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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2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돈의문 뉴타운 제1구역이다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 중 ‘주제전: 아홉 가지 공유'가 열리고 있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이전 이름은 '돈의문 뉴타운 제1구역'이다. 2014년부터 GS건설사가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을 분양할 목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 뉴타운 사업 인가가 떨어졌고 2014년, GS건설이 분양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업은 본격화되었다.

뉴타운 사업은 기업 및 뉴타운 조합이 분양가 등의 수익을 얻기 위해 추진되지만, 동시에 세입자들의 재산권을 배재한다. 해당 지역의 세입자들이 이주해 재개업할 수 있도록 보상할 의무가 따라붙지 않는다. <내일신문> 김영숙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뉴타운 사업은 민간인인 뉴타운조합에게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재건축 재개발을 추진함에도 다른 민간인의 재산을 강제수용할 수 있는 수용권(명도집행)을 주었다.”[1]

프레시안 기사에 따르면, 돈의문 뉴타운 사업의 조합(이하 조합)은 이곳 지역민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제 1구역 면적의 부분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용적률*을 높였다. 서울시와 조합측 모두 얻을 걸 얻기 위한 계약에서, 세입자들의 몫을 위한 항변은 묵살되었다. [2]

철거가 예정된 재개발 지역 세입자들은 다음 세입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권리금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세입자 대책위는 수십년 간 운영한 무형의 가치와 더불어 이주와 영업 지속을 위한 비용을 조합과 서울시, 시공사인 GS 건설에 요구했다. [3] 조합측에서는 이들에게 뉴타운 단지 내 새 상가를 조합원 분양가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평당 3000만원 대의 상가를 분양받기 위해선 수십억원이 필요하며,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안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이미 2015년, 이곳의 세입자들이 처한 상황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 되었음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2016년, 명도집행(철거 용역을 이용한 강제 철거)된 당신의 가게에서 분신 자살한 고 모씨(당시 60세)의 사건 발생 관계-철거 용역측은 고 모씨가 철거된 광경을 본 고 모씨가 스스로 저지른 것으로 주장하나, 유족측에선 철거 용역 직원의 시비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한다-가 규명되지 않은 채 건물들은 철거되었다. [5]

서울시가 조합과 맞바꿔 조성한 박물관 마을의 원 취지는 용산참사와 같은 강제 철거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상징적인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6] 꿈은 아름다고 창대했을지라도 결과는 참담하다. ‘공유 도시’를 표방한 건축 비엔날레가 열리는 이 장소는 토건자본이 갈아 엎은 ‘돈의문 뉴타운 제1구역’의 폭력의 역사와 그 가해의 역학(민관의 비윤리적 상생관계)을 묻어뒀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도시의 공공성 이미지를 전시함으로써. 그 언어들을 구성하는 권력으로. 말하자면 이 장소를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주권'으로. 그러나 우리는 그 주권의 추악함을 <안티고네>(소포클레스)에서 이미 바라본 바 있다. 비엔날레가 주장하는 도시의 공유성은 이 땅의 역사와 공명하지 않는다. 그 화두들이 문자 그대로 의미하는 진리와 별개로. 오히려 이 장소의 현재를 과거로부터 격리시킬 뿐이다.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 죽음을 돌보는 이는 이들 자신뿐이다. 법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목소리. '시민'은 왜 법 바깥에 있어선 안 되는가? 나는 이 반동적인 비엔날레의 현장에서 어떠한 웃음도 환대도 흘리고 싶지 않다.



[1] <돈의문 뉴타운 강제철거에 세입자 분신>, 김영숙 기자,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92269 2016-04-14
[2] <칠순 여행한다던 고 씨는 왜 제 몸에 불 붙였나?>, 허환주 기자,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6691 2016-05-19
[3] <내쫓긴 서울 돈의문상가 세입자···누구의 잘못인가>, 서승범 기자, 뉴스웨이 http://news.newsway.co.kr/view.php?tp=1&ud=2015020216452998862&md=20150203142401_AO 2015-02-03
[4] 김영숙 기자, 같은 곳
[5] 이 글을 쓰기 위해 해당 기사를 쓴 허환주 기자에게 기사 이후 정황을 문의했고 답변을 받았다. 기자의 동의를 얻어 문장을 인용한다. "고인의 따님이 서울시에 문제제기도 하는 등 여러 지적을 했지만, 결국 아무런 것도 밝혀지지 않고 현장은 철거됐습니다."
[6] <재개발 실패지역, 도시재생 모범사업으로 '둔갑'>, 홍범택 이제형 기자,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49830, 2017-09-06
참고 <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16) 돈의문뉴타운 철거민>, 양동주 기자, http://m.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88868 2015-10-28
용적률의 뜻
대지 내 건축물의 건축 바닥면적을 모두 합친 면적(연면적)의 대지면적에 대한 백분율. 용적률은 대지내 건축밀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된다. 용적률이 높을수록 대지면적에 대한 호수밀도 등이 증가하게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26434&cid=42151&categoryId=42151

# 도시 by @gusvjar
2017.06.07
서울 혹은 경성 : 서울의 주인은 누구인가

서울시가 중구 회현동 일대의 '남촌재생플랜'을 통해 북촌 , 서촌과 같은 관광명소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 그러나 북촌하면 한옥마을이 떠오르듯이 남촌을 대표하는 고유 정체성과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에서 남촌이 일본인 주거지였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치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이어서일까. 근현대건축물 밀집지역에 도시재생시설을 설치하겠다는 '남촌재생플랜' 어디에도-적어도 언론에 공개된 수준에서는-그 근현대건축물을 짓고, 살았던 일본인들에 대한 얘기는 담겨있지 않은 듯 하다.

서울이 '경성'이던 시절, 서울에서는 수십만명의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뒤엉켜 살았고, 이들의 생활상은 지금의 서울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어린이용 교육 책자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경성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차별대우에 서러움을 느끼면서도 일본에 의해 새로이 접하게 된 외국의 문물을 부러워하고 좋아했어요" 라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2] 식민지 시절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 어렵고, 민감하고, 때로는 '아픈' 작업일 수 밖에 없겠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용감하고 당당해져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서울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품고 있는 당당한 서울시민이 된 지 오래다. 과거를 못 본 체 하고서 서울의 '역사문화'를 제대로 보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1]"회현동 일대 '남촌' 거듭난다…북촌·서촌 같은 명소로", 연합뉴스, 2017.06.07
[2]<일제 강점기의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어린이용 역사 안내서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879326974778277888

# 도시 by @eun_gong
2017.05.17
서초구 서초동 : 강남역 10번 출구로부터 1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부터 꼭 1년이 지났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각기 슬픔과 위로, 분노를 표출하고 포스트잇을 통해 공유하였다. 예고에 없던 자유발언대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집도 근처이기도 하거니와 수 차례 그곳을 방문하여 많은 분들의 얘기를 들었고, 그 중에서도 자신을 서초4동에 사는 딸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하셨던 아주머니의 말씀은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5월 17일 오후에 첫 포스트잇이 붙은 이후로,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포스트잇과 함께 어떻게든 자신의 혐오를 표출하고자 하는 무례한 이들도 강남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초4동의 아주머니는 무례한 이들에게 이성적으로, 하지만 분노를 담아 항의하셨던 분들 중 하나였다. 결혼하고 강남역 코앞에서 삼십 년을 살아왔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고, 여자를 노려서 죽였다는 범인의 말을 듣고 공포와 분노에 치를 떨었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가, 내 딸이, 집 코앞의 번화가에서 놀다가 그렇게 죽었을 지 누가 아냐고, 나라도 나서서 많은 사람들한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불안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강남역에 나왔다고도 하셨다. 당장 우리 여자들 일상이 걸린 문제인데, 여자들이 이렇게 나와서 할 말 하는게 무엇이 남자 혐오고 무엇이 유별난거냐고 차분하게 따지셨다. "남자 혐오를 하지 말라" 고 외치던 그 무례한 남성은 이에 말문이 막혔는지 말을 멈췄고, 주변의 시민들은 그 아주머니께 박수를 보냈다.

이로부터 1년이 흘렀다. 여성혐오와 각종 혐오범죄가 논쟁의 주요 의제에 올랐고, 페미니즘이 대선 공약으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물론 아직 '안전한 사회'는 멀기만 해 보인다. 1주기 추모 기사에 달린 입에 담지 못할 덧글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의제를 좋든 싫든 공유하게 된 것만으로 큰 변화의 시작일 것이라 생각한다. 한 여성의 폄하를 일삼던 이들조차도 수많은 분노와 위로, 슬픔과 소망이 모여들었던 강남역 10번 출구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864840886886187008

# 도시 by @eun_gong
2017.03.11
서울 종로구 종로 : 1500만, 광화문을 향한 길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이 결정된 이튿날, 종로와 광화문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촛불이 처음으로 광화문 사거리를 밝혔던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3월 11일까지, 20주 134일에 이르는 긴 여정이 어느덧 끝을 맺는 날이었다. 연인원 1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1]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지켜내고자 종로통으로 광화문으로 향했고, 마침내 끊임없이 후퇴하는 것만 같았던 역사의 방향을 트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종로와 광화문은 1500만, 혹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에게 승리의 공간으로 ‘좋았던 공간’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1500만명이 종로구에 모여드는 동안, 보수 정권 하에서 억눌려 왔던 '광장에서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굳이 입 밖으로 소리내어 구호를 외치지 않더라도, 피켓을 흔들지 않더라도, 광화문은 그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그저 광장의 인파 속에 섞여 있는 것만으로 정치적 자유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1500만명의 운집에는 당연히 교통통제가 뒤따랐고, 덕분에 주말 황금 시간대 종로의 한 가운데를 자동차가 아닌 사람들-시위 참가자들-이 차지하였다. 종로 하면 항상 막히고, 답답하고, 매연에 가득 곳이라는 인상을 받곤 하지만, 지난 20주 동안에는 달랐다. 버스에 실려 종로의 길 '위'를 이동하는 것이 아닌, 두 발로 직접 종로 한복판을 딛고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종로를 행진하면서 정치적 자유로움 뿐만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무의식 중에라도 분명히, 발견하였으리라.

지난 20주 동안, 1500만명의 시민들은 서울 도심, 종로와 광화문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데 성공하였다. 동시에 서울도, 본래의 자유로움을 되찾는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이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1] "[종합]2만명으로 시작한 촛불, '1500만명' 넘었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840496835181461506

# 도시 by @eun_gong
2016.12.14
서울 중구와 종로구 : 헌법 위의 경찰

2016년 1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서울 도심에는 경찰버스 ‘차벽’이 들어섰다. 대로는 물론이고 거주지의 비좁은 이면도로까지 틀어막는 경찰버스는 보수정권 8년 간 서울 도심의 일상이 된 지 오래이다. 경찰 차벽의 건너편에 거주하는 수 만명의 옥인동, 청운동 시민들은 이동권을 제약받고 있으며, 상인들은 매 주말마다 극심한 영업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1] 경찰은 ‘청와대에 막대기가 앉아있어도 지켜야 한다’[2]며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지만, 청와대와 1km도 넘게 떨어진 종로와 을지로에까지 차벽이 진출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도심의 도로를 경찰버스로 틀어막고, 시민들에게 ‘시위 때문에 차가 막힌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차벽 설치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지 벌써 7년이 지났다.[3] 하지만 경찰에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굳이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닌 듯하다. 엿새 전, 이철성 경찰청장은 서울행정법원이 5주 연속 청와대 부근의 집회에 대해 허가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법원과 경찰의 입장은 다르다"며 계속해서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사회의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행정 기관이 이렇게 헌법과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숨통이 조여지는 서울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2016년 서울 하늘 아래 경찰은 여전히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1] "차벽 때문에 매출 반 토막, 그래도 촛불집회 지지한다"
[2] "청와대에 막대기가 앉아있어도 지켜야 하는 게 경찰의 숙명"
[3] 경찰 차벽 왜 위헌·위법인가

# 도시 by @eun_gong
2016.11.12
서울 중구와 종로구 :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도시, 서울

2016년 11월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백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광화문광장에 미처 들어서지 못한 시민들은 제각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촉구하는 피켓과 촛불을 들고 종로, 을지로, 새문안로의 골목을 빠짐없이 채웠다. 평소에는 그저 서로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스쳐지나가기에 바빴던 도심의 길가에서, 이 날 만큼은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서로의 주장을 듣고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도시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효용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촛불집회가 끝나고,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성숙한 시민의식에 감사”하다며 “취지가 같다면” 율곡로 집회를 재차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러 보수 언론에서도 역시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된 시위였다”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이들은 ‘시민의식’이라는 단어를 시위대가 그들의 기준에 ‘비폭력적’으로 보일 때나 선심쓰듯이 활자에 담아 오며, 으레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난 다음 날엔 난장판이 된 서울 도심의 소식을 전하곤 하였다. 하지만 ‘비폭력적인 시위’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의 극치이다. 시위의 본질은 저항하는 시민들의 집단 의사 표출이다. 백만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폭력’임에도 이를 애써 모르는 척 하는 이들에게, 서울시가 만약 인격체였다면 비웃음과 냉소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비폭력적인 시위’에 만족하는 이들에게 백만명이 모인 이번 촛불집회는 다음과 같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수많은 이들이 모이는 서울은 태생적으로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도시이며,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서울에 들이대는 것만큼 소용없는 일은 없다’고.


서울경찰청장 “취지가 같다면 율곡로 집회·행진 허용” - KBS

# 도시 by @eun_gong
2016.10.12
서울 중구 덕수궁과 환구단 : 누구를 위한 대한제국인가

10월 12일, 덕수궁 주변 서울광장과 환구단 일대에서 서울시의 <<정동, 그리고 대한제국13>>사업 계획[1]을 선포하는 행사가 열렸다. 정동 일대에 산재해 있는 대한제국 시절의 역사문화자원을 잇는 총 길이 2.6km의 역사탐방로를 중심으로 시청 서소문 별관에 <광무전망대>를 설치하고 한반도 최초의 근대식 호텔이었던 <손탁호텔>을 본딴 카페를 조성하는 등의 내용이 계획의 주된 골자이다.

겉으로 보기엔 흠잡을 데 없는 근대 유산 정비 사업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의문이 가는 부분이 눈에 띈다. 10월 12일의 선포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승리한 역사"로 규정하며 "국민주권국가가 탄생한 최초의 역사" 라고 발언하였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대한제국의 헌법이었던 <대한국 국제>의 그 어디에도 백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신민이라는 표현만이 등장할 뿐 대한제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구절은 없다. 고종 연간에 이루어졌던 환구단 조성, 전차 설치 등의 한성부 대개조 사업 또한 궁극적으로는 전제군주 왕권의 강화가 주된 목적이었지 백성들을 위해서 행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서울시가 '사람이 중심인 서울'을 모토로 시정을 꾸려나간지도 어느덧 수 년이 지났다. 이러한 현대의 서울에 '왕권과 제국의 공간'이었던 대한제국기의 서울을 녹여내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할 것이나, 이번 <<정동, 그리고 대한제국13>>에서 보여준 서울시의 시각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사업의 종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실제 사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박원순 "대한제국은 승리의 역사"…정동에 2.6㎞ 역사탐방로 조성>, 뉴시스, 2016.10.12

# 도시 by @eun_gong
2016.09.02
서울 중구 소공동 : 스러져가는 '모던'

지난 한 달 동안, 부영 그룹이 매입한 소공동의 옛 오피스 빌딩군 보존 문제를 다룬 여러 건의 신문기사를 접했다. 소공동과 인접한 북창동을 아울러 이 지역을 '근대건축의 보고寶庫' 라고 칭한 기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사에선 문제의 근대건축물을 '도심의 흉물', '금싸라기에 버려진 땅'으로 칭하고 있었다. 기사 본문을 살펴보면 '근대건축물이라고 해서 꼭 문화재라고 볼 이유는 없다', '문화재가 아니니 보존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다' 라는 주장도 등장한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구 서울시청과 서울역사 정도를 제외하곤, 그 어떤 근현대 건축물도 굳이 도심에 남길 필요가 없어진다. 문화재가 아니니까. 분명 이들 언론사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언론들이 최소한 한 번 쯤은 '서울의 몰역사성'에 대하여 비판하며 구미권의 고풍스러운 도시 경관 보존 사례를 상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구미권의 오래된 오피스 빌딩이며 집합주거가 반드시 문화재라서 보존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아마 다들 모르고 계셨던 듯 하다.

식민지 조선에 '모던'이 도래한 이래, 강남과 도심 재개발에 그 지위를 내주기 이전까지 소공동과 그 일대는 줄곧 근대 서울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급속도로 진행된 재개발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오피스 '빌딩군'은 이제 부영이 매입한 7채의 건물이 전부이다. 잃어버리고서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음을, 수많은 근대건축물의 철거를 통해 이젠 깨달았을 법도 하건만 무엇이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서울은 이미 충분히 '모던'을 잃어버렸다.


http://jooncar4869.blog.me/220789234330

# 도시 by @eun_gong
2016.08.10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 훌륭한 공간의 조건

지난 8월 3일에 있었던 첫 번째 시위에 이어 이화여대 재학생 및 졸업생의 2차 총시위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경찰 추산으로는 1차 시위 때보다 1,500여명 가량 적은 3,500명이 모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캠퍼스를 채운 인원은 1차 때의 몇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학생들을 강제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로 가득 찼던 캠퍼스는 어느새 진정한 '학교의 주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캠퍼스의 순환 도로는 학생과 졸업생 참가자들로 가득했으며, 캠퍼스의 랜드마크인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이하 ECC)는 다시 한 번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수놓은 불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시위 현장에 있던 이들 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를 접한 사람이라면, 학생들이 캠퍼스라는 공간을 통해 당연히 그들이 얻어야 마땅한-그러나 수많은 편견에 의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시위의 당위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에 누구라도 공감하리라.

ECC의 설계자인 도미니크 페로가 이날의 시위 광경을 보았더라면 분명히 감격했을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창조한 공간 중에 이토록 위대하게 사용된 예가 또 얼마나 있을까. 이번 시위는 우리에게 "훌륭한 공간은 훌륭한 사용자가 있기에 비로소 존재함"을 일깨워준 시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763397592411537408

# 도시 by @eun_gong
2016.06.11
서울 중구 서소문로 124 : 우연히 살아남은 1970

6월의 어느 날, 시청 앞을 지나다니면서 눈길만 주어 왔던 알리안츠 서소문빌딩(이하 알리안츠빌딩)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2호선 시청역의 코앞이라는 목 좋은 입지에 어울리지 않게 외장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빌딩이었다. ‘외벽 청소는 안 하나’, ‘언제쯤 재개발을 하려나’하는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에 주변에 펜스가 둘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알리안츠 빌딩은 1970년 준공된 이래로 바로 이웃의 대한빌딩(2011년 철거), 길 건너편의 연호빌딩, 한 블럭 건너 위치한 동화빌딩 등과 함께 반 세기에 가까운 세월 내내 시청 오피스 타운의 탄생과 변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흰색으로 도색된 전면 파사드와 검정 타일로 마감된 측면부가 이루는 대조 덕분에 다른 빌딩에 비해 유난히 눈에 띄기도 했었다. 알리안츠 빌딩과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 보니 빌딩의 재개발은 이미 수년 전부터 추진되어 오고 있었다고 한다. 이 빌딩을 포함한 서소문구역 5지구는 이미 2008년에 재개발 예정 지구로 결정이 난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건물 소유와 투자를 둘러싸고 전직 대통령의 영식과 외국계 자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에 재개발 추진이 더딘 상황이었단다. 이분들의 힘겨루기 덕에 기념할 만한 서울의 근현대 도시 공간이 재개발지구 지정으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나마' 남아 있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재밌으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741656414611857410

# 도시 by @eun_gong
2016.04.16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 광장의 본질

퇴근길에 매일같이 지나가던 광화문 광장에 내려봤다. 수백 번 넘게 봐 왔던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보슬비가 내리는 속에서 추모하기 위해 차분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추모 행렬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모두가 추모 행렬을 존중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정확히 1년 전, 역시 퇴근길에 마주했던 광화문 광장의 추모 행렬이 어떠한 벽에 부딪혔는지 떠올려본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차분한 추모 행렬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 텐데, 1년 전의 기억 때문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서울에 질리도록 살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수백 건이 넘는 행사를 지켜봐 왔다. 하지만 일 년 중 이날만큼 광화문 광장이 광장으로서의 본질을 찾는 날이 또 있을지, 추모 행렬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https://twitter.com/eun_gong/status/721251083499151360

# 도시 by @eun_gong
2016.01.31
재난 속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작년부터 이어진 건물주 싸이와의 갈등에 재난을 선포하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1월에도 끊임없이 낭독회, 퍼포먼스, 공연, 설치, 시위, 포럼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강제 집행을 대비하고 있다.

내 기억 속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인스타 사진 찍기 좋은 곳이었다. 커피 값은 유난히 비싸도 재미있고 아름다운 신문 형태의 메뉴와 인테리어, 빽빽한 아파트가 보이는 시원한 창 등이 기억에 남는, 쾌적하고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공간이었다. 얼마 전 다시 방문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선 불쾌한 냄새가 났고, 내부 집기는 엉망이었으며 사람들도 지쳐 있었다. 페이스북엔 매일매일 싸이를 호명하는 긴 글이, 고통스럽게 업데이트된다. 이렇게 모든 방법이 소진된 듯한 기색으로, 무관심 속에서 지난한 시간이 또, 31일 흘렀다.

자연스럽게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인스타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대신 “PSY OUT”을 외치는 맘상모 회원들과 진보 시민단체들, 급하게 작업한 음악과 작품을 설치하는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아직도 테이크아웃드로잉일까? 지금, 싸이로부터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지켜 내면, 그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어떤 테이크아웃드로잉일까?


테이크아웃드로잉

# 도시 by @sceneryoftoday