 문제, 여성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 대한 간략한 분석도 포함되어 있어서 패널들의 토크를 듣는 동안 자료집도 매우 열심히 읽었다. 공짜로 이런 자료를 읽는 기회는 흔치 않고, 양질의 자료는 귀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단체에 소속된 패널들이 함께 모인 자리였기 때문에 엇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다각도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고, 서로 다른 목적과 방향성을 가진 여성들이 각계각층에서 느슨한 연대를 이어가자는 여.세.연 측의 최종 마무리 제안도 좋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생각보다 참석자가 너무 적었다는 점. 앞으로도 이런 논의들이 계속되어 21대 총선에서는 신선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서강대학교 다산관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4.08
언론의 여성혐오적 클릭베이트와 싸우는 여성들

4월은 연합뉴스가 여성의 적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달이었다. 4월 8일에는 소라넷 운영자에 빙의해서 쓴 1인칭 시점의 기사가 트위터에 올라오면서 큰 논란을 만들었고, 4월 28일에는 도시 청년(여성)층의 비혼 트렌드 때문에 농촌 총각이 상처를 받는다는 기사로 또 한 번 논란을 낳았다. 연합뉴스는 논란이 되자 사과 한마디 없이 기사들을 슬그머니 삭제하거나 수정했는데, 언젠가부터 비슷하게 반복되는 논란의 패턴을 보며 여성들은 이것이 의도적인 클릭베이트 기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항의의 움직임이 거대하고 굳건한 여혐 장사의 시스템을 깨지 못해서 오히려 이들의 돈벌이를 돕는 게 아닐까 싶어진 것. 그래서 여성들은 트위터 밖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소라넷 빙의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 제소를 진행했고,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 팀과 트위터 유저들은 연합뉴스 본사에 항의 방문을 했다. 비혼 기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트위터 유저들이 항의를 했고, 그 중에서도 트위터유저 @nojamhater는 이것을 계기로 클릭베이트 기사에 대한 언론공정위 제소 릴레이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거대한 여혐 마켓이 주는 무기력에 빠지기보다는 작고 꾸준한 민원 공격으로 부지런히 되받아치며 이 구조에 균열을 만들자는 것. 언론의 공격은 지겨울 정도로 계속되지만, 이에 맞서는 여성들의 전략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https://twitter.com/mediadaum/status/725161756272812033
https://twitter.com/chiclix/status/725865119121428481
https://twitter.com/Shadow__Pins/status/718446586842353664
https://twitter.com/nojamhater/status/727353480776544256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3.27
사람들이 지랄을 하면 설리는 휘핑크림을 먹어요

전직 함수니,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짤막한 영상이 인터넷과 각종 언론 매체를 휩쓸었다.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스프레이형 휘핑크림을 입안에 짜 넣고 짓궂게 미소를 짓는 영상이었다. 미성년자였던 f(x) 활동 시절부터도 색기가 넘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고 최강 자지를 가졌다는 한 래퍼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더욱 노골적인 성희롱의 타겟이 된 지도 오래인 와중에, 문제의 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영상 자체의 성적인 함의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설리를 둘러싼 사람들의 뒤틀린 시선들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폭발한 여러 논란은 흥미로웠다. 어떤 사람들은 “공인이 야한 것을 연상시키는 행위를 찍어 올리는 것은 문제”라 말했고, 어떤 사람은 “성희롱당해도 싸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트위터 페미들의 중론은, 설현과 같이 객체적이고 수동적인 섹시함을 드러내는 여자는 환영을 받지만 설리처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섹시함을 드러내는 여자는 마녀사냥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되어도 설리는 여전히 ‘야한 것을 연상시키는’ 사진들을 올리며 “뭐”라는 코멘트만을 달아 놓을 뿐이다. 마침내 한국에서도 성적인 함의를 드러내거나 또는 그렇다고 해석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뉴타입 여자 연예인이 탄생한 것이다. “눈빛으로 뻐큐를 날린다”는 트위터 유저들의 평처럼, 주눅 들지 않은 섹슈얼리티를 당당히 드러내는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여 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https://www.instagram.com/p/BDcryKLREYD/?taken-by=jin_ri_sul
https://twitter.com/lifeinaurora/status/714481604010225665
https://twitter.com/yjezmo/status/714270416684982272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3.10
“죽지 않을 만큼” 먹으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아라, 여자들!

디스패치에서 걸그룹 멤버들의 말을 인용하여 여성들을 위한 다이어트 식단을 추천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중에서 EXID 멤버 하니의 “죽지 않을 만큼 먹으면서 다이어트했다”는 말을 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젊은 여성들이 ‘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서 살을 빼고 몸매 관리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문제의식을 못 가지고, 심지어 그걸 기사로 써서 권장까지 해주는 디스패치를 보며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디스패치를 향한 분노를 계기로 타임라인에서는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미의 기준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미용 체중’ 이야기였다. 비정상적인 기준에 맞춰서 살을 빼느라 몸이 망가진 여성들의 이야기와 소위 ‘미용 체중’이라는 몸무게를 가진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현실적인 건강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타임라인에 넘쳐 흘렀다. 건강한 몸을 가졌으면서도 '미용 체중'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하다가 몸이 망가진 여성들의 자기 고백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좀 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들도 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 잡지만 제작해서 판매할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건강을 위한 잡지도 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해서 여성 건강 잡지에 실릴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안해보았다. 산부인과 검진 정보, 피트니스 센터 정보, 영양제 정보 등 여성 전용 건강 잡지의 콘텐츠로 담기면 좋을 내용들에 대한 제안들이 등장하자 몇몇 잡지 편집자들도 관심을 보였다. 비정상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플로우는 다양한 몸무게와 체형에 대한 긍정과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며 신선한 임파워링의 계기가 되었다.


https://twitter.com/dispatchsns/status/707847284478898176 https://twitter.com/distancier/status/708111168418635777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2.25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1주년, 그리고 진화

지난해 2월 10일에 시작되어 트위터 세계를 뒤흔들었던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이하 나페미) 선언으로부터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에 붙은 낙인을 떼어내기 위한 일상적 선언으로 시작된 이 선언 이후로 크고 작은 무브먼트들이 생겨나거나 사라졌고, 소위 '진짜 페미니스트'를 찾는 세력들은 이런 움직임을 수시로 비웃곤 했다. 그러나 그 비웃음이 얼마나 만연하고 집요하든 상관없이, 이 선언에 참여했던 여성들 각각은 ‘트페미’라는 거대하고 느슨한 군집을 형성하면서 꾸준히 진화해 가고 있다. 균질한 집단이기보다는 이질적인 개인들의 집합체에 가까운 트페미들은 사회 각각의 다양한 이슈들을 시시각각 매우 빠른 속도로 흡수하여 격렬하게 논쟁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 꾸물꾸물 성장해 나간다.

2월 25일 새벽, 여러 평범한 여성들의 변화와 각성의 계기가 되었던 나페미 선언 1주년 기념 이벤트를 해보자는 트윗들을 보고 나는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며 트페미들이 성장해 온 만큼 이제는 '-입니다'로 끝나지 않는 당당한 선언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를 시작했다. 이것은 나페미 선언이 시작되던 시기에도 이미 몇몇 사람들이 꾸준히 제안했던 방향이기도 하다. 2월 25일 새벽에 시작된 해시태그 선언은 조심스럽고 엄숙했던 작년과 달리 당당한 자기선언과 스웩 넘치는 움짤 파티가 되어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 동안 실시간 트렌드에 머무르는 기록을 세웠다. 여전히 공부가 부족하며 페미니스트 선언을 망설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이제는 페미니즘이 문명인에게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라는 태도를 취하면서 즐겁게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흐름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꾸준히 지속되고 더 진화하길 기대한다.


https://twitter.com/urgonnadiebabe/status/702266980103946240
https://twitter.com/neawgim/status/702514999739068417
https://twitter.com/distancier/status/702700066750885889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2.17
이 남자들아, 설현도 인간이야

YTN 뉴스에서 ‘설현 밧줄 광고’에 대한 남녀의 엇갈린 반응을 보도했다. 여기까진 평범한데, 그 내용이 트윗에 올라오고 여자들이 불쾌감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되었다. 설현을 다루는 미디어의 태도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과, 그런 페미니스트들을 비웃고 욕하며 그들이 설현을 공격한다고 말하는 자칭 ‘친-설현’ 안티-페미니스트들의 설전이 언제나처럼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다.

사실 미디어가 설현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은 이미 많았다. 하지만 저 뉴스를 본 남자들이 설현을 등장시킨 광고를 '선정적이다'라고 비판하는 여자들의 반응에 대놓고 비아냥을 보내기 시작하자 분노가 폭발해버린 것. 그럼 과연 그 광고는 무슨 내용이었을까? 많은 여자들은 몸매가 부각되는 원피스를 입은 채 눈밭에 다소곳하게 누운 설현을 땅에 묶은 포르노적 시선의 광고를 보며 그녀의 육체적 매력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로밍 서비스 광고에까지 덧씌워진 성적 대상화 필터가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당수의 남자들은 그 사진이 걸리버 여행기 컨셉일 뿐이라며 '너희들의 뇌가 더러운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현이 나온 G마켓 광고와 쿠팡의 택배 광고를 비교하는 트윗들이 잇따라 등장했지만, 이번엔 섹시한 여자/남자 모델이 등장하는 외국 광고들을 언급하면서 "성 상품화는 광고의 효과적 장치일 뿐”이라는 일침러와 "성을 파는 것은 광고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이라는 술주정러가 가세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엇박자 논란의 흐름은 애초에 “설현을 고깃덩이처럼 소비하는 남자 소비자들의 관점 문제”를 지적하며 시작된 것인데, 정작 그 당사자인 남자 소비자들이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문제 해결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https://twitter.com/Anarchy_KR/status/699894059943403520

# 페미니즘 by @distancier
2016.01.30
이동진의 특급 어리둥절행

19일 이동진은 영화 ‹캐롤›에 평점 만점을 선사하며 “멜로드라마의 역사가 장르에 내린 햇살 같은 축복.”이라 평했다. ‹캐롤›은 ‘이동진의 라이브톡’에 새해 첫 선정된 영화로, 30일 여러 기대를 품고 압구정 CGV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과 함께 첫 선을 보였다. 그날, 캐롤을 해설하며 이동진은 “테레즈는 그러니까 레즈비언이라기보다는 그 캐롤을 사랑한 것인데 그 캐롤이 하필이면 여자였던 것이죠”라는 말을 꺼냈고, 까였다. 아마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 레즈비언의 사랑을 커다란 스크린관에서 보며 벅찬 감정을 느꼈을 어떤 성소수자의 존재를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을 무시하고 ‘다수’의 ‘눈높이’에만 맞춰 무언가를 하기에 그의 발언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커졌고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또한 어느 때보다 커져 있었다. (대중이라 불리는 ‘다수’의 눈높이를 어느 수준으로 상정하고 행동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참담하기도 하다.) 어떤 균열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균열은 작아도, 한번 일어난 균열은 메꿀 수 없다.


http://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9936938

# 페미니즘 by @sceneryoftoday
2016.01.05
트위터의 여자 자기자랑 운동

트위터 유저 @mind_mansion의 제안으로 시작된 해시태그 ‘#여자_자기자랑’은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자기가 가진 능력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하는 경향성을 극복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별다른 검열 없이 자기의 잘난 능력을 내세우거나 내가 어딘가에 이만큼 기여했다고 자기PR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자연스러운 것과 달리 여자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기여도를 인정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데에 소극적인 편이다. 그래서 연봉 협상 테이블이나 성과 평가에서도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1월 5일 이후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여자들의 자기자랑 트윗에서는 외모 자랑, 요리 실력이나 손재주 자랑, 운동 능력 등 다양한 자기자랑이 등장했지만, 학교나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성취를 얼마나 이루었는지에 대한 내용들도 많았다. 독해력이 좋은 여자, 빠른 학습을 하는 여자, 여러 개의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여자,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여자 등, 잘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자랑하지 않고 있던 겸손한 여자들이 여성들이 자신이 가진 장점을 돌아보고 그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자랑하는 기회를 가져 보는 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칭찬하고 그 가치를 더 인정하게 되었고, 다른 여자분들의 트윗들을 보며 자극을 받고 서로의 멋진 능력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유능한 여자들을 위한 임파워링 무브먼트, #여자_자기자랑 해시태그는 아직도 트위터에서 계속되고 있다.


https://twitter.com/search?q=%23%EC%97%AC%EC%9E%90_%EC%9E%90%EA%B8%B0%EC%9E%90%EB%9E%91&src=typd

# 페미니즘 by @distanc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